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것이 없이도 행복한 자 (롬4:1-10)
본문
I. 사람은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에 따라 그들의 인간의 목표가 다른 것 같이 보이지만,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 행복입니다. 행복은 인간의 최고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행복을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을 하면 행복하게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즉 행복 은 인간이 노력하여 얻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신 건강 협회(The National Association for Mental Health)가 행복한 생애를 위하여 5가지 대원칙을 내 놓았습니다. 너그러워지라.(tolerance) 자기 자신과 남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여유를 갖는 마음가짐입니다. 현실적으로 자기를 평가하라.(realistic estimation) 자기의 능력에 대하여 현실적이며, 정직한 평가와 자기 이해를 하라는 뜻입니다. 자부심을 가지라.(personal pride in accomplishment) 남들의 평가로 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성취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하면 족하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라. 후회란 실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데서 옵니다.
그러므로 결과를 염려하지 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명랑하게 살라.(cheerful attitude) 물론 명랑해지기 힘든 환경에 놓일 때가 많지만 그런 여건에도 불구하고 밝게 노력해 보라는 권고입니다. 이 권고도 인간의 행복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 온 것이다. 행복은 스스로 노력하여 얻는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을 해도 행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심히 코피 를 쏟아가며 공부를 해도, 불행하게 시험에 떨어지는 학생이 있습니다. 이런 학생은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행복을 얻지 못한 자입니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일평생 죽으라고 일만 했는데, 행복하지 못하고 일찍 죽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노력으로 행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6:2-3)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 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사람이 비록 100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 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 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라" 또한 (전9:11) 말씀을 보면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 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 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 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행복은 인간의 노력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도 행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류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져 줍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도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복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생각해 낸 사상이 행복이란 어떤 일을 한 후 에 그 결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것 그 자체가, 그 결과에 관계 없이 행복한 것이라는 사상입니다. 즉 그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최선 을 다하였으면 그 결과에 상관 없이 나는 행복한 자라고 해석하게 되었읍니다. 즉 결과 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시하는 사상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참 행복은 인간이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본문 (롬4:6)에서 "일한 것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 말씀을 접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행복은 우리의 노력과는 상관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열심히 일을 해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무 일한 것이 없는데도 행복한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일 한 것이 없는데도 행복한자"는 어떤 자인가를 살펴 보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아무 한 것도 없이 믿음으로 의로와 지는 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인생의 최고의 목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지막 입학 시험은 천국에 들어가는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행복한 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천국에 들어가면 행복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불행은 잠시 뿐이고, 천국 생활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학교 다닐 때 내내 가난하여 고생하며 공부를 했어도, 사법고시에 합격 하면 그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그가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행복하게 살아도, 천국에 못들어가면 그는 불행 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행복은 잠간이고, 지옥의 불행은 영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행복한 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자입니다. 그럼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어야 합니다. (히9:27) 말씀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심판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면 천 국에 갑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 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든 인류와 모든 종교와 모든 학문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을까를 탐구해 왔습니다. 그 방법을 모 색해 왔습니다. 그 방법의 하나로 죄를 안질려고 노력을 해 보았습니다. 남에 게 선을 베풀어도 보았습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으 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자신이 없었 습니다. 아무리 죄를 안질려고 해도, 나는 죄가 없다고 확신할 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선을 행해도 나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 을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나, 즉 나의 양심이 나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수 없다고 내게 고백을 해 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 다고 인정 받은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롬3:10) 말씀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업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롬3:20)에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업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자가 없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자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다는 것은 인간은 다 불 행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노력을 가지고는 행복해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 의인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길이 바로 행복을 얻는 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은 길 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롬4:5) 말씀을 보면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 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의롭게 여기십니다. 인간의 노력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으로 의롭게 되는 법 대신에" 새로운 법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는 "은혜의 법"입니다.
