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교회 칭찬과 축복의 약속 (계3:4-6)
본문
일곱 교회 중 칭찬이 없는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 뿐이다. 칭찬이 있는 교회들은 모두 다 책망에 앞서 칭찬을 먼저 주님은 하셨다.
그런데 사데 교회는 책망이 앞에 있고 칭찬은 뒤에 나오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만 큼 책망 받을 교회였기 때문이다. 칭찬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비하면 나은 교회이지만 다른 교회들의 칭찬에 비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칭찬을 지금 사데 교회는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칭찬은 믿음을 지킨 자들이 몇 명이 있다는 것을 칭찬하고 있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사데 교회는 이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 그 믿음을 주님은 지금 칭찬하고 계신 것이다.
비록 소수의 몇 명만이 믿음을 지켰지만 그 믿음 있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데 교회는 작은 칭찬이지만 지금 주님께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에게 주님은 지금 약속하고 계신다. 끝까지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라고 굳게 약속하고 계신다. 사데 교회는 종교 개혁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그 종교 개혁 시대에 소수의 몇 명이 믿음을 지키며 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사데 교회에 약속했던 것처럼 주님은 그 소수의 몇 명의 무리들을 끝까지 지켜 주셨고 그들과 함께 하셨다. 사데 교회가 물질의 부와 풍요로움에 빠져서 믿을 버렸듯이 마지막 때에 교회는 극도로 타락하고 성도들은 세상에 빠져서 형식과 외식으로 가득찬 종교인들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락 속에서도 흰옷을 입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소수의 무리들이 복음을 외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그 소수의 무리 속에서 예수를 위해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예수님의 칭찬 (계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 교회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교회의 영적 상태는 다 죽은 자였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타락에 물들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킨 몇 명이 있었다. 주님은 그 사람들을 옷을 더럽히지 않고 흰 옷을 입고 있는 자라고 하셨다. 믿음을 지킨 것을 옷을 더럽히지 않은 것에 비유하셨다 믿음을 지킬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고 믿음을 지킬 때 주님 마음에 합당한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데 교회의 몇 안되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시고 주님은 칭찬하신 것이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 믿음의 옷을 의미한다 믿음의 옷은 우리의 행위이다. 흰 옷 = 성결과 승리를 뜻한다 (계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 나와 함께 다니리니 = 주님과 동행을 의미한다. 주님은 항상 믿음 있는 자와 동행하신다. 그들은 합당한 자 = 주님 마음에 합한 자이다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이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할 때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다.
사데 교회모든 성도들이 다 타락한 것 같았지만 타락에 빠져들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이 있었다. 그 수는 겨우 몇 명에 불과 했지만 주님은 그 소수라도 남은 것을 보고 기뻐하셨다. 평범한 사회 속에서 믿음 생활 하기는 쉽다. 그러나 타락한 사회 속에서 믿음을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데 교회의 소수의 무리는 그러한 타락한 사회와 타락한 교회 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이 소수의 무리들이 그 타락한 곳에서 끝까지 버티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 때문에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 개혁 시대에 사보나 롤라나 루터나 칼빈이나 낙스나 쯔빙글리 같은 사람이 타락한 거대한 카톨릭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믿음 때문이었다. 루터는 (롬1: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이 믿음의 말씀 붙잡고 싸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우리는 이 믿음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옷이라고 해서 다 옷이 아니듯이 믿음이라고 해서 다 믿음이 아니다 이 시대 누더기 믿음의 옷을 걸치고 있으면서도 마치 좋은 옷으로 입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우리는 중세 시대에 교회 성직자들의 옷의 모습을 보면 카톨릭에 주교들이나 교황의 옷은 그렇게 화려하고 좋을 수 없었다. 이들은 좋은 옷은 입고 있었으나 믿음의 옷은 누더기 옷이였다. 그러나 종교 개혁을 외치는 수도사들이나 개혁자들 옷은 남루했고 초라했다. 그러나 이들의 옷은 믿음의 흰 옷이었다. 우리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얘기를 잘 안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호의호식 하면서 지냈지만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서 고통 당하고 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부자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배를 채우며 누더기 옷에 비참하게 지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낙원에 들어갔다 문자적으로 부자와 거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절에 보면 거지가 헌데를 앓고 있다고 했다. 