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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열심 (롬10:1-13)

본문

바울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통당하고 있는가를 9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자기 동족이 회개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해서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진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10장에 들어 와서는 또한가지 이스라엘이 구원 받지 못한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예수 믿지 못하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잘못된 열심에 빠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명분이 좋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열심을 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바와같이 열심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누구나 열 심이 없이 하나님을 절대로 섬길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서 미지근한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행동이 몹시 느린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은 분들에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불꺼진 엔진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듯이 열심없는 신앙은 아무일도 해내지 못합니다. 저는 열심없는 신자보다 열심없는 신자를 더 사랑합니다. 주님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열심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을 들고 열심을 피울 때는 정말로 대 단했습니다. 그러나 두가지 점에서 그 열심은 잘못이 있었습니다. 자기도 망치고 남도 망치는 독소가 그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2절-3절에서 그 이유를 분명히 가리켜 줍니다. 2절에서 지적한 것은 '지식을 쫓지 않았기 때문에 ' 잘못된 열심이었다고 했고, 3절에서는 '자기 의를 세우는 열심'이었기 때문에 그 열심은 오히려 자기를 해치 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1. 먼저 '자기 의를 드러내는데 목적을 둔 열심'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겠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킬려고 노력을 할 때에는 5절에 있는 대로 분 명한 목표가 있어요.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 거니와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살면 의롭게 되고 영원히 살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 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경건한 성도들은 율법을 지킬려고 하면 할수록 문제가 발생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 의 완전성을 충족시킬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그들은 무엇을 가지고 열심히 순종해서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가겠다는 것 을 서서히 포기하게 되고 자연히 "하나님이여! 이것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하는 소원으로 변해 갔습니다. 시편을 한번 보세요!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저렇게 살았습니다. 내가 경건하게 사느라고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 하나님 나를 보아 주십시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무엇이라고 구합니까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거두지 마옵소서! 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율법을 지킬수 없다는 자기의 한계성을 하나님께 자인 한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겸손한 자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만약에 경건한 선배들의 태도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고 하면, 율법을 지키느라고 쓸데없이 극성을 피우는 짓을 하지 않앗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상한 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벧론 포로가 되어 가지고, 7-80년 고생하고 나서,자기 고 국으로 돌아 오지 않았습니까 그 때부터 열심히 율법을 지킬려고 하는 사람들로 바꾸어 있었습니다. 율법에 열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또 이상하게 잘못된 길로 들 어 갔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완전히 지켜야 한다.''우리가 노력만 하면 반드시 지킬수 있다'하는 자신감을 부추기는 쪽으로 그들의 열심이 기울어졌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완전히 지킬수 있다는 인간 교만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이 있었는데 예수님도 말씀하셨던 '장로의 유전'입니다. 일종의 율법해설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나님이 주신 율법에다가 이런저런 사람의 생각과 해석을 보탠 책입니다.그 책은 자꾸 늘어 났습니다. 처음에는 몇십장 밖에 안되는 것이 나중에는 6 법전서 처럼 천재가 아니면 도무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뒤지기도 어려운 법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장로의 유전집 '토라'라고 하는 그 책 속에 하나님이 주신 율 법은 극소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쓸데없는 것들만 잔득 들어 있는 이상한 책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실을 굉장히 날카롭게 비판하셧습니다. 하나님이 율법 속에 담아 놓은 정의와 자비와 믿음은 전부 송두리째 내버리고, 대신에 덜 중요한 형식적인 법조문을 잔뜩 펼쳐 놓았다는 것입니다. 하루살이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모순 덩어리의 악법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법이지 하나님의 법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장로의 유전집이 '토라'를 지키는 사람들은 안식일날이면 '전기 스위치' 도 올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꼭 올려야 될 경우에는 유대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을 사서 올리게 합니다. 그게 뭐 대단한 것입니까 그 정도로 율법을 완전히 지키겠다고 하는 제나름대로의 열심을 가지고 극성을 떤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기의 의를 들어 내기 위한 열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악법을 지켜 의로워 질 줄 알고 거기에 매달렸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율법 주의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율법주의자의 전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갈 1:14-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지나치게 믿어' 이 말이 자기 의를 나타내기 위한 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 바울이 옛날에 그랬습니다. 유대인들이 다 그 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처럼 이 유전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사정없이 비판하고 이간질 했습니다. 더 나가가서는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 고 당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사실을 분명히 예언을 했습니다. 요16:2절에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 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사람까지 죽인다고 떠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얼마나 해로운 열심입니까