그래서 (롬3:21-22)에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 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 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인이 될 수 있는데는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는 법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 든 사람이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새로운 법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를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는 법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은혜의 법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 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느냐 못 믿느냐와 관계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행복한 의인입니다. 그러나 못믿으면 천구에 들어가지 못하는 불의한 죄 인입니다. 우리는 번의 방법으로는 의로워 질 수 없지만 번의 방법으로는 얼 마든지 의로워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 겨주시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한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아무 일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고, 천 국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 행복한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는 대단해 행복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 지 않고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행복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로와 질만한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십니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시험이 천국에 들어가는 시험에 합격시켜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한 것도 없이 행복해 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은 우리가 진정을 복있는 자들입니다.
2. 아무 한 것도 없이 죄 용서함을 받은 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를 씻어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다고 해도, 우리의 무거운 죄, 부끄러운 죄, 무서운 죄가 그대로 있으면 우리는 천국에서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죄를 씻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씻을려고 해 도 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죄인으로 남아 있어야만 합니다. 영원히 죄인으로 남아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을 예수님이 다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안져서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에 대한 벌 을 다 받아서 우리에게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죄를 짓고, 죄에 대한 아무런 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다 짊어지시고, 그 죄에 대한 벌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사53:4-6)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 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러나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 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렇게 우리는 아무것도 한것이 없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의 벌을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불법의 사하심을 받았고, 죄를 가리우 심을 받았고,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죄라고 정죄하지 않으시는 자가 되었읍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자들입니까 진정으로 행복한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프렌시스제크 가죠우닉제크(Franciszek Gajowniczek)가 아우쉬비쯔에 있는 나찌 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재소자가 탈출을 했습니다. 당시에 만약 재소자 중에 한 사람이 탈출을 하면, 닥치는 대로 10명을 뽑아서 그들을 한 감방에 집어 넣고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굶어죽게 했읍니다. 그렇게 무서운 연대책임을 물게 해서, 재소자들이 탈출을 하지 못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담당관이 와서는 10명의 재소자의 이름을 마구 불렀습니다. 그 때 프렌시스제크 가죠우닉제크의 이름도 불리워졌습니다. 순간 그는 "우리 부인, 우리 애들"하며 흐느껴 울었니다. 그때 코블(Koble)이라고 하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사가 앞으로 나왔읍니다. 그리고는 "나는 부인도, 자식도 없소. 그러니 내가 저 사람 대신 죽겠소"하고 제의를 했습니다. 담당관은 그 수도사의 제의를 받아들였읍니다. 그래서 가죠우닉제크는 살아났고, 대신 코블 수도사가 1941년 8월 14일 죽었습니다. 그때 부터 가죠우닉제크는 자기 대신 코블 수도사가 죽은 8월 14일이 되 면 매년 아우쉬비쯔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마당에 코블 수도사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그의 숭고한 희생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장식판(plaque)을 세워 두었습니다. 이 프렌시스제크 가죠우닉제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코블 수도승의 은혜로 죽어야 할 자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죠우 닉제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행복한 자가 되었습니다. 죄를 져서 죽어야할 우리가 이 가죠우닉제크 처럼 예수님이 우리 대신 그 죄를 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 에 대한 벌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행복한 자들입니다. 어느 늦은 가을에 한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품에 안고 넓은 초원을 가로 질러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 초원 한 가운데 왔을 때, 그 어머니는 시 커먼 연기가 커다란 구름 같이 몰려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연기 구 름은 점점 더 가까이 왔으며, 얼마 가지 않아, 거대한 불기둥이 강풍을 타 고 이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번개같이 몰려오고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이 초원의 불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이 거대한 불기둥이 몰려 오자, 이 어머니는 얼른 엎드려서 구덩 이를 팠습니다. 