이 헌데는 믿음의 상처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을 예수님은 거지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거지의 옷은 사람들 보기에는 누더기 옷 이었지만 천국을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의 옷 이었다. 마지막 때도 타락한 교회의 옷은 말할 수 없이 화려하다 계17:4 에 큰 음녀의 모습을 보자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 우리는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온전히 지키고 살려면 거지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받아들이기 싫은 말씀 일 것이다. 그러나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 질 수록 우리는 이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단은 세상의 경제권을 손아귀에 다 쥐고 인간들은 마음대로 가지고 놀 것이다. 666표의 사건은 절대 영적 사건이 아니다. 계시록의 모든 사건은 장차 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은 그것은 오직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세상의 타락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은 저 불신자들처럼 살지 말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이 믿음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타락하고 말 것이다. 이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세상과 싸워 이길 때 우리도 주님에게 칭찬을 받을 것이다. 주님은 창조 때부터 믿음 있는 자와 동행하여 주셨다. 노아는 이러한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였다. 창6:9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다. 믿음 있는 자에게는 우리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 다니엘이 믿음을 가지고 사자굴에 들어갈 때 하나님은 사자굴에서 다니엘과 동행하고 계셨다. 다니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속에 들어갈 때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불 속에 들어 갈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다. 믿음 있는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디든지 함께 동행하시겠다 약속하고 계신다 (사43:1-2)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성도 여러분 ! 믿음의 옷이 없이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 믿음의 옷이 없이는 주님의 마음에 들지도 않은다. 믿음의 옷은 흰 옷이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거룩한 삶을 살지 아니하면 아무리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사람들 보기에는 좋은 옷일지 몰라도 주님 보시기에는 더러운 누더기 옷이다. (계3:18)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 흰 옷을 입지 않고 있다면 벌거벗은 것과 다름 없다는 말이다 즉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면 벌거벗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마22장에 보면 임금이 혼인잔치를 벌인 얘기를 예수님이 하신다. (마22:11-14)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 여기에서 나오는 예복은 믿음의 흰 옷이다. 믿음의 흰 옷을 입지 않은 자가 어디로 쫓김을 당했습니까 부자가 간 음부로 이 사람도 던짐을 당하고 말았다. 성도 여러분 어떤 고난과 핍박과 환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이 믿음 의 옷만 있다면 우리는 능히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믿음의 흰 옷이 있는 자는 주님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믿음의 옷은 어떤 옷입니까 흰 옷 입니까 아니면 세상 것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옷은 아닙니까 두 번째:예수님의 약속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데 교회의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약속은 3가지로 약속하고 계신다.
1. 흰 옷을 입혀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다.
2.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이다.
3.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인정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기는 자 =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이다. 흰 옷을 입을 것이요 = 흰 옷은 성결. 거룩을 의미하므로 거룩한 자가 되리라는 약속이다.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아니하고 =생명책은 하나님의 구원의 장부다. 그 책에 기록된 구원자의 이름을 이기는 자에게는 절대로 지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모든 사람들이 서야 할 자리이다. 그 날에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지 아니한 자는 모두 음부에 던짐을 당하고 말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진다. 이기는 자에게
첫째 흰 옷을 입혀주시라고 약속하고 계신다. 흰 옷은 깨끗한 거룩함과 성결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을 싸워 이길 때 우리는 거룩함을 가지게 되는데 그 거룩함을 주님은 약속하고 계신다. 거룩함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더러운 세상 세력과 싸워 이길 때 주어진다. 계시록에는 흰 옷에 대하여 일곱 번 말씀하고 있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흰 옷으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했다. 거룩함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벌거벗은 자들이다.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 속에 깊이 빠져 살아간다면 거룩함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세대를 본 받지 아니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오직 예수 신앙 가지는게 믿음이 아닌가 오늘날 성도들에게 거룩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교회 안에서도 거룩함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우리가 믿고있는 하나님의 속성은 거룩함이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레11:45) 말씀하셨다. 