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델비아 교회여 보아라 (계3:7-8)
본문
선교 시대를 예표하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같이 예수님의 책망이 없는 아름다운 교회였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결코 큰 교회가 아니었다. 적은 능력으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주님께 칭찬만을 받은 것이다.
1. 역사적 배경. 일곱 도시 중에 가장 짧은 역사를 지닌 빌라델비아는 버가모 왕조 아탈루스 2세가 주전 140년에 버가모에서 온 식민지 지배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짧은 역사만큼 이 도시에 대란 역사적 배경은 더 이상 기록이 없을 정도로 일곱 도시 중에 가장 빈약하다.
2. 지리적 배경. 사데 도시에서 동남쪽으로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빌라델비아 도시는 화산으로 이루어진 평원에 위치하고 있어 이 도시는 중요한 농작물의 수확지 였지만 항상 지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이 도시는 일곱 번 대 지진이 일어났는데 10개의 도시를 파괴하는 큰 지진이었다. 그러니 이 도시의 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큰 지진보다는 작은 미진이 그들을 더 두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지진이 자주 일어나게 된 이유는 그곳이 단층 경계선에 가까웠기 때문에 미진이 자주 일어났던 것이다.
3. 지명의 배경. 빌라델비아는 헬라어로 사랑을 의미하는 필로스와 형제를 의미하는 아델포스 가 합쳐진 복합 명사로서 "형제사랑" 이라는 의미가 있다.
4. 경제적 배경 이 도시는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며 동방의 관문이라고 불리어 졌다.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였고 직물과 피혁 산업이 이 도시를 부요하게 만들어 주었다.
5. 종교적 배경. 작은 아테네로 불리울 만큼 이 도시에는 이교도 신전에서 행해지는 종교 행사가 많았다. 이러한 우상 숭배가 판을 치는 이 도시에 암미아라는 여 선지자가 주후 100-160년 사이에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역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여 선자자의 예언의 은사는 당시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아시아 기독교의 마지막 보루로서 주변 국가들이 터키의 회교 지배하에 굴복하였을 때에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1392년 까지 기독교 도시로 남아 있을 정도로 신앙이 좋은 교회였다. 6. 현재의 모습. 선교의 사명을 감당한 빌라델비아 교회는 아직도 그 때의 도시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이 도시는 알라 쉐헤르(붉은 색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1,000명 가량의 기독교인들이 있는 도시로서 철도역이 있는 큰 마을이 있는 곳으로 남아있다. 가장 짧은 역사를 지닌 이 도시의 조그마한 교회가 회교의 빌굽 아래 짓밟히던 역사적 사건에서도 아시아의 기독교 보루로서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였다는 것을 교회사가 증거하고 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었던 2개의 도시만 존재하고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복음적으로 너무 깊은 의미를 주고 있다.
서머나 교회가 순교시대를 예표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선교 시대를 예표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순교와 선교는 기독교의 두 기둥과 같은 것이다. 가장 주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가 주님을 위해 죽는 것이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7. 예언적 배경. 예언적으로 미국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미국이 물질과 선교사를 파송하여 국가와 국가 사이를 형제처럼 사랑을 전했고 순교적 사명으로 미국이 그 사명을 감당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예언적으로 선교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은 이 도시의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이 도시의 화폐에 그려진 디자인이 "열린 문"으로 그려져 있었다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화폐에 그려진 열린 문처럼 이 도시는 역사적으로 헬라 문화를 받아들이는 열린 문이 되었고 복음적으로는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의 문을 열었던 교회였다. 이 도시의 특징이 바다와 육로의 요충지로서 선교하기에 적합한 도시였다.
그러므로 예언적으로 18-19세기에 이르러 선교의 열풍으로 급성장한 선교 시대를 예표한다고 불 수 있다. 종교 개혁 이후에 세계 교회는 영적 최고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마지막 때에도 교회들이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선교할 때 복음의 문은 활짝 열리게 될 것이고 교회에는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될 것이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 중에
첫째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하시니라 " 첫 번째:수신처와 수신자 7절 =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이편지도 다른 교회에 보낸 편지와 똑같이 수신처가 빌라델비아 교회고 수신자는 교회의 주의 종이었다. 그러나 이 편지를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주의 종은 다른 교회 주의 종들 보다 심히 기뻤을 것이다.
