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사데 교회여 보아라 (계3:1-2)

본문

종교 개혁 이후 시대를 예표하는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기졌으나 죽은 교회였다. 사람의 눈으로 외부에서 볼 때는 살아있고 화려한 교회지만 예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생명이 없는 죽은 교회였다. 중세 시대 타락한 교회들이 외부에서 볼 때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살아있는 교회처럼 보였으나 모두 죽은 교회였다. 사데 교회는 형식과 외식으로 가득찬 죽은 교회였다. 예수의 생명이 없는 교회였다.
1. 역사적 배경 고대 루디아 왕국의 수도였다. 주전 546년 바사 제국의 고레스에게 침략을 당하여 바사 제국의 속국이 되었다. 그 후 주전 334년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점령 당했고 주전 218년에는 셀류쿠스의 안디오쿠스에게 함락 되었다. 그 이후 주전 133년경 로마에 의해 점령되었다.
2. 지리적 배경 사데 도시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80km, 두아디라에서는 약 48km 떨어져 있었다. 사데 도시는 천연적인 요새를 갖춘 도시였다. 남쪽을 제외하고는 삼면이 450m 높이로 깍아지른 듯한 벼랑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데 성을 들어가는 입구조차 벼랑과 험준한 길로 되어 있었다.
3. 지명의 배경 사데 = (헬)사르데신 (Savrdesin) 인데 남은 자. 남아 있는 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데 교회는 이름 값을 못한 교회였다.
4. 경제적 배경 양털의 염색이 이곳에서 최초로 시작되었고 염직 공업이 흥행하였고, 공장들이 많이 있어서 부와 철학과 음악의 도시였다. 사데 도시의 부는 도시의 강에서 나는 사금 때문이었는데 이것으로 최초의 금화를 만들기도 했다. 또 이 비옥한 땅에서 나오는 농산물이 사데 도시를 더 부하게 만들었다.
5. 종교적 배경 사데 교회는 이단의 세력과도 싸우지 아니했다. 도시의 부요함으로 인해 세속적인 풍습에 젖어 이름만 있는 그런 교회였다. 외적으로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를 사모하고 전파하는데 있어서는 관심조차 없는 그런 교회였다. 6. 현재의 모습 2세기까지 그 부요함을 자랑하던 사데 교회는 사데 도시가 이름도 없이 사라져 버릴 때 함께 사라져 버렸다. 영적으로 죽은 교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7. 예언적 배경 종교 개혁 이후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사데 도시가 천연 요새 였던 것처럼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인정받자 기독교는 천연 요새처럼 그 위용을 자랑하며 타락해 갔다. 사데 교회가 풍요로움 때문에 죽은 교회가 되었던 것처럼 정치와 짝한 교회는 부귀와 권세를 누리며 타락해 갔다. 마지막 때에도 이러한 사데 교회같은 모습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성도들이 부요함에 취해서 형식적인 신앙이 난무하고 있다. 교회도 부요와 풍요로움에 젖어서 멈추어져 버린 아니 살았다 하나 죽은 교회들이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되어 질 것이다 첫 번째:수신처와 수신자 계3:1 =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 죽어가는 사데 교회에게 주님은 편지를 보내 깨닫게 하여주고 계신다. 사데 교회를 담임하던 주의 사자는 이 편지를 받고 어떠했을까요 중세 이후 타락한 교회들에게 종교 개혁자들을 통해서 너희가 살았으나 죽은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였다. 그러나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은 주님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어느 시대마다 죽은 교회들에게 하나님은 깨달음 을 주고 계신다. 마지막 때에도 형식과 외식만 갖추고 있는 교회들에게 주님은 주의 사자들을 통해서 깨닫도록 경고하실 것이다.
