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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본이 되시는 그리스도 (롬15:1-13)

본문

프랑스의 말에 Noblesse oblige라는말이 있습니다. 귀족층의 의무와 책임이란 뜻으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베푸는 삶을 살어야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독일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싸울 때Klugere gibt nach라는 말을 합니다. 지혜있는 자가 양보를 하며 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3백년전 도쿠가와시대에 영주였던 다이묘들의 밥상은 호화롭고 기름지며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풍성한 밥상이 아니라, 일즙삼채, 즉 국 한그릇에 반찬 세가지였다고 합니다. 최근 일본의 경제단체 연합회장을 역임한 도코 도시오는 일년 수입이 1억엔 정도가 되는데 월 15만엔 만 생활비로 쓴다고 합니다. 아침은 요구르트와 야채주스, 점심은 메밀, 저녁은 정어리 두마리에 된장국으로 식사를 끝내고 전차로 출퇴근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대장상을 지낸 와타나베 미치오는 15평의 아파트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실상 일본뿐만아니라 선진국들의 상류층은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특권층들은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향락과 정욕을 위하여 사치와 방족의 삶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많은것이 주어진 사람들에게는 많은 책임도 주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예수께서도 누가복음 12장 48절에서 ". . .많이 받은 사람에게서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많이 맡긴 사람에게서는 많은 것을 요청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물질적인, 영적인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불우한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14장에서 바울은 믿음이 강한자, 믿음이 약한자를 말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단순히 강한자, 약한자라고 말합니다. 의미가 더 확되된것입니다. 즉 강한자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자유와 책임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말하고, 약한자는 아직도 율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강한자는 부유한자, 특권을 누리는자, 행복한 사람을 의미하고, 약한자는 가난한자, 특권이 주어지지 않은자, 불우하게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강한자가 연약한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했는데, 담당한다는 말은 ''짊어진다' '내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 보면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6절에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짊어지시고, 내가 받을 죄의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을 의미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담당한다'말을 표준 새번역은 '돌보아준다", 현대인의 성경은 '보살펴준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사랑과 자유함을 체험한 성도들은, 아직도 율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을 보살펴주어야 하며, 물질적인 축복을 누리고 있는 성도들은 가난한 성도들을 돌보아주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성도들은 불행과 환란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등산전문가들에 의하면, 높은 산을 올라갈 때,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짐을 균등하게 나누어 짊어지고 산을 올라가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짐을 균등하게 나누어 짊어지고 산을 올라가다가는 등산속도가 쳐지고 늦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경험이 많은 팀장은 신체적으로 힘이 센사람에게는 좀더 무거운 짐을, 힘이 약한 사람에게는 좀 가벼운 짐을 짊어지고 산에 올라가게 하면, 등산팀 전체적으로 원활하게 빠른속도로 산을 올라갈 수 있게된다고 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말씀에서 천성을 향하여 순례하는 우리 크리스챤의 삶의 양식 life-style은 약한 사람의 짐을 같이 나누며 약한자에게 유익이 되고 덕이 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자신만을 만족시키며, 자신만을 기쁘게 하며, 자기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선이요 덕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당신에게 좋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거든 거리낌없이 행하라. 그것이 선이요 그것이 덕"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싶거든, 내가 그 물건을 살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냐 없느냐 생각할 필요가 없이, 지금 당장 카드로 물건을 구입하여 즐기다가, 나중에 빚을 갚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사회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내일이야 어떻게 되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겠다고 약속한 부부들도, 배우자가 나의 기대감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으며, 나의 배우자가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다른 매혹적인 이성과 더불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자기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향하여 바울은 강한자는 약한자를, 부유한자는 가난한자를, 행복한자는 환란에 처해있는자를 보살피며 돌보는 삶을 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나 자신만을 기쁘게하며 나 자신만을 만족시키려는 삶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되고 덕이되는 삶을 살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행동으로 우리에게 몸소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3절-6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성부 하나님, 성령님하나님과 더불어 성자 하나님이시지만, 죄많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성부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인간의 형상을 입으시고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그의 사역기간동안 자신을 기쁘게하며 만족시키려고 하시지 않았고 항상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시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8:29절에서, ". .