왜냐하면 책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온통 주님의 칭찬만이 있는 편지 내용이었다. 서머나 교회도 주님의 칭찬만 있었지만 빌라델비아 교회의 칭찬은 서머나 교회의 칭찬보다 갑절이나 더 많은 칭찬이었다.
발리델비아 = 형제사랑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빌라델비아 교회는 형제를 사랑하는 교회였다. 선교는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풍족한 가운데서 선교하지 아니했다. 적은 가운데서 선교하는 교회였기 때문에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많이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교회였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선교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18-19세기에 선교의 열풍이 이 지구상에 뜨겁게 불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이 부모님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꾸중은 하나도 없고 칭찬만 가득히 하고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지금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가 바로 그런 편지이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과 주의 종의 마음이 어떠하갰습니까 이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예수님에게 칭찬 받기 위함 아닙니까 기껏 해놓고 책망만 듣는다면 얼마나 분통 터질 일 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살펴 본 다섯 교회 중에서 서머나 교회만 빼고 모두 예수님의 책망이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 초림 때에도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섭게 책망 하셨다. 마7:22-23절의 주님의 무서운 책망을 보라 !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칭찬하는 주님의 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무엇을 가장 기뻐하고 있는 것 입니까 그것은 바로 선교하는 교회를 주님이 가장 기뻐한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 제 1호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하시니라 " 선교는 곧 영혼 구원과 직결된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예수님이시다.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셨다. 종교 개혁 시기 이후에 세계 선교가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움직일 때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는가 우리 모두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서 빌라델비아가 받은 그 칭찬 우리 주님의 교회도 받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3:7-8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3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1.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
2. 진실하신 예수 그리스도.
3.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
거룩 = 구별되다. 성별되다 라는 의미가 있다. 거룩함의 속성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것이다. (사43: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 진실 = 예수 그리스도의 설품이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 진리요 ! 생명이니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 (사22:22) "내가 또 다윗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 다윗의 열쇠는 그리스도가 지닌 구원의 열쇠를 상징하는 것이다. 즉 구원의 상징이고 출입의 상징이기도 하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가 = 누구인가 오직 구원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 있다는 것이다. 열린 문 = 구원의 문이다. 즉 선교의 문을 뜻하는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선교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면서 믿음을 지킨 거룩한 빌라델비아 교회에 예수님의 모습은 거룩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진실된 신앙을 가지고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에 예수님의 모습은 진실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빌라델비아 교회에 구원을 주관하고 계신 예수님의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때 얼마나 빌라델비아 교회가 예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알 수 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다.
첫째도 .
둘째도.
셋째도. 교회는 거룩해야만 한다 교회가 거룩함을 잃어버릴 때 교회의 역할은 끝나는 것이다. 교회가 거룩한 모습을 가지고 나아갈 때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 주의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다. (벧전1: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교회의 거룩함이 무엇인가 교회 건물만 크고 성전만 깨끗하면 되는가 물론 성전은 깨끗해야 한다. 그러나 그 보다는 교회가 얼마나 말씀을 잘 가르치고 기도가 뜨겁고 주의 보혈과 주의 성령님이 뜨겁게 증거 되어야 교회는 거룩함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 (히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느니라 " (고전6:1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님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교회가 다 교회인가 성도가 다 성도인가 라는 말이 들리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가슴을 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거룩한 자들이 모여서 교회가 거룩케되어지는 곳이 아니다 더럽고 악하기 짝이 없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 교회다. 그 죄인들이 하나님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주의 성령님으로 변화되어서 거룩케 되어 가는 곳이 교회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이 이루어져 갈 때에 성도는 진실된 모습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교회 다니기 좋은 그런 도시에서 살고 있지 아니했다. 빌라델비아 도시는 작은 아테네라고 불리울 정도로 우상 숭배가 판을 치는 도시였다. 