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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영적 예배 (롬12:3-21)

본문

우리는 지난주일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나온 것을 믿는 사람은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것은 열광적인 몸짓도 유창한 기도도 아닌 몸으로 드리는 산제사라고 했습니다. 영적 예배는 먼저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하며,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것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제 몸으로 드리는 영적예배를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생각에 있어서 영적 예배(3-8) / 하나님의 말씀은 몸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에 있어서 그 첫번째를 마음자세에 관한 것을 말씀하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람을 정결하게 하고 더럽게 하는 것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믿음도 마음에서 나고 모든 경건의 삶 역시 그 마음이 먼저 새로와 지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1)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3) / 마음의 산제사에 있어서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이 바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는 것이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 망하는 자는 언제나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날뛴다. 성경에서도 이런 이들은 많이 있다.
예) 고라당의 반역, 아론과 미리암의 비방, 사울왕의 번제, 미갈의 비웃음, 요압의 불순종, 등. 특별히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도 되지만은 교회 내에서의 하나님게서 세우신 질서를 지킬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족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복된 것이다. 한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으면 교회를 어지럽히게 되고 또한번 품으면 마음에 화인을 맞고 또한번 품으면 박태선이 정명석이 같은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확실하게 아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2) 직분과 은사에 있어서 적절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4-8) / 먼저 원론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주신 모든 직분과 은사는 각기 다르나 한 몸임을 강조한다(4-5). 한몸임을 기억하는 것이야 말로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이 무엇인지 깨닫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바로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여러가지 문제와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제 말씀은 구체적인 은사를 활용하고 사역하는데 있어서 바른 마음자세는 어떤 것인가를 언급하고 있다. 예언이면 / 믿음의 분수대로
(6) / 여기서의 예언은 장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서 모든 일을 판단하는 규모를 의미한다. 은사로서의 예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믿음의 분수대로 해야한다. 믿음 역시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하셨으니 아무 말씀이나 마음대로 써먹으면 안된다. 오직 믿음의 분수대로 말해야 한다. 섬기는 일이면 / 섬기는 일로
(7) / 구체적으로 섬기는 일이 무엇인지는 잘모르나 이것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특징으로서 아프거나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돌아보는 요즘으로 하면 심방과도 같은 것이다. 현대교회에 있어서 비슷한 직분이라면 권찰이나 권사직이 있겠다. 이와같은 직분은 어떤 자랑이나 공로가 아니다 그저 섬기는 일로 해야 한다. 혹은 어떤 자격이 있어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듯이 하면 안된다. 오직 종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듯이 섬기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가르치는 자면 / 가르치는 일로
(7) / 역시 자신의 직분에 충실해야 할 것을 가르쳐 준다. 가르치는 자가 되어서 말만 앞서도 안된다. 오직 말씀에 합당한 가르침에 합당한 삶을 살아서 바울처럼 "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 할 수 있어야 하겠다. 가르치는 자가 가르치는 자 답지 않으면 그의 가르침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워 진다.
예) 감리교, 기독교 장로회 등에서 술마시고 담배를 피움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경건의 삶은 결국 가리워지고 그리해도 괜찮은 것처럼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 원래 그런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이는 엄청나게 큰 죄악이다. 권위하는 자면 / 권위하는 일로(8) / 권위하는 자라는 것은 하나의 직분이라기 보다는 먼저 섬기는 자와 같이 남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성령님의 은사를 받은 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권위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강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혹간에는 권위하는 자신의 직무를 잊고 그저 말만 늘어놓고 사람의 마음에 아픔을 주는 욥의 친구들과 같은 자세를 가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권위하는 자, 상담하는 자는 삼가서 상대방 형제의 형편과 마음의 아픔을 위로해야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사정없이 긁어 놓고 "나는 그를 위해서 말했다"고 하는 엉터리는 없어야 한다. 자신이 고쳐야 할 죄악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악하게 깨닫지 못하는 자에 대한 책망은 교역자의 할 일이다. 성도은 서로 권면하고 격려하는 일을 해야 한다. 구제하는 자는 / 성실함으로(8) / 초대교회 때에 구제의 일은 하나의 큰 사업이었다.