2. 두번째로 지식을 쫓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식한 열심이었다는 말입니다. 3절에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모른다 고 말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의 의입 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4절에 보면 그리스도는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에 마침이 됨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읫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를 의롭가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내어 놓으신 하나님의 의닙니다. 왜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의가 될수 있었습니까 율법의 마침이 되 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입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이 이해해야 합니다.-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다-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말로서 중요한 말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율법의 완성이 라고 합니다. 이미 앞에 있는 여러 장에서 이 사실을 누누히 설명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 지키지 못하는 율법을 대신 지키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자기는 죄가 없 으면서도 율법 아래 갖혀 그 율법을 우리 대신 다 순종하셨습니다.그리고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꼭 받아야 할 율법의 형벌을 그가 대신 다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신 분이요,율법을 완성시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 시키기 위해서 율법을 지킬 의 무가 없어졌습니다. 율법 아래에서 떨어야 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우리는 의롭게 되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예수야말로 하나님의 읫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여 주신 그의 읫니다.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고 받아 주는 읫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읫니다. 열심히 지켜서 얻는 의가 아니라,믿어서 얻는 의를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읫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의롭게 되는 길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 해서는 안됩니다. 굉장히 탐구해야 하고, 뛰어야 하고,노력을 해야 이 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 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오셨지 우리가 불러서 온 것도 아니고, 끌어 내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의지, 우리가 손발을 비벼 가지고 얻은 의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6절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이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그러나 신명기 30장 12-13절에 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명령은 가까이 와 있고, 전파 되었기 때문에 하늘에 올라가고,땅 밑에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다가 그대로 적용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의를 얻으려고 하늘에 올라가서 찾아 다닐 필요가 없고,우리가 하나님의 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볼려고 죽은자들 가운데 들어가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오셨지 우리가 오라고 한 것이 아니었고, 죽은자 가운데서 살 아 나신 것도 하나님이 살리셨지, 우리가 가서 빌고 애원한다고 살아난 것도 아니 지않습니까 한마디로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 되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읫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수고하지 아니한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값없이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 들이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 합니다. 이 예수그리스도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8절에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믿으면 끝나는 것이지 그것이 멀 리 있는 것처럼 돌아 다니지 말라하는 이야깁니다. 그러나 믿음에 몇가지 구비해야 할 조건을 9절부터 말합니다.
1. 예수를 나의 주로 시인해야 합니다.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라고 했습니다. 나의 왕이요, 내가 절대로 복종해야 할 분이심을 시인해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나의 생사화복을 완전히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신 것을 인정하면서 내가 절대적으로 생명 바쳐 충성하고 순종해야 할 주님으로 고백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런 분들은 아직도 믿음이 어리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주님으로 고백할수 있어야 합니다.
2.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죽으신 후 3일 만에 나를 위하여 부활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뿐 만 아니라, 그 믿음은 마음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10절에 보면-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반드시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겉으로 사람 보기에 듣기 좋은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뿌리를 두고 진실하게 고백하는 믿음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고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안됩니다. 공적으로 사람 앞에서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고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는 믿는 다고 하면서도 입으로 시인하라고 하면 입 을 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믿음은 문제가 있는 믿음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아무리 철석같이 믿고 있어도 '내가 예수님의 사람이요,내가 예수님에게 소속되었다'는 사실을 부 끄러움없이 고백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어린믿음이든지 아니면 잘못된 믿음일수 있습니다.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이와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가리지 아니 하고, 빈부귀천을 가리지 아니하고 남여노소를 구별하지 아니하고 누구든지 구원 을 주십니다. 의롭다함을 주십니다.
그것이 11절-13절 말씀입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 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의, 예수 그리스도-이 분을 믿기만 하면 의,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주시는 의, 이 의에 대해서 무식 했습니다. 무식하면서 열심을 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지 2000년이 지나가는 데도 아직도 그들의 마음을 이 무식이 사로 잡고 있다는 것은 기막힌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을 한번 살펴 보십시요. 유대인처럼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극성을 피우는 사람들이 어디 한두사람입니 까 제가 보기에는 종교와 사상이 잘못된 것일수록 거기에 심취한 신자들은 더 열 심을 내게 됩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열심이 없어서 망하는 자보다는 잘못된 열심 때문에 망하는 자가 역사적으로 훨 씬 많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잘못된 신앙,잘못된 사상은 그 사이비성을 감추기 위해서 추종자들에게 극단적 인 열심을 강요합니다. 그들의 열심을 누가 따르겠습니까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이단에 빠진 사람들의 열심을 누가 쫓아 갈수 있겠습니까 지난 10월 말에 주님이 오신다고 믿는 '다미선교회'의 열심을 여러분들이 따를 수 있겠습니까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따릅니다.
