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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 (1) (롬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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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주일은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그래서 10월 한 달을 개혁의 달로 선정했습니다. 종교개혁(Reformation)이란 문자그대로 형태(form)를 새롭게 고친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네 시간에 걸쳐 종교개혁에 대한 문제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종교가 부패하면 사회가 부패하고 종교가 타락하면 사회전체가 타락한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나 어느 시대에서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종교는 그 시대의 정신적 심장이요, 한 국가의 사회적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인구수와 종교인구수 사이에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종교인구가 많다고 그 사회가 건전하다거나 종교인구가 적다고 그 사회가 부패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오순절 직후 당시 유대의 그리스도인의 수가 불과 3천 명이 안되었지만, 사람마다 저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행 2:43). 필라델피아 교회도 매우 적은 교회였지만 그 적은 힘으로 당시 사회에 강력한 도덕적 영향을 줄 수 있었습니다(계 3:7,8). 이처럼 종교가 건전하고 참신하면 국민의 양심도 건전하고 사회도의도 참신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한 국가의 정신사의 흐름은 종교적 수준과 정비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 볼 때, 국민 정신과 국민의식을 지배했던 세 가지 종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려시대의 호국불교, 조선시대의 유교사상 그리고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기독교를 들 수 있습니다.
1. 종교개혁은 오직 믿음의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1510년 어느 날 두 명의 독일의 수도사가 꿈에도 그리던 로마에 가서 라테란 성당의 층계를 무릎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고행과 수양으로 선과 덕행을 쌓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마틴 루터였습니다. 그는 경건한 수도사였고 하루에 한 번씩 무릎 꿇고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금식도 자주하고, 구원을 받으려고 끊임없이 선행과 덕을 쌓으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도 구원을 얻으려고 층계를 기어오르는 순간 로마서 1:17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참고. 합 2:4)라는 말씀이 섬광처럼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루터는 그 순간 계단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오직 믿음(Sola fide)의 원리입니다. 여기에서 개혁주의의 이신득의(以信得義)와 이신득구(以信得救)의 교리가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교리!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개신교의 교리서입니다. 여기에는 “믿음으로”라는 말이 수십번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章)으로서 16명의 믿음의 영웅들의 행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리고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갔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장차 될 일을 바라보며 120년 동안 방주를 예비하였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가나안 땅을 자기의 후손들에게 상속했습니다. 사라도 믿음으로 죽은 자와 방불한 그 몸에서 이삭을 얻었고 그 외에도 이삭.야곱,요셉,모세,라합,기드온,바락,삼손,입다,다윗, 사무엘 같은 믿음의 영웅들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종교개혁은 오직 은혜의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 당시 로마교회에서는 면죄부라고 하는 속죄표를 매매하였습니다. 고해성사의 법에 의하면 고백하는 죄의 경중에 따라 부과되는 참회행위가 있었습니다. 중세기에 면죄부는 참회 행위(성지순례,묵주기도,금식 등)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좋지 않은 방편이었습니다. 루터 당시에는 독일을 방문한 도미닉파의 수도사가 연옥의 고통을 감해 준다는 감언이설로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면죄부를 팔아서 베드로 성당을 보수했다고 하지만 성당이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는 것은 금이나 은이 아니오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의 보배피로 된 것입니다(벧전 1:18,19). 속죄문제와 구원문제가 어찌 돈이나 면죄부로 해결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95개조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갖다 붙이고 로마교회 당국자들을 향해 면죄부 판매의 비성경적 부당성을 지적했습니다. 죄문제는 돈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면죄부 같은 방편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에 구원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을 돌아보시는 자비요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십자가에서 증명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직 하나님의 자비로!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찬송가 338장은 그 은혜를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전부터 계신 주께서 영죽을 영혼을 보혈로 구해 주시니 그 사랑 한없네” 주님은 내 죄를 씻어 주시려고 십자가상에서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받고 있는 줄 압니다. 많은 기도의 용사들의 중보기도가 또다시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국의 성도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구원받을 수도 없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도 없으며 승리의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
3.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의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교회의 권위 문제와 관련하여 신 구교는 그 견해가 다릅니다. 구교(로마교회)는 성경의 권위 위에 전통을 두고 있습니다. 그 전통이란 교부들의 문서, 교회회의의 공식적 신앙고백,교황의 공식적인 발언과 가르침 등입니다. 로마교회는 지금도 교황무오설을 믿습니다. 교황이 교황직의 이름으로 말한 것은 오류가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신교는 최종권위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둡니다. 이것은 바로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의 원리입니다. 교황무오설은 비성경적인 주장입니다. 로마교회의 이런 교리에 대해 카톨릭 신학자 한스 큉조차도 이의(異議)를 제기하였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완전할 수 있고 무오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롬 3:10). 로마교황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행(信行)을 위한 무오하고 절대적인 최종권위요 규범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서 오직 성경만이 최종적 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종권위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인생의 안내자요 여행자의 지도책과 같습니다. 지난 번에 총회 장소를 찾아가는데 실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서 그랜드 래피드로 가지 않고 디트로이트 방향으로 한 시간 반을 달렸습니다. 그래서 차를 세우고 지도책을 보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지금 내가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우리의 길을 인도하는 영혼의 지도책을 보고 늘 자기 수정을 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겸손히 하나님 아버지께 묻는 태도가 바로 개혁주의 신앙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표준문서입니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에서는 임직식에서 성경에 관한 신앙고백을 첫 질문으로 묻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느뇨”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은 개혁자 마틴 루터가 재발견한 진리입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3대 원리입니다. 우리는 이 원리들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더욱 더 성경의 진리에 충실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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