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샤다이 (계21:21-27)
본문
새 예루살렘을 주시는 하나님 때때로 우리는 어떤 문제를 큰 위기로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이 실제로 얼마나 사소한 일이었으며, 특별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께는 얼마나 하찮은 일이었던가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도움을 주실 만한 능력을 충분히 지니고 계시고, 또한 보살펴 주고자 하는 마음을 충분히 갖고 계신 엘 샤다이(El Shaddai)이시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은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언약하셨던 것-그의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루고, 그가 약속의 땅을 상속할 것이며, 그로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으리라는 것이었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께 구한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이 75세 되던 해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 언약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이제 너무 나이가 들어서 자녀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래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언약하신대로 이루어 주신다는 약속의 보증이 필요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필요에 민감하셨고, 그것을 채워주실 만한 능력을 충분히 갖고 계셨다. 그리하여 여호와는 그에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바로 이곳에서 전능하다는 이름이 처음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조주로서만이 아니라, 마치 어머니가 젖을 물려서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하나님으로 그에게 오셨다. 오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시면서 언약의 징표를 삼으셨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개칭하셨다. 존귀한 아버지(높은 아버지)에서 많은 무리의 아버지로 공주(왕녀)에서 여왕 여주인이라는 뜻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시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속성의 새로운 일면을 보여주시고자 하셨다. 24년 동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였고 약속의 땅에서 살았다. 이 새이름은 그가 지금까지 섬겨온 하나님의 새로운 면모-일의 처리 방법-를 보여주기 위해 계시되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인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자 친구는 얼마 안 있어 애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것이다. 그리고 결혼 후에 그녀는 아내라는 이름을 얻을 것이다. 이후 그녀는 아마도 어머니라 불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새 이름만 계시하신 것이 아니라 새 약속도 주셨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창 17: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실 때, 우리는 그것들을 구하고 그것들을 좇아 행해야 한다. 아브라함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3절).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탄원하며 신뢰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15, 16절). 이것도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의 약속이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출산 적령기가 훨씬 지난 나이였으나, 초자연적으로 아들을 낳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갖는 두 가지 측면은 '힘'과 '만족'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들을 수태할 힘을 얻을 것이고, 이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었다는 만족감을 줄 것이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아들 이삭에게 엘 샤다이에 관한 지식을 전수하였다. 이삭이 늙었을 때, 그는 아내를 얻기 위해 선조의 땅으로 떠나는 야곱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하사"(창 28:3). 엘 샤다이라는 이름은 이 집에서 계속 전수되었다. 야곱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었을 때, 그는 이어서 아들 요셉에게 "전능자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49:25)라고 축복하였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똑 같이 계속 전수되어 왔습니다. 그 엘 샤다이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전에는 여러분들이 그냥 성도로서 믿음생활을 하였지만 이제는 교회의 제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처럼 언약의 백성이 되었으면서도 “그냥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바라나이다라고”말하시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저와 여러분을 산소망교회의 일꾼으로 삼으시고 직분을 주셨으며 제직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고귀한 직분은 이삭이라는 자식을 얻게 하시는 힘과 그로인해 만족감과 즐거움을 주실 것입니다. 이 이름은 여러분들이 받고싶어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고 언약의 축복을 하신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새 이름을 주셨고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언약의 엘 샤다이께서 (창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17:3) 아브람이 엎드린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온전해 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엘 샤다이의 특성에 관련된 여섯 가지 지침들은, 신자들이 어려운 문제들에 대처하고 그것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죄를 멀리하라(소극적인 거룩함). 많은 문제들이 우리의 삶속에서 꿈틀대는 죄로 인해 찾아온다. 죄의 본성은 하나님의 자녀를 짓밟고, 파괴하며, 훼방하고, 해를 입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죄를 멀리하라는 원칙을 세우셨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고후 6:17, 18). 엘 샤다이는 변함없이 우리를 구원하실 만큼 강하시고, 우리를 도우실 만큼 인자하시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품으면, 그분은 인자하시고 친절하신 분으로만 계실 수 없으시다. 이런 때에 그분은 심판을 내리신다.