그러므로 고아와 과부들에 대한 구제 업무를 위해서 실은 교회의 집사를 세운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영적 예배의 삶은 바로 성실함이다. 여기서 성실함이란 부지런함이란 의미도 있으나 사실을 모든 것을 공정하게 치우치지 않고 생각하며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돌아갈 유익을 골고루 배정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구제함에 있어서 성실해야 한다. 그저 형식적인 것으로 그쳐서는 않된다. 세상은 형식적이고 자기 자랑적이다. 그러나 교회의 구제 혹은 성도 개인적인 구제 생활은 성실하게 해야한다.
예) 화평교회 혜정이네 다스리는 자는 / 부지런함으로(8) / 교회의 지도적 위치를 차지한 분들을 말한다. 주로 교회의 장로를 의미한다. 장로들이 부지런히 교회와 성도를 살펴서 혹은 잘 못되지나 않는지 혹은 다른 어려움은 없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즉각적으로 담임 목회자에게 그 사정을 고함으로서 목회를 협력하고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잘못된 자를 권면하여 아주 잘못되어지지 않도록 하고, 만일 그가 정말로 회개치 않을 때는 치리회를 소집하여 치리해서 모든 교회가 그가 잘못된 것을 알아 이에 전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역시 주밀하게 준비하여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장로는 이와같이 교회와 성도의 모든 형편을 살펴서 용의 주도하게 일을 처리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게 해야 한다. 이와같이 장로는 영적인 일에 부지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많은 장로들은 교회의 신령상의 일보다도 자신의 세상일에만 바쁘고 오히려 교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출세를 꾀하니 이것은 타락한 연고요, 하나님의 심판을 쌓는 것이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 즐거움으로(8) / 긍휼을 베푸는 자 역시 하나의 직분이라기 보다는 성령님의 은사로서 여러가지 성도를 돕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도 잘못하면 마지 못해 하는 율법적인 것으로 타락해 버리기가 쉽다.
그러므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언제나 자원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자원하는 즐거움을 위해서는 누구의 인정이나 보상도 역시 바래선 않된다. 순수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님의 감화하심으로 행할 때 자원하는 즐거움으로 긍휼을 베풀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바른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오히려 안하는 것만 못한 것이다. 우리의 마음자세를 살펴보면서 나는 과연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는 않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고 있으며 내게 주신 직분과 은사에 합당한 마음을 품고 있는가 살펴서 온전한 산제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2. 생활에 있어서 영적 예배(9-13) / 이제 말씀은 구체적인 성도의 생활로 이어진다.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신앙은 거짓 신앙이며, 그 믿음이 결코 그를 구원하지 못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생활의 각 부분에 있어서 언급하되 먼저 사랑을 언급한다.
1) 사랑엔 / 거짓이 없다. /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9) / 이것은 사랑의 속성의 제 일번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먼저 거짓이 없어야 한다. 결코 서로 거짓을 사이에 두고 있어선 않된다.
그러므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거짓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이는 악한 것이다. 이것을 미워해야 한다. 그러면 선에 속할 수 있다. 악을 미워하지 않고 거짓을 적당히 합리화하는 사람은 결코 선에 속할 수 없고 사랑을 소유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의 삶에 거짓을 몰아냄으로 사랑을 소유해야 한다.
예) 하나님께서는 뱀과 교제함으로서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람을 구속하시기 위해서 뱀과 여자가 원수되게 하신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 그리고 서로 우애하고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라! (10) / 이제 우리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로 우애하고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해야 한다. 세상적인 인간관계의 폼은 상대방에 따라서 달라진다. 상대방이 대충 별것 아닌 것같아 보이면 먼저 상대방을 깔보고 큰소리치며 험상굿게 함으로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고, 그렇지 않고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같으면 아첨의 말로서 일단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 놓으려고 한다. 이것이 권모와 술수이고 세상사는 지혜로 통한다. 세상에서 오늘날 진정한 인간관계는 사실상 찾아보기 힘이 든다. 그러나 이제 영적예배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모든 사람을 대하되 주님을 대하듯이 해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외모의 태도만이 아니라 마음 속 중심으로 부터 사랑해야 하며, 중심으로 존경해야 한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 안에서의 겸손만이 진정한 섬김이 가능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 죄인되 나를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속에 완전히 충만할 때 죄인된 나의 모습도 변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에게 가장 큰 벌은 마음에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에게서도 배울 수 없게 되고 만다.