우리의 기독교는 끝까지 이 거룩성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거룩성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고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시대 열린 예배라는 명칭 아래 예배가 거룩성을 잊어가고 있다. 시대를 따라가야 한다는 명칭 아래 예배가 타락하고 있다. 예배의 형태가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 가야 한다는 이론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예민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예배의 거룩성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배 드리는 자들의 옷차림이 너무 세상적으로 화려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여자들의 옷차림이 짧은 미니 차림이나 가슴이 패인 옷은 절대로 금지해야 할 것이다. 청아대에서 대통령 초대가 왔다면 어떤 옷차림으로 가겠는가 우리 하나님이 대통령보다 못하신 분인가 어떤 옷 차림으로초대에 응하느냐에 따라서 초대해준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상가 집에 검은 옷을 입고 가는 것도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 때문이다. 대통령의 초청을 받은 사람이 누더기 옷을 입고 간다면 대통령을 모욕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나온게 아니다. "내가 부르지 아니하면 한 사람도 나한테 올 수 없다"(요6:44)고 하셨다 하나님의 초대를 받고 온 자들의 옷 차림이 거룩함을 가지지 않고 하나님께 나온다면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행동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행위에 거룩함이 없다면 그 어떤 예배일지라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예배가 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을 한다 할지라도 거룩함이 없는 찬양이라면 노래에 불과 할 것이다. 왜 이 시대에 이러한 흰 옷을 입지 못하고 있는가 믿음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에게 흰 옷의 거룩함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사데 교회에 몇 명의 소수의 믿음의 성도들이 이러한 믿음의 싸움에서 이겨서 그 거룩함으로 타락한 것들과 타협하지 아니했다. 종교 개혁 시대에도 믿음으로 싸운 자들에게 흰옷을 입혀주어서 거대한 카톨릭의 세력과 싸울 수 있게 하신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 거룩함을 잊어버린다면 그 순간부터 타락의 길로 떨어질 것이다. 천국은 거룩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이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았다면 이제 구원받은 자는 거룩한 자가 되어야 된다. 교인과 성도는 다르다. 종교인으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이지만 종교 차원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성도라는 말은 거룩한 무리라는 뜻이다. 거룩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자에게 거룩하게 살도록 예수님께서 흰옷을 입혀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 흰옷을 받아 입는 복된 자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영적 싸움에서 이기면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는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예수 믿고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천국가는 날 까지 거룩한 모습을 가지지 못하고 신앙생활 한다면 생명책에 있는 우리의 이름이 흐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흰옷을 입은 자에게는 생명책에 이름이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겠다고 주님은 약속하고 계신다. 이 말씀은 곧 거룩하지 못하면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다. 천국 갈 때까지 내가 믿음을 온전히 지키고 있다면 구원은 확실하게 받지만 우리의 믿음이 변질되거나 타락한다면 우리의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 이 영적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는 어두움의 세력에 잡히고 만다. 어떻게 이 영적 싸움을 이길 수가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더 나아가서 엡 6장에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다. (엡6:14-17)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사단과의 영적 싸움이 간단하다면 왜 우리에게이렇게 많은 준비를 하나님이 요구하겠는가 그러나 성도 여러분 ! 절대로 사단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사단을 과소평가 해서도 안되지만 너무 가볍게 대처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되어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에게 헛점이 보인다면 사단은 바로 그 곳을 노리고 우리의 믿음을 공략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사단은 더 악하게 발악을 할 것이다.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 내 생명이 끓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우리의 육을 사단이 공격하여 호흡을 멈추게 할지는 몰라도 우리의 영혼까지는 건들지 못할 것이다. 계20장에 천년왕국에 바로 이러한 자들이 들어가서 주님과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계20:4)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 성도 여러분 ! 어떤 아픔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싸워 이겨야 한다. 죽음이 우리 앞에 있다 할지라도 순교로 싸워 이길 때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결코 흐리지 아니 할 것이다.
