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계4:1-11)
본문
계시록은 크게 나누어서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을 4번에 걸쳐서 기록한 책이다. 첫 번째 환상은 각 교회들에게 주신 주님의 개인적인 메세지를 보낸 것이었다. 첫 번째 환상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려 주셨고 각 교회에 잘못들을 지적하였고 그 잘못들을 고치라고 권면과 경고까지 하셨다. 그리고 반드시 싸워 이기는 자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셨다. 이제 교회들은 4장부터 있을 이 땅에 임할 사건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를 준비하는 교회들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을 교회들은 세상에 알려야 한다. 첫 번째 환상은 계1:9-3:22절 까지 교회를 보여주신 것이라면 두 번째 계4:1-16:21절 까지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환상은 계17:1-21:8절 까지 인데 사단의 세력들이 완전히 끝나 버리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네 번째 환상은 계21:9-22:5절까지 아름다운 주님의 나라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사도 요한이 본 두 번째 환상을 16장까지 살펴보면서 더욱 확실하게 재림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16장까지 살펴 볼 때 미래의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는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계시록에 기록된 일은 결코 영적인 일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우리가 피부에 느끼게끔 일어날 사건들이다. 계시록에는 "장차"라는 말이 8번 나온다. 계시록에 사건은 "장차 될 일" 이다 (계1:1)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계1:19)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
예수님이 앞으로 장차 될 일을 얼마나 자세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엄청난 내용들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놀라운 사실을 모르고 덮어 버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계시록의 말씀이 천대를 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아직도 이 소식을 모르는 자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 읽는 자는 가르치는 자를 뜻한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될 일들을 내가 먼저 알고난 후에 가르쳐야 한다 즉 세상에 종말이 오고 주님이 곧 오고 계신다고 알려야 한다. 그렇다고 종말론 주의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 계시록 설교는 장별로 마칠까 한다. 각 장에서 몇 대지가 나오더라도 각 장별로 설교를 마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까 한다. 오늘 본문 4장에는 먼저 하나님의 보좌를 보여주시고 또 하나님의 모양을 보여주시고 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주고 계신다. 이것은 참으로 계시록에 기록된 장차 될 일들이 누구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자 하신 주님의 뜻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록에 기록된 사건들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계4:1)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마땅히 될 일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의 보좌와 모양과 전능하심을 보여주신 것은 이제 장차 될 무서운 일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여 주신 것이다. 우리가 계시록을 배워가면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계시록은 우리게 두려움을 주고자 주신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을 모르는 것이 더 두렵고 더 무서운 일이다.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너 본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명령하셨다. 이 땅에 교회들은 모두 일곱 교회 속에 속해 있는 교회들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교회들은 사도 요한이 보고 기록한 계시록 책을 알아야 한다. 자! 이제 우리 모두 두 번째 환상 속으로 들어가자 ! 놀라운 말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계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첫 번째 환상을 보고난 후에 다시 요한은 두 번째 환상을 보았다. 두 번째 환상 속에서 맨 처음 보이는 것은 열린 문이었다. 그리고 사도 요한 귀에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이 "이리로 올라 오라" 소리를 들은 것이다. 즉 보았고 ! 들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의 눈과 영의 귀를 요한은 가지고 있었다.
이 일 후 =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낸 후 이다. 내가 보니 = 영안이 열린 상태에서 본 것을 의미한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 계시의 문을 뜻한다 요한에게 임한 계시가 이제 한 차원 더 높아지는 것을 뜻한다. 나팔소리 같은음성 = 영의 귀로 들었다. 휴거의 나팔 소리가 아니다 이리로 올라 오라 = 이 후에 될 일을 보여주려고 올라오라고 하신 것이다 교회 휴거로 보는 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 말씀은 절대로 휴거가 아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도 요한의 환상은 계속 되었다. 첫 번째 환상하고는 이제 너무 차이가 나는 환상을 이제 보게 된다. 이러한 놀라운 계시는 아무나 보는게 아니다. 영안이 열려야 볼 수 있는 것이고 영의 귀가 열려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계시록의 말씀도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의 될 일을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의 눈이 열리지 않는 자에게는 계시록의 말씀은 감추어져 있다. 성경 중에서 계시록처럼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 말씀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영의 눈을 가지고 계시록을 본다면 하나로 통일된 말씀이 될 것이다. 모든 말씀이 영의 귀가 열려야 들을 수 있겠지만 계시록은 더욱 영의 귀가 활짝 열려야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고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 분문에서 나오는 "이리로 올라오라" 말씀도 큰 논란을 가지고 있는 말씀이다. "이리로 올라 오라" 라는 말씀을 휴거로 보고 있는데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 다 절대로 "휴거"가 될 수 없는 말씀이다. 여기서부터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와 환난을 통과하는 자들과 의견이 서로 대립되고 있다. 분명히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들의 의견은 너무나 성경과 일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영의 눈과 영의 귀가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무엇이 서로 다른지 살펴보고 우리는 교리를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을 따라야 할 것이다.
