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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중에 기뻐하라 (사40:6-8,롬15:5-13)

본문

오늘 읽어 드린 로마서 말씀에 보면 "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 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님의 능력 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 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이 차고 넘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다른 축복보다 '소망'이 차고 넘치는 것이 가장 큰복이 될 것임 을 알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먼 훗날에 대한 기대입니다. 오늘 당장 내가 기대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은 육적인 것에 대한 기대 가 아니고 영적 세계에 대한 기대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대한 기대가 바로 소망입니다. 우리 속에 이런 소망이 가득 차고 넘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의 뜻을 순종하여 사는 생활 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소망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되며, 자연의 원리와 그 조화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된 삶인 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잘못된 삶에서 돌 이키게 되고, 바른 삶 가운데서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망이 없는 삶 우리는 먼저 이런 소망을 갖지 못한 삶이 어떤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소망이 없이 사는 사람은 현실에 집착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거나 믿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 이는 것에 그의 모든 소망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이 땅의 부귀영 화를 위하여 일생을 투자합니다. 큰집에서 온갖 것 다 갖추어 놓고 떵떵거 리며 살고 싶어하며, 부족함이 없이 무엇이든지 할만한 재물을 쌓으며, 동 시에 권력과 명예도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식 값이 오르내리는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환율이 어떻 게 되는지 이자가 어떻게 되는지 살피면서 울고 웃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신문들은 아예 매일같이 그 변동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 게 알려줍니다. 이런 사람들의 가치관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 화려 한 것, 큰 것, 일등 하는 것, 권력의 상좌에 앉는 것 등입니다. 이들의 행복은 바로 이런 것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모두가 대통령 이 되려하고 모두가 부자가 되려하며, 모두가 일등을 하려고 하니까 자연 이 사회가 경쟁 사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 사회란 참으로 냉엄하기 짝이 없는 세계입니다. 거기에서는 승자만이 살아남고 패자는 몰락할 수밖 에 없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차범근입니다. 국가 대표팀이 한 번 나가서 이길 때마다 차범근에 대한 칭찬이 모든 뉴스 매체에 요란하게 장식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월드컵에 나가 계속 지면서 그는 중도 하차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완전히 그를 매장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운동 경기에 있어 프로의 세계는 참으로 냉엄하기 짝이 없습니다. 성적이 떨어지는 팀의 감독은 여지없이 갈아치우고, 부진한 선수는 가차없 이 방출해버리는 것이 바로 프로의 세계입니다. 이런 것은 오늘 우리가 살 고 있는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경쟁 사회는 모두가 함께 사는 세계가 아닙니다. 힘이 센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 돈이 많은 사람, 실력이 있는 사람, 젊은 사람만이 살아남는 세계입니다. 기타 나머 지 사람들은 그런 사회에서 천대받으며 짓눌려 살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이를 갈면서 온갖 힘을 다 쏟 아 부어 어떻게 하든지 일등을 하려 하며, 어떻게 하든지 높은 자리에 오 르려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박세리가 프로 골프 세계에서 계속 우승하면서 우리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TV에서 박세리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린 딸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그를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보통 아버지로서는 할 수 없는 훈련을 시킨 결과 오늘의 영광을 안게 되었 다는 것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 냉엄한 경쟁 사회의 생리를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살아남기 위하여서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감상적인 생각은 버리고 무자비하게 몰아쳐야 한다는 것 을 알았던 것입니다. 박세리는 위축된 우리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살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성 공시키기 위해 혹독하고 무자비한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보통 부모 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지금 우리의 대학입시제도가 바로 이런 무한 경쟁을 요구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하여 특히 일류대학에 넣 기 위하여 그야말로 절치 부심(切齒腐心)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이 없는 수많은 아이들이 인생 자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아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사회인가 특히 냉전시대가 끝나고 사회주의 국가들이 실패하면서 모든 사회가 자 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경쟁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경제세계 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피나는 노력을 쏟 아 붇지 아니하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가차없이 근로 자들을 일자리에서 몰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업자가 150만 명이 넘어 섰습니다. 금년 말쯤에는 2백만이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국제 경쟁사회에 서 살아남기 위하여서는 불가피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금 이 한국 사회를 혹독하게 몰아쳐야 하는 박세리 아버지의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이런 시련을 견디고 극복한다 하더라도 과 연 이런 무한 경쟁시대에서 우리가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요 또 견딘다 하더라도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수많은 실업자를 안아야 하며 더욱 환경 상태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으며, 우리의 도덕적 타락은 더욱 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무한 경쟁을 바탕으로 한 이 지구화된 세계는 파멸에 이르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는 세계는 결국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이사야서 말씀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 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것이다. 주께서 그 위에 그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그렇다.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 있다."(사 40:6-8) 고 하였습니다. 오늘 무한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이 땅의 모든 역사는 풀과 같고 거기서 얻는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결국 하나님이 부시는 입김에 의하여 마르고 시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입김을 불어보내시는 것은 그의 영원한 말씀을 따라 이 역사를 다시 세우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세우시는 그의 나라는 경 쟁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누구나 다 함께 살 수 있는 세계입니다. 약자들 이 보호받는 세계, 가난한 자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는 사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 자 그러면 이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들의 삶은 어떤 것인지 살펴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우선 이 땅의 욕심에 서 떠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셔서 그 살고 있던 땅 하 란을 떠나게 하신 것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의 약속 을 바라보며 나아가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하나님께 둔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며, 그의 뜻 을 깨닫는 것이며, 그가 만들어 가시는 그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는 것 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서 발견하는 것은 이 땅은 모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땅이라는 사실입니다. 경쟁하면서 서로 죽이는 세계가 아니라 약자를 돌보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계로 하나님께서 창조하 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면서 그 욕심이 발동되어 이 함께 사는 세계를 파 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경쟁하면서 상대방을 누르고 내가 더 많이 차지하며 내가 더 많이 먹으려 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세계를 무한 경쟁 세계로 몰아 넣어 강한 자만 살아남고 약한 자들은 멸시 당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로 몰리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말고 세상에 소망을 갖도록 만들기 위한 계 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탄의 계략을 깨고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로 돌아오도록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십자가에 달리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셨으며, 우리를 참된 소망의 세계로 인도하여 주 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함께 사는 세계를 만들어 갈 책임이 있습니다. 모두가 다 함께 살며, 함께 기쁨을 나누는 세계를 만 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려 야 합니다. 큰 것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남을 누르고 일등이 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다각기 자기의 재능을 발견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권력을 잡고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말고 각각 섬기는 자리로 내려가야 할 것입니다. 약한 자들을 돌보고 소외된 자가 없 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대전대 교수인 장 원 박사의 "작 은 것이 아름답다"는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환경공학박사이며 녹색연합 사무총장 일을 맡고 계신 분입니다.