그리고는 불길이 닥쳐오자, 어린 아들을 그 구덩이에 넣 고 자기의 몸으로 그 구덩이를 막았습니다. 불이 지나가고난 후에 사람들이 그곳을 살펴 보다가 이 여인이 타죽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불에 탄 시체를 옮기는데 구 구덩이 속에서 어린 아이가 살아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불에 타 죽어야 하는 자기 아이의 생명을 맹렬한 불길 속에서 구원했습니다. 이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으로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대속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행복한 자 들입니다. 우리 교회 백승국이라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는 중앙대학교 법대 4년 장학생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는 중에 신장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전혀 알지도 못하는 자가 백승국 형제에게 신장을 기증을 했읍니다. 그래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정상적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백승국 형제는 그 사람에게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행복 하게도 그분이 그에게 신장을 기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신장병으로 평생 을 고생해야 하는데서 해방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이 없이 은혜를 입는 자들이 행복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다 씻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을 우리가 도저히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그 죄의 벌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죄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의인이 되 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것도 없이 행복하게 된 참으로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3. 믿음으로 복의 근원이 된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아브람이라는 사람이 페르시아만에서 멀지 않은 지금의 이라크 땅인 갈 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75세가 되도록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였습니다. 행복과는 거리가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너의 본토 친척 아 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지중해안에 있는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 셨습니다. 그러면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하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 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 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2-3)고 하셨습니다. 자식이 없어 불행한 아브라함이 이렇게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믿음 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데는 아브라함 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것이라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 종한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 시한 곳으로 간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주셨읍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이 큰 복을 받았습니다. 1986년의 통계에 따르념 유대인의 인구수는 전 세계에 약 1천 4백 50만 명이다. 이숫자는 남한 인구의 약 3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그 중에 미 국에 6백 84만명 (Barry Kosmin, 1990년 통계)이 거주하고 있다. 유대인 의 나라인 이스라엘 영토는 남한의 강원도와 경기도를 합친 크기 밖에 안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큰 복을 받았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역 사적으로 전 세계에 노벧 수상자는 1986년까지 약 300명 정도 이다. 그 중에서 유대인 출신이 93명이다.
전노벧 상 수장자 중에서 유대인이 차지 하는 비율은 경제학 분야 65 % 의학분야 23 % 물리학분야 22 % 화학 분야 11 % 문학분야 7 %등 각 분야에 골고루 퍼져 있다 특히 의학으로 인류에 공헌한 스트렙토 마이신의 발명가 젤만 왁스만, 페니실린 발명가 어네스트 B 체인도 유대인이다. 미국의 70만명의 변호사 중에서 20 %인 14만 명이 유대인이다. (1988년 통계) 미국에서 있는 4백명의 재벌명단중 23 %가 유대인이다. 뉴욕 중.고등하 교 교사중 50 %가 유대인이다. 국민투표로 당선된 미의회 의원들 535명 중 42명이 유대인이다. 미국 대학 교수 중 25-30 %가 유대인이며, 특히 프 린스턴 대학의 경우 총장및 주요 행정 책임자들은 90 %이상이 유대인이다. 이 외에도 하버드 대학이나 UCLA 의 의대 및 법대 교수들 중 50 % 이상이 유대인다. 유대인들은 한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복의 근원이 되어서 이런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 어 복의 근원이 된 자들이 행복한 자들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대를 이어 믿음의 후손이 된 기독교도 큰 복을 받았습니다. 기독교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 되어서 기독교가 큰 복을 받았 습니다. 세계에 선진국이 다 기독교 국가입니다. 세상에 행복한 나라가 다 기독교국가입니다. 기독교국가는 지금 세계에 복을 나눠주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과 기독교가 이렇게 세계의 복의 근원이 된 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렇게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 이 된데에는 그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었읍니다. 아브라함이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자가 진 정 행복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행복해 지는 자들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며, 아브라함의 복의 근원의 대를 잇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 불행이 조상이 되지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일을 해서 노력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케네디가(家)는 미국 대통령과 법무장관, 2명의 상원의원, 2명의 하원 의원을 배출한 미국 최고의 명문이다. 그러나 존 F 케네디가 63년 대통 령 재임중 암살당한데 이어 그의 아들인 케네디 주니어마저 사고로 요절하는 등 불운이 끊이지 않는 비운의 가문으로도 유명하다.
