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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멈출 수 없다 (롬1:17)

본문

오늘은 종교 개혁 기념 주일이다. 독일이 낳은 신학자요 천주교 신부였던 마틴 루터는 당시 천주교의 부패성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내걸고 어두워진 영적 암흑기 속에서 종교 개혁의 깃발을 1517년 10월 31일 들어 올렸다. 당시 로마의 카톨릭 교회는 전 세계를 호령하였고 그 세력에 어떤 나라도 어떤 왕도 도전할 수 없었다. 그 거대한 세력에 루터는 정면 도전한 것이다. 비텐베르그 카톨릭 성당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 문을 붙이고 강력한 카톨릭 세력과 싸운 것이다. 루터의 행동은 작은 달걀이 바위를 치는 꼴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바람은 산불이 났을 때 불이 바람은 맞아 무섭게 번져 나가듯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루터에게 종교개혁의 힘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루터보다도 30년 전에 종교개혁을 부르짖은 자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이탈리아 종교개혁자 "기롤라모 사보나롤라" . 마르틴 루터가 독일에서 15세기에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면 기롤라모 사보나롤라는 이미 14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강력한 로마 카톨릭과 교황을 향해서 그들의 죄를 지적했다. 오늘 우리는 이들이 무엇을 그렇게 믿고 그 무서운 강력한 카톨릭 세력 앞에 굴복하지 않고 부르짖을 수 있었는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루터의 신앙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였다. 사보나롤라 역시 오직 믿음이었고 오직 성경이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이 개혁되어져야 하는가 우리의 믿음이 개혁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개혁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것이 개혁되어져야 한다 이 3가지가 우리에게서 개혁되지 않은 한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개혁이란 말은 기존질서를 무너뜨리고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개혁은 새로운 갱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개혁은 기존의 있던 것을 다시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믿음. 말씀. 은혜 날마다 새롭게 개혁되어져 가고 있는가 루터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는 말씀 앞에 그 자신이 새롭게 변화되어서 개혁을 외쳤다. 우리도 오늘 믿음과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변화되어 나를 먼저 개혁시키고 내 가정을 개혁시키고 이 교회를 개혁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이 나라를 개혁시키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째:오직 믿음. 17절
본문은 합 2:4의 내용을 인용하였다. 복음과 의와 믿음과 구원의 관계를 잘 설명하였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우리를 믿음에 이르게 하고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하였다.
복음 복된 소식인데 그 복된 소식은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 복음에 하나님 의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의 의롭게 되어야 구원을 받은다. 즉 복음만이 우리를 의롭게 해준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의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롬 3:26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이 "의"가 우리를 믿음에 이르게 하고 이 믿음은 예수를 믿는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보나롤라와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믿음을 떠난 교황과 카톨릭을 따르는 성직자들의 더러운 행위에 참을 수 없어서 외치게 된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이 이 시대에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가슴 아파 하면서 사보나 롤라와 루터의 당시 시대상을 살펴보자 먼저 사보나 롤라 시대에 교황은 알렉산더 6세 였는데 이 자는 교황을 성직매매를 통해서 교황이 되었다. 스페인 사람이었고 역대 교황들 가운데 가장 악한 사람이었다. 그는 교황이 되기 전 이미 5명의 사생아가 있었고 자기 권세를 이용해서 그 자녀들에게 부귀 영화를 누리게 해주는 게 주된 관심사였다. 사보나 롤라는 이 교황에게 정면으로 공박했다 "로마 카톨릭 교황 알렉산더 6세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직을 매매하는 자이며 온갖 파렴치한 죄악을 저지른 자요 거듭나지 못한 자 " 라고 외쳤다. 오늘날도 성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곳이 있다. 목사 안수를 돈으로 주고 사는 곳이 있다.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 권사, 안수집사, 돈으로 직분을 사는 꼴이 곳곳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땅에 새롭게 개혁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 개혁은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잊어버린 우리의 신앙 자리를 다시 찾아가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 직분을 돈주고 사라는 곳이 있는가 그런 믿음 없는 자들이 교회 직분을 맡으니까 개혁이 이루어 질 수 없다. 