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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합당한 예절 (롬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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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휴가 때에 지리상 도인촌이라 하는 청학동을 방문한 일이 있 었습니다. 그 때 방학중에 많은 초등학생들이 청학 동에서 개설하는 예절학교에 서 교육을 받으려 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공부를 마치고 나오는 흰옷에 흰 고 무신을 신은 초등학생들이 손을 아래위로 맞잡고 "안녕하시니까" 예쁘게 인사 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저의 아내가 돌아오는 길에 내내 그 인사를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그 예절학교는TV에 출연했던 긴 머리를 기른 도인촌 청년, 김봉곤 훈장이 개설했는데 지금은 신청하는 학생이 너무 많아서 예절학교가 두 곳에 개설되었다고 합니다. 예의는 불신자들의 전용물인가 기독교인들은 예의가 없는 사람인가 전날 에는 기독교인들이 조상 제사를 드리지 않기 때문에 예의를 모르는 사람으로 욕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소리는 별로 안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들보다 더 높은 예의를 가져 신자들은 예의 바른 사람 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의 요절인 롬 16:1-2 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롬 16: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 거하노니 (롬 16:2) 너희가 주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 음이니라 . 오늘의 주제는 "성도의 합당한 예절" 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예절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 예절은 사람에 대한 예절에 앞섭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것 입니다. 히 9: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그리스도인의 예절의 기초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구약시 대는 하나님에 대한 예를 어겼을 때는 즉결 처분을 받을 만큼 엄했다. 심지어 아론의 두아들도 즉결 처분을 받아 죽을 만큼 무서웠습니다. (레 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 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레 10: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 지라 이런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몸을 입고 오심으로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친근한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 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 하나님에 대한 공경심이 모든 윤리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둘째, 주안에 예절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는 고상한 예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16:2을 다시 읽겠습니다. (롬 16:2) 너희가 주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 음이니라 성경 원문에는 예절이란 말이 없지만 의미상 예절이란 말을 삽입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글자로 예절이란 말을 삽입했습니다. 신약에서 모든 예절은 "주안 에서"라는 말에서 비롯됩니다. 이 말이 기독교의 윤리의 강점입니다. 세상의 인 륜은 자주 변하는 사람에서 시작되지만 성도의 윤리는 예수님에게서 시작됩니다.
1. 예절은 그 사회의 문화입니다. 예절은 우리의 문화입니다. 세계 나라마다 그 나라의 예절이 있습니다. 이 것은 문화라는 말입니다. 우리 문화가 성경에 위배되지 않은 한 지켜야합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사역할 때에 먼저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가르 칩니다. 우리 나라 예절은 우리 나라 문화입니다. 우리는 이 문화를 복음에 맞도록 정착시켜야 합니다.
2. 예절이란 사람을 평안하게 해줍니다.
A. 예절은 나를 평안하게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 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사회 성을 무시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 속에 살려면 최소한의 예절 이 필요합니다. 꼭 자기만 생각하려면 사람이 살지 않은 깊은 산 속에서 혼자 살거나 아무도 없는 외로운 섬에서 살면 됩니다. 예절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습관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예절을 몸에 익히면 예절을 지키는 것이 편한 반면에 무례한 것이 불편해집니다. 마치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은 시간을 지키는 것이 쉽고 시간을 어기는 것 이 불편해 집니다. 얼마간 불편을 견디면서 습관을 드린다면 예절을 지키는 것 이 편하고 쉽고 아름답게 느껴질 것입니다.
B. 예절은 다른 사람도 평안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평안하게 해주는 예절이 만일 나의 불편이 있다면 이것도 옳은 것은 아닙니다. 행 28: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고전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예절입니다. 이 기준에서 보면 한국 사람은 소위 동방 禮儀之國이라면서 아주 악명 높은 무례한 사람들입니다. 외국 관광을 다 니면서 남은 생각하는 마음 없이 자기 편한 대로하는 행동은 얼마나 무례한지 얼굴이 뜨건 뜨건 할 때가 있습니다. 비행기안에서 고스톱도 하고 큰소리로 떠 듭니다. 우리 국민은 다시 배워야합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부터 남에게 불편을 주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예의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셋째, 합당한 예절이 있습니다.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뵈뵈 라는 여 성도에게 합당한 예절 로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롬 16: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 거하노니 (롬 16:2) 너희가 주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 음이니라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것이 옳은 예절이라고 생각됩니다. 동양의 五倫은 君臣有義, 父子有親, 夫婦有別, 朋友有信, 長幼有序입니다. 오륜은 우리 문화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오륜은 낡아빠진 예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동양의 오륜이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하는 한 성경의 가르침으로 다시 확립해야 합니다.