케네디가의 영광의 토대를 닦은 인물은 케네디 전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프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인 조지프는 탁월한 경영수완으로 30대에 백만장자가 됐다. 그는 프랭클린 루스벧트 대통령의 강력한 재정 후원자로 활약했으 며 덕분에 증권거래위원장, 영국주재 미국대사 등을 역임했다. 케네디가의 영광은 조지프의 차남인 존이 제35대 미 대통령이 되면서 절정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케네디가는 연속적으로 비운을 겪었다. 63년 존이 암살된데 이어 68년에는 그의동생(조지프의 3남)으로 강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전법무장관이 선거유세 도중 암살됐다. 조지프는 69년 숨질 때까지 세 아 들과 딸 하나를 잃었다. 69년에는 막 내 아들인 에드워드가 매사추세츠 주 채퍼퀴딕섬의 한 다리에서 차를 몰고 가다 강으로 추락, 자신은 목숨을 구했으나 여비서가 숨져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으면서 대통령의 꿈을 접 어야 했다. 케네디가의 비극은 최근에도 그치지 않았다. 로버트의 셋째 아들인 데이비드가 84년 약물 과다복용으로, 넷째 아들인 마이클은 작년 1 월 스키장 에서 스키를 타다가 사고로 숨졌다. 에드워드의 장남으로 하 원의원을 지낸 조(매사추세츠주)는 케네디가에 또다시 대통령의 꿈을안겨 줄 수 있는 인물로 꼽혔다. 그러나 조는 가족과의 불화, 동생 마이클의 사 망 등 이어지는 불행을 견디지 못하고 작년말 정계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케네디 주니어의 사망이 확인될 경우 케네디가의 명맥을 이어갈 인물은 에 드워드 상원의원과 그의 차남 패트릭 하원의원(로드아일랜드주)뿐이다. 케네디가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동원하여 행복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고, 그렇게 출세를 했지만 복의 근원은 되지 못 했습니다.
그러므로 전세계인이 그들을 보고 행복한 자들이라고 하지 않읍니다.
왜냐하면 복의 근원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 한 아브라함 덕에 믿음의 후손이요, 복의 근원이 된 참으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행복을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을 하면 행복하게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즉 행복 은 인간이 노력하여 얻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신 건강 협회(The National Association for Mental Health)가 행복한 생애를 위하여 5가지 대원칙을 내 놓았습니다. 너그러워지라.(tolerance) 자기 자신과 남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여유를 갖는 마음가짐입니다. 현실적으로 자기를 평가하라.(realistic estimation) 자기의 능력에 대하여 현실적이며, 정직한 평가와 자기 이해를 하라는 뜻입니다. 자부심을 가지라.(personal pride in accomplishment) 남들의 평가로 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성취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하면 족하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라. 후회란 실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데서 옵니다.
그러므로 결과를 염려하지 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명랑하게 살라.(cheerful attitude) 물론 명랑해지기 힘든 환경에 놓일 때가 많지만 그런 여건에도 불구하고 밝게 노력해 보라는 권고입니다. 이 권고도 인간의 행복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 온 것이다. 행복은 스스로 노력하여 얻는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을 해도 행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심히 코피 를 쏟아가며 공부를 해도, 불행하게 시험에 떨어지는 학생이 있습니다. 이런 학생은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행복을 얻지 못한 자입니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일평생 죽으라고 일만 했는데, 행복하지 못하고 일찍 죽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노력으로 행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6:2-3)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 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사람이 비록 100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 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 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라" 또한 (전9:11) 말씀을 보면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 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 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 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행복은 인간의 노력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도 행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류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져 줍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도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복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생각해 낸 사상이 행복이란 어떤 일을 한 후 에 그 결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것 그 자체가, 그 결과에 관계 없이 행복한 것이라는 사상입니다. 즉 그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최선 을 다하였으면 그 결과에 상관 없이 나는 행복한 자라고 해석하게 되었읍니다. 즉 결과 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시하는 사상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참 행복은 인간이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본문 (롬4:6)에서 "일한 것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 말씀을 접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행복은 우리의 노력과는 상관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열심히 일을 해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무 일한 것이 없는데도 행복한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일 한 것이 없는데도 행복한자"는 어떤 자인가를 살펴 보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아무 한 것도 없이 믿음으로 의로와 지는 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인생의 최고의 목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지막 입학 시험은 천국에 들어가는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행복한 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천국에 들어가면 행복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불행은 잠시 뿐이고, 천국 생활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학교 다닐 때 내내 가난하여 고생하며 공부를 했어도, 사법고시에 합격 하면 그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그가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행복하게 살아도, 천국에 못들어가면 그는 불행 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행복은 잠간이고, 지옥의 불행은 영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행복한 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자입니다. 