루터 때는 어떠했는가 1520년 루터가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당시의 타락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황제가 일층 왕관을 쓰는데 교황은 삼층 왕관을 쓰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추기경들도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도적놈처럼 돈에만 정신을 팔고 있다. 교황청은 성직매매, 술주정, 사기, 도적질, 강도질, 사치, 매춘행위, 협잡질. 등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로 가득차 있다. " 개혁의 강력한 불 쏘시게 된 것은 교황 레오10세가 성베드로 대성당을 속히 완공하기 위하여 소위 면죄부를 판매한 것이다. 죄로 인한 형벌을 면죄부를 사면 죄가 감면된다는 것이다. 구원을 돈으로 사고 파는 타락한 모습이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이 시대도 목사 입에서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떠들고 있다. 교회들 다니는 사람들이 더 악한 짓을 하고 있다. 중세시대 때에 저들이 못된 짓 한 것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왜 교회를 다니는 자들이 헛소리를 하고 불신자들보다 더 악한 짓을 하는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날마다 개혁하는 삶을 살수 밖에 없다. < 예 화 > 며칠전 기독 신문에서 어느 목사님이 쓴 글을 본적이 있다. 그 글 제목은 진짜와 가짜 였다. 진짜 보다는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고 했다. 진짜는 새벽 하늘의 별처럼 드물고 세상은 온통 가짜 투성이다 했다. 그러면서 가짜 이름을 대었는데 정말 많았다. 가짜 저울. 가짜 되. 가짜 고추가루. 가짜 간장. 가짜 참기름. 가짜 고학생. 가짜 군인. 가짜 사장. 가짜 비서. 가짜 진단서. 가짜 졸업증. 가짜 성자. 가짜 거지. 저는 여기에 더 덧붙인다면 가짜 성도. 가짜 집사. 가짜 장로. 가짜 권사. 가짜 목사. 가짜 교회. 가짜 기도원. 가짜 설교. 가짜 기도. 가짜 믿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진짜 믿음 가지고 계십니까 지금은 우리가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뚜렷이 분간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마25:33] "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 [마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 [마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겉과 속이 다른 믿음 생활하지 말자.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 마음 변치 말고 오직 믿음으로 신앙생활 열심히 하시길 바란다. ㅋ과 속이 다른 말과 행동이 다른 바리새인들에게 주님이 어떤 저주를 하셨는지 아시죠 마23장에 보면 겉과 속이 다른 저들을 향해 주님은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하셨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주님처럼 우리 또한 우리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 두 번째:오직 성경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복음은 곧 생명의 말씀이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시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오직 말씀 성경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을 당시 로마 카톨릭은 성경의 권위보다 교회의 권위를 더 높였고 그래서 로마 교황청의 결정은 곧 성경이었고 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카톨릭 주장을 개혁자들은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 시대도 저 중세시대 카톨릭처럼 성경보다 더 위에 있는 것들이 우리 교회들 안에 우리 신앙 안에 알게 모르게 많이 있다는 것 알고 계십니까 우리들 자신도 모르게 우리가 성경을 깔아뭉개고 있다. 사보나 롤라는 성경 66권 본문을 거의 외웠다고 한다. 그에 성경책은 너덜너덜 다 헤어졌고. 성경 공백 칸에는 깨알같은 글씨들이 적혀 있었다.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고 성경을 가까이 대하고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천년 동안 교회에서 설교가 떠나 버린 그 시대에 사보나롤라는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에게 성경을 강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보나롤라의 성경강해는 수도사들에게 충격적이었다. 당시에는 성경을 초보적인 책으로 취급하고 보지도 않고 철학책 쪽의 책이 환영을 받고 있었다. 산 마르코 수도원의 정원 한 모퉁이에서 조촐하게 시작된 이 작은 모임은 점점 모이는 횟수가 늘어나고 수가 늘어나서 장소를 옮겨야 했다. 이때 강해 설교한 내용이 요한계시록이었다. 그의 설교를 점점 알려져서 플로렌스 도시에 있는 평신도들이 성경 강해 설교를 듣기 위하여 수도원으로 너무 많이 와서 장소를 정원에서 교회 안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의 강해는 이제 점점 설교로 변하기 시작했다. 천년동안 설교를 듣지 못하고 잡다한 의례와 의식만 치러왔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사보나롤라의 설교를 듣고 그들은 변해갔다. 예배시간 한시간 전에 이미 예배당 문은 닫혀졌고 미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밖에서 그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면서 울면서 회개했다.