2. 엘 샤다이의 임재를 구하라(적극적인 거룩함).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자하셔서 자녀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시지만, 또한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구하기를 원하신다. 나는 때로 신학교에서 재정 문제로 힘겨워 하는 학생을 만난다. 그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학교에 가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열심히 배우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설교를 한다. 그가 기도로 도움을, 특히 재정적인 도움을 요청할 때, 보통의 경우 하나님은 그에게 부유한 후원자를 보내셔서 생활비를 지급하도록 하지는 않으신다. 신학생이 편안한 생활을 하면, 그는 아마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목회자로서 사역을 할 때 다소 손해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열심히 일할 것, 효과적인 목회 사역을 위하여 자신의 임재를 적극적으로 구할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천국에 이르러 보좌 주위에 서게 될 때에, 우리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계 4:8)라고 찬양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온전히 충만하신 하나님, 힘과 충족의 거룩하신 하나님-엘 샤다이라는 이름과 결부된 그분의 모든 속성을 충분히 경험하게 될 것이다.
3. 엘 샤다이의 임재 안에 거하라. 하나님은 신자들과 아주 멀리 떨어져 계신 능력있는 창조주만이 아니시다. 그분은 어머니처럼, 혹은 목자처럼 가까이에 계신다. 옛날에 무리를 떠나 방황하고 있는, 길을 잃은 양 한 마리가 있었다. 목자는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고 있었다. 길을 잃은 양은 절벽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급류에 휩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번 목자가 그 양을 다시 데려와도, 그 양은 또 다시 무리를 떠나곤 했다. 마침내 양을 위하여 매를 들 시간이 되었다. 목자는 양의 다리 중 하나를 꺾어서 억지로 목자 곁에 안전히 거하게 만들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샤다이)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시 91:1).
4. 엘 샤다이의 명령을 좇으라.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아이는 부모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났으므로, 순종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제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한다. 한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타일렀지만, 그 아이는 막무가내로 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어머니는 아들을 강제로 자리에 앉혔다.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는 제가 이렇게 앉아 있지만 속으로는 서 있는 거예요." 이 아이는 많은 신자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우리는 진심으로 순종하지 않고 속으로는 하나님을 거역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에 48번 나온다. 이 중 31번은 욥기에 있다. 욥은 가족을 포함하여, 그의 전소유물을 잃었다. 그는 건강마저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잿더미에 앉아서 기와 조각으로 온몸을 긁는 신세가 되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은 이 재난에서 그를 구해줄 능력이 있는 분은 오직 강하고 또한 부드러우신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뿐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은 그에게 이렇게 충고하였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찌니라"(욥 5:17). 욥기에서 우리는 부드러우시고 세심히 보살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또한 엄격하신 인격의 일면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어머니는 자식을 극진히 사랑하지만, 필요하다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짖고 매를 들 것이다. 사랑이 풍부한 어머니는 화상을 입은 아이의 피부에 연고를 발라 주겠지만, 또한 화덕 가까이에서 노는 자녀를 꾸짖을 것이다.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녀를 극진히 사랑하고 화덕 가까이에서 놀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꾸짖는 것이다. 이와 똑같이 전능하신 하나님도 강하신 분으로서, 그리고 다정 다감하신 아버지로서 자신의 자녀들을 단련시키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사랑으로 싸매 주실 것이다. 그러나 또한 사랑으로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하여 매도 드실 것이다.
5.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다 더 가깝게 부르시거나 혹은 고백하지 않은 죄를 토로하도록 하기 위하여 고통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자신이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하나님의 참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일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12:7, 5-11절도 참고). 참자녀 된 자들을 사랑으로 징계하시는 것은 엘 샤다이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5, 6절).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신자들이 깨닫고 믿어야 할 이름이다. 어려운 문제나 위험에 처했을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수 있다. 항상 우리의 문제를 제거해 주시거나 혹은 인생의 폭풍 가운데서 건져 주시지는 않을지라도, 그분은 우리에게 능히 그 어려움들을 견디어 나갈 수 있을 만한 힘을 주실 것이다. 문제가 닥쳤을 때 우리는 다음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이 문제들에서 도망칠 수 없다.