주변 국가들이 회교도에 굴복할 때도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굴복하지 아니했다. 타락한 사데 교회가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사데 교회의 악한 신앙을 본받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이러한 신앙의 힘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그것은 곧 거룩함이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그 타락한 시대 속에서 지키게 한 것이다. 거룩함과 진실함은 떨어질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거룩하지 않으면 진실 될 수 없다. 진실 되지 못하면 절대로 거룩한 자가 될 수 없다. 교회가 거룩하고 진실 되지 못하면 그 교회는 거짓된 교회가 될 것이다. 주의 종이 거룩하고 진실 되지 못하면 거짓 선지자가 될 것이다. 성도도 예외 일 수는 없다. 계시록의 비밀은 다른 것이 아니다. 4가지 비밀을 푸는 것이 계시록의 감추어진 계시다. 계1:20 = 별의 비밀과 촛대의 비밀. 계17:5 = 음녀의 비밀. 17:8 = 짐승의 비밀. 즉 계시록은 참 종과 거짓 종의 비밀 이야기이고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의 비밀을 알려준 계시의 책이다. 이 시대 교회 다니는 성도들 모습 속에서 거룩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어떤 교회와 성도들에게 예수께서 구원의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있겠는가 거룩한 모습. 진실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때 선교적인 사명을 주게 될 것이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교회. 거룩한 자를 사용하신다. 거룩한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이 증거 될 때 거짓 된 세상은 거룩케 될 것이고 거짓 된 자들은 교회에서 거룩한 자들로 변화되어서 구원의 문 열쇠를 가지고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세 번째:예수님의 칭찬 8절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휼륭한 교회로 볼 수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칭찬이 많을 것 같지만 예수님의 칭찬은 3가지가 였다.
1. 적은 능력을 가지고 믿음을 지켰다.
2. 말씀에 순종했다.
3. 예수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 빌리델비아 교회는 너무나도 평범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그런 교회였다. 무엇이 먼저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 아는 교회였다. 그 신앙이 예수님의 칭찬을 받게 된 것이다.
적은 능력 = 아주 작은 믿음을 뜻한다. 보잘 것 없는 믿음을 의미한다. 겨자씨 같은 믿음이다. (마17:20) "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 내 말을 지키며 = 오직 말씀의 신앙이다.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 오직 예수 신앙이다. 평범한 신앙 같지만 믿는 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앙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은 결코 능력이 많고 적음을 가지고 창찬하지 아니한다. 마25장에 달란트 비유에서도 더 많이 남겼다고 더 칭찬하지 아니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능력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대 이상의 열매를 맺으라고 강요하지 않으신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도들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신앙을 벗어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일곱 교회들 중에 책망 받은 교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들이 교리적인 면에서는 건전하였지만 실천적인 면이 약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머리로는 예수를 열심히 믿었지만 마음에는 예수를 위해 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에베소 교회는 입으로는 사랑을 외쳤지만 행동은 사랑하지 못했다. 버가모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가르침 받으면서도 우상 제물을 먹고 우상까지 섬기는 짓을 저질렀다. 두아디라 교회는 믿음 생활을 잘 하면서도 이세벨 이라는 거짓 여 선지자의 유혹에 빠져서 우상을 섬기고 말았다. 사데 교회는 신앙 생활을 하기 하였지만 죽은 신앙만 가지고 있는 교회였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지근한 신앙 상태를 가지고 적당주의로 예수를 믿고 있는 그런 교회였다. 이러한 다섯 교회가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해서 타락한 것이 아니었다. 주신 믿음 . 주신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한 교회들이 되고 만 것이다. 주신 것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받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성도 여러분 ! 빌라델비아 교회는 다른 교회들에 비해 남다른 뜨거운 믿음을 가진 교회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다섯 교회보다 작은 믿음을 소유한 교회였다. 그러나 작은 믿음을 .보잘 것 없는 믿음을 겨자씨 같은 믿음을 빌라델비아 교회는 소중하게 여겼다. 겨자씨 같은 작음 믿음이었지만 이 믿음만 있으면 어떤 세력도 이길수가 있다는 확고한 신앙이 있었기에 강력한 사단의 세력에도 물러서지 않고 싸워서 이겼던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에게 주신 믿음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계십니까 지금 믿음이 크고 작은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믿음 잘 관리하지 못하고 귀하게 여기지 못하면 타락하고 만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을 귀하게 여기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그 어떤 세력도 넘보지 못할 것이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 우리는 흔히 이럼 말을 잘 듣는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라고 하면 믿음이 아직 작다고 회피한다. 주님은 그 작은 믿음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거부하고 있다. 비록 내게 주신 믿음이 한 달란트 밖에 안될 지라도 주신 믿음에 감사해서 일을 한다면 주님의 칭찬이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느 아직 한 달란트에요" 계속 거부한다면 주님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양으로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를 주님은 보시고 판단 하신다. 과부의 아주 작은 두 렙돈 헌금을 칭찬하신 주님이시다. 과부의 두 렙돈은 과부의 전 재산이었을 것이다. 헌금이 크고 작은 액수로 우리의 믿음을 판단하지 않으신다. 얼마나 내가 최선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가를 주님은 보신다. 교회 봉사도 큰 일만 하는게 최고는 아니다.