 사데 = "남은 자순교자" 라는 뜻을 가진 사데 교회는 끝까지 남아 있지 못하는 교회가 되고 말았다. 사데 도시의 부와 풍요로움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부와 풍요로움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거기에 빠져 버릴 때 우리는 믿음을 떠나 타락한 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기독교가 국교화 되고 로마 정치와 하나가 되어버린 기독교는 부와 권세와 풍요로움이 보장되었다. 서서히 기독교는 타락되어 버렸고 결국은 예수를 떠나버린 이단 집단이 되고 말았다
 사데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편지를 받고 소수의 무리들만이 있었다. 4절에 보면 겨우 몇명 이라고 나오고 있다. 깨닫는 자는 몇명 뿐이었다. 중세 교회 시대에도 소수의 몇명 만이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예수님의 뜻을 따랐다. 어느 시대에나 소수의 무리들이 예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소수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뜻이 전달된다. 이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도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들이 많은 시대이다. 우리는 사데 교회에 주신 주님이 편지가 오늘 나에게 전달된 주님의 편지로 받아야 할 것이다. 이 편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깨닫고 편지 내용대로 순종을 한다면 사데 교회에 몇명 안되는 자들이 남았던 것처럼 우리 또한 남은 자가 될 것이다. 주님의 편지는 항상 먼저 주의 사자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성도들이 주의 사자에게 가르침 받기를 원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사자들은 얼마나 가르치는게 중요한지 깨달아야 할것이다 본 대로 전해야 할 것이다. 잘 깨닫도록 전해야 할 것이다. 편지를 보고도 주님의 뜻을 전하지 않는다면 편지를 본 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겔33:6) "파숫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 " 주님의 편지 내용을 아는 자는 이제 혼자만 알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겔33:8-9 ' 다같이 보자 ' 우리는 본대로 들은대로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본 그대로 우리에게 증거된 책이다. (계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 지금 우리는 주님의 편지를 보고 있다. 사데 교회처럼 부와 풍요로움에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이 시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두 번째:예수님의 모습 3:1 = "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사데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사데 교회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한 상태인지 알게된다. 사데 교회는 지금 "죽었다"는 선언을 받은 교회이다. 이러한 교회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에게 붙잡힌바 되어야 하고 예수의 영으로 충만한 자가 되어야 만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예수님은 보여 주고 있다.
 일곱 영 = 성령님의 충만한 상태를 뜻한다. 일곱 별 = 별은 계1:20에서 주의 사자를 의미한다. 주의 종들을 붙잡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죽어가는 교회를 주님의 종들을 통해서 살리겠다는 주님의 뜻이 주님의 모습 속에 들어있다. 교회는 반드시 성령님으로 새롭게 살리신다.
그런데 거기에는 반드시 주의 참 종들을 택하여 교회를 살리신다. 주님은 절대로 혼자 일을 하시지 아니하신다 반드시 주의 종들을 통해서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신다. 중세 말기에 종교 개혁가들을 붙잡아서 주님의 교회들을 살리셨다. 마지막 때에도 일한 주님의 종들을 통해서 교회들을 깨우고 성도들을 깨우게 할 것이다.
 예수님은 사데 교회를 살리시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사데 교회는 다른 교회들처럼 이단 교리에 빠진 것도 아니고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살기 좋은 도시의 생활과 풍로움 때문에 그 좋던 신앙이 다 죽어버렸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데 교회에 일곱 영과 입곱 별을 가지신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중세 시대에도 기독교가 탄압만 받다가 세계를 정복한 로마 정치와 하나가 되어 버리자 기독교는 너무 편하게 되었고 부와 권세까지 누리게 되자 기독교는 무섭도록 타락해 버렸다. 우리의 신앙의 적은 꼭 사단만은 아니다. 사단은 세상 것들을 이용해서 우리를 미혹하고 실족시킨다. 세상의 물질. 세상의 좋은 것들. 우리에게 필요하다. 돈이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교회 운영도 돈이 없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은 세상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돈이나 부귀가 목적이 되어서 신앙생활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돈은 필요한 것이고 .우리가 이 땅에서 잘 살아야 하지만 이런 것이 목적이 되어서 신앙생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돈은 필요한 것이지만 돈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도구는 필요하다. 도구는 없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도구보다 더 필요하고 귀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땅 속에 귀한 보물이 들어있다. 그 땅을 파기 위해서는 땅을 파는 도구가 필요하다 땅을 파는 도구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 참 땅을 파자 보물함이 나왔다.
