약속을 믿는 사람들 (롬4:14-25)
본문
저는 90 평생을 자녀도 없이 외롭게 살아오신 한 할머니를 알고 있습니다. 이 분은 꽃다운 10대의 어린 나이에 고향인 수원에서 좋은 신랑과 결혼 을 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결혼한지 불과 몇 개월만에 남편이 멀리 미국으 로 떠나게 되었는데, 갔다가 꼭 오겠노라고 약속을 하였지만 종내는 아무 소 식도 없어 이 할머니는 결국 미국간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평생을 혼 자 사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은 남편이 '오겠다고 하였 기 때문에' 그 약속만 믿고 기다리다 보니 자기 생애가 다 끝났더라고 하시 면서 지금도 그 약속은 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의 생애를 생각할 때, 참으로 애절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이 며 전시대(前時代) 한국 여성의 부도를 실천한 또 훌륭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 재가를 하시던지 수소문해서 미국 간 남편의 생사여부라도 알아보시지 그랬습니까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어떻 게 혼자 사실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그 분은 단순히 꼭 다시 오신 다는 약속만 믿고 기다렸을 뿐이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 무나도 무모한 일이 아니었는가 하면서도 저는 오직 한가지 약속만 믿고 기 다린 그 할머니의 기다림의 세월이 무언가 가슴이 뭉클한 뜻을 전해 준다고 느꼈습니다. 히브리서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하여,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것을 멀리 바라보고 즐거워하였으며, 땅 위에서는 손과 나그네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히11:13) 라고 말하였습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라고 할 때에, 그것은 곧 약속을 굳 게 붙잡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과 신뢰심 이 어떻게나 강한지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산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약속을 믿고 그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 참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것을 보시면 기뻐하시고 믿음이 없는 것은 책망하 십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참지 않고, 신실성를 저버리는 일인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예로들어 믿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 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었다'고 하였고 '아 브라함은 믿음이 있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아니하였고' '아브라함은 그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아브라함 은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였으니 하나님은 이를 저에 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20)고 하였습니다. 즉 언제 어떠한 상황속에서라 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며 현실에 이루어지는 실재보다 오히려 약속자체를 더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 그들이 믿음을 가 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신실하 심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곧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약속하신대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까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그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 됩니다. 성경은 약속입니다. 구약은 옛 언약이고 신약은 새 언약입니다. '성경'의 언약은 하나님이 그 성경을 믿는자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약속을 바로 알아야 되며 또한 약속하신 것을 믿어야 됩니다. 반드시 약 속하신대로 믿고 말씀하신대로 믿고 따라야 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이 약속 의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무엇을 더한다던지 무엇을 덜한다면 그것은 월권입니다. 하나님이 약 속하신 것을 자기 기분이나 취향대로 고칠 수 없습니다. 말씀에 가하거나 감 하는 것은 약속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서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좌 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대로 지키고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믿는 사람은 '약속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입의 말은 영원히 없어 지지 아니하며 그 약속들의 일점이나 일획도 변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약속하신대로 이루어 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말씀하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요.계시요.명령이라고 하는 자가 있으면 그것은 거짓 선생이요 적 그리스도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보내시지 않았는데 보냄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는 이단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그 대로 믿지 않으면 그는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약속 아니한 것은' 믿지도 보 지도 따르지도 말고 '약속하신 것은' 그 약속대로 믿고 따르는 자들이 되어 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후손이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수있나 보라'하시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 때에 아브 라함은 여호와를 믿었다고 하였습니다.(창 15:6) 그 말씀.그 약속은 다른 분 의 약속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은 하나님이 하신 그대로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 약속을 그대로 믿고 신 뢰하고 의지하게 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속대로 믿는 것 만이 의를 이룰 수 있게 합니다.