내가 최선의 시간을 내어서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것 주님이 보시고 칭찬하신다 . 빌라델비아 교회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작은 믿음으로 최선을 다한 교회였기 때문에 주님의 칭찬만 받는 교회가 된 것이다. 믿음은 크다고 해서 빛이 나는게 아니다. 작은 믿음일지라도 믿음은 순종할 때 비로소 빛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렇게 작은 믿음으로 선교를 하고 오직 예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의 가르침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이들은 철저히 지켰다. 우상의 도시에서 얼마나 숱한 핍박과 협박을 받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나 외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에 그들은 생명을 걸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된 것도 예수님의 최대 지상 명령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선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직 예수 신앙 가진 것도 성경의 가르침을 올바로 배웠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배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교 시대를 예표하는 빌라델비아 교회 같은 역사가 18-19세기에 미국의 주도하에 선교 문이 열릴 때 그들은 자기들에게 준 작은 믿음으로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고 오직 예수 신앙을 전했다. 그 작은 믿음 위에 주님은 역사하셔서 놀랍게 복음이 전하도록 하셨다. 이제 마지막 때에 이 선교적 열풍은 우리나라에 불고 있다. 우리는 큰 것으로 선교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각 교회에 주신 작은 능력으로 마지막 때에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할 때 한국 교회는 빌라델비아가 받았던 칭찬은 받게 될 것이다. 12제자는 적은 능력으로 초대 교회를 일으켰다. 초대 교회는 적은 능력으로 강력한 로마제국을 정복했다. 마르틴 루터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청교도 신앙인들은 적은 능력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우리 한국 역시 적은 능력으로 세계 선교에 앞장서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적은 능력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고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산을 옮겨 바다에 던지게 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믿음이 작다고 불평하지 말고. 믿음이 크고 많다고 자만하지 말고 .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될 때 주님은 더욱 큰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막9:23)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결론' 빌라델비아 교회는 다른 교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진 교회가 아니었다. 다른 교회들도 빌라델비아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말씀을 가지고 있었고 . 예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믿음과 말씀과 예수의 신앙을 가지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신앙이다. 그러나 이 기본이 흔들거릴 때 교회는 타락하고 만다 다섯 교회와는 달리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 기본을 잊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나아갔다. 그러한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님은 막중한 선교의 사명을 주었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 사명을 잘 감당한 교회가 되었다. 선교 시대를 예표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고 과연 선교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아름답게 유종미를 거두고 있는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잘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로마의 국교로 인정 받았던 기독교는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자 선교의 사역이 영국으로 넘어갔다. 영국이 선교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자 청교도들로 하여금 미국으로 건너가게 해서 선교 사역을 감당케 하였다. 미국이 선교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고 식어지자 선교 사역은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한국 교회가 발라델비아 교회처럼 끝까지 열린 구원의 문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직 믿음의 신앙이 이 땅에 강하게 역사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직 말씀의 신앙이 . 예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들이 이 땅에 여기 저기서 일어난다면 우리 주님의 교회를 비롯해서 한국의 교회들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받았던 주님의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거룩한 모습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진실된 모습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를 통하여 일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뜻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1. 역사적 배경. 일곱 도시 중에 가장 짧은 역사를 지닌 빌라델비아는 버가모 왕조 아탈루스 2세가 주전 140년에 버가모에서 온 식민지 지배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짧은 역사만큼 이 도시에 대란 역사적 배경은 더 이상 기록이 없을 정도로 일곱 도시 중에 가장 빈약하다.