그런데 보물함을 보고도 모르고 땅만 파고 있는다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짓이겠는가 . 우리에게 물질을 주고 세상 권세를 주신 것은 이 귀한 보물 되신 예수를 더 전하고 예수를 위해 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성도들이 이 도구를 얻으면 그만 도구에만 빠져버리고 만다. 그러한 사데 교회에 예수님은 다시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주님은 나타나신 것이다. 중세 시대에 타락한 교회에 주님은 성령님의 강한 역사로 주의 종들을 택하여 깨닫도록 하였지만 사데 교회와 마찬가지로 저들은 부와 권세를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 속에서 나오지 아니했다. 교회가 세상의 물질로 타락되어갈 때 주님은 그냥 보고만 있지 아니하신다. 반드시 성령님으로 주의 종들로 깨닫게 하신다. 마지막 때에도 이 땅에 교회들이 성도들이 세상의 편안함과 물질 속에 타락해 갈 것이다. 주님은 세상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재림하시겠다고 하셨다. 세상이 이렇게 살기 좋은데 무슨 세상 종말이냐 할것이다. 세상에 빠져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일곱영으로 역사 하실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손에 붙들린 주의 종들을 통해서 교회와 성도들을 깨우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데 교회가 주님의 경고를 받았을 때 남은 자들이 소수의 몇명 이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주님께 돌아온 무리들은 많은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이단의 교리와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 받은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마지막 때에 더욱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세상에 물질과 세상의 권세이다. 사실 사단이 제일 먼저 미혹하는 것은 세상의 물질과 권세이다 이것에 미혹되지 아니할 때 거짓 선지자와 이단의 교리로 우리를 미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직 성령님의 충만함과 주님의 손에 붙잡힌 주의 종들의 가르침을 잘 순종하여 사데 교회에 남은 자 들처럼 우리도 남아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번째:책망하시는 예수님 3:1-2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모든 신앙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데 사데 교회는 생명에서 사망으로 전락하는 죽은 교회였다. 초대 교회의 순교자들의 피로 교회가 생명을 얻었지만 로마 국교로 공인되자 교회가 생명에서 사망으로 전락되어 버렸던 중세시대의 교회와 똑같다 어느 교회나 마찬가지로 주님의 책망은 사랑을 담고 있다 주님의 책망 속에 주님의 사랑이 들어있다. 그 사랑의 손길은 마지막의 주님의 사랑의 손길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교회의 현재 상태의 모습이다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 남아있는 믿음으로 죽게된 상태에서 회복하라는 것이다.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으니 =하나님 앞에 보일만한 행위가 없는 신앙을 의미한다. 사데 교회는 죽은 신앙이었고 내보일만한 행함이 없는 죽은 신앙이었지만 조금은 남아있는 믿음으로 다시 살아나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다.