둘째, 우리는 삶 속에 이런 문젯거리들이 생기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셋째, 우리가 항상 그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엘 샤다이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야고보는 이렇게 충고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그는(1) 시험이나 시련은 불가피하며,
(2) 그것들은 '여러 가지'로 다르고,
(3) 우리가 그것들로 인하여 낙심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기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기가 모든 문제들을 전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실패자도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셨을 때, 그분은 다음 사실을 그에게 다시 상기시키셔야만 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룻기에 보면, 나오미와 엘리멜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둘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흉년이 든 이스라엘 땅을 떠나 비옥한 모압 지역으로 이사했다. 그들은 믿음이 아닌 외적 조건을 좇아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모압 땅에서 유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의 두 아들도 죽었다. 마침내 모든 것을 다 잃게 되었을 때 나오미는 이스라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나오미(희락)라 칭하지 말고 마라(괴로움)라 칭하라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룻 1:20, 21). 전능하신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자녀들을 단련시키신다. 넘치는 사랑을 가진 부모에게 벌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징계의 고통 중에도 기쁨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징계 가운데서도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인하여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그분은 자신의 샤다이, 즉 자신의 힘과 만족이 되어 주실 것이다.
6. 엘 샤다이의 양식을 구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을 만큼 신실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므로, 우리를 분명히 돌보아 주실 것이다. 신학생들이 신학교에 들어갈 때, 나는 항상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는 언약의 말씀으로 그들을 격려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만일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그들이 학교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시간의 촉박함이나 과중한 공부, 헬라어나 히브리어, 학비 등과 같은 어려움들을 능히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라고 나는 학생들에게 약속한다. 그리고 몇몇 학생들은 20년이 지난 후에 나를 찾아와서, 바로 이 언약의 말씀 때문에 그때 신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목사가 될 수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거룩한 자비로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또한 거룩한 능력으로 우리의 울부짖음에 응답하신다. 야곱이 늙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는 손자들을 축복하고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엘 샤다이의 약속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창 49:25). 야곱은 엘 샤다이의 축복과 징계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었으므로 자기의 손자들이 여호와를 좇을 때, 그 두 속성이 그들을 인도할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우리 모두 이 엘 샤다이 되신 전능하신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 축복의 말씀 부르시어 당신께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자식들에게 이웃들에게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이며 이기게 하실 것이며 불굴의 의지로 야곱을 축복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전능하다는 이름이 처음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조주로서만이 아니라, 마치 어머니가 젖을 물려서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하나님으로 그에게 오셨다. 오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시면서 언약의 징표를 삼으셨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개칭하셨다. 존귀한 아버지(높은 아버지)에서 많은 무리의 아버지로 공주(왕녀)에서 여왕 여주인이라는 뜻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시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속성의 새로운 일면을 보여주시고자 하셨다. 24년 동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였고 약속의 땅에서 살았다. 이 새이름은 그가 지금까지 섬겨온 하나님의 새로운 면모-일의 처리 방법-를 보여주기 위해 계시되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인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자 친구는 얼마 안 있어 애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것이다. 그리고 결혼 후에 그녀는 아내라는 이름을 얻을 것이다. 이후 그녀는 아마도 어머니라 불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새 이름만 계시하신 것이 아니라 새 약속도 주셨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창 17: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실 때, 우리는 그것들을 구하고 그것들을 좇아 행해야 한다. 