2. 지리적 배경. 사데 도시에서 동남쪽으로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빌라델비아 도시는 화산으로 이루어진 평원에 위치하고 있어 이 도시는 중요한 농작물의 수확지 였지만 항상 지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이 도시는 일곱 번 대 지진이 일어났는데 10개의 도시를 파괴하는 큰 지진이었다. 그러니 이 도시의 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큰 지진보다는 작은 미진이 그들을 더 두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지진이 자주 일어나게 된 이유는 그곳이 단층 경계선에 가까웠기 때문에 미진이 자주 일어났던 것이다.
3. 지명의 배경. 빌라델비아는 헬라어로 사랑을 의미하는 필로스와 형제를 의미하는 아델포스 가 합쳐진 복합 명사로서 "형제사랑" 이라는 의미가 있다.
4. 경제적 배경 이 도시는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며 동방의 관문이라고 불리어 졌다.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였고 직물과 피혁 산업이 이 도시를 부요하게 만들어 주었다.
5. 종교적 배경. 작은 아테네로 불리울 만큼 이 도시에는 이교도 신전에서 행해지는 종교 행사가 많았다. 이러한 우상 숭배가 판을 치는 이 도시에 암미아라는 여 선지자가 주후 100-160년 사이에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역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여 선자자의 예언의 은사는 당시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아시아 기독교의 마지막 보루로서 주변 국가들이 터키의 회교 지배하에 굴복하였을 때에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1392년 까지 기독교 도시로 남아 있을 정도로 신앙이 좋은 교회였다. 6. 현재의 모습. 선교의 사명을 감당한 빌라델비아 교회는 아직도 그 때의 도시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이 도시는 알라 쉐헤르(붉은 색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1,000명 가량의 기독교인들이 있는 도시로서 철도역이 있는 큰 마을이 있는 곳으로 남아있다. 가장 짧은 역사를 지닌 이 도시의 조그마한 교회가 회교의 빌굽 아래 짓밟히던 역사적 사건에서도 아시아의 기독교 보루로서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였다는 것을 교회사가 증거하고 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었던 2개의 도시만 존재하고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복음적으로 너무 깊은 의미를 주고 있다.
서머나 교회가 순교시대를 예표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선교 시대를 예표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순교와 선교는 기독교의 두 기둥과 같은 것이다. 가장 주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가 주님을 위해 죽는 것이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7. 예언적 배경. 예언적으로 미국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미국이 물질과 선교사를 파송하여 국가와 국가 사이를 형제처럼 사랑을 전했고 순교적 사명으로 미국이 그 사명을 감당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예언적으로 선교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은 이 도시의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이 도시의 화폐에 그려진 디자인이 "열린 문"으로 그려져 있었다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화폐에 그려진 열린 문처럼 이 도시는 역사적으로 헬라 문화를 받아들이는 열린 문이 되었고 복음적으로는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의 문을 열었던 교회였다. 이 도시의 특징이 바다와 육로의 요충지로서 선교하기에 적합한 도시였다.
그러므로 예언적으로 18-19세기에 이르러 선교의 열풍으로 급성장한 선교 시대를 예표한다고 불 수 있다. 종교 개혁 이후에 세계 교회는 영적 최고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마지막 때에도 교회들이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선교할 때 복음의 문은 활짝 열리게 될 것이고 교회에는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될 것이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 중에
첫째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하시니라 " 첫 번째:수신처와 수신자 7절 =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이편지도 다른 교회에 보낸 편지와 똑같이 수신처가 빌라델비아 교회고 수신자는 교회의 주의 종이었다. 그러나 이 편지를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주의 종은 다른 교회 주의 종들 보다 심히 기뻤을 것이다.