1. 나팔 소리를 가지고 휴거라고 주장한다 휴거 될 때에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들리게 되는데 이 나팔 소리를 휴거의 나팔 소리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살전4:16에 나타난 나팔소리와 본문에서 나타난 나팔 소리는 그 소리에서 분명히 틀리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 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계4:1)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살전에서 휴거가 일어날 때 "주님의 호령천사장의 소리하나님의 나팔" 세 가지가 나타나는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 같은 음성" 이다. 휴거의 나팔 소리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증거해 주고 있다.
2. 분문의 장면이 휴거가 아님을 증거해주고 있다. 살전4:16에 휴거가 있기 전에 반드시 예수님 강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강림이 없다.
그러므로 환난 전 휴거는 성경과 너무나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3. 본문의 내용이 휴거가 아님을 증거하고 있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 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휴거가 있기 전 반드시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사도 요한의 성령님에 감동 받은 모습만 기록되어 있으므로 환난 전 휴거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4. 본문의 장소가 휴거가 아님을 증거하고 있다. (살전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사도 요한이 올라 간 곳은 공중이 아니다. 사도 요한은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라 간 것이다. 너무나 차이가 나고 있지 아니합니까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들은 너무나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고 있다.
5. 분문의 내용의 목적이 휴거가 아님을 증거하고 있다. 분문은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장차 일어날 일을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살전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휴거 되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고 항상 주와 함께 있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목적은 장차 될 일을 보기 위해서 잠시 하나님 보좌에 올라 간 것이다. 5가지의 사실만 보더라도 본문을 휴거로 본다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성경 해석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 교회 아니 전 세계 많은 교회들이 환난 전 휴거를 믿고 있다. 이제라도 우리는 교리에 얽매이지 말고 진실로 성경 앞에 우리의 마음을 열고 마음을 비고 성경을 보아야 할 것이다. (벧후3:16)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 칼빈은 " 성경 해석자가
첫째로 할 일은 해석자가 생각하는 것을 성경 저자로 하여금 말하지 않게 하는 대신 성경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 라고 했다. 사도 요한을 불러서 보여준 계시의 환상이 이제 우리 눈 앞에 펼쳐진다 우리의 영안이. 우리의 영의 귀가 열려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왜 일곱 교회 끝에 마다 "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하셨는지 아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왜 가장 귀중한 계시록 말씀이 왜 천대받고 멸시받고 있습니까 사도 요한 에게 들려졌던 "이리로 올라 오라" 말씀을 우리도 듣고 이제 영의 세계로 올라가자. 우리 앞에 하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마지막 때에 될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이다.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두 번째: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 2-3 = "내가 곧 성령님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 사도 요한은 성령님에 감동되어서 육은 땅에 있고 영만 하늘에 올라갔는데 하늘에 올라간 사도 요한이 맨 처음 본 것은 하나님 보좌였다 요한은 그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는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모습을 벽옥, 홍보석, 녹보석 3가지 보석으로 표현했다.