이것은 마귀가 주는 열심입니다. 바로 그것이 자기 의를 드러내는 열심이요, 무식한데서 오는 열심입니다. 이런 열심을 가진 사람들을 치료한 약이 없습니다. 머리는 차가와야 하고, 가슴은 뜨거워야 하는데, 머리까지 열을 받았으니 그 열 받은 사람들을 누가 고칩니까 이런 사람이 되느니, 불꺼진채로 있는 사람이 훨씬 낫습니다. 열심이 없는 사람은 자기자신을 해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열심은 자기도 죽이고,남도 죽이는 거예요. 그러면 '저렇게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날 뛰는 사람을 보니까 우리는 냉정해져 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큰 일 납니다. 저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도 저렇게 생명을 걸고 뛰는 데,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값없이 받은 우리가 어찌 뛰지 않겠습니까 어찌 열 심을 내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이 좋은 예수님을 알고도 열심을 내지 아니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의 믿음은 좀 의심을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참된 열심은 그리스도를 대상으로 하며, 그로 말미암아 고취되는 열심입니다. 진센돌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게는 오직 한가지 정열이 있다. 그 정열은 주님! 오지 주님! 한 분 뿐이다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내는 열심! 그 분에 사로잡혀 하나님 앞에 전부를 드리는 열심은 절대로 나무랄수 없는 열 심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자기를 드러 낼려고 하는 은근한 열심이 있습니까 빨리 꺼 버리십시요.
여러분 마음 속에 무식해 가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뛰고 열심을 부리는 어리석음이 있습니까 빨리 물동이를 가지고 가서 꺼 버리십시요. 그것은 백해무익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생기는 열심이 있습니까 거기에는 기름 을 더 부으십시요. 지나치리라고 걱정하지 마십시요. 주님은 지나치게 하시지 않 습니다. 성령님은 지나칠 때에 절제하게 하십니다. 믿습니까 끝으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한가지 더 배울 것이 있습니다. 바울의 아름다운 자세입니다. 잘 못된 열심에 빠져서 그 열심으로 인해서 예수 믿지 아니하고 또 예수 믿으라 고 하는 자기를 일생 동안 따라 다니면서 괴롭히고, 핍박하는 자기 동족을 향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동족은 어떠합니까 이단이 우리 나라 만큼 극성을 부리는 데가 또 있을까요 자칭 내가 메시야 예수그리스도다! 하는 사람도 열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수님이 십여명이 계신 나랍니다. 대단한 나랍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북한 만큼 저주스러운 극성을 피우며 거짓된 주체사상에 빠져 놀아 나는 민족이 또 있습니까 그들로 인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난 반세기 동 안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 육체적으로 당한 고통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수 있겠습 니까 우리 주변에는 유대인처럼 잘 못된 열심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부지 기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이 잘못된 열심에 빠져 있는 너의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바울처럼 고통하고 기도하고 있는가 비판하고 욕하고 비웃기만 하고 있는가 주님이 지금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요 서대반 선교사의 간증 북한에 다녀와서 한 이야기 중에 꽁꽁 얼어 붙은 것 같은 북한에도 열심있는 성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50대 초반의 공산당 간부까지 지내고, 그 곳에서는 명문가의 사람인데 예수를 영접하고는 예수에게 사로잡혀서 뜨거워진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 다니는데 마다 예수 믿으라고 전하다가 붙들려 들어가서 죽도록 두들겨 맞고 나왔습니다. 배경있는 공산당원이기 때문에 유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와서는 가만히 있지 못해서 또 전하고 다녔습니다. 다시 붙들려 들어 가서는 성대를 잘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너무 두들겨 맞아서 다리를 쓰지 못하는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 선교사가 봉수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특송을 하라고 해서 330장 '고통 의 멍에 벗으려고'를 부르다가 눈물이 쏟아져서 제대로 부르지를 못하고 눈물을 닦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이 함께 눈물을 흘리며 흐느 끼고, 심지어는 소리를 내서 통곡하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감 격해서 우는 것인지 신세한탄을 하고 우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특송을 하고 함께 부르자고 해서 150여명의 모인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데 눈물 바다를 이루었답니다. 이런 동족이 지금 북한에 있습니다. 잘못된 사상에 속아서 지금까지 예수 모르고 살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예수의 이름만 들으면 금방 반응을 보일수 있는 사랑하는 동족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직장에 여러분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이들을 놓고 주님은 다시 묻습니다. "너희는 바울의 심정을 가지고 있느냐바울의 심정을 가지고 그들 때문에 고통하고, 그들 때문에 기도하고 있느냐산돌교회 성도들이여 네 동족을 위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마음 아파 하느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주님의 이 질문에 대해서 주여, 저는 그들을 위해서 날마다 가슴 아파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대 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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