왜냐하면 책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온통 주님의 칭찬만이 있는 편지 내용이었다. 서머나 교회도 주님의 칭찬만 있었지만 빌라델비아 교회의 칭찬은 서머나 교회의 칭찬보다 갑절이나 더 많은 칭찬이었다.
발리델비아 = 형제사랑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빌라델비아 교회는 형제를 사랑하는 교회였다. 선교는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풍족한 가운데서 선교하지 아니했다. 적은 가운데서 선교하는 교회였기 때문에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많이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교회였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선교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18-19세기에 선교의 열풍이 이 지구상에 뜨겁게 불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이 부모님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꾸중은 하나도 없고 칭찬만 가득히 하고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지금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가 바로 그런 편지이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과 주의 종의 마음이 어떠하갰습니까 이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예수님에게 칭찬 받기 위함 아닙니까 기껏 해놓고 책망만 듣는다면 얼마나 분통 터질 일 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살펴 본 다섯 교회 중에서 서머나 교회만 빼고 모두 예수님의 책망이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 초림 때에도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섭게 책망 하셨다. 마7:22-23절의 주님의 무서운 책망을 보라 !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칭찬하는 주님의 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무엇을 가장 기뻐하고 있는 것 입니까 그것은 바로 선교하는 교회를 주님이 가장 기뻐한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 제 1호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하시니라 " 선교는 곧 영혼 구원과 직결된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예수님이시다.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셨다. 종교 개혁 시기 이후에 세계 선교가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움직일 때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는가 우리 모두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서 빌라델비아가 받은 그 칭찬 우리 주님의 교회도 받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3:7-8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3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1.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
2. 진실하신 예수 그리스도.
3.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
거룩 = 구별되다. 성별되다 라는 의미가 있다. 거룩함의 속성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것이다. (사43: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 진실 = 예수 그리스도의 설품이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 진리요 ! 생명이니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 (사22:22) "내가 또 다윗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 다윗의 열쇠는 그리스도가 지닌 구원의 열쇠를 상징하는 것이다. 즉 구원의 상징이고 출입의 상징이기도 하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가 = 누구인가 오직 구원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 있다는 것이다. 열린 문 = 구원의 문이다. 즉 선교의 문을 뜻하는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선교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면서 믿음을 지킨 거룩한 빌라델비아 교회에 예수님의 모습은 거룩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진실된 신앙을 가지고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에 예수님의 모습은 진실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빌라델비아 교회에 구원을 주관하고 계신 예수님의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때 얼마나 빌라델비아 교회가 예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알 수 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다.
첫째도 .
둘째도.
셋째도. 교회는 거룩해야만 한다 교회가 거룩함을 잃어버릴 때 교회의 역할은 끝나는 것이다. 교회가 거룩한 모습을 가지고 나아갈 때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 주의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다. (벧전1: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교회의 거룩함이 무엇인가 교회 건물만 크고 성전만 깨끗하면 되는가 물론 성전은 깨끗해야 한다. 그러나 그 보다는 교회가 얼마나 말씀을 잘 가르치고 기도가 뜨겁고 주의 보혈과 주의 성령님이 뜨겁게 증거 되어야 교회는 거룩함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 (히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느니라 " (고전6:1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님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교회가 다 교회인가 성도가 다 성도인가 라는 말이 들리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가슴을 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거룩한 자들이 모여서 교회가 거룩케되어지는 곳이 아니다 더럽고 악하기 짝이 없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 교회다. 그 죄인들이 하나님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주의 성령님으로 변화되어서 거룩케 되어 가는 곳이 교회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이 이루어져 갈 때에 성도는 진실된 모습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교회 다니기 좋은 그런 도시에서 살고 있지 아니했다. 빌라델비아 도시는 작은 아테네라고 불리울 정도로 우상 숭배가 판을 치는 도시였다. 