셋째로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자에게는 아버지 앞에서 내 이름을 인정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예수님이 나를 인정하실 때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겠는가 회사에서 내가 인정 받을 때 그 기쁨은 나만의 기쁨이 아니다. 온 가족의 기쁨이고 경사인데 하물며 하늘 나라에서 예수님이 나를 아버지 앞에서 인정하여 주실 때 얼마나 기쁘겠는가 만약 그 자리에서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비참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렇습니까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은 곧 구원받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므로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 이미 말씀하여 주셨다. (마7:21-22) "나더러 주여 ! 주여 !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 (마25:11-12)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 (마13:32-33)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 (막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 (눅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 (눅12: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 성도 여러분 ! 그 날에 아버지 앞에서 예수님의 인정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인정은 무엇을 보고 인정하십니까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믿음의 행위를 보고 주님은 판단하실 것이다.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믿음뿐이다. 믿음의 행위가 그만큼 부족하고 약하다면 우리는 사단에게 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만이 인정해주시겠다고 명백히 밝히고 계신다. 사데 교회에 책망이 무엇이었는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책망을 하셨다. 형식만 가지고 있는 사데 교회를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형식만 가지고 서는 예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분명한 우리의 믿음을 보여야 한다. 적당히 예수 믿는 것 지금은 통할지 모르지만 아버지 앞에 서는 날에는 조금의 사정도 보아주지 아니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지금이라도 우리는 분명한 우리의 믿음을 보여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이고 살아갈 때 우리는 이 땅에서도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앞에 서는 날 예수님의 인정을 받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약속을 지키시는 예수님의 약속을 잊지 마시고 정신 바짝 차리고 신앙생활 하시길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데 교회 역시 마지막에 다른 교회처럼 동일하게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다시 말해서 사데 교회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사데 교회에만 극한 된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메세지이다. 사데 교회 같은 타락 속에서도 믿음이 지킨 몇 명의 무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칭찬과 축복의 약속이 있었다. 예언적으로 종교 개혁 시대를 예표하는 중세 교회 타락 시대에 몇 명의 주의 종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주님의 칭찬이 있었고 주님의 약속으로 오늘날까지 교회가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 교회와 성도들의 타락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꿋꿋이 살아가는 믿음의 교회들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이 땅에 주님의 칭찬이 있는 것이고 주님의 약속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교회의 타락과 성도들의 타락을 더욱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우리의 믿음을 더욱 지켜야 할 것이다. 사데 교회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신앙이 형식만 가지고 있지 아니한가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신앙의 옷은 어떤 옷인가 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진정으로 주님의 칭찬을 받을 만 하는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지금 현재가 중요하다. 어제까지 아무리 내 신앙이 열심이었다 할지라도 오늘 내 신앙이 땅에 떨어진 신앙이라면 주님의 칭찬과 약속은 받지 못할 것이다 주님 앞에서는 날 우리 모두 "잘했다 충성스런 종아"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데 교회에 남은 몇 명의 무리처럼 우리도 믿음을 끝까지 지켜서 주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워 이기는 자만이 주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는 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거룩한 흰옷을 입어야만 우리는 이 타락한 시대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 할 수 있다는 명심하고 매일 매일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런데 사데 교회는 책망이 앞에 있고 칭찬은 뒤에 나오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만 큼 책망 받을 교회였기 때문이다. 칭찬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비하면 나은 교회이지만 다른 교회들의 칭찬에 비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칭찬을 지금 사데 교회는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칭찬은 믿음을 지킨 자들이 몇 명이 있다는 것을 칭찬하고 있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사데 교회는 이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 그 믿음을 주님은 지금 칭찬하고 계신 것이다.
비록 소수의 몇 명만이 믿음을 지켰지만 그 믿음 있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데 교회는 작은 칭찬이지만 지금 주님께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에게 주님은 지금 약속하고 계신다. 끝까지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라고 굳게 약속하고 계신다. 사데 교회는 종교 개혁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그 종교 개혁 시대에 소수의 몇 명이 믿음을 지키며 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사데 교회에 약속했던 것처럼 주님은 그 소수의 몇 명의 무리들을 끝까지 지켜 주셨고 그들과 함께 하셨다. 사데 교회가 물질의 부와 풍요로움에 빠져서 믿을 버렸듯이 마지막 때에 교회는 극도로 타락하고 성도들은 세상에 빠져서 형식과 외식으로 가득찬 종교인들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락 속에서도 흰옷을 입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소수의 무리들이 복음을 외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그 소수의 무리 속에서 예수를 위해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예수님의 칭찬 (계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 교회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교회의 영적 상태는 다 죽은 자였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타락에 물들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킨 몇 명이 있었다. 주님은 그 사람들을 옷을 더럽히지 않고 흰 옷을 입고 있는 자라고 하셨다. 믿음을 지킨 것을 옷을 더럽히지 않은 것에 비유하셨다 믿음을 지킬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고 믿음을 지킬 때 주님 마음에 합당한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데 교회의 몇 안되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시고 주님은 칭찬하신 것이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 믿음의 옷을 의미한다 믿음의 옷은 우리의 행위이다. 흰 옷 = 성결과 승리를 뜻한다 (계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 나와 함께 다니리니 = 주님과 동행을 의미한다. 주님은 항상 믿음 있는 자와 동행하신다. 그들은 합당한 자 = 주님 마음에 합한 자이다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이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할 때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다.