성령님에 감동되어 = 성령님으로 충만한 상태가 된 요한의 모습이다. 휴거가 아니란 것이 여기에서도 증거되고 있다. 보좌 위에 앉으신 위 = 하나님이시다. 앉으신 이의 모양 = 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요한은 3가지 보석으로 표현했다. 벽옥 = 투명한 보석으로 빛이 비추면 여러가지 색이 호화 찬란하게 나타나는 보석이다.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낸다. 홍보석 = 불타는 듯한 붉은 보석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한다. 녹보석 = 무지개처럼 보좌에 둘려져 있었다. 하나님 자비와 언약을 뜻한다 무지개는 언약의 뜻을 가지고 있다. 무지개가 있어 보좌를 둘렸는데 = 노아에게 보여준 7색깔 무지개 모양은 반쪽이었지만 보좌에 무지개는 둥그렇게 둘려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된 것을 의미한다 계시록은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된 마지막의 책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도 요한은 "내가 성령님에 감동하였더니" 먼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도 요한 개인적인 영적 사건임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내가" 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 어디를 보아도 교회의 휴거 사건은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회가 휴거 되었다면 맨 먼저 공중에서 주님을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 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그런데 성령님께서 사도 요한을 데리고 간 곳은 어디인가 하나님 보좌 앞 아닙니까 절대적으로 휴거 사건이 아님을 성경이 명백히 증거하고 있는데도 휴거로 보고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왜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 보좌를 맨 먼저 보여주었을까요 이 후에 모든 될 일들이 하나님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보좌부터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양을 나타내는 3가지 보석의 의미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벽옥의 모양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모습은 거룩성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속성 중에 가장 두드러진 속성은 거룩함이다. 벽옥의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마지막 때에 거룩함 삶을 살지 못하면 휴거 되지 못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후에 될 일을 보여주겠다고 하시고서 벽옥 같은 거룩한 하나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거룩한 자만이 이 하늘 보좌를 볼 수 있고 천국에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홍보석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공의성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공의의 심판을 의미하고 있다. 이 후에 일어날 모든 심판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에서 이루어진 심판이므로 그 어느 누구도 아무 말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성은 완전 무결하기 때문에 그 공의성에 어떤 변명도 이유도 할 수 없다. 이제 이 후에 세상을 공의로운 심판으로 하실 것을 홍보석의 모양으로 하나님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고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이겨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날에 각자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없다면 고난을 당하며 어렵고 힘들게 신앙 생활 한 사람들은 너무 억울할 것이다.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 그 다음은 녹보석인데 이 녹보석은 하나님 보좌 주위에 무지개 모양으로 둘러쳐져 있다. 녹보석은 하나님 자비와 약속을 의미한다 무지개 또한 약속을 의미한다. 녹보석으로 무지개 처럼 보좌를 빙 둘러서 둘러쳐져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하게 이루어 질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은 하나님의 약속을 완전하게 이루는 결정판이다. 그 약속이 이제 이 후에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이 약속의 말씀만을 붙잡고 얼마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 속에서 살아왔던가 ! 그러나 계시록에서 그 모든 약속의 말씀들이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을 하나님은 다시 한번 확실하게 이루어 질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창세 이래로 약속하신 말씀을 한번도 변캐치 아니하신 하나님이시다 세상 끝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세상은 끝날 것이다. 세 번째:24 보좌에 앉아있는 24 장로 4절 =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 사도 요한이 하나님 보좌를 보고 나서 그 주위를 보니까 하나님 보좌를 중심으로 24 보좌가 있고 그 24 보좌 위에 24 장로들이 앉아 있었다. 24장로들은 흰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이들이 누구인가 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하고 있다.
24장로 = 24라는 숫자는 구약 12 지파와 신약 12사도를 합친 숫자로 볼 수 있다 . 장로 = 장로라는 직함은 교회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24장로는 구약의 대표와 신약의 대표를 뜻한다 보좌 = 왕권을 나타내는 자리이다. 흰 옷 = 승리자의 옷이다. 금 면류관 = 승리자가 받은 상급이다 24장로들은 구약의 12지파 반열과 신약의 12사도의 반열에 설만큼 신실한 믿음을 가진 구원받은 성도들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구약과 신약을 대표하는 24 장로의 모습을 보고 성도들은 본을 삼아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24장로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구약의 12지파와 신약 12사도들이 아니고 천사들이라는 견해와 역대상 24장에 나오는 24명의 제사장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계21:12-14)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 하나님 보좌 주위에는 24장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7절에나오는 네 생물들이 있고 11절에 나오는 만만 천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24장로에게만 장로라는 직명과 옷과 행동과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24장로들이 누구라는 것을 성경이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보좌 옆에 앉았다는 것은 주님을 위해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
