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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교회여 보아라! (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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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살펴 볼 것이다. 이 일곱 교회들은 실제로 존재했던 교회들이다. 7교회 외에 밀레도. 아드라antepsh. 앗소. 드로아. 골로새. 히아라볼라. 등의 교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교회만 선택한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 것이다. 7교회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교회 역사의 일곱 시대로만 나누어 보는 것은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 요한 계시록은 해석하는데 있어서 과거적 해석법은 기록 당대의 상황에는 충실할 수 있으나 미래적 예언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고 극단적 미래주의 해석법은 미래의 예언에는 충실할지 모르지만 기록 당시의 정치. 사회. 종교적 상황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7교회에 대한 해석의 원칙은 (계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 이 내용을 해석의 열쇠로 삼아서 해석해 나갈 것이다.
1. 지역적인 측면 = 이 편지를 받는 저자 당시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2. 교훈적인 측면 = 모든 시대의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3. 개인적인 측면 = "귀 있는 자이기는 자" 주시는 개인적인 약속의 말씀이다.
4. 예언적인 측면 = 기록되던 때부터 종말때까지 교회의 영적인 일곱가지 모습을 나타내주는 말씀이다. 사도 요한 당시에 존재했던 7교회에 주신 말씀인과 동시에 전 시대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이다. 더 나아가서는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타락이 난무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교화와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위로와 책망과 권면의 말씀이기도 한다. 예수님의 첫 편지 수신처는 에베소 교회였다. 에베소 교회에 맨 먼저 편지를 보낸 이유는 3가지로 볼 수 있다.
1. 아시아에서 지도자적인 교회였기 때문이다.
2. 밧모섬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였기에 편지를 전하는 사자가 맨 먼저 도달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시도 요한의 모교회로서 초대교회를 대표했기 때문이다. 일곱교회를 살펴볼 때 일곱 단계를 살펴본 후에 각 교회를 살펴보자
1. 역사적 배경
2. 지리적 배경
3. 지명의 배경
4. 경제적 배경
5. 종교적 배경
6. 현재의 모습
7. 예언적 배경
' 에베소 교회 '
1. 예언적 배경 에베소는 페르시아. 헬라제국. 수리라 나라에 지배를 받아왔다 주전 133년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음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만들어져 갔다. 초기 기독교시대에는 매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도시였다.
2. 지리적 배경 항구 도시로서 소아시아 해안을 따라 있는 도시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소아시아 해안선을 따라 230여 개의 도시들이 점점이 있었는데 에베소는 이 해안도시들 가운데서 여왕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에베소의 매력은 천연의 항구뿐만 아니라. 내륙지역을 덮은 비옥한 땅이었다. "아시아의 빛" 또는 "아시아의 시장"으로 불리웠다
3. 지명의 배경 에베소는 헬라어로 (에페소스) 로서 "인내완만미끄러지다" 뜻이다.
4. 경제적 배경. 소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던 에베소는 거대한 상업 도시였다. 국제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세계의 허영의 시장"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이러한 에베소 항구에 1세기 중반에 항구가 흙으로 심하게 덮히게 되면서 에베소항 무역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5. 종교적 배경. 고대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아데미 여신의 신전이 있다. 이 신전은 길이가 110m 넓이는 54m 높이가 7m 직경이2m 인 117개의 기둥을 가지고 있다. 신전 경내에는 약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뜰이 있었다. 많은 유방을 달고 있는 거대한 아데미 여신상 다이아나는 음란한 것을 뜻하고 있다. 이 신전에는 도피권이 인정되어 어떤 중죄를 범한 자라도 이 신전에 다다르기만 하면 안전한 점을 악이용하여 범죄의 온상이 되었고 또한 이 신전에 전속되어 있는 수백명의 여사제들이 신전에서 창녀 노릇을 하므로 성적 타락의 중심지가 되었다. 