그럼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어야 합니다. (히9:27) 말씀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심판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면 천 국에 갑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 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든 인류와 모든 종교와 모든 학문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을까를 탐구해 왔습니다. 그 방법을 모 색해 왔습니다. 그 방법의 하나로 죄를 안질려고 노력을 해 보았습니다. 남에 게 선을 베풀어도 보았습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으 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자신이 없었 습니다. 아무리 죄를 안질려고 해도, 나는 죄가 없다고 확신할 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선을 행해도 나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 을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나, 즉 나의 양심이 나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수 없다고 내게 고백을 해 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 다고 인정 받은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롬3:10) 말씀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업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롬3:20)에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업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자가 없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자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다는 것은 인간은 다 불 행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노력을 가지고는 행복해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 의인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길이 바로 행복을 얻는 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은 길 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롬4:5) 말씀을 보면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 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의롭게 여기십니다. 인간의 노력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으로 의롭게 되는 법 대신에" 새로운 법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는 "은혜의 법"입니다.
그래서 (롬3:21-22)에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 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 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인이 될 수 있는데는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는 법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 든 사람이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새로운 법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를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는 법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은혜의 법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 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느냐 못 믿느냐와 관계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행복한 의인입니다. 그러나 못믿으면 천구에 들어가지 못하는 불의한 죄 인입니다. 우리는 번의 방법으로는 의로워 질 수 없지만 번의 방법으로는 얼 마든지 의로워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 겨주시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한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아무 일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고, 천 국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 행복한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는 대단해 행복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 지 않고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행복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로와 질만한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십니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시험이 천국에 들어가는 시험에 합격시켜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한 것도 없이 행복해 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은 우리가 진정을 복있는 자들입니다.
2. 아무 한 것도 없이 죄 용서함을 받은 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를 씻어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다고 해도, 우리의 무거운 죄, 부끄러운 죄, 무서운 죄가 그대로 있으면 우리는 천국에서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죄를 씻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씻을려고 해 도 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죄인으로 남아 있어야만 합니다. 영원히 죄인으로 남아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을 예수님이 다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안져서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에 대한 벌 을 다 받아서 우리에게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죄를 짓고, 죄에 대한 아무런 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다 짊어지시고, 그 죄에 대한 벌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사53:4-6)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 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러나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 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렇게 우리는 아무것도 한것이 없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의 벌을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불법의 사하심을 받았고, 죄를 가리우 심을 받았고,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죄라고 정죄하지 않으시는 자가 되었읍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자들입니까 진정으로 행복한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프렌시스제크 가죠우닉제크(Franciszek Gajowniczek)가 아우쉬비쯔에 있는 나찌 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재소자가 탈출을 했습니다. 