플로렌스 도시는 변하기 시작했다. 교회와 수도원은 옛날의 청빈함을 회복하였고 성직자들은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는 일에 몰두했다. 건달들은 사라지고 감옥은 텅텅 비웠고. 유행가는 사라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바뀌었다. 플로렌스 시민들은 광장에 세상의 헛것을 쫓던 것들을 모아서 소위 "허영의 화형식" 을 치렀다. 세속적인 책들. 유행하던 가발들. 음란한 그림들. 그들이 거두어들인 물건들이 팔각형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았는데 7층 되는 높이로 그 높이가 18미터 둘레가 72미터 였다. 산더미 같은 세속적인 물건들이 그날 다 불로 태워졌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이렇게 했습니까 사보나롤라 입니까 아니다 하나님 말씀이 플로렌스 그 큰 도시를 변화시킨 것이다. 사보나롤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교회가 갱신되기를 갈망하며 설교한다. 나는 이 일에 있어서 오직 성경만을 나의 유일한 길잡이로 삼았다 루터 역시 오직 성경 속에서 살았다. 루터도 많은 성경 강해를 하였고 특히 루터의 "소요리 문답"은 평신도 성경으로 불리울 정도였다. 루터는 교황을 "모든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적그리스도다" 라고 낙인찍었다. 오직 성경은 우리 기독교의 최상의 힘이고 능력의 원천이다. 이러한 말씀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점점 설교가 짧아지고 있고 말씀을 증거하고 가르치는 소리보다는다른 소리가 더 강하게 울리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어떤 교리도 성경 위에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떤 논리도 성경을 앞설 수는 없다. 시대를 각성시킨 사람들은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모두 철저히 하나님 말씀을 최우선으로 두었다는 것이다. < 예 화 > 이성원 목사님이 서울 시내에 있는 교회들의 설교를 분석해 보았는데 복음적인 설교가 30% 윤리적인 도덕적인 설교가 70% 였다고 한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많은 교회들이 진정한 하나님 말씀을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존 낙스 "성경만이 설교에 대한 주된 원인이 되어야 한다" 고전 1:21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세상 지식이나 윤리나 도덕으로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고전2:1]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 듣기 좋은 말로, 아름다운 목소리로, 유창한 언어 구변으로 성도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오직 하나님 말씀이 온전히 역사할 때 우리는 변화될 수 있다. 사보나롤라도 처음부터 하나님 말씀이 역사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고향 페라라에서 설교사역을 했지만 실패했다.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지 못했다. 크게 실망하고 설교를 단념하고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했다. 플로렌스 도시로 오게 된 사보나롤라는 또 설교사역을 했다. 그러나 두 번째도 설교에 실패했다. 강직한 설교는 쾌락을 사랑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실망하지 않고 강한 메시지를 선포했다. "타락한 조국플로렌스여 .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이 너희를 심판하리라 " 그의 설교는 어느 날 플로렌스 도시 사람들에게 천둥소리와 같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곳곳에서 회개가 터져 나왔고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는 마음들이 일어났다. 오늘날 이 시대 교회 강단이 세상과 타협해 버린 설교가 되고 있다 성도들 눈치만 살피면서 하는 설교가 되어 버렸다. 윤리, 도덕, 교훈, 철학, 기복적인 신비적인 설교가 판을 치고 있다. 다른 것을 좇아서는 안된다. 다른 것을 두려워해서는안된다 하나님 말씀대로 전하지 못하고 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가슴을 쳐야 한다. 오직 성경. 오직 말씀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 세 번째:오직 은혜 [롬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
시대를 깨우고 개혁하는 자들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은혜가 무엇인가 죄로 인해 심판 받아야 할 자들에게 아무런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이 무엇입니까 독생자 예수를 아낌없이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은혜를 깨닫는 자는 하나님을 위해 살수밖에 없다. 나의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무엇을 행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하여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분의 과분한 자비로 말미암아 축복을 주시지 결코 우리의 수고나 어떤 행위 때문에 주시지는 않는다 "고 말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진정한 하나님 은혜를 깨닫는 자의 고백이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을 때 그때부터 개혁은 시작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 시대는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속담처럼 이 시대 남에게 받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고 남이 나에게 원수진 일은 반드시 기억하는 것이 이 시대의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은혜를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자들이 보기 힘들다. 교회를 다니는 자들까지도 하나님 은혜를 깊이 느끼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나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식은 불효자이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사는 자들은 불쌍한 인간들이다. 사보나롤라와 루터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타락한 로마 카톨릭에 대항하여 개혁을 일으켰다. 