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빚을 언제나 다 갚을 수 있을까? (출12:1-14,롬13:8-14,마18:15-20)
본문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은 욕심에서 기인(起因)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 은 아닐 것입니다. 성경에도, '욕심은 죄를 낳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죄와 불행'은 인간이 욕심을 품을 때에 발생하는 '일란성 쌍 생아(雙生兒)'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죄와 불행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이 '욕심'을 극 복해야 합니다. 야고보서에,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 고 함정에 빠지게 된다(1:14)고 했으니, 이 욕심을 끊어버려야 '죄와 불행'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자는 이 욕심에서 벗어났다'고, 바울은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예수에게 속한 자는 악한 욕망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5:24)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것을 '구원'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우리는 욕망의 그늘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죄와 불행에 빠뜨리는 악한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은 구원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진정 한 구원이란, '인간의 욕심'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어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께로부터 크게 야단맞은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은 살펴보지 않고, 자기 입장만을 생각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그때까지 주께서 전하시는 진리에 붙잡혀서 주를 따른 것 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세상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주의 뒤를 따 랐던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내 욕심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기로 약속하신 그 크신 은총과 평 화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욕심을 극복하는 것만으로는 미비합니다. '욕망의 굴레를 벗었으니, 이제는 안심'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좀더 적극적인 방어전략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5:16에서너희는 성령님을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 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아야 참된 복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모든 정력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기울인다면, 세상 욕망을 멀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순서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젖혀놓고 인간의 욕심을 먼저 이 루려 할 경우, 그 욕심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할 경우,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보호해주실 뿐만 아니라,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진리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욕망을 이룰 수 있는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 시하신 낯선 타향 땅으로 이사를 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믿음의 조상과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하고 고귀한 뜻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1.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일에 너무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저 지난 주 금요일에는 중학교 은사의 정년 퇴임식이 있었습니다. 바 로 그 전날, 저는 어느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그 소식을 알려주게 되었 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깜짝 놀라면서, 자기도 그 퇴임식에는 꼭 가봐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그 은사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수업료를 내지 못하여 곤란을 겪고 있을 때, 그 선생님이 많은 배려를 해주어서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직에 몸담고 있는 까닭에, 갑자기 시간을 내기가 어렵겠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분이 2년 간이나 우리의 담임이셨기 때문에, 꼭 참 석을 해야만 할 처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주일을 앞두고서 그곳까지 갔 다온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스승으로부터 입은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는데, 그 은혜 갚는 일은 이런 저런 사유로 미루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마지막 교 단을 떠나는 퇴임식에도 가지 못했으니, 제가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겠 습니까 참으로 죄송스런 일입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거론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주님의 은혜는 부모나 스승의 은혜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부모 와 스승의 은혜도 죽는 날까지 다 갚을 수 없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정말로 요원한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께 입은 사랑의 빚은 아무리 해도 다 갚을 수 없다고 하면 서, 남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요구를 채워드리는 일(롬13:8)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입은 은혜를 직접 갚아드릴 길은 없지만, 간접적인 방법을 통하여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생활에서 벗어나려면, 그래서 악한 죄와 불행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 하고 봉사하는 단계까지, 그 믿음이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고, 나 자신만을 위하여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날인 유월절 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 당시 겪었던 일을 그대로 재현하도록 하셨습니다. 특히, 새끼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도록 해서,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만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일을 기억하 게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은 일은 너무나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대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이 놀라운 일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이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 모르고 사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혹, 그 구원의 은혜를 안다고 할지라도, 그 은혜에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헤아려 그대로 살 수 있겠 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마운 감정이 그 마음에 가득해도 주의 뜻대로 살기가 어려운 일인데, 그 은혜를 아예 모르거나 잊어버리고 산 다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예수께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신다면, 베드로가 야단맞은 것 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꾸지람과 질책을 듣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 게 되는 것입니다.