당시에 만약 재소자 중에 한 사람이 탈출을 하면, 닥치는 대로 10명을 뽑아서 그들을 한 감방에 집어 넣고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굶어죽게 했읍니다. 그렇게 무서운 연대책임을 물게 해서, 재소자들이 탈출을 하지 못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담당관이 와서는 10명의 재소자의 이름을 마구 불렀습니다. 그 때 프렌시스제크 가죠우닉제크의 이름도 불리워졌습니다. 순간 그는 "우리 부인, 우리 애들"하며 흐느껴 울었니다. 그때 코블(Koble)이라고 하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사가 앞으로 나왔읍니다. 그리고는 "나는 부인도, 자식도 없소. 그러니 내가 저 사람 대신 죽겠소"하고 제의를 했습니다. 담당관은 그 수도사의 제의를 받아들였읍니다. 그래서 가죠우닉제크는 살아났고, 대신 코블 수도사가 1941년 8월 14일 죽었습니다. 그때 부터 가죠우닉제크는 자기 대신 코블 수도사가 죽은 8월 14일이 되 면 매년 아우쉬비쯔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마당에 코블 수도사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그의 숭고한 희생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장식판(plaque)을 세워 두었습니다. 이 프렌시스제크 가죠우닉제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코블 수도승의 은혜로 죽어야 할 자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죠우 닉제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행복한 자가 되었습니다. 죄를 져서 죽어야할 우리가 이 가죠우닉제크 처럼 예수님이 우리 대신 그 죄를 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 에 대한 벌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행복한 자들입니다. 어느 늦은 가을에 한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품에 안고 넓은 초원을 가로 질러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 초원 한 가운데 왔을 때, 그 어머니는 시 커먼 연기가 커다란 구름 같이 몰려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연기 구 름은 점점 더 가까이 왔으며, 얼마 가지 않아, 거대한 불기둥이 강풍을 타 고 이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번개같이 몰려오고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이 초원의 불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이 거대한 불기둥이 몰려 오자, 이 어머니는 얼른 엎드려서 구덩 이를 팠습니다. 그리고는 불길이 닥쳐오자, 어린 아들을 그 구덩이에 넣 고 자기의 몸으로 그 구덩이를 막았습니다. 불이 지나가고난 후에 사람들이 그곳을 살펴 보다가 이 여인이 타죽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불에 탄 시체를 옮기는데 구 구덩이 속에서 어린 아이가 살아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불에 타 죽어야 하는 자기 아이의 생명을 맹렬한 불길 속에서 구원했습니다. 이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으로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대속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행복한 자 들입니다. 우리 교회 백승국이라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는 중앙대학교 법대 4년 장학생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는 중에 신장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전혀 알지도 못하는 자가 백승국 형제에게 신장을 기증을 했읍니다. 그래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정상적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백승국 형제는 그 사람에게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행복 하게도 그분이 그에게 신장을 기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신장병으로 평생 을 고생해야 하는데서 해방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이 없이 은혜를 입는 자들이 행복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다 씻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을 우리가 도저히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그 죄의 벌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죄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의인이 되 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것도 없이 행복하게 된 참으로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3. 믿음으로 복의 근원이 된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아브람이라는 사람이 페르시아만에서 멀지 않은 지금의 이라크 땅인 갈 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75세가 되도록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였습니다. 행복과는 거리가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너의 본토 친척 아 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지중해안에 있는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 셨습니다. 그러면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하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 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 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2-3)고 하셨습니다. 자식이 없어 불행한 아브라함이 이렇게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믿음 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데는 아브라함 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것이라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 종한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 시한 곳으로 간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주셨읍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이 큰 복을 받았습니다. 1986년의 통계에 따르념 유대인의 인구수는 전 세계에 약 1천 4백 50만 명이다. 이숫자는 남한 인구의 약 3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그 중에 미 국에 6백 84만명 (Barry Kosmin, 1990년 통계)이 거주하고 있다. 유대인 의 나라인 이스라엘 영토는 남한의 강원도와 경기도를 합친 크기 밖에 안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큰 복을 받았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역 사적으로 전 세계에 노벧 수상자는 1986년까지 약 300명 정도 이다. 그 중에서 유대인 출신이 93명이다.