1. 부모 자녀사이의 예절이 있습니다. 오륜의 부자유친에 해당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옛날 어른들은 너무 엄했고 요즘 부모님은 너무 친해서 예의를 못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A. 부모님들이 자녀를 지나치게 사랑하여 무례한 아이가 되게 했습니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 육하라 골 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그래서 자녀들이 아버지, 어머니에게 하대하는 말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아 주 어릴 때 가르쳐야지 크면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B. 자녀들도 부모를 존경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남이 어떻게 여러분의 부모를 존경하겠습니까 여러분의 부모가 존경받기를 바란다면 여러분이 존칭 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 라 하지 말고 다 큰 사람은 아버지 어머니 로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주안에서 합당한 예절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큰아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아버지가 '어른 함자를 물은 때 이름을 바라 말하지 않고 글자로 말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혼난 일이 있었다' 고 원망 섞인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실수를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2. 부부사이에 예절이 있습니다. 오륜에서 부부유별이라는 것은 가부장적인 의미에서 말했지만 현대적인 부 부예절은 부부가 서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서로 존댓말을 쓰는 가정은 다툼도 적어지고 부부가 서로 존칭을 쓰면 두 분의 사랑이 오래 간다고 합니다. 서로가 사로는 존경한다는 의미가 존댓말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부장시대는 부부가 존 댓말을 쓰는 경우가 드물었던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 서로 존대 말을 쓰는 것을 보고 젊은 사람이 희한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인생 을 바로 보는 사람들은 서로 존댓말을 쓰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화가 났을 때도 야! 너! 이 자식! 이러 말하지 말고 존댓말을 써야지 합니다.
3. 어른들을 공경하는 예절이 있습니다. 유교의 長幼有序는 쉬운 말로 하면 냉수도 아래, 위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 지만 지금 청소년도 저들 사이에는 엄하게 나이와 생일을 따집니다. 그리고 학 교에서도 선후배를 엄하게 따지고 있지 안습니까 저들은 그러면서 사회서는 나이 많은 사람이나 어른들에게 무례한 일이 합니다. 레 19:32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노인들은 대 선배인데 요즘은 이것을 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안에서 합당한 예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의가 파괴되는 시대가 있을 것을 예언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 3:5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물론 친구간의 예절입니다. 오륜에서는 朋友有信입니다. 이 말은 친구사이 에 믿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지금 참 친구가 없습니다. 모두 서로 경쟁 상대 일 뿐입니다. 이 부분은 생락 하겠습니다. 오륜 중 일부분을 성경의 돋보기로 관찰한 것입니다.
넷째, 사도 바울은 주안의 예절로 문안을 했습니다.
1. 문안은 바울의 예절입니다. (롬 16: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 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 게 문안하라 (롬 16: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 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롬 16: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롬 16: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롬 16: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 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롬 16: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우리가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오일장에 가면 어른들끼리 일일이 안부를 묻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전화도 없고 편지 보내기 어려워서 5일마다 서는 장날이면 장에서 온갖 소식을 듣게 되던 때입니다. 만나면 일일이 문안을 합니다. 춘부장은 별첨 없으신가 이렇게 시작하면 10명이 넘습니다. 우리 교회 서 고인이 된 강둘련 집사님이 문안인사로 유명한 분이였습니다. 우리가 살던 안동에서는 왔니껴 잘 있니껴 장 다 봤니껴 껴 껴 세 번하면 장 다 본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문안 인사를 수 없이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은 롬 16장에서 "문안하라"는 말이 18회 있고 "문안하느니라"는 말 이 4번 있습니다. 이 만큼 문안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2. 인사하는 것은 예절의 기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인사를 할 줄 모릅니다. 어른들을 만나면 인사하는 것이 좋 은 풍습입니다. 어떤 이는 너무 멀리서 인사하기 때문에 곤란 할 때도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와 서 인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눈을 보면서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합니다. 예배 후 예배 실을 나갈 때도 눈을 아래로 보지 말고 눈을 보고 인사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전에는 너무 가난해서 먹는 인사를 많이 했습니다. "아침 자셨습니까점 심 자셨습니까" 그후에는 "안녕하십니까" 라고 했다가 또" 반갑습니다" 바뀌 었습니다. 요즘은 영어로 Good morning을 직역해서 "좋은 아침입니다" 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Good morning!Good night" 이라고 하고 일본말로 "곤니찌 와"(오늘은) "곤방와"(오늘밤은)이란 인사가 있다. 우리도 이런 인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인사말을 짧아야 합니다. 질문형이 안되어야 합니다. 축복형이 되어야 좋습니다. 악수 때문에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풍습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목 운동만 합니다. 악수해야 할 경우와 절을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잘 조화를 해야 예의 바른 사람이 됩니다. 가정에서 어른들이 부르면 아이들이 답을 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답을 잘 하는 것도 가정에서 잘 배울 예의입니다.
'결론' 사람에 대한 예절에 앞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예절을 갖추십 시오. 이것은 모든 예절의 뿌리입니다. 주안에, 즉 신앙에도 예절이 있습니다. 예절이 나를 편안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평안하게 합니다. 자기 유익만 구하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예절을 다시 익히십시다. 성도에 합당한 예절은 여러분의 부모를 부모로 존경하고 존칭을 써야 합니다. 부부사이에도 존칭을 쓰면서 예절을 지키십시오. 서로 존경하면 부부의 사랑이 오래 갈 것입니다. 어른들을 공경하는 예절을 잘 배우십시오. 그렇게 하면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사를 잘 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예절입니다. 우리 모두 예의 바른 성도가 되어 세상 앞에 복음 이 힘 있게 증거 되고 복음의 우수성을 나타내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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