그러므로 이들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자들이다. 우리 또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때 우리에게도 하나님 보좌 옆에 앉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우리는 이 날의 이 영광을 생각하며 이겨나가야 한다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이 말씀이 이해가 갑니까 계시록을 공부하면 모든 성경의 결론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또 24장로들이 입은 흰 옷 속에서 우리는 깊은 것을 깨달을 수있다. 옷은 성경에서 행위를 뜻한다. 흰 옷을 입었다는 것은 믿음으로 이기었다는 것이다. 이기는 자에게 흰 옷을 입혀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 흰 옷을 입혀주었다는 것은 거룩하게 살아 왔다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해주는 것이다.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부끄러운 신앙을 흰 옷을 사서 입으라고 한 것은 거룩한 신앙 생활을 하라는 권면이었다. 거룩한 신앙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 보좌 옆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사도 요한을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구약의 12 지파에 속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우리가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신약의 12 사도는 우리가 너무나도 거룩한 삶을 살았다는 것 다 알고 있다. 12 사도는 모두 순교했다.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순교는 하나님 제단에 온전히 제물이 되는 것인데 하나님은 흠 있는 제물은 절대로 받지 아니하신다 주님을 위해 순교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삶을 받으신 것이다 구약의 12 지파 중에서도 요셉같은 자와 레위 지파에 속한모세의 믿음은 대단한 믿음들이었다.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의 믿음도 대단한 자였다. 구약의 12 지파는 누구인지 정확히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거룩한 신앙을 가진 자가 하나님 보좌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24장로들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썼다고 했다. 면류관은 어떤 자가 얻게 된다고 했습니까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죽도록 충성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면류관이다.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쉽게 된 것이 아니다. 죽도록 하나님께 충성을 했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다. 특히 12사도는 자신들의 몸을 내 던지면서 까지 충성을 하였다. 하나님은 적당히 믿는 것 절대 좋아하지 않으신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고전4:2)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 24 장로의 모습을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고 본 것을 그대로 기록하여 교회에 보내라고 하신 것은 우리도 보좌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이 준비 해 놓으신 보좌에 앉기를 원하십니까 원하신다면 거룩한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한다. 마지막 때 일 수록 거룩한 생활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흰 옷을 사서 입으라고 하셨다 (계3:18)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고 하셨다 흰 옷을 사서 입으란 말이 무슨 말인가 즉 거룩함을 얻기 위해서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댓가가 무엇입니까 거룩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죄를 회개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죄를 멀리하는 자가 되어야 거룩한 흰 옷을 입을 수가 있는 것이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 보좌에 가까이 갈 수가 없다. 이러한 거룩함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히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느니라 예수의 피로 우리의 더러운 죄들이 사함 받고 예수의 피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어 거룩한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이 24장로들의 모습을 보고 아! 믿음 좋은 신앙인들의 모습이구나 하고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나도 저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아야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잠시 있다 가는 이 땅에서 너무 소망을 가지지 말고 저 하늘 나라에서 받을 상급에 대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날에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을 믿으십니까 보좌에 앉아 있다는 것은 곧 다스리는 왕권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 보좌 옆에 앉아 왕권을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계20:6)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 주님의 보좌 옆에서 우리 모두 만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계속 다음으로 연결 됩니다 ' = 오 직 예수, 재 림 신 앙 =
예수님이 앞으로 장차 될 일을 얼마나 자세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엄청난 내용들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놀라운 사실을 모르고 덮어 버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계시록의 말씀이 천대를 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아직도 이 소식을 모르는 자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 읽는 자는 가르치는 자를 뜻한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될 일들을 내가 먼저 알고난 후에 가르쳐야 한다 즉 세상에 종말이 오고 주님이 곧 오고 계신다고 알려야 한다. 그렇다고 종말론 주의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 계시록 설교는 장별로 마칠까 한다. 각 장에서 몇 대지가 나오더라도 각 장별로 설교를 마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까 한다. 오늘 본문 4장에는 먼저 하나님의 보좌를 보여주시고 또 하나님의 모양을 보여주시고 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주고 계신다. 이것은 참으로 계시록에 기록된 장차 될 일들이 누구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자 하신 주님의 뜻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록에 기록된 사건들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계4:1)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마땅히 될 일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의 보좌와 모양과 전능하심을 보여주신 것은 이제 장차 될 무서운 일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여 주신 것이다. 우리가 계시록을 배워가면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계시록은 우리게 두려움을 주고자 주신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을 모르는 것이 더 두렵고 더 무서운 일이다.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너 본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명령하셨다. 이 땅에 교회들은 모두 일곱 교회 속에 속해 있는 교회들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교회들은 사도 요한이 보고 기록한 계시록 책을 알아야 한다. 자! 이제 우리 모두 두 번째 환상 속으로 들어가자 ! 놀라운 말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계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첫 번째 환상을 보고난 후에 다시 요한은 두 번째 환상을 보았다. 두 번째 환상 속에서 맨 처음 보이는 것은 열린 문이었다. 그리고 사도 요한 귀에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이 "이리로 올라 오라" 소리를 들은 것이다. 즉 보았고 ! 들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의 눈과 영의 귀를 요한은 가지고 있었다.