대학에서 "작은 것이 아름답 다"는 강좌를 개설하고 이 과목을 수강신청 하는 학생들에게 학점을 주는 기준이 독특합니다. 우선 키가 남자 163㎝ 여 155㎝ 미만인 학생, 또 몸무 게 남자 54㎏, 여자 45㎏ 미만인 학생은 무조건 A 학점을 준다는 것입니다. 키가 작고 몸무게가 덜 나가는 사람일수록 산소 섭취량이 적고, 먹는 양도 적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환경 보호 기여도 높기 때문에 무조건 학점 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키가 크거나 몸무게가 나가는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노력을 해서 5㎏을 주리면 A학점을 주고 키야 주릴 수 없으니까 대신 다른 환경보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될수록 옷감 적게 드는 옷을 입는다든지, 하루에 한끼만 먹는다든지, 자동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 를 이용해 등교한다든지 하면 학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인상을 깊게 심어 주기 위해 이런 강좌를 개설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장교수 자신의 생활을 소개하는데 자기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답니다. 자기 집에서는 옷을 별로 사 입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옷이 필요할 때 몇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한바퀴 돌고 오면 거의 새옷을 한 보따리 얻어올 수 있답니다. 청바지의 경우 큰 아이가 입다가 크면 작 은 아이 입히고, 그 다음에는 칠부로 짤라 입혔다 그 다음에는 반바지를 만들어 입히고 그리고 나서는 마른걸레로 그 다음에는 젖은 걸레를 만들어 쓴다는 것입니다. 집도 작은 집이 좋다는 것입니다. 흉가로 소문난 집들은 대개 큰집일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 집에 사람들이 복닥거리고 살면 거기 에 사악한 기운이 침범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작은 집들이 흉가가 되는 경 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장교수는 환경의 중요성을 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면서 실천적인 삶을 강조하였습니다. 무한 경쟁 시대에 작은 것을 지향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삶의 원리가 있으며, 거기에 참 삶의 길 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여러 곳에 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는가 하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한 노력과 찾 았을 때의 기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높은 자 섬김을 받는 자가 되지 말 고 섬기는 자, 작은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고,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 습니다. 자기만을 위하여 모으는 자, 쌓아 놓는 자가 되지 말고 이웃과 더 불어 나누는 자가 되라고 하셨고, 보물을 땅에 쌓아 놓지 말고 하늘에 쌓 으라고도 하셨습니다. 결국 소망을 가진 사람은 이 땅에서는 작은 자가 되고, 나누는 자가 되 며,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이 땅에 대한 욕심 혹은 경 쟁심을 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소망을 넘치 게 하시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더욱 분명한 깨달음을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임과 동시에 이 땅에 대한 모든 욕심을 버리는 것을 뜻하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쩔 수 없이 이 무한 경쟁시대를 살아남기 위 하여 투쟁할 것이 아니라, 경쟁을 포기하고 욕심을 버리므로 작은 자가 되 며, 나누는 자가 되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작은 것을 사랑하 고 꼴찌와 함께 하며, 약한 자들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소망을 하나님께 둔 사람들의 삶입니다. 150만의 실업자들은 경쟁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입니다. 저들에게 새로 운 직장을 알선하고 새로운 일을 준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저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소망을 갖게 되면, 저들이 삶이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서야 할 자리, 자기가 하여야 할 본 분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기꺼이 농사를 짓게 되고, 막 노동도 마다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생각과 삶은 경쟁 시대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서 패배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젖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마귀가 심어준 생각일 뿐입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에게서 오는 소망을 발견하게 되면, 새로운 삶이 열리며,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 입니다. 경쟁 사회에서 길들여진 우리의 생각은 거품일 뿐입니다. 이 거품 을 걷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소망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 안에서 진정 으로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세상을 향한 헛된 꿈으로 가득찬 우리의 생각 의 거품을 걷어 내시고 하늘의 소망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기도해야 하겠 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이 소망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욕망 때문에 당한 절망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그는 우리가 전에 맛보지 못한 새로운 기쁨으로 우리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이제 성령님께서 채워주시는 소망으로 용기를 얻고 작은 자, 섬기는 자, 나누는 자가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 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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