사데 교회모든 성도들이 다 타락한 것 같았지만 타락에 빠져들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이 있었다. 그 수는 겨우 몇 명에 불과 했지만 주님은 그 소수라도 남은 것을 보고 기뻐하셨다. 평범한 사회 속에서 믿음 생활 하기는 쉽다. 그러나 타락한 사회 속에서 믿음을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데 교회의 소수의 무리는 그러한 타락한 사회와 타락한 교회 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이 소수의 무리들이 그 타락한 곳에서 끝까지 버티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 때문에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 개혁 시대에 사보나 롤라나 루터나 칼빈이나 낙스나 쯔빙글리 같은 사람이 타락한 거대한 카톨릭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믿음 때문이었다. 루터는 (롬1: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이 믿음의 말씀 붙잡고 싸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우리는 이 믿음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옷이라고 해서 다 옷이 아니듯이 믿음이라고 해서 다 믿음이 아니다 이 시대 누더기 믿음의 옷을 걸치고 있으면서도 마치 좋은 옷으로 입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우리는 중세 시대에 교회 성직자들의 옷의 모습을 보면 카톨릭에 주교들이나 교황의 옷은 그렇게 화려하고 좋을 수 없었다. 이들은 좋은 옷은 입고 있었으나 믿음의 옷은 누더기 옷이였다. 그러나 종교 개혁을 외치는 수도사들이나 개혁자들 옷은 남루했고 초라했다. 그러나 이들의 옷은 믿음의 흰 옷이었다. 우리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얘기를 잘 안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호의호식 하면서 지냈지만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서 고통 당하고 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부자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배를 채우며 누더기 옷에 비참하게 지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낙원에 들어갔다 문자적으로 부자와 거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절에 보면 거지가 헌데를 앓고 있다고 했다. 이 헌데는 믿음의 상처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을 예수님은 거지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거지의 옷은 사람들 보기에는 누더기 옷 이었지만 천국을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의 옷 이었다. 마지막 때도 타락한 교회의 옷은 말할 수 없이 화려하다 계17:4 에 큰 음녀의 모습을 보자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 우리는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온전히 지키고 살려면 거지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받아들이기 싫은 말씀 일 것이다. 그러나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 질 수록 우리는 이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단은 세상의 경제권을 손아귀에 다 쥐고 인간들은 마음대로 가지고 놀 것이다. 666표의 사건은 절대 영적 사건이 아니다. 계시록의 모든 사건은 장차 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은 그것은 오직 믿음이다. 이 믿음으로 세상의 타락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은 저 불신자들처럼 살지 말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이 믿음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타락하고 말 것이다. 이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세상과 싸워 이길 때 우리도 주님에게 칭찬을 받을 것이다. 주님은 창조 때부터 믿음 있는 자와 동행하여 주셨다. 노아는 이러한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였다. 창6:9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다. 믿음 있는 자에게는 우리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 다니엘이 믿음을 가지고 사자굴에 들어갈 때 하나님은 사자굴에서 다니엘과 동행하고 계셨다. 다니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속에 들어갈 때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불 속에 들어 갈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다. 믿음 있는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디든지 함께 동행하시겠다 약속하고 계신다 (사43:1-2)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성도 여러분 ! 믿음의 옷이 없이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 믿음의 옷이 없이는 주님의 마음에 들지도 않은다. 믿음의 옷은 흰 옷이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거룩한 삶을 살지 아니하면 아무리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사람들 보기에는 좋은 옷일지 몰라도 주님 보시기에는 더러운 누더기 옷이다. (계3:18)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 흰 옷을 입지 않고 있다면 벌거벗은 것과 다름 없다는 말이다 즉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면 벌거벗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마22장에 보면 임금이 혼인잔치를 벌인 얘기를 예수님이 하신다. (마22:11-14)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 여기에서 나오는 예복은 믿음의 흰 옷이다. 믿음의 흰 옷을 입지 않은 자가 어디로 쫓김을 당했습니까 부자가 간 음부로 이 사람도 던짐을 당하고 말았다. 성도 여러분 어떤 고난과 핍박과 환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이 믿음 의 옷만 있다면 우리는 능히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믿음의 흰 옷이 있는 자는 주님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믿음의 옷은 어떤 옷입니까 흰 옷 입니까 아니면 세상 것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옷은 아닙니까 두 번째:예수님의 약속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데 교회의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약속은 3가지로 약속하고 계신다.