둘째로, 약속을 믿는 자가 된다는 것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는 것' 입니다. '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라고 한 것은, 인간으로서는 그것이 불가능한 사실이라는 것을 아브라함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 불가능 성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을 더 믿고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현실보다 약속을 더 따랐고 자기의 상식과 경험보다 '약속'을 더 믿었습니다. 모든 것 의 비중을 하나님의 약속편에 더 두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다는 말입니다.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은 다 그렇습니다. 끊질기게 믿고 무모할 정도 로 믿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믿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억지를 쓰고 배짱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불가능의 가능' 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 갈 수 있었던 일은 그것이 어 디 억지나 배짱으로 되었던 일이었겠습니까 '바랄 수 없는 것 중에도 바라는 믿음'을 가짐으로써 가능했던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신기하거 나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때때로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약속을 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믿고 그 위에 굳게 서는 사람들에게는 약속대로 되어집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기적도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때로는 바랄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여기에 감격이 있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 게되고 믿음이 얼마나 큰 힘인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 속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게 하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약속을 믿는 자들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믿고 움직이고 행하는 자들입니다. 약속이 이루어졌느냐 아니 냐 보다, 이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은 단 하나의 자녀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녀 를 갖는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민족 의 조상으로 세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때문에 그는 이미 '민족들의 조 상'이 된 것입니다. 천지가 있기 전에 말씀이 먼저 계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 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서 말씀이 먼저 있음으로 모든 것이 다 있게 되 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만을 믿고 따르려고 합니다. 보이는 세계는 믿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참된 존재는 '보이지 않는데' 있습니다. 말씀이나 약속은 보이는 것이 아 닙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실제요 무엇이 근원입니가 참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무 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5)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물질 세계에 있는 것 들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하나님과 그 세계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이며 그 림자들입니다. 모형은 진짜가 아니고 모조품들이며 그림자는 실제가 아니고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 한 영상일 뿐 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그렇게 열심히 추구하고 소원하는 이 세상의 것들은 결국 모형이며 그림자들에 지나지 않 습니다. 그 실체는 보이지 아니하는데 숨겨져 있습니다. 그 실체요 근원자이신 하나님이 하신 그 약속을 믿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졌거나 아니거나 거기에 구 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알라' 고 하셨는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그 분이 누구이신지 않다면, 또 너희가 누구에게 기도한 것인지를 안다면 벌써 다 된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안으로 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주장하시고 이끄시고 섭리하시는 그 분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만물의 창조자이시요 역사의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있고 없고, 보이고 안보이고, 되고 안되고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있게도 하고 없게도 하시는 분, 되게도 하고 안되 게도 하시는 전능자 하나님, 바로 그 분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여 주신 약속이 아닙니까 이 약속만 굳게 잡으면 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위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음으로써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외형적으로 변화가 없어 보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본체의 세계 에는 큰 혁명과 변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믿음을 가질때 보이지 않는 힘이 생겼 고 약속을 믿는 자가 될 때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변화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변화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은 지금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약속을 믿는 사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루어 진 것'으 로 알고 믿고 감사하며 그 성취감과 기쁨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넷째로 약속을 믿는 자들이란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는 사람 들입니다. 약간 바라는, 그저 희망사항으로 기대하는 정도의 믿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에 완전히 설복당하여 '미 쳐 날 뛸' 정도의 기쁨과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확신입니다. 아마 믿음이 없는 사람이 볼 때엔 '미친 짓'같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총독 베스도 앞에서 열정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할 때 그의 확신이 얼마나 강했던지 총독은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 26:24)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붙잡는 믿음은 참되고 정신차린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확신은 참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믿는대로 행하게 되고 믿는 바를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행동하며 자 기가 믿는 바 대로 살아갑니다.