에베소는 우상숭배만 만연한 도시일 뿐만 아니라 이방의 미신이 만연한 곳으로도 유명했는데 전 세계를 통하여 마술로도 유명하였다. (행19:19) 이러한 곳에 사도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때 열성적인 성도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교회를 세웠다. 에베소 교회 설립 배경에 대해서는 행18:18에서부터 잘 기록 되어있다 주후54-59년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6. 현재의 모습 "소아시아 지방의 최대 항구 도시"라는 에베소는 오늘날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에베소의 등잔은 넘어졌으며 에베소의 빛은 소멸되었다. 처음 사랑이 계속 이어지지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리라"는 말씀이 실현된 곳이다. 7. 예언적 배경. 예언적으로 에베소 교회는 사도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주후30-100년 초대교회를 예표하고 있다 예수 부활 승천 후 12제자들을 통해서 복음이 편만히 증거되었으나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모습도 나타났다. 당시 화폐에는 "나무 열매"가 그려져 있었는데 교회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열매 맺는 신앙이 되어야 할 것을 예언적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다. 첫 번째:수신처와 수신자 (계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 주님의 편지 수신처는 에베소 교회고 수신자는 에베소 교회의 사자다. 이 수신처와 수신자를 통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그 교회를 맡긴 주의 종들에게 먼저 말씀을 알려주고자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
 에베소 = 미끄러지다. 이 편지가 사도 요한에게 보내라고 명령이 내려졌을 때는 에베소 교회가 설립된지 4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던 1세대와는 달리 2세대에 접어들면서 첫 사랑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 편지는 1차적으로 사도 요한 당시의 에베소 교회의 신앙 상태를 촉구하는 주님의 음성을 될 것이지만 예언적으로는 사도 시대를 예표하고 있고 영적으로는 오늘날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전 세계의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사자 = 앙겔로 (헬) 교회의 목사를 뜻한다 "교회의 사자"도 역사적으로 에베소 교회를 맡은 주의 종을 의미하지만 예언적으로 사도 시대의 사도들에게 주어진 것이고 영적으로는 마지막 때에 사명적 받아 주의 일을 하는 종들에게 주어지는 편지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의 편지를 받아 본 에베소 교회 사자는 이 편지 내용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도들에게 전했을 것이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편지 내용의 말씀을 주의 사자로부터 듣고 저들은 회개한 자들도 있었겠지만 교회 전체적으로 볼 때 저들은 회개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 버렸다. 예언적으로 사도 시대에도 처음에는 초대 교회가 뜨겁게 부흥되어 갔지만 처음 사랑을 잃고 교회 안에 사단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을 보게 된다. 오늘날 교회들도 에베소 교회에 주어진 이 편지를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 보아야 할 것이다. 각 개인의 성도들도 에베소 교회 편지 내용을 가슴 깊이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처음 사랑을 교회와 성도들이 잃어버리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편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의 관심이 그 만큼 있다는 것이고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편지를 받은 교회의 목사는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해야 할 것이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 계시록 전체는 예언서이다. 당시에 교회에만 전해진 말씀이 아니다. 교회가 문제가 생기고 교회가 사랑이 식고 하는 것은 성도들의 책임보다는 목사의 책임이 더 크다. 우리는 에베소 교회에 주어진 이 편지 내용을 잘 보고 깨달아서 에베소 교회가 처음 가졌던 그 뜨거운 신앙을 우리도 가지고 주님 오시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1절 = ".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 에베소 교회의 비친 예수님의 모습은 2가지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
1.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으신 예수 그리스도.
2.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예수 그리스도.