예) 어거스틴의 3대 덕 / 겸손, 겸손, 겸손. 나는 이 겸손에 대해서 한 때 아주 깊이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주님께서 겸손하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면 겸손할 수 있을까 " 특별히 나보다 실제적으로 못해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겸손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아주 고민스럽게 깊은 사색에 빠졌었다. 그러나 그 비결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바울의 말대로 내가 모든 사도보다 수고하였으나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수고하신 것일 뿐이니 내가 교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내가 만일 다른 사람보다 좀더 나은 지혜와 능력, 그리고 지위를 가졌다면 이것은 나의 자랑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이것은 나의 값지 못한 빛으로 남아있는 것이요,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회계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다.(눅12:48) "고 하심을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이다.
3)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11) / 이제 생활의 영역에서 두번째 주시는 산제사의 명령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라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악세서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주를 위한 열심은 특별한 사람들이 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사실은 모든 성도에게 주시는 말씀인데 그 말씀을 진정으로 순종하여 열심을 품고 주의 일을 하는 자가 극히 적은 것이 불행인 것이다. 이제 몸으로 드리는 영적예배는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다. 한번 자신을 돌아보자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기 보다는 오히려 예배 참석도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이 과연 주님과 동행하는 영적 예배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주님으로 말미암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나니 힘써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열심을 품고 섬겨야 할 것이다. 결코 이것은 헛된 것이 아니다. 바울은 부활의 소망을 이야기 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전15:58) "
4) 개인적인 신앙생활을 언급한다.(12-13) /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대접하기를 항상 힘쓰라! 영적인 생활과 물질적인 생활은 언제나 그렇듯이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가운데서 돌아보는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약1:27)
그러므로 개인적인 경건의 삶은 물질적 구제와 동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연합되어 있다. 특별히 세상 물질 중 아주 많은 부분은 쓸데 없이 사용되어지고 정작 필요한 사람은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는 것을 감안 할 때 가난한 자를 위하여 손을 펴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이요, 진실한 성도의 할 일인 것이다.
3. 인간관계에 있어서 영적인 예배(14-21) / 세상에 사는 것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섞여서 살기 때문에 인간 관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특별히 영적 예배의 삶을 사는 성도로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 를 언급하고 있다.
1) 반대자들에 대한 그룹에 대해서. /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저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불쌍히 여기는 것과 참는 것이다. 그리고 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하되 선으로서 악을 이기는 것이다. 빕박하는 자를 위해서 /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4) 악을 / 악으로 갚지 말라!(17) / 개인적인 악한 대우를 의미한다. 원수 / 네가 갚지 말라 / 주기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19-20) 악에게 지지 말고 / 선으로서 악을 이기라!(21)
2) 즐거워하는 자들과 / 함께 즐거워 하라!(15) / 본성을 거스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정과 욕심을 못박은 자에게는 가능한 것이다.
3) 우는 자들로 / 함께 울라!(15) 4)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16-18) / 높은데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라. 그리고 스스로 지혜있는체 하지 말라! 이는 화평을 깨는 아주 중요한 과실이다. 내 주변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바로 이점을 주의해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함께 평화하라! 이것이 바른 성도의 인간관계요, 영적 예배의 삶이다. 결론 신앙과 삶은 하나이다. 결코 나뉘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강한 열정을 갖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하셨다. 우리의 삶에 썩어질 것 진정 배부르지 못할 것으로 욕구가 충만해선 않되겠다. 오직 주님 앞에서 몸으로 드리는 산제사의 삶, 영적 예배의 삶, 바로 이 삶이 주님을 진실로 믿는 성도의 삶이요,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예배하는 성도를 찾으시고 복을 주시며, 능력을 주셔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임을 잊어선 안되겠습니다. 바라기는 초남교회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의 원하시는 간절한 음성을 이미 들으셨습니다. 이제 이 음성을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오직 순종하여 주님께 쓰임 받는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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