주변 국가들이 회교도에 굴복할 때도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굴복하지 아니했다. 타락한 사데 교회가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사데 교회의 악한 신앙을 본받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이러한 신앙의 힘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그것은 곧 거룩함이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그 타락한 시대 속에서 지키게 한 것이다. 거룩함과 진실함은 떨어질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거룩하지 않으면 진실 될 수 없다. 진실 되지 못하면 절대로 거룩한 자가 될 수 없다. 교회가 거룩하고 진실 되지 못하면 그 교회는 거짓된 교회가 될 것이다. 주의 종이 거룩하고 진실 되지 못하면 거짓 선지자가 될 것이다. 성도도 예외 일 수는 없다. 계시록의 비밀은 다른 것이 아니다. 4가지 비밀을 푸는 것이 계시록의 감추어진 계시다. 계1:20 = 별의 비밀과 촛대의 비밀. 계17:5 = 음녀의 비밀. 17:8 = 짐승의 비밀. 즉 계시록은 참 종과 거짓 종의 비밀 이야기이고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의 비밀을 알려준 계시의 책이다. 이 시대 교회 다니는 성도들 모습 속에서 거룩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어떤 교회와 성도들에게 예수께서 구원의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있겠는가 거룩한 모습. 진실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때 선교적인 사명을 주게 될 것이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교회. 거룩한 자를 사용하신다. 거룩한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이 증거 될 때 거짓 된 세상은 거룩케 될 것이고 거짓 된 자들은 교회에서 거룩한 자들로 변화되어서 구원의 문 열쇠를 가지고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세 번째:예수님의 칭찬 8절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휼륭한 교회로 볼 수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칭찬이 많을 것 같지만 예수님의 칭찬은 3가지가 였다.
1. 적은 능력을 가지고 믿음을 지켰다.
2. 말씀에 순종했다.
3. 예수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 빌리델비아 교회는 너무나도 평범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그런 교회였다. 무엇이 먼저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 아는 교회였다. 그 신앙이 예수님의 칭찬을 받게 된 것이다.
적은 능력 = 아주 작은 믿음을 뜻한다. 보잘 것 없는 믿음을 의미한다. 겨자씨 같은 믿음이다. (마17:20) "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 내 말을 지키며 = 오직 말씀의 신앙이다.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 오직 예수 신앙이다. 평범한 신앙 같지만 믿는 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앙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은 결코 능력이 많고 적음을 가지고 창찬하지 아니한다. 마25장에 달란트 비유에서도 더 많이 남겼다고 더 칭찬하지 아니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능력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대 이상의 열매를 맺으라고 강요하지 않으신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도들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신앙을 벗어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일곱 교회들 중에 책망 받은 교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들이 교리적인 면에서는 건전하였지만 실천적인 면이 약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머리로는 예수를 열심히 믿었지만 마음에는 예수를 위해 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에베소 교회는 입으로는 사랑을 외쳤지만 행동은 사랑하지 못했다. 버가모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가르침 받으면서도 우상 제물을 먹고 우상까지 섬기는 짓을 저질렀다. 두아디라 교회는 믿음 생활을 잘 하면서도 이세벨 이라는 거짓 여 선지자의 유혹에 빠져서 우상을 섬기고 말았다. 사데 교회는 신앙 생활을 하기 하였지만 죽은 신앙만 가지고 있는 교회였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지근한 신앙 상태를 가지고 적당주의로 예수를 믿고 있는 그런 교회였다. 이러한 다섯 교회가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해서 타락한 것이 아니었다. 주신 믿음 . 주신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한 교회들이 되고 만 것이다. 주신 것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받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성도 여러분 ! 빌라델비아 교회는 다른 교회들에 비해 남다른 뜨거운 믿음을 가진 교회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다섯 교회보다 작은 믿음을 소유한 교회였다. 그러나 작은 믿음을 .보잘 것 없는 믿음을 겨자씨 같은 믿음을 빌라델비아 교회는 소중하게 여겼다. 겨자씨 같은 작음 믿음이었지만 이 믿음만 있으면 어떤 세력도 이길수가 있다는 확고한 신앙이 있었기에 강력한 사단의 세력에도 물러서지 않고 싸워서 이겼던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에게 주신 믿음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계십니까 지금 믿음이 크고 작은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믿음 잘 관리하지 못하고 귀하게 여기지 못하면 타락하고 만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을 귀하게 여기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그 어떤 세력도 넘보지 못할 것이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 우리는 흔히 이럼 말을 잘 듣는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라고 하면 믿음이 아직 작다고 회피한다. 주님은 그 작은 믿음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거부하고 있다. 비록 내게 주신 믿음이 한 달란트 밖에 안될 지라도 주신 믿음에 감사해서 일을 한다면 주님의 칭찬이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느 아직 한 달란트에요" 계속 거부한다면 주님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양으로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를 주님은 보시고 판단 하신다. 과부의 아주 작은 두 렙돈 헌금을 칭찬하신 주님이시다. 과부의 두 렙돈은 과부의 전 재산이었을 것이다. 헌금이 크고 작은 액수로 우리의 믿음을 판단하지 않으신다. 얼마나 내가 최선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가를 주님은 보신다. 교회 봉사도 큰 일만 하는게 최고는 아니다.