1. 흰 옷을 입혀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다.
2.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이다.
3.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인정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기는 자 =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이다. 흰 옷을 입을 것이요 = 흰 옷은 성결. 거룩을 의미하므로 거룩한 자가 되리라는 약속이다.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아니하고 =생명책은 하나님의 구원의 장부다. 그 책에 기록된 구원자의 이름을 이기는 자에게는 절대로 지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모든 사람들이 서야 할 자리이다. 그 날에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지 아니한 자는 모두 음부에 던짐을 당하고 말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진다. 이기는 자에게
첫째 흰 옷을 입혀주시라고 약속하고 계신다. 흰 옷은 깨끗한 거룩함과 성결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을 싸워 이길 때 우리는 거룩함을 가지게 되는데 그 거룩함을 주님은 약속하고 계신다. 거룩함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더러운 세상 세력과 싸워 이길 때 주어진다. 계시록에는 흰 옷에 대하여 일곱 번 말씀하고 있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흰 옷으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했다. 거룩함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벌거벗은 자들이다.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 속에 깊이 빠져 살아간다면 거룩함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세대를 본 받지 아니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오직 예수 신앙 가지는게 믿음이 아닌가 오늘날 성도들에게 거룩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교회 안에서도 거룩함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우리가 믿고있는 하나님의 속성은 거룩함이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레11:45) 말씀하셨다. 우리의 기독교는 끝까지 이 거룩성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거룩성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고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시대 열린 예배라는 명칭 아래 예배가 거룩성을 잊어가고 있다. 시대를 따라가야 한다는 명칭 아래 예배가 타락하고 있다. 예배의 형태가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 가야 한다는 이론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예민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예배의 거룩성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배 드리는 자들의 옷차림이 너무 세상적으로 화려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여자들의 옷차림이 짧은 미니 차림이나 가슴이 패인 옷은 절대로 금지해야 할 것이다. 청아대에서 대통령 초대가 왔다면 어떤 옷차림으로 가겠는가 우리 하나님이 대통령보다 못하신 분인가 어떤 옷 차림으로초대에 응하느냐에 따라서 초대해준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상가 집에 검은 옷을 입고 가는 것도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 때문이다. 대통령의 초청을 받은 사람이 누더기 옷을 입고 간다면 대통령을 모욕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나온게 아니다. "내가 부르지 아니하면 한 사람도 나한테 올 수 없다"(요6:44)고 하셨다 하나님의 초대를 받고 온 자들의 옷 차림이 거룩함을 가지지 않고 하나님께 나온다면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행동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행위에 거룩함이 없다면 그 어떤 예배일지라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예배가 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을 한다 할지라도 거룩함이 없는 찬양이라면 노래에 불과 할 것이다. 왜 이 시대에 이러한 흰 옷을 입지 못하고 있는가 믿음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에게 흰 옷의 거룩함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사데 교회에 몇 명의 소수의 믿음의 성도들이 이러한 믿음의 싸움에서 이겨서 그 거룩함으로 타락한 것들과 타협하지 아니했다. 종교 개혁 시대에도 믿음으로 싸운 자들에게 흰옷을 입혀주어서 거대한 카톨릭의 세력과 싸울 수 있게 하신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 거룩함을 잊어버린다면 그 순간부터 타락의 길로 떨어질 것이다. 천국은 거룩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이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았다면 이제 구원받은 자는 거룩한 자가 되어야 된다. 교인과 성도는 다르다. 종교인으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이지만 종교 차원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성도라는 말은 거룩한 무리라는 뜻이다. 거룩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자에게 거룩하게 살도록 예수님께서 흰옷을 입혀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 흰옷을 받아 입는 복된 자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영적 싸움에서 이기면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는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예수 믿고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천국가는 날 까지 거룩한 모습을 가지지 못하고 신앙생활 한다면 생명책에 있는 우리의 이름이 흐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흰옷을 입은 자에게는 생명책에 이름이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겠다고 주님은 약속하고 계신다. 이 말씀은 곧 거룩하지 못하면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다. 천국 갈 때까지 내가 믿음을 온전히 지키고 있다면 구원은 확실하게 받지만 우리의 믿음이 변질되거나 타락한다면 우리의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 이 영적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는 어두움의 세력에 잡히고 만다. 어떻게 이 영적 싸움을 이길 수가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더 나아가서 엡 6장에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다. (엡6:14-17)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사단과의 영적 싸움이 간단하다면 왜 우리에게이렇게 많은 준비를 하나님이 요구하겠는가 그러나 성도 여러분 ! 절대로 사단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사단을 과소평가 해서도 안되지만 너무 가볍게 대처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되어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에게 헛점이 보인다면 사단은 바로 그 곳을 노리고 우리의 믿음을 공략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사단은 더 악하게 발악을 할 것이다.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 내 생명이 끓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우리의 육을 사단이 공격하여 호흡을 멈추게 할지는 몰라도 우리의 영혼까지는 건들지 못할 것이다. 계20장에 천년왕국에 바로 이러한 자들이 들어가서 주님과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계20:4)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 성도 여러분 ! 어떤 아픔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싸워 이겨야 한다. 죽음이 우리 앞에 있다 할지라도 순교로 싸워 이길 때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결코 흐리지 아니 할 것이다.