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약속을 확신한 아브라함은 무조건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시니 그는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 있는 확신은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 삭으로 말미암으니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도 살리실 줄 생각'(히 11:18)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철저하게 그 약속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확신하는 믿음이 무엇보다도 그 사람을 '강한 자'로 만듭니다. 열심이 있 고 능력이 있게 합니다. 확신은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모두 다 강하게 만 듭니다. 물론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보면 실제로 그는 강하 기만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의심도 하고, 때로는 나약해지기도 했 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계속 의심하거나 계속 나 약해 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약속을 믿는다고 해도 때 때로 나약해집니다. 의심이 들어 옵니다. 회의에 빠지고 엉뚱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그러한 순간적인 유혹과 일시 적인 실수를 계속해 나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약속을 붙잡 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약속에로 돌아오고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래서 '약하여 지지않고'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또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은 '보증'이 있는 권리증과 같습니다. 이 권리증은 한갖 종 이쪽지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재산권을 확실히 보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약속한대로 믿고, 바라지 못할 일도 바라며,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모든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것을 멀리 바라보고 즐거워하였으며, 땅 위에서는 손과 나그네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히11:13) 라고 말하였습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라고 할 때에, 그것은 곧 약속을 굳 게 붙잡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과 신뢰심 이 어떻게나 강한지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산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약속을 믿고 그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 참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것을 보시면 기뻐하시고 믿음이 없는 것은 책망하 십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참지 않고, 신실성를 저버리는 일인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예로들어 믿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 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었다'고 하였고 '아 브라함은 믿음이 있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아니하였고' '아브라함은 그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아브라함 은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였으니 하나님은 이를 저에 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20)고 하였습니다. 즉 언제 어떠한 상황속에서라 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며 현실에 이루어지는 실재보다 오히려 약속자체를 더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 그들이 믿음을 가 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신실하 심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곧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약속하신대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까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그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 됩니다. 성경은 약속입니다. 구약은 옛 언약이고 신약은 새 언약입니다. '성경'의 언약은 하나님이 그 성경을 믿는자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약속을 바로 알아야 되며 또한 약속하신 것을 믿어야 됩니다. 반드시 약 속하신대로 믿고 말씀하신대로 믿고 따라야 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이 약속 의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무엇을 더한다던지 무엇을 덜한다면 그것은 월권입니다. 하나님이 약 속하신 것을 자기 기분이나 취향대로 고칠 수 없습니다. 말씀에 가하거나 감 하는 것은 약속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서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좌 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대로 지키고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믿는 사람은 '약속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입의 말은 영원히 없어 지지 아니하며 그 약속들의 일점이나 일획도 변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약속하신대로 이루어 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말씀하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요.계시요.명령이라고 하는 자가 있으면 그것은 거짓 선생이요 적 그리스도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보내시지 않았는데 보냄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는 이단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그 대로 믿지 않으면 그는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약속 아니한 것은' 믿지도 보 지도 따르지도 말고 '약속하신 것은' 그 약속대로 믿고 따르는 자들이 되어 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후손이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수있나 보라'하시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 때에 아브 라함은 여호와를 믿었다고 하였습니다.(창 15:6) 그 말씀.그 약속은 다른 분 의 약속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은 하나님이 하신 그대로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 약속을 그대로 믿고 신 뢰하고 의지하게 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속대로 믿는 것 만이 의를 이룰 수 있게 합니다.