 일곱 별 = 주의 사자 (계1:20) 에베소 교회 주의 사자를 붙잡고 계시고 있다. 예언적으로 사도 시대의 주의 사자들을 붙잡고 계신다. 영적으로 마지막 때에 주의 사자들을 붙잡고 계신다. 일곱 금 촛대 = 촛대는 교회다 (계1:20) 일곱 촛대 사이에 다니시고 있다는 것은 일곱 교회를 주님이 붙잡고 일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예언적으로 사도 시대 교회를 주님이 붙잡아 주었고 영적으로 마지막 때에 모든 교회들을 주님이 붙잡고 계시면서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요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에베소 교회는 참으로 참된 교회였다. 그리스도와 말씀에 충성한 교회였다. 그러나 교회 촛대 사이에 계신 예수님을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신앙 상태를 알 수 있다. 에베소서에는 "예수 인에서" 라는 말이 그 어느 서신보다 더 많이 들어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예수 안에 꼭 어있으라는 말씀이다. (엡5:16-18) "세월을 아끼라 ! 때가 악하니라 !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 ! " 이러한 에베소 교회를 주님은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계셨고 붙잡아 주고 계셨다. 그러나 언제까지 주님은 지켜보고만 계실 수는 없었다.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사도 시대에 주님은 끝까지 교회와 주의 사자들을 붙잡아 주셨다. 그러나 주님을 부인하고 떠난 자들에게는 주님은 떠나셨다. 한 예로 초대 교회 때 니골라 집사를 세웠지만 주님을 떠나버린 삶을 택하자 주님은 니골라를 버리셨다. 가룟 유다, 아나니라와 삽비라 사건도 그와 같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이러한 에베소 교회 같은 교회들이 무수히 자리하고 있다. 구라파, 영국, 미국,을 보라 우리나라 교회도 전체적으로 볼 때 그렇게 뜨거웠던 교회가 이제는 너무나도 조용하게 머물러 있다. 물론 뜨겁고 열심 있는 교회들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한국 교회가 전체적인 면으로 볼 때 에베소 교회 같은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지금도 주님은 촛대 사이에 다니시고 계신다. 그리고 주의 사자들을 붙잡아 주고 계신다 세 번째:칭찬을 하시는 예수님. 2-3절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고 하셨다. 칭찬을 아끼지 아니했다는 것은 그 동안 에베소 교회의 모든 활동을 다 보고 계셨다는 것이다.
 7가지로 칭찬하고 계신다.
1. 행위를 알고 말과 행위가 일치했다.
2. 수고를 알고 교회를 위해 헌신을 했다
3. 인내를 알고 예수 때문에 오는 환난과 핍박을 참았다.
4.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음을 알고 불의와 타협하지 아니했다
5. 자칭 사도를 분별한 것을 알고 거짓 사도들을 분별할 줄 일았다 두아디라 교회는 거짓된 무리들을 분별 못하고 거짓된 것들에게 미혹되었다. 6. 주의 이름을 위하여 참고 견디는 것을 알고 예수 때문에 찾아오는 핍박을 다 참았다. 7.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대단한 교회 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고 자세히 알고 계신다. 우리들 교회 사정과 행위를 낱낱이 알고 계신다. 에베소 교회는 그들이 믿음 안에서 온전한 행함을 나타내었다고 칭찬 받았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처음 방문했을 때 그 도시에 믿는 자가 12명 밖에 안되는 극히 미약한 상태였다. 12명의 신앙도 나약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행19: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 '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 그들은 성령님에 대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 바울은 3개월 동안을 말씀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며 3년 동안을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며 성도들을 양육했다. '행20:3
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 이렇게 양육된 에베소 성도들은 믿음의 행함을 온전히 나타내었다.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예수 때문에 찾아오는 핍박과 어려움을 믿음으로 참으며 그 어떤 악한 자들과 타협하지 아니했다. 교회 안에 침투해 들어올려는 거짓된 세력들을 잘 분별해서 교회 안에 발도 못 붙이게 했다. 이렇게 열심 있는 교회였고 성도들이었다.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사도 시대를 예표하는 에베소 교회를 볼 때 초대 교회 때 사도의 교회들이 얼마나 열심이었는가 얼마나 헌신적이었는가 하나 뿐인 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아니했다 죽으면 죽으리라의 신앙들을 가지고 있었다 구라파도 처음에 복음을 접하고 세계선교에 그들이 얼마나 헌신 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초창기에 주님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가 오늘날도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주님을 위해서 교회에 물질로 헌신하고 몸으로 헌신하는 자들이 이 땅에 있는 한 주님의 칭찬은 끓이지 않을 것이다. 신앙 생활하는데 어려움과 핍박이 와도 꿋꿋히 신앙 정결을 지키며 갖은 고난을 참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거짓된 세력들을 분별하면서 오직 예수 신앙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성도 여러분 ! 우리도 주님에게 칭찬 받을 수 있는 점이 있습니까 에베소 교회를 7가지로 주님이 칭찬 하셨는데 우리도 7가지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자 들입니까 칭찬 받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신앙 생활에 열심이 없다는 것이다. 헌신적인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위한 개인주의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잘했다 충성된 종아" 말씀을 들어야 할 것