아브라함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3절).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탄원하며 신뢰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15, 16절). 이것도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의 약속이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출산 적령기가 훨씬 지난 나이였으나, 초자연적으로 아들을 낳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갖는 두 가지 측면은 '힘'과 '만족'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들을 수태할 힘을 얻을 것이고, 이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었다는 만족감을 줄 것이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아들 이삭에게 엘 샤다이에 관한 지식을 전수하였다. 이삭이 늙었을 때, 그는 아내를 얻기 위해 선조의 땅으로 떠나는 야곱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하사"(창 28:3). 엘 샤다이라는 이름은 이 집에서 계속 전수되었다. 야곱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었을 때, 그는 이어서 아들 요셉에게 "전능자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49:25)라고 축복하였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똑 같이 계속 전수되어 왔습니다. 그 엘 샤다이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전에는 여러분들이 그냥 성도로서 믿음생활을 하였지만 이제는 교회의 제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처럼 언약의 백성이 되었으면서도 “그냥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바라나이다라고”말하시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저와 여러분을 산소망교회의 일꾼으로 삼으시고 직분을 주셨으며 제직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고귀한 직분은 이삭이라는 자식을 얻게 하시는 힘과 그로인해 만족감과 즐거움을 주실 것입니다. 이 이름은 여러분들이 받고싶어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고 언약의 축복을 하신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새 이름을 주셨고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언약의 엘 샤다이께서 (창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17:3) 아브람이 엎드린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온전해 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엘 샤다이의 특성에 관련된 여섯 가지 지침들은, 신자들이 어려운 문제들에 대처하고 그것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죄를 멀리하라(소극적인 거룩함). 많은 문제들이 우리의 삶속에서 꿈틀대는 죄로 인해 찾아온다. 죄의 본성은 하나님의 자녀를 짓밟고, 파괴하며, 훼방하고, 해를 입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죄를 멀리하라는 원칙을 세우셨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고후 6:17, 18). 엘 샤다이는 변함없이 우리를 구원하실 만큼 강하시고, 우리를 도우실 만큼 인자하시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품으면, 그분은 인자하시고 친절하신 분으로만 계실 수 없으시다. 이런 때에 그분은 심판을 내리신다.
2. 엘 샤다이의 임재를 구하라(적극적인 거룩함).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자하셔서 자녀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시지만, 또한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구하기를 원하신다. 나는 때로 신학교에서 재정 문제로 힘겨워 하는 학생을 만난다. 그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학교에 가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열심히 배우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설교를 한다. 그가 기도로 도움을, 특히 재정적인 도움을 요청할 때, 보통의 경우 하나님은 그에게 부유한 후원자를 보내셔서 생활비를 지급하도록 하지는 않으신다. 신학생이 편안한 생활을 하면, 그는 아마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목회자로서 사역을 할 때 다소 손해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열심히 일할 것, 효과적인 목회 사역을 위하여 자신의 임재를 적극적으로 구할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천국에 이르러 보좌 주위에 서게 될 때에, 우리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계 4:8)라고 찬양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온전히 충만하신 하나님, 힘과 충족의 거룩하신 하나님-엘 샤다이라는 이름과 결부된 그분의 모든 속성을 충분히 경험하게 될 것이다.
3. 엘 샤다이의 임재 안에 거하라. 하나님은 신자들과 아주 멀리 떨어져 계신 능력있는 창조주만이 아니시다. 그분은 어머니처럼, 혹은 목자처럼 가까이에 계신다. 옛날에 무리를 떠나 방황하고 있는, 길을 잃은 양 한 마리가 있었다. 목자는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고 있었다. 길을 잃은 양은 절벽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급류에 휩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번 목자가 그 양을 다시 데려와도, 그 양은 또 다시 무리를 떠나곤 했다. 마침내 양을 위하여 매를 들 시간이 되었다. 목자는 양의 다리 중 하나를 꺾어서 억지로 목자 곁에 안전히 거하게 만들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샤다이)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시 91:1).
