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진단 (롬12:11-14)
본문
오늘은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회심을 기념하는 웨슬리 회심 기념 주일입니다. 웨슬리의 일기 1738년 5월 24일의 일기를 보면 당시의 자신의 종교적인 체험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케익 거리에 있는 한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 을 읽고 있었다. 아홉시 15분경에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시는 설명을 하고 있 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다고 느겼으며 구원을 위해 다만 그리스도 만 믿고 있슴과 그위에 주께서 나의 죄를, 아니 나의 죄까지라도 다 걷우워 가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 주셨음을 믿는 확신이 나에게 주어졌다. 그날의 일기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변화는 웨슬리의 인생 에 중대한 사건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 역사에 놀라운 변화을 몰고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웨슬리의 회심을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 보고 우리도 웨슬리처럼 마음이 뜨거워지고 예수 그리스도 의 속죄의 은총이 더욱 깊게 느켜져야 할 것입니다.
1.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는 말은 나 자신 안에 영적 열심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 고 주를 섬기라.'하였습니다. 우리의 심령에서 영적인 열심이 식 어 있다고 하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가만히 앉아서 사색하는 종교가 아니라 열심으로 일하고 움직이는 열정 (pathos)의 종교인 것입니다. 정렬이 넘치는 종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열정이 없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십자가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실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자신에게 욕하고 죽이는 이들을 향하여 용서해 달라고 기도가 나올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사랑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성령님이 아시아 일곱 교회에 서신을 띄워 보 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열정이 식어진 두 교회를 책 망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책망은 이렇습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움 사랑을 버렸느니라.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움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면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옮기리라."(계 2:4-5)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떻습니까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중인이시요,하나님의 창조의 근원이 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 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 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 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 치리라."(계 3:14-16) 성령님이 아시아 일곱 교회에 메세지를 주셨는데 그 중에 이 두 교회에 처움의 영적 열정을 다시 찾을 것을 강력히 촉구하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것을 촉구하셨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님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 로 마치겠느냐"(갈 3:3) 여러분의 심령에 영적인 열심이 있습니까 열심이라는 말은 영 어로 'Enthusiasm'인데 이 말은 헬라어로 '엔 데오스' 즉 in God 하나님 안에 있다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곧 열성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열정이 식어지고 있 다고 하면 이는 곧 하나님 안에 있지 못한 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 열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 하여야만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지고 열심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바로 그리스도 안에있다는 말을 적어도 160회 이상 고백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우리 자신에게 두번째 던지는 질문은 신앙생활에 있어 능동적인 봉사를 하고 있는가 본문 말씀에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 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세가지 중요한 요건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요건은 깨끗한 생활을 하라.(clean life)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변화 하든지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열심히 일하라.(work hard) 열심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처지와 환경에서라도 성실한 사람이 되 어야 합니다. 기회주의자가 되어서는 능동적인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일거리를 찾아서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번째는 하나님을 믿으라.(trust God) 억지로 하는 신앙, 헌신,봉사는 진정한 축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니느웨의 요나를 생각해 보십시요.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간 구레네 시몬을 생각해 보세요.
그러므로 휼륭한 성도는 정기적으로(고전 16:2) 은밀하게(마 6:1-4) 줄거움으로(고후 9:6-8)로 봉사하는 성도인 것입니다.
3.우리의 신앙의 자세는 흩트려지지 않았습니까 승리의 신앙을 가지느냐 못 가지느냐는 우리 자신의 자세에 딸 려있다는 사실입니다. 흩트러진 자세 가지고는 하나님의 놀라운 영적체험을 이룰 수 없습니다. 자세를 바로 가져야 합니다. 베드 로 사도는 그의 서신에서 허리띄를 동여 매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를 드리되 깨어서 기도하라고까지 일러주셨습니다.
1)신앙의 자세가 소망 중에 줄거워하고 있습니까 소망이 없는 자에게는 기대할 만한 자세가 보이지 않게 마련입니다. 잠언에서 도 묵시가 없는 백성은 방자히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왜 방자히 행동하여 빈축을 사게 할까요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장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현실에 방자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소망으로 줄거워하고 있는지요
2)환난중의 인내하고 있습니까
3)기도에 힘쓰고 있습니까 기도를 잊었습니까 그것은 자신을 잊는 일입니다. 간구함을 부끄럽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교만입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고 하나님의 도우심 과 섭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어려울 때에 우리의 진정한 도움이시요 산성이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웨슬리는 언제나 기도하는 자로서 그의 일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4.우리 자신에게 묻는 네번째 질문은 우리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음 곧 행동으로 표현되어져야 합니다. 행동화 되지 못한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찾아온 많은 무리들에게 네 믿음을 나에게 보이 라는 것입니다.믿음은 곧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 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엘리 제사장의 말대로 그는 기도를 통해 사무엘 큰 아들을 낳았습니다.아들을 그녀의 서원한 대 로 성전에 바치면서 기도한 내용 중에서 "하나님은 지식(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삼상 2:3) 하나님은 행동 을 달아보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행동으로 나타나지 아니하는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아들을 얻고나서 기도한 내용이 바로 하나님 은 행동을 달아보신다 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려면 믿음으로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할 것입니까
1.먼저 데접하기를 힘쓰라했습니다.(롬 12:13) 예수님의 말씀 "남을 먼저 대접하라"는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 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황금율이라는 말까지 붙은 귀한 구절입니다. 아브라함은 대접하기를 즐겨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소돔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의롭 지 못한 롯도 죄악의 도성에 살았지만 그도 대접하기를 즐겨하다 가 천사를 대접하고 구원을 받은 일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 잘 알 고 있는 것입니다.