내가 최선의 시간을 내어서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것 주님이 보시고 칭찬하신다 . 빌라델비아 교회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작은 믿음으로 최선을 다한 교회였기 때문에 주님의 칭찬만 받는 교회가 된 것이다. 믿음은 크다고 해서 빛이 나는게 아니다. 작은 믿음일지라도 믿음은 순종할 때 비로소 빛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렇게 작은 믿음으로 선교를 하고 오직 예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의 가르침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이들은 철저히 지켰다. 우상의 도시에서 얼마나 숱한 핍박과 협박을 받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나 외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에 그들은 생명을 걸었다. 선교하는 교회가 된 것도 예수님의 최대 지상 명령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선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직 예수 신앙 가진 것도 성경의 가르침을 올바로 배웠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배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교 시대를 예표하는 빌라델비아 교회 같은 역사가 18-19세기에 미국의 주도하에 선교 문이 열릴 때 그들은 자기들에게 준 작은 믿음으로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고 오직 예수 신앙을 전했다. 그 작은 믿음 위에 주님은 역사하셔서 놀랍게 복음이 전하도록 하셨다. 이제 마지막 때에 이 선교적 열풍은 우리나라에 불고 있다. 우리는 큰 것으로 선교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각 교회에 주신 작은 능력으로 마지막 때에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할 때 한국 교회는 빌라델비아가 받았던 칭찬은 받게 될 것이다. 12제자는 적은 능력으로 초대 교회를 일으켰다. 초대 교회는 적은 능력으로 강력한 로마제국을 정복했다. 마르틴 루터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청교도 신앙인들은 적은 능력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우리 한국 역시 적은 능력으로 세계 선교에 앞장서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적은 능력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고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산을 옮겨 바다에 던지게 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믿음이 작다고 불평하지 말고. 믿음이 크고 많다고 자만하지 말고 .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될 때 주님은 더욱 큰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막9:23)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결론' 빌라델비아 교회는 다른 교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진 교회가 아니었다. 다른 교회들도 빌라델비아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말씀을 가지고 있었고 . 예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믿음과 말씀과 예수의 신앙을 가지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신앙이다. 그러나 이 기본이 흔들거릴 때 교회는 타락하고 만다 다섯 교회와는 달리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 기본을 잊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나아갔다. 그러한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님은 막중한 선교의 사명을 주었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 사명을 잘 감당한 교회가 되었다. 선교 시대를 예표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고 과연 선교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아름답게 유종미를 거두고 있는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잘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로마의 국교로 인정 받았던 기독교는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자 선교의 사역이 영국으로 넘어갔다. 영국이 선교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자 청교도들로 하여금 미국으로 건너가게 해서 선교 사역을 감당케 하였다. 미국이 선교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고 식어지자 선교 사역은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한국 교회가 발라델비아 교회처럼 끝까지 열린 구원의 문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직 믿음의 신앙이 이 땅에 강하게 역사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직 말씀의 신앙이 . 예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들이 이 땅에 여기 저기서 일어난다면 우리 주님의 교회를 비롯해서 한국의 교회들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받았던 주님의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거룩한 모습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진실된 모습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를 통하여 일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뜻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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