전노벧 상 수장자 중에서 유대인이 차지 하는 비율은 경제학 분야 65 % 의학분야 23 % 물리학분야 22 % 화학 분야 11 % 문학분야 7 %등 각 분야에 골고루 퍼져 있다 특히 의학으로 인류에 공헌한 스트렙토 마이신의 발명가 젤만 왁스만, 페니실린 발명가 어네스트 B 체인도 유대인이다. 미국의 70만명의 변호사 중에서 20 %인 14만 명이 유대인이다. (1988년 통계) 미국에서 있는 4백명의 재벌명단중 23 %가 유대인이다. 뉴욕 중.고등하 교 교사중 50 %가 유대인이다. 국민투표로 당선된 미의회 의원들 535명 중 42명이 유대인이다. 미국 대학 교수 중 25-30 %가 유대인이며, 특히 프 린스턴 대학의 경우 총장및 주요 행정 책임자들은 90 %이상이 유대인이다. 이 외에도 하버드 대학이나 UCLA 의 의대 및 법대 교수들 중 50 % 이상이 유대인다. 유대인들은 한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복의 근원이 되어서 이런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 어 복의 근원이 된 자들이 행복한 자들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대를 이어 믿음의 후손이 된 기독교도 큰 복을 받았습니다. 기독교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 되어서 기독교가 큰 복을 받았 습니다. 세계에 선진국이 다 기독교 국가입니다. 세상에 행복한 나라가 다 기독교국가입니다. 기독교국가는 지금 세계에 복을 나눠주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과 기독교가 이렇게 세계의 복의 근원이 된 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렇게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 이 된데에는 그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었읍니다. 아브라함이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자가 진 정 행복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행복해 지는 자들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며, 아브라함의 복의 근원의 대를 잇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 불행이 조상이 되지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일을 해서 노력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케네디가(家)는 미국 대통령과 법무장관, 2명의 상원의원, 2명의 하원 의원을 배출한 미국 최고의 명문이다. 그러나 존 F 케네디가 63년 대통 령 재임중 암살당한데 이어 그의 아들인 케네디 주니어마저 사고로 요절하는 등 불운이 끊이지 않는 비운의 가문으로도 유명하다.
케네디가의 영광의 토대를 닦은 인물은 케네디 전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프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인 조지프는 탁월한 경영수완으로 30대에 백만장자가 됐다. 그는 프랭클린 루스벧트 대통령의 강력한 재정 후원자로 활약했으 며 덕분에 증권거래위원장, 영국주재 미국대사 등을 역임했다. 케네디가의 영광은 조지프의 차남인 존이 제35대 미 대통령이 되면서 절정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케네디가는 연속적으로 비운을 겪었다. 63년 존이 암살된데 이어 68년에는 그의동생(조지프의 3남)으로 강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전법무장관이 선거유세 도중 암살됐다. 조지프는 69년 숨질 때까지 세 아 들과 딸 하나를 잃었다. 69년에는 막 내 아들인 에드워드가 매사추세츠 주 채퍼퀴딕섬의 한 다리에서 차를 몰고 가다 강으로 추락, 자신은 목숨을 구했으나 여비서가 숨져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으면서 대통령의 꿈을 접 어야 했다. 케네디가의 비극은 최근에도 그치지 않았다. 로버트의 셋째 아들인 데이비드가 84년 약물 과다복용으로, 넷째 아들인 마이클은 작년 1 월 스키장 에서 스키를 타다가 사고로 숨졌다. 에드워드의 장남으로 하 원의원을 지낸 조(매사추세츠주)는 케네디가에 또다시 대통령의 꿈을안겨 줄 수 있는 인물로 꼽혔다. 그러나 조는 가족과의 불화, 동생 마이클의 사 망 등 이어지는 불행을 견디지 못하고 작년말 정계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케네디 주니어의 사망이 확인될 경우 케네디가의 명맥을 이어갈 인물은 에 드워드 상원의원과 그의 차남 패트릭 하원의원(로드아일랜드주)뿐이다. 케네디가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동원하여 행복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고, 그렇게 출세를 했지만 복의 근원은 되지 못 했습니다.
그러므로 전세계인이 그들을 보고 행복한 자들이라고 하지 않읍니다.
왜냐하면 복의 근원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 한 아브라함 덕에 믿음의 후손이요, 복의 근원이 된 참으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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