이 일 후 =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낸 후 이다. 내가 보니 = 영안이 열린 상태에서 본 것을 의미한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 계시의 문을 뜻한다 요한에게 임한 계시가 이제 한 차원 더 높아지는 것을 뜻한다. 나팔소리 같은음성 = 영의 귀로 들었다. 휴거의 나팔 소리가 아니다 이리로 올라 오라 = 이 후에 될 일을 보여주려고 올라오라고 하신 것이다 교회 휴거로 보는 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 말씀은 절대로 휴거가 아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도 요한의 환상은 계속 되었다. 첫 번째 환상하고는 이제 너무 차이가 나는 환상을 이제 보게 된다. 이러한 놀라운 계시는 아무나 보는게 아니다. 영안이 열려야 볼 수 있는 것이고 영의 귀가 열려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계시록의 말씀도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의 될 일을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의 눈이 열리지 않는 자에게는 계시록의 말씀은 감추어져 있다. 성경 중에서 계시록처럼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 말씀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영의 눈을 가지고 계시록을 본다면 하나로 통일된 말씀이 될 것이다. 모든 말씀이 영의 귀가 열려야 들을 수 있겠지만 계시록은 더욱 영의 귀가 활짝 열려야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고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 분문에서 나오는 "이리로 올라오라" 말씀도 큰 논란을 가지고 있는 말씀이다. "이리로 올라 오라" 라는 말씀을 휴거로 보고 있는데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 다 절대로 "휴거"가 될 수 없는 말씀이다. 여기서부터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와 환난을 통과하는 자들과 의견이 서로 대립되고 있다. 분명히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들의 의견은 너무나 성경과 일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영의 눈과 영의 귀가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무엇이 서로 다른지 살펴보고 우리는 교리를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을 따라야 할 것이다.
1. 나팔 소리를 가지고 휴거라고 주장한다 휴거 될 때에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들리게 되는데 이 나팔 소리를 휴거의 나팔 소리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살전4:16에 나타난 나팔소리와 본문에서 나타난 나팔 소리는 그 소리에서 분명히 틀리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 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계4:1)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살전에서 휴거가 일어날 때 "주님의 호령천사장의 소리하나님의 나팔" 세 가지가 나타나는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 같은 음성" 이다. 휴거의 나팔 소리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증거해 주고 있다.
2. 분문의 장면이 휴거가 아님을 증거해주고 있다. 살전4:16에 휴거가 있기 전에 반드시 예수님 강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강림이 없다.
그러므로 환난 전 휴거는 성경과 너무나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3. 본문의 내용이 휴거가 아님을 증거하고 있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 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휴거가 있기 전 반드시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사도 요한의 성령님에 감동 받은 모습만 기록되어 있으므로 환난 전 휴거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4. 본문의 장소가 휴거가 아님을 증거하고 있다. (살전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사도 요한이 올라 간 곳은 공중이 아니다. 사도 요한은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라 간 것이다. 너무나 차이가 나고 있지 아니합니까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들은 너무나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고 있다.
5. 분문의 내용의 목적이 휴거가 아님을 증거하고 있다. 분문은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장차 일어날 일을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살전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휴거 되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고 항상 주와 함께 있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목적은 장차 될 일을 보기 위해서 잠시 하나님 보좌에 올라 간 것이다. 5가지의 사실만 보더라도 본문을 휴거로 본다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성경 해석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 교회 아니 전 세계 많은 교회들이 환난 전 휴거를 믿고 있다. 이제라도 우리는 교리에 얽매이지 말고 진실로 성경 앞에 우리의 마음을 열고 마음을 비고 성경을 보아야 할 것이다. (벧후3:16)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 칼빈은 " 성경 해석자가
첫째로 할 일은 해석자가 생각하는 것을 성경 저자로 하여금 말하지 않게 하는 대신 성경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 라고 했다. 사도 요한을 불러서 보여준 계시의 환상이 이제 우리 눈 앞에 펼쳐진다 우리의 영안이. 우리의 영의 귀가 열려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왜 일곱 교회 끝에 마다 "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하셨는지 아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왜 가장 귀중한 계시록 말씀이 왜 천대받고 멸시받고 있습니까 사도 요한 에게 들려졌던 "이리로 올라 오라" 말씀을 우리도 듣고 이제 영의 세계로 올라가자. 우리 앞에 하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마지막 때에 될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이다.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두 번째: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 2-3 = "내가 곧 성령님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 사도 요한은 성령님에 감동되어서 육은 땅에 있고 영만 하늘에 올라갔는데 하늘에 올라간 사도 요한이 맨 처음 본 것은 하나님 보좌였다 요한은 그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는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모습을 벽옥, 홍보석, 녹보석 3가지 보석으로 표현했다.