루터는 어떤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한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로마 카톨릭과 싸운 것이다. 사보나롤라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에 로마 교황청의 유혹도 뿌리칠 수 있었다. 교황은 사보나롤라에게 로마 교회 정책에 대해 공격을 중지한다면 추기경의 붉은 모자를 씌어 주겠다고 했다. 사보나롤라는 "내가 원하는 바는 추기경의 모자도 아니고 주교의 관도 아니다. 나는 그 어느 것도 원하지 아니한다 나는 추기경의 붉은 모자 대신에 . 오직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성자들에게 주시는 순교의 붉은 피로 물든 모자 그것을 원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다 " 사보나롤라는 1498년 5월23일 오전 10시에 플로렌스 광장에서 사지가 묶인채 장작더미 위에 올려졌다. 장작더미에 불은 붙여지고 사보나롤라의 몸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 순교의 번제로 드려졌다. 사보나롤라가 그렇게 죽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계십니까 그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만 끝나서는 안된다. 그 은혜를 받았으면 이제 그 은혜로 인해서 내 자신이 개혁되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은혜로 우리는 새롭게 변해야 한다. 은혜를 받으면서도 변화되지 아니할 때 그 신앙은 타락되어지기 마련이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일 때 그 물은 썩은 물이 되고 만다 이 시대 왜 예수 믿는 자는 많고 은혜 받은 자는 많은데 세상은 왜 더 악해지고 타락되어져 가는가 은혜를 받은 자들이 개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한사람이 은혜 받고 개혁되어질 때 우리 교회는 개혁 되어질 것이고 이 민족 위에 놀라운 개혁의 바람은 멈추지 아니할 것이다. 예수님이 문등이 10명을 고쳐주었지만 한 명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 예수님은 "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 우리는 그 아홉 명 같은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은혜 받은 자는 주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눅1:28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 할지어다" 30절에도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 이 은혜를 받은 마리아의 고백이 38절에 나온다 "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 사보나롤라와 루터는 오직 은혜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개혁을 일으켰다. 이 시대 은혜 받기를 얼마나 사모하는가 은혜 받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 한 것은 은혜를 받고난 다음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까 그 은혜를 사모하고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나부터 내 안에서 신앙의 개혁의 바람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지금의 이런 우리의 모습으로는 안된다. 이런 모습. 이런 신앙은 은혜 받은 자들의 모습이 아니다 풀로렌스 도시처럼 이 도시에 놀라운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기를 원하신다면 내 안의 개혁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내 가정. 우리 교회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나부터 내 안에서 개혁의 바람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우리에게 이 크신 은혜를 왜 하나님이 주셨을까요 깨달으시고 이 은혜가 나에게만 멈추어 지지 말고 내 가정에. 내 이웃에 내 민족 전체에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전해지기를 축원합니다.
 < 결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개혁은 쉬운 게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개혁의 바람이 불고있다. 앞전의 대통령이 개혁을 할려다가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지금의 대통령도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개혁이 안되면 부패하고 타락하기 마련이다. 나라에서 하는 개혁도 어떤 기존의 틀을 다 무너뜨리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도 개혁은 계속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그 귀한 믿음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 안에 개혁의 믿음은 멈추어 질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 날마다 우리 안에서 새롭게 깨닫고 나아갈 때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개혁되어 질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그 귀한 은혜 날마다 우리가 감사하고 깨닫고 나아갈 때 우리의 믿음은 날마다 개혁되어 질 것이다. 그러할 때 우리 가운데서 사보나롤라와 루터 같은 자가 나타나서 이 땅은 개혁시키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개혁의 바람을 멈추지 않은 다면 반드시 우리의 본을 받고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고 일어날 자가 있을 것이다 루터는 사보나롤라를 가리켜서 중세의 수도사라고 부르지 아니했다.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 라고 하였다. 루터는 자신의 개혁의 횃불을 들 수 있었던 것은 사보나롤라의 생애와 교훈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다. 98년 10월달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는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개혁의 기수가 될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개혁의 신앙을 멈추지 않은 다면 우리를 통해서 반드시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 자가 나타날 것이다. 나부터 내 안에서 개혁의 바람을 멈추지 말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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