둘째로, 약속을 믿는 자가 된다는 것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는 것' 입니다. '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라고 한 것은, 인간으로서는 그것이 불가능한 사실이라는 것을 아브라함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 불가능 성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을 더 믿고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현실보다 약속을 더 따랐고 자기의 상식과 경험보다 '약속'을 더 믿었습니다. 모든 것 의 비중을 하나님의 약속편에 더 두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다는 말입니다.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은 다 그렇습니다. 끊질기게 믿고 무모할 정도 로 믿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믿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억지를 쓰고 배짱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불가능의 가능' 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 갈 수 있었던 일은 그것이 어 디 억지나 배짱으로 되었던 일이었겠습니까 '바랄 수 없는 것 중에도 바라는 믿음'을 가짐으로써 가능했던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신기하거 나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때때로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약속을 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믿고 그 위에 굳게 서는 사람들에게는 약속대로 되어집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기적도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때로는 바랄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여기에 감격이 있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 게되고 믿음이 얼마나 큰 힘인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 속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게 하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약속을 믿는 자들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믿고 움직이고 행하는 자들입니다. 약속이 이루어졌느냐 아니 냐 보다, 이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은 단 하나의 자녀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녀 를 갖는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민족 의 조상으로 세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때문에 그는 이미 '민족들의 조 상'이 된 것입니다. 천지가 있기 전에 말씀이 먼저 계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 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서 말씀이 먼저 있음으로 모든 것이 다 있게 되 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만을 믿고 따르려고 합니다. 보이는 세계는 믿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참된 존재는 '보이지 않는데' 있습니다. 말씀이나 약속은 보이는 것이 아 닙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실제요 무엇이 근원입니가 참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무 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5)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물질 세계에 있는 것 들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하나님과 그 세계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이며 그 림자들입니다. 모형은 진짜가 아니고 모조품들이며 그림자는 실제가 아니고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 한 영상일 뿐 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그렇게 열심히 추구하고 소원하는 이 세상의 것들은 결국 모형이며 그림자들에 지나지 않 습니다. 그 실체는 보이지 아니하는데 숨겨져 있습니다. 그 실체요 근원자이신 하나님이 하신 그 약속을 믿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졌거나 아니거나 거기에 구 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알라' 고 하셨는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그 분이 누구이신지 않다면, 또 너희가 누구에게 기도한 것인지를 안다면 벌써 다 된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안으로 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주장하시고 이끄시고 섭리하시는 그 분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만물의 창조자이시요 역사의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있고 없고, 보이고 안보이고, 되고 안되고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있게도 하고 없게도 하시는 분, 되게도 하고 안되 게도 하시는 전능자 하나님, 바로 그 분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여 주신 약속이 아닙니까 이 약속만 굳게 잡으면 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위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음으로써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외형적으로 변화가 없어 보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본체의 세계 에는 큰 혁명과 변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믿음을 가질때 보이지 않는 힘이 생겼 고 약속을 믿는 자가 될 때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변화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변화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은 지금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약속을 믿는 사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루어 진 것'으 로 알고 믿고 감사하며 그 성취감과 기쁨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넷째로 약속을 믿는 자들이란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는 사람 들입니다. 약간 바라는, 그저 희망사항으로 기대하는 정도의 믿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에 완전히 설복당하여 '미 쳐 날 뛸' 정도의 기쁨과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확신입니다. 아마 믿음이 없는 사람이 볼 때엔 '미친 짓'같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총독 베스도 앞에서 열정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할 때 그의 확신이 얼마나 강했던지 총독은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 26:24)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붙잡는 믿음은 참되고 정신차린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확신은 참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믿는대로 행하게 되고 믿는 바를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행동하며 자 기가 믿는 바 대로 살아갑니다.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약속을 확신한 아브라함은 무조건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시니 그는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 있는 확신은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 삭으로 말미암으니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도 살리실 줄 생각'(히 11:18)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철저하게 그 약속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확신하는 믿음이 무엇보다도 그 사람을 '강한 자'로 만듭니다. 열심이 있 고 능력이 있게 합니다. 확신은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모두 다 강하게 만 듭니다. 물론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보면 실제로 그는 강하 기만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의심도 하고, 때로는 나약해지기도 했 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계속 의심하거나 계속 나 약해 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약속을 믿는다고 해도 때 때로 나약해집니다. 의심이 들어 옵니다. 회의에 빠지고 엉뚱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그러한 순간적인 유혹과 일시 적인 실수를 계속해 나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약속을 붙잡 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약속에로 돌아오고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래서 '약하여 지지않고'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또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은 '보증'이 있는 권리증과 같습니다. 이 권리증은 한갖 종 이쪽지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재산권을 확실히 보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약속한대로 믿고, 바라지 못할 일도 바라며,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모든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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