성령님에 감동되어 = 성령님으로 충만한 상태가 된 요한의 모습이다. 휴거가 아니란 것이 여기에서도 증거되고 있다. 보좌 위에 앉으신 위 = 하나님이시다. 앉으신 이의 모양 = 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요한은 3가지 보석으로 표현했다. 벽옥 = 투명한 보석으로 빛이 비추면 여러가지 색이 호화 찬란하게 나타나는 보석이다.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낸다. 홍보석 = 불타는 듯한 붉은 보석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한다. 녹보석 = 무지개처럼 보좌에 둘려져 있었다. 하나님 자비와 언약을 뜻한다 무지개는 언약의 뜻을 가지고 있다. 무지개가 있어 보좌를 둘렸는데 = 노아에게 보여준 7색깔 무지개 모양은 반쪽이었지만 보좌에 무지개는 둥그렇게 둘려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된 것을 의미한다 계시록은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된 마지막의 책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도 요한은 "내가 성령님에 감동하였더니" 먼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도 요한 개인적인 영적 사건임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내가" 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 어디를 보아도 교회의 휴거 사건은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회가 휴거 되었다면 맨 먼저 공중에서 주님을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 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그런데 성령님께서 사도 요한을 데리고 간 곳은 어디인가 하나님 보좌 앞 아닙니까 절대적으로 휴거 사건이 아님을 성경이 명백히 증거하고 있는데도 휴거로 보고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왜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 보좌를 맨 먼저 보여주었을까요 이 후에 모든 될 일들이 하나님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보좌부터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양을 나타내는 3가지 보석의 의미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벽옥의 모양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모습은 거룩성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속성 중에 가장 두드러진 속성은 거룩함이다. 벽옥의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마지막 때에 거룩함 삶을 살지 못하면 휴거 되지 못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후에 될 일을 보여주겠다고 하시고서 벽옥 같은 거룩한 하나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거룩한 자만이 이 하늘 보좌를 볼 수 있고 천국에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홍보석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공의성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공의의 심판을 의미하고 있다. 이 후에 일어날 모든 심판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에서 이루어진 심판이므로 그 어느 누구도 아무 말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성은 완전 무결하기 때문에 그 공의성에 어떤 변명도 이유도 할 수 없다. 이제 이 후에 세상을 공의로운 심판으로 하실 것을 홍보석의 모양으로 하나님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고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이겨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날에 각자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없다면 고난을 당하며 어렵고 힘들게 신앙 생활 한 사람들은 너무 억울할 것이다.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 그 다음은 녹보석인데 이 녹보석은 하나님 보좌 주위에 무지개 모양으로 둘러쳐져 있다. 녹보석은 하나님 자비와 약속을 의미한다 무지개 또한 약속을 의미한다. 녹보석으로 무지개 처럼 보좌를 빙 둘러서 둘러쳐져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하게 이루어 질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은 하나님의 약속을 완전하게 이루는 결정판이다. 그 약속이 이제 이 후에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이 약속의 말씀만을 붙잡고 얼마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 속에서 살아왔던가 ! 그러나 계시록에서 그 모든 약속의 말씀들이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을 하나님은 다시 한번 확실하게 이루어 질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창세 이래로 약속하신 말씀을 한번도 변캐치 아니하신 하나님이시다 세상 끝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세상은 끝날 것이다. 세 번째:24 보좌에 앉아있는 24 장로 4절 =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 사도 요한이 하나님 보좌를 보고 나서 그 주위를 보니까 하나님 보좌를 중심으로 24 보좌가 있고 그 24 보좌 위에 24 장로들이 앉아 있었다. 24장로들은 흰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이들이 누구인가 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하고 있다.