2.그렇지만, 하나님은 따뜻한 음성으로 우리의 잘못을 깨우쳐 주시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는 자기 자신이 자식을 낳아 키워본 다음에야 알 수 있 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처럼 직접 인간을 만들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은혜를 다 깨닫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자식을 향한 우리의 사랑보다, 더 넓고 깊으며 크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지, 그 사랑을 다 헤아려 알 수는 없습니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의 사랑에 비해서 우리가 행한 일이 너무 미미하 고 적어서, 부끄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하나님께 진 사랑 의 빚은 아무리 해도 다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 진 모든 것을 다 드려도, 하나님께 진 빚의 만분지일(萬分之一)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3.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는 길은 단 하나뿐입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나 살기도 바쁜 세상에 이웃을 돌아 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이기주의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내 가족과 내 친척이 아닌 다른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바보처럼 여겨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복주머니를 터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웃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18:18에서 너희가 땅에서 매어 놓은 것은 무엇이나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 에서 풀어놓은 것은 무엇이나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웃에게 용서를 베풀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실 것이고, 우리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 실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알면, 자식이나 다른 사람 도 우리가 베푼 은혜를 알고 감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 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식들에게만 부모의 은혜를 모른다고 말할 게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부모의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고 한다면, 이웃에게 관 심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가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에는 걸림돌이 있게 마 련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허물과 잘못입니다. 사랑을 베풀고 싶어도 미운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그 실천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를 용서하고 좋은 관계를 갖고자 해서 다시 만나면, 또다시 그가 미운 짓을 하기 때문에,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1그럴 때마다, 죽을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흐린 눈으로도 상대방의 잘못이 그토록 많이 드러나니, 우리 의 마음속까지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 죄가 얼마나 많이 드러날까요 우리가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그처럼 억울한 일이라 면, 하나님은 또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웃의 죄 를 용서할 때에는 그 용서가 유효하나, 만일 우리가 형제의 잘못을 용서 치 않을 경우에는 그 용서가 무효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나 이웃의 잘못을 무조건 용서하고 화해를 해 야 합니다.
2그리고, 그를 사랑함으로써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의 은혜에 보답해 야 합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사랑은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율법(롬13:1 0)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 깊이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이 명제는 우리 기독교인이 풀어나가야 할 최대 과제입니다. 우리가 이 숙제를 풀기란 참으 로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사할 수 있을 때에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고 설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 면, 우리가 하나님께 진 사랑의 빚은, 죽을 때까지 다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더 갚아나가기 위한, 그 단 하 나의 방법인 이웃 사랑을 더욱 열심히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 루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자는 이 욕심에서 벗어났다'고, 바울은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예수에게 속한 자는 악한 욕망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5:24)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것을 '구원'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우리는 욕망의 그늘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죄와 불행에 빠뜨리는 악한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은 구원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진정 한 구원이란, '인간의 욕심'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어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께로부터 크게 야단맞은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은 살펴보지 않고, 자기 입장만을 생각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그때까지 주께서 전하시는 진리에 붙잡혀서 주를 따른 것 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세상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주의 뒤를 따 랐던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내 욕심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기로 약속하신 그 크신 은총과 평 화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욕심을 극복하는 것만으로는 미비합니다. '욕망의 굴레를 벗었으니, 이제는 안심'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좀더 적극적인 방어전략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5:16에서너희는 성령님을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 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아야 참된 복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모든 정력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기울인다면, 세상 욕망을 멀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순서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젖혀놓고 인간의 욕심을 먼저 이 루려 할 경우, 그 욕심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할 경우,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보호해주실 뿐만 아니라,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진리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욕망을 이룰 수 있는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 시하신 낯선 타향 땅으로 이사를 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믿음의 조상과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하고 고귀한 뜻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1.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일에 너무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저 지난 주 금요일에는 중학교 은사의 정년 퇴임식이 있었습니다. 