 사데 교회는 꺼져 가는 작은 불씨 같은 교회였다. 완전히 죽어버린 교회가 아니라 아주 작은 불씨가 남은 교회였다. 그 작은 불씨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그런 교회였다. 간신히 명색의 이름만 가지고 있는 그런 교회였다. 온전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죽은 교회였다. 그러나 아주 작은 믿음의 불씨가 사데 교회에 남아 있었다. 그 작은 믿음의 불씨는 사데 교회에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남은 몇명이 있었다. 4절에 있는 흰옷 입은 몇명이다. 중세 시대에 교회가 타락할 때 흰옷 입은 몇명의 무리들이 종교 개혁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회개를 촉구했다. 중세 시대에 카톨릭의 위세는 세상 쪽에서 볼 때는 그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왕들도 카톨릭 권세에 꼼짝을 못했다. 그러나 그 속은 이미 예수가 없는 죽은 교회였다. 지금까지도 카톨릭의 모습은 다를 바 없다. 구라파. 영국. 미국의 교회들이 사데 교회처럼 화려함을 자랑하고 예수를 잃어버리자 교회들은 죽은 교회가 되어 버렸다. ' 예화 ' 과거의 영국은 100% 기독교 국가였다. 왕과 전 국민이 하나님을 섬겼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이 영국에서 나왔다. 웨스터민스터 교회는 찰스 황태자와 다니애나가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교회이다 이러한 영국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 챨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가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챨스도 다이애나 비도 똑같이 혼외 정사를 했다. 신앙이 땅에 떨어진 영국의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된 것이다. 다이애나 비는 이혼 후 프랑스에서 밀애를 즐기다가 밀애를 추적하는 카메라맨들을 피하여 자동차로 도망 하다가 지하도에서 중간 기둥을 들이받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영국 기독교 신앙 끝을 보는 것 같다. 영국 뿐인가 미국 대통령 성추문 사건은 미국의 현실을 잘 대변해주는 사건이다.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을 미국 국민들이 대부분 긍정적으로 보고있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타락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문제는이제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기독교 신앙으로 세워진 미국이 이제는 아니다 라는 것을 보게 된다. 영국. 미국. 구라파의 화려한 교회 속에는 이제 예수는 안 계신다. 그러나 그 타락 속에서도 아직 까지 믿음을 지키고 있는 남은 자들이 있다. 그 남은 자들을 통해서 주님은 그 땅에 회개를 촉구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다를바 없다. 거대한 교회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밖에서 볼 때는 마치 거대한 힘을 자랑하고 있지만 과연 주님 보시기에 살아있는 교회일까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는 아닌지 마지막 때에 이러한 교회는 더욱 많아 질 것이다. 우리나라도 건물 위주의 교회 상이 만연해지고 있다. 교회는 절대 건물 위주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는
첫째도 예수요.
둘째도 예수요.
셋째도 예수다. 큰 교회에 예수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교회가 너무 크다 보면 세상 방법과 수단이 들어오고 그런 수단과 방법으로 운영되는 교회에 과연 예수가 계시겠는가 묻고싶다. 마지막 때에 교회와 성도는 철저히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살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마24:9)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 (요15:18-1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 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 마지막 때에 세상과 짝한 교회는 세상 속에서 권세를 누리며 그 위용을 세상에 나타내며 지낼 것이다. 우리는 초대 교회 때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느 주의 종은 역사는 수레바퀴와 같다는 말을 했다. 초림은 재림의 그림자다. 초대 교회 때 세상과 짝한 저 카톨릭의 권세가 어떠 했는가 초대 교회 때 믿음을 지키며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진 자들의 삶은 어떠 했는가 세상을 피해 지하 무덤 속에서 수 백년 지냈다. 그러한 초대 교회 같은 역사가 이 땅에 다시 한번 몰아 칠 것이다. 세상의 화려함 . 세상의 권세. 명예 너무 좋아하지 말자 오직 예수 신앙이 되지 않고서는 우리는 저 세상 것을 좋아하고 탐내게 될 것이다. 초대 교회 때 사도들과 성도들은 오직 예수 한 분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버렸다. 하나 뿐인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렸다. 마지막 때에 주님은 남은 자의 신앙을 통해서 죽어가는 교회들을 성도들을 강하게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 할 것이다. "주님이 너희에게 주신 그 믿음을 회복하라죄를 회개하고 예수께 돌아오라" 고 촉구 할 것이다. 마지막에 책망이 될 것이고 마지막의 회개 운동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보더라도 사데 교회가 주님의 책망을 듣고 돌아 왔는가 카톨릭이 종교 개혁자들의 책망을 듣고 돌아 왔는가 영국이 미국이 돌아오고 있는가 마지막 때에도 저들이 회개치 아니할 것이라고 계시록은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사데 교회에 소수의 흰옷 입은 무리들이 있었던 것처럼 소수의 무리들은 주께로 돌아 올 것이다. 성도 여러분 ! 마지막 때에 우리는 회개를 외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데 교회 성도들처럼 도시의 부와 풍요로움에 마음 뺏겨서는 안된다. 책망을 받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된다. 만약 책망을 받는 자리에 있다면 남은 작은 믿음을 붙잡고 다시 살아나는 믿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852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