24장로 = 24라는 숫자는 구약 12 지파와 신약 12사도를 합친 숫자로 볼 수 있다 . 장로 = 장로라는 직함은 교회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24장로는 구약의 대표와 신약의 대표를 뜻한다 보좌 = 왕권을 나타내는 자리이다. 흰 옷 = 승리자의 옷이다. 금 면류관 = 승리자가 받은 상급이다 24장로들은 구약의 12지파 반열과 신약의 12사도의 반열에 설만큼 신실한 믿음을 가진 구원받은 성도들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구약과 신약을 대표하는 24 장로의 모습을 보고 성도들은 본을 삼아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24장로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구약의 12지파와 신약 12사도들이 아니고 천사들이라는 견해와 역대상 24장에 나오는 24명의 제사장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계21:12-14)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 하나님 보좌 주위에는 24장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7절에나오는 네 생물들이 있고 11절에 나오는 만만 천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24장로에게만 장로라는 직명과 옷과 행동과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24장로들이 누구라는 것을 성경이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보좌 옆에 앉았다는 것은 주님을 위해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
그러므로 이들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자들이다. 우리 또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때 우리에게도 하나님 보좌 옆에 앉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우리는 이 날의 이 영광을 생각하며 이겨나가야 한다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이 말씀이 이해가 갑니까 계시록을 공부하면 모든 성경의 결론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또 24장로들이 입은 흰 옷 속에서 우리는 깊은 것을 깨달을 수있다. 옷은 성경에서 행위를 뜻한다. 흰 옷을 입었다는 것은 믿음으로 이기었다는 것이다. 이기는 자에게 흰 옷을 입혀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 흰 옷을 입혀주었다는 것은 거룩하게 살아 왔다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해주는 것이다.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부끄러운 신앙을 흰 옷을 사서 입으라고 한 것은 거룩한 신앙 생활을 하라는 권면이었다. 거룩한 신앙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 보좌 옆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사도 요한을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구약의 12 지파에 속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우리가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신약의 12 사도는 우리가 너무나도 거룩한 삶을 살았다는 것 다 알고 있다. 12 사도는 모두 순교했다.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순교는 하나님 제단에 온전히 제물이 되는 것인데 하나님은 흠 있는 제물은 절대로 받지 아니하신다 주님을 위해 순교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삶을 받으신 것이다 구약의 12 지파 중에서도 요셉같은 자와 레위 지파에 속한모세의 믿음은 대단한 믿음들이었다.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의 믿음도 대단한 자였다. 구약의 12 지파는 누구인지 정확히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거룩한 신앙을 가진 자가 하나님 보좌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24장로들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썼다고 했다. 면류관은 어떤 자가 얻게 된다고 했습니까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죽도록 충성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면류관이다.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쉽게 된 것이 아니다. 죽도록 하나님께 충성을 했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다. 특히 12사도는 자신들의 몸을 내 던지면서 까지 충성을 하였다. 하나님은 적당히 믿는 것 절대 좋아하지 않으신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고전4:2)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 24 장로의 모습을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고 본 것을 그대로 기록하여 교회에 보내라고 하신 것은 우리도 보좌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이 준비 해 놓으신 보좌에 앉기를 원하십니까 원하신다면 거룩한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한다. 마지막 때 일 수록 거룩한 생활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흰 옷을 사서 입으라고 하셨다 (계3:18)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고 하셨다 흰 옷을 사서 입으란 말이 무슨 말인가 즉 거룩함을 얻기 위해서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댓가가 무엇입니까 거룩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죄를 회개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죄를 멀리하는 자가 되어야 거룩한 흰 옷을 입을 수가 있는 것이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 보좌에 가까이 갈 수가 없다. 이러한 거룩함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히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느니라 예수의 피로 우리의 더러운 죄들이 사함 받고 예수의 피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어 거룩한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이 24장로들의 모습을 보고 아! 믿음 좋은 신앙인들의 모습이구나 하고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나도 저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아야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잠시 있다 가는 이 땅에서 너무 소망을 가지지 말고 저 하늘 나라에서 받을 상급에 대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날에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을 믿으십니까 보좌에 앉아 있다는 것은 곧 다스리는 왕권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 보좌 옆에 앉아 왕권을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계20:6)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 주님의 보좌 옆에서 우리 모두 만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계속 다음으로 연결 됩니다 ' = 오 직 예수, 재 림 신 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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