바 로 그 전날, 저는 어느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그 소식을 알려주게 되었 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깜짝 놀라면서, 자기도 그 퇴임식에는 꼭 가봐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그 은사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수업료를 내지 못하여 곤란을 겪고 있을 때, 그 선생님이 많은 배려를 해주어서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직에 몸담고 있는 까닭에, 갑자기 시간을 내기가 어렵겠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분이 2년 간이나 우리의 담임이셨기 때문에, 꼭 참 석을 해야만 할 처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주일을 앞두고서 그곳까지 갔 다온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스승으로부터 입은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는데, 그 은혜 갚는 일은 이런 저런 사유로 미루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마지막 교 단을 떠나는 퇴임식에도 가지 못했으니, 제가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겠 습니까 참으로 죄송스런 일입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거론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주님의 은혜는 부모나 스승의 은혜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부모 와 스승의 은혜도 죽는 날까지 다 갚을 수 없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정말로 요원한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께 입은 사랑의 빚은 아무리 해도 다 갚을 수 없다고 하면 서, 남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요구를 채워드리는 일(롬13:8)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입은 은혜를 직접 갚아드릴 길은 없지만, 간접적인 방법을 통하여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생활에서 벗어나려면, 그래서 악한 죄와 불행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 하고 봉사하는 단계까지, 그 믿음이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고, 나 자신만을 위하여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날인 유월절 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 당시 겪었던 일을 그대로 재현하도록 하셨습니다. 특히, 새끼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도록 해서,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만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일을 기억하 게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은 일은 너무나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대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이 놀라운 일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이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 모르고 사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혹, 그 구원의 은혜를 안다고 할지라도, 그 은혜에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헤아려 그대로 살 수 있겠 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마운 감정이 그 마음에 가득해도 주의 뜻대로 살기가 어려운 일인데, 그 은혜를 아예 모르거나 잊어버리고 산 다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예수께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신다면, 베드로가 야단맞은 것 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꾸지람과 질책을 듣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 게 되는 것입니다.
2.그렇지만, 하나님은 따뜻한 음성으로 우리의 잘못을 깨우쳐 주시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는 자기 자신이 자식을 낳아 키워본 다음에야 알 수 있 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처럼 직접 인간을 만들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은혜를 다 깨닫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자식을 향한 우리의 사랑보다, 더 넓고 깊으며 크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지, 그 사랑을 다 헤아려 알 수는 없습니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의 사랑에 비해서 우리가 행한 일이 너무 미미하 고 적어서, 부끄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하나님께 진 사랑 의 빚은 아무리 해도 다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 진 모든 것을 다 드려도, 하나님께 진 빚의 만분지일(萬分之一)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3.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는 길은 단 하나뿐입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나 살기도 바쁜 세상에 이웃을 돌아 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이기주의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내 가족과 내 친척이 아닌 다른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바보처럼 여겨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복주머니를 터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웃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18:18에서 너희가 땅에서 매어 놓은 것은 무엇이나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 에서 풀어놓은 것은 무엇이나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웃에게 용서를 베풀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실 것이고, 우리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 실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알면, 자식이나 다른 사람 도 우리가 베푼 은혜를 알고 감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 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식들에게만 부모의 은혜를 모른다고 말할 게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부모의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고 한다면, 이웃에게 관 심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가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에는 걸림돌이 있게 마 련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허물과 잘못입니다. 사랑을 베풀고 싶어도 미운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그 실천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를 용서하고 좋은 관계를 갖고자 해서 다시 만나면, 또다시 그가 미운 짓을 하기 때문에,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1그럴 때마다, 죽을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흐린 눈으로도 상대방의 잘못이 그토록 많이 드러나니, 우리 의 마음속까지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 죄가 얼마나 많이 드러날까요 우리가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그처럼 억울한 일이라 면, 하나님은 또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웃의 죄 를 용서할 때에는 그 용서가 유효하나, 만일 우리가 형제의 잘못을 용서 치 않을 경우에는 그 용서가 무효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나 이웃의 잘못을 무조건 용서하고 화해를 해 야 합니다.
2그리고, 그를 사랑함으로써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의 은혜에 보답해 야 합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사랑은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율법(롬13:1 0)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 깊이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이 명제는 우리 기독교인이 풀어나가야 할 최대 과제입니다. 우리가 이 숙제를 풀기란 참으 로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사할 수 있을 때에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고 설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 면, 우리가 하나님께 진 사랑의 빚은, 죽을 때까지 다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더 갚아나가기 위한, 그 단 하 나의 방법인 이웃 사랑을 더욱 열심히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 루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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