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6장에서는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6:38-3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또한 이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향해 비방하는 세상 사람들의 저주를 홀로 받으셨습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욕하고 거역하고 배역했지만, 그 모든 죄악의 값을 예수님이 혼자 다 담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나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기쁘시게 하려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만을 기쁘시게 하려는 삶을 사셨고, 죄많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영원하신 뜻에 순종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에, 우리 크리스챤들은 다른 형제자매들을 기쁘게하며, 그들에게 선을 이루고 즉 유익이되며, 덕을 세우도록, 그들의 믿음을 세워주는 삶을 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데, 그러기 위하여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아내를 슬프게 하고,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남편은 기쁨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아내를 기쁘게 하는 행복하게 하는 남편은 기쁨과 행복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내가 성공적인 삶, 행복한 삶, 기쁨에 넘치는 삶을 살기위하여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성공하게하고, 그의 삶에 기쁨이 있게하여야 합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미국인들이 사회활동에 자원봉사하는 비율이 55%가량되고, 이웃나라 일본은 30%인데, 아직까지 한국은 5.5%에 불과 하다고 합니다. 선진국일수록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9월 하순경부터 무료급식사역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포항시의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동빈동 동사무소가 폐쇠되게 되어 포항시에서 우리교회에 동빈동 동사무실을 임대해주게되었고, 교회는 그 장소를 무료급식하는 사역에 사용하려고 합니다. 여러 성도들의 자원봉사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먹이고,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줌으로, 내 삶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이 풍성하고, 내 삶속에 기쁨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사도바울은 우리 크리스챤의 삶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받아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받아주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7절을 보면,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라고 했습니다. 받아준다는 말은 영어로는 accept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금 이모습대로 아무 조건없이 받아주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환영하며 받아줄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받아주는 일은 누구나 다 할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나를 배반했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받아줄수 있어야합니다. 내 능력과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게되면 할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케 해달라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요한일서 4장 9-11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아무 조건없이 우리를 받아주시고 사랑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받아주고 환영하는 삶을 살어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자녀들은 우리의 가정에 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손님들이라고 헨리 나우엔은 말합니다. 자녀들은 재산처럼 부모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란 그들이 성년이 될때까지 당분간 부모와 집을 같이 나누는 손님들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명은 자녀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꿈과 계획을 성취 할 수 있도록 친절과 사랑을 공급하며, 그들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하는 것이 부모의 사명인것입니다. 세계 제일차대전에 첨여했던 독일의 에리히 레마르크는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하여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소설을 저술했습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인 19세의 병사 보이머는 전투중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기 위하여 포탄에 의하여 파진 참호속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웅덩이 속에는 부상당한 적군인 영국병사가 누어있었습니다. 너무나 놀란 보이머는 신속하게 영국병사를 총끝에 달린 칼로 찔러죽여야만 했습니다. 영국병사를 칼로 찔러죽이는 것은 너무나 쉬운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영국병사는 큰 부상을 당해 누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이머는 중상을 입은 영국병사에게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숨을 돌린 보이머는 영국병사에세 물한잔을 주었고, 그는 얼굴로 고맙다는 표시를 하는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적군인 영국병사는 그에게 손짓을 하며 자기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달라고 말하는듯 했습니다. 보이머가 영국병사의 포켓안에 있는 봉투를 꺼내주었는데, 그 봉투안에는 부상당한 영국병사의 가족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그의 아내, 자녀들,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영국병사는 죽기전에 자기 가족들의 사진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독일병사 보이머가 그사진들을 영국병사의 눈앞에 들고 있을 때, 그 병사는 사진들을 본후 숨을 거두게 됩니다. 영국군 유니폼을 입고 있는 병사는 내가 죽여할 원수이지만, 그러나 참호속에서 중상을 입고 죽어가는 영국병사, 자기 자신을 방어할수 없는 부상당한 병사, 그에게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될 때, 그는 더 이상 나의 원수가 아니라, 나와 함께 인생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동지요, 순례자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게되면, 그 사람이 다르게 보입니다.
거만을 떨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사람은 실상 그의 숨을 열등의식을 카바하기 위하여 거만스러운 행동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면, 그를 오히려 동정할 수 있습니다. 항상 수다를 떨며, 다른 사람에 관한 험담을 그치지 않는 사람을 우리가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는 실상 무척이나 외로운 사람, 무엇인가에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기에 그러한 행동을 하게된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그를 이해하며 받아줄수 있게됩니다.