셋째로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자에게는 아버지 앞에서 내 이름을 인정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예수님이 나를 인정하실 때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겠는가 회사에서 내가 인정 받을 때 그 기쁨은 나만의 기쁨이 아니다. 온 가족의 기쁨이고 경사인데 하물며 하늘 나라에서 예수님이 나를 아버지 앞에서 인정하여 주실 때 얼마나 기쁘겠는가 만약 그 자리에서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비참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렇습니까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은 곧 구원받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므로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 이미 말씀하여 주셨다. (마7:21-22) "나더러 주여 ! 주여 !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 (마25:11-12)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 (마13:32-33)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 (막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 (눅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 (눅12: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 성도 여러분 ! 그 날에 아버지 앞에서 예수님의 인정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인정은 무엇을 보고 인정하십니까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믿음의 행위를 보고 주님은 판단하실 것이다.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믿음뿐이다. 믿음의 행위가 그만큼 부족하고 약하다면 우리는 사단에게 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만이 인정해주시겠다고 명백히 밝히고 계신다. 사데 교회에 책망이 무엇이었는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책망을 하셨다. 형식만 가지고 있는 사데 교회를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형식만 가지고 서는 예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분명한 우리의 믿음을 보여야 한다. 적당히 예수 믿는 것 지금은 통할지 모르지만 아버지 앞에 서는 날에는 조금의 사정도 보아주지 아니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지금이라도 우리는 분명한 우리의 믿음을 보여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이고 살아갈 때 우리는 이 땅에서도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앞에 서는 날 예수님의 인정을 받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약속을 지키시는 예수님의 약속을 잊지 마시고 정신 바짝 차리고 신앙생활 하시길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데 교회 역시 마지막에 다른 교회처럼 동일하게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다시 말해서 사데 교회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사데 교회에만 극한 된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메세지이다. 사데 교회 같은 타락 속에서도 믿음이 지킨 몇 명의 무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칭찬과 축복의 약속이 있었다. 예언적으로 종교 개혁 시대를 예표하는 중세 교회 타락 시대에 몇 명의 주의 종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주님의 칭찬이 있었고 주님의 약속으로 오늘날까지 교회가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 교회와 성도들의 타락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꿋꿋이 살아가는 믿음의 교회들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이 땅에 주님의 칭찬이 있는 것이고 주님의 약속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교회의 타락과 성도들의 타락을 더욱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우리의 믿음을 더욱 지켜야 할 것이다. 사데 교회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신앙이 형식만 가지고 있지 아니한가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신앙의 옷은 어떤 옷인가 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진정으로 주님의 칭찬을 받을 만 하는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지금 현재가 중요하다. 어제까지 아무리 내 신앙이 열심이었다 할지라도 오늘 내 신앙이 땅에 떨어진 신앙이라면 주님의 칭찬과 약속은 받지 못할 것이다 주님 앞에서는 날 우리 모두 "잘했다 충성스런 종아"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데 교회에 남은 몇 명의 무리처럼 우리도 믿음을 끝까지 지켜서 주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워 이기는 자만이 주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는 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거룩한 흰옷을 입어야만 우리는 이 타락한 시대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 할 수 있다는 명심하고 매일 매일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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