4. 엘 샤다이의 명령을 좇으라.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아이는 부모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났으므로, 순종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제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한다. 한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타일렀지만, 그 아이는 막무가내로 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어머니는 아들을 강제로 자리에 앉혔다.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는 제가 이렇게 앉아 있지만 속으로는 서 있는 거예요." 이 아이는 많은 신자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우리는 진심으로 순종하지 않고 속으로는 하나님을 거역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에 48번 나온다. 이 중 31번은 욥기에 있다. 욥은 가족을 포함하여, 그의 전소유물을 잃었다. 그는 건강마저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잿더미에 앉아서 기와 조각으로 온몸을 긁는 신세가 되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은 이 재난에서 그를 구해줄 능력이 있는 분은 오직 강하고 또한 부드러우신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뿐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은 그에게 이렇게 충고하였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찌니라"(욥 5:17). 욥기에서 우리는 부드러우시고 세심히 보살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또한 엄격하신 인격의 일면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어머니는 자식을 극진히 사랑하지만, 필요하다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짖고 매를 들 것이다. 사랑이 풍부한 어머니는 화상을 입은 아이의 피부에 연고를 발라 주겠지만, 또한 화덕 가까이에서 노는 자녀를 꾸짖을 것이다.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녀를 극진히 사랑하고 화덕 가까이에서 놀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꾸짖는 것이다. 이와 똑같이 전능하신 하나님도 강하신 분으로서, 그리고 다정 다감하신 아버지로서 자신의 자녀들을 단련시키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사랑으로 싸매 주실 것이다. 그러나 또한 사랑으로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하여 매도 드실 것이다.
5.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다 더 가깝게 부르시거나 혹은 고백하지 않은 죄를 토로하도록 하기 위하여 고통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자신이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하나님의 참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일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12:7, 5-11절도 참고). 참자녀 된 자들을 사랑으로 징계하시는 것은 엘 샤다이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5, 6절).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신자들이 깨닫고 믿어야 할 이름이다. 어려운 문제나 위험에 처했을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수 있다. 항상 우리의 문제를 제거해 주시거나 혹은 인생의 폭풍 가운데서 건져 주시지는 않을지라도, 그분은 우리에게 능히 그 어려움들을 견디어 나갈 수 있을 만한 힘을 주실 것이다. 문제가 닥쳤을 때 우리는 다음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이 문제들에서 도망칠 수 없다.
둘째, 우리는 삶 속에 이런 문젯거리들이 생기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셋째, 우리가 항상 그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엘 샤다이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야고보는 이렇게 충고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그는(1) 시험이나 시련은 불가피하며,
(2) 그것들은 '여러 가지'로 다르고,
(3) 우리가 그것들로 인하여 낙심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기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기가 모든 문제들을 전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실패자도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셨을 때, 그분은 다음 사실을 그에게 다시 상기시키셔야만 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룻기에 보면, 나오미와 엘리멜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둘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흉년이 든 이스라엘 땅을 떠나 비옥한 모압 지역으로 이사했다. 그들은 믿음이 아닌 외적 조건을 좇아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모압 땅에서 유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의 두 아들도 죽었다. 마침내 모든 것을 다 잃게 되었을 때 나오미는 이스라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나오미(희락)라 칭하지 말고 마라(괴로움)라 칭하라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룻 1:20, 21). 전능하신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자녀들을 단련시키신다. 넘치는 사랑을 가진 부모에게 벌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징계의 고통 중에도 기쁨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징계 가운데서도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인하여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그분은 자신의 샤다이, 즉 자신의 힘과 만족이 되어 주실 것이다.
6. 엘 샤다이의 양식을 구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을 만큼 신실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므로, 우리를 분명히 돌보아 주실 것이다. 신학생들이 신학교에 들어갈 때, 나는 항상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는 언약의 말씀으로 그들을 격려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만일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그들이 학교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시간의 촉박함이나 과중한 공부, 헬라어나 히브리어, 학비 등과 같은 어려움들을 능히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라고 나는 학생들에게 약속한다. 그리고 몇몇 학생들은 20년이 지난 후에 나를 찾아와서, 바로 이 언약의 말씀 때문에 그때 신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목사가 될 수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거룩한 자비로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또한 거룩한 능력으로 우리의 울부짖음에 응답하신다. 야곱이 늙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는 손자들을 축복하고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엘 샤다이의 약속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창 49:25). 야곱은 엘 샤다이의 축복과 징계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었으므로 자기의 손자들이 여호와를 좇을 때, 그 두 속성이 그들을 인도할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우리 모두 이 엘 샤다이 되신 전능하신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 축복의 말씀 부르시어 당신께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자식들에게 이웃들에게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이며 이기게 하실 것이며 불굴의 의지로 야곱을 축복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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