오늘 본문말씀 7절을 현대인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리를 받아 주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따뜻이 맞아들이십시오." 어느 초등학교에 매우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며 아무 일가친적이 없는 외로운 여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5학년 담임을 할 때, Teddy라고 불리우는 학생이 다른 지방으로부터 그녀의 반에 전학을 왔습니다. 테리라는 학생은 실패인생을 살아갈 운명을 가진 학생으로 보였습니다. 시험마다 성적이 좋지 않았고, 낙제점수인 F학점을 받은 과목도 있었습니다. 여 선생님은 테디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그가 전학올 때, 다른 학교로부터 가져온 생활기록부를 보았을 것입니다. 1학년때의 기록에는 "테디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지만, 가정형편이 좋지 않음." 2학년때의 기록에는 "테디는 매우 착한 어린이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불치의 병을 가지고 있다." 3학년의 기록에는 "테디는 매우 협조적이나, 비사교적이다." 4학년의 기록에는 "테디는 학습을 배우는데 처지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아무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테디가 점점 공부를 잘 하지 못하게 된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여선생님은 그 이유를 발견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계절이 되어 방학전 학생들은 그들의 담임인 여선생님에게 크리스마스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트리 부근에 둥그렇게 않았고, 여선생님은 학생들이 가져온 선물들을 열어보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선생은 테디가 가져온 선물들을 열어보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선생님은 테디가 가져온 선물의 포장을 뜯고, 선물을 열어 보았습니다. 테디가 가져온 선물은 낡아빠진 목걸이인데, 그 목걸이에 달려있는 유리알들이 많이 없어진 보잘 것 없이 낡아빠진 목걸이였습니다. 그목걸이 옆에는 싸구려 향수병이 있었는데, 그 향수병의 절반은 이미 비어 있었습니다. 학급의 어린이들은 이 보잘 것 없는 선물을 보고 모두가 웃었습니다.
그런데 여선생님은 이러한 선물을 가져온 테디를 불쌍히 여기는 아음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낡아빠진 목걸이를 그녀의 목에 걸고, 값싼 향수병을 열고 향수를 자기 목과 손목에 좀 발랐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다른 학생들은 다 집으로 돌아간후, 테디는 여선생님에게 와서 "선생님, 지금 선생님에게서는 우리 어머니가 죽기전에 가지셨던 냄새가 납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테디는 자기의 죽은 어머니가 사용하던 목걸이와 향수를 선생님에게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그날밤, 여선생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침대곁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서 그녀의 부정적인 마음, 사랑할 줄 모르는 그녀의 영,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태도들을 용서해주시기를 기도하며 참회하였습니다. 그날부터, 그 여선생님의 자세가 변화되었습니다. 그녀는 테디에게 사랑과 관심과 친절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자존감을 가지며 자기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여선생님의 친절과 사랑가운데 테디는 변화되기 시작했고, 그의 학업성적은 향상되기 시작했습니다. 테디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그 여선생님에게 자주 편지를 보내왔고, 서로 교류가 있게 되었습니다. 6년이 지난 후 테디는 여선생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선생님, 다음주에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쁜소식을 선생님에게 제일 먼저 알려드립니다." 4년이 지난후 그는 여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선생님, 이번에 제가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음을 선생님께 알려드립니다. 수석으로 졸업한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러나 가장 보람된 경험이었습니다." 몇 년후에 여선생님은 다른 편지를 받았습니다. "선생님, 오늘 저는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이제는 의학박사 테디 J. Simmons, M.D가 되었습니다. 놀랍지요. 한가지 더 말씀드릴것이 있는데 이번 7월 27일에 제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결혼식장에 제어머니가 앉아야 하는 자리에 선생님께서 제 어머니를 대신하여 앉아주시도록 초청을 합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에게 큰 영광이 될것입니다. 제 아버지도 작년에 세상을 떠나셨고, 선생님만에 저의 유일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사랑합니다. 테디가." 여선생님은 테디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테디의 어머니 대신 어머니석에 앉았습니다. 오늘날, 테디는 여선생님에게 아들과 같은 사람이 되었고 테디의 가족은 여선생님은 가족식구가 되었습니다. 그 여선생님은 외로움의 감옥에서 자유케되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사역을 행할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리를 받아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따뜻한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고 받아줄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는 유대인과 이방인. 부유한자와 가난한자, 남자와 여자,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등의 구분이나 차별이 없게되며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에게만 영광을 돌리게 될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받아주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받아 줄 때,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바울은 13절에서 우리에게 말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하사 성령님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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