2.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 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안에서 온전 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8-19)
3.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는 삶입니까 영적인 자기 진단은 그 의미가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 전체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데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종교가 새로와지고 사회가 보다 낳은 선을 향하여 나아갈 때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던 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향하시는 이 시대의 하나님의 뜻이 무엇 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는 보다 성실하고 신실한 노력이 다른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전체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는 일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온전한 신앙의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1.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는 말은 나 자신 안에 영적 열심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 고 주를 섬기라.'하였습니다. 우리의 심령에서 영적인 열심이 식 어 있다고 하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가만히 앉아서 사색하는 종교가 아니라 열심으로 일하고 움직이는 열정 (pathos)의 종교인 것입니다. 정렬이 넘치는 종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열정이 없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십자가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실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자신에게 욕하고 죽이는 이들을 향하여 용서해 달라고 기도가 나올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사랑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성령님이 아시아 일곱 교회에 서신을 띄워 보 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열정이 식어진 두 교회를 책 망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책망은 이렇습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움 사랑을 버렸느니라.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움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면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옮기리라."(계 2:4-5)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떻습니까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중인이시요,하나님의 창조의 근원이 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 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 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 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 치리라."(계 3:14-16) 성령님이 아시아 일곱 교회에 메세지를 주셨는데 그 중에 이 두 교회에 처움의 영적 열정을 다시 찾을 것을 강력히 촉구하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것을 촉구하셨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님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 로 마치겠느냐"(갈 3:3) 여러분의 심령에 영적인 열심이 있습니까 열심이라는 말은 영 어로 'Enthusiasm'인데 이 말은 헬라어로 '엔 데오스' 즉 in God 하나님 안에 있다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곧 열성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열정이 식어지고 있 다고 하면 이는 곧 하나님 안에 있지 못한 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 열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 하여야만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지고 열심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바로 그리스도 안에있다는 말을 적어도 160회 이상 고백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우리 자신에게 두번째 던지는 질문은 신앙생활에 있어 능동적인 봉사를 하고 있는가 본문 말씀에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 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세가지 중요한 요건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요건은 깨끗한 생활을 하라.(clean life)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변화 하든지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열심히 일하라.(work hard) 열심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처지와 환경에서라도 성실한 사람이 되 어야 합니다. 기회주의자가 되어서는 능동적인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일거리를 찾아서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번째는 하나님을 믿으라.(trust God) 억지로 하는 신앙, 헌신,봉사는 진정한 축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니느웨의 요나를 생각해 보십시요.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간 구레네 시몬을 생각해 보세요.
그러므로 휼륭한 성도는 정기적으로(고전 16:2) 은밀하게(마 6:1-4) 줄거움으로(고후 9:6-8)로 봉사하는 성도인 것입니다.
3.우리의 신앙의 자세는 흩트려지지 않았습니까 승리의 신앙을 가지느냐 못 가지느냐는 우리 자신의 자세에 딸 려있다는 사실입니다. 흩트러진 자세 가지고는 하나님의 놀라운 영적체험을 이룰 수 없습니다. 자세를 바로 가져야 합니다. 베드 로 사도는 그의 서신에서 허리띄를 동여 매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를 드리되 깨어서 기도하라고까지 일러주셨습니다.
1)신앙의 자세가 소망 중에 줄거워하고 있습니까 소망이 없는 자에게는 기대할 만한 자세가 보이지 않게 마련입니다. 잠언에서 도 묵시가 없는 백성은 방자히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왜 방자히 행동하여 빈축을 사게 할까요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장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현실에 방자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소망으로 줄거워하고 있는지요
2)환난중의 인내하고 있습니까
3)기도에 힘쓰고 있습니까 기도를 잊었습니까 그것은 자신을 잊는 일입니다. 간구함을 부끄럽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교만입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고 하나님의 도우심 과 섭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어려울 때에 우리의 진정한 도움이시요 산성이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웨슬리는 언제나 기도하는 자로서 그의 일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4.우리 자신에게 묻는 네번째 질문은 우리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음 곧 행동으로 표현되어져야 합니다. 행동화 되지 못한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찾아온 많은 무리들에게 네 믿음을 나에게 보이 라는 것입니다.믿음은 곧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 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엘리 제사장의 말대로 그는 기도를 통해 사무엘 큰 아들을 낳았습니다.아들을 그녀의 서원한 대 로 성전에 바치면서 기도한 내용 중에서 "하나님은 지식(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삼상 2:3) 하나님은 행동 을 달아보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행동으로 나타나지 아니하는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아들을 얻고나서 기도한 내용이 바로 하나님 은 행동을 달아보신다 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려면 믿음으로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할 것입니까
1.먼저 데접하기를 힘쓰라했습니다.(롬 12:13) 예수님의 말씀 "남을 먼저 대접하라"는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 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황금율이라는 말까지 붙은 귀한 구절입니다. 아브라함은 대접하기를 즐겨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소돔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의롭 지 못한 롯도 죄악의 도성에 살았지만 그도 대접하기를 즐겨하다 가 천사를 대접하고 구원을 받은 일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 잘 알 고 있는 것입니다.
2.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 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안에서 온전 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8-19)
3.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는 삶입니까 영적인 자기 진단은 그 의미가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 전체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데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종교가 새로와지고 사회가 보다 낳은 선을 향하여 나아갈 때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던 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향하시는 이 시대의 하나님의 뜻이 무엇 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는 보다 성실하고 신실한 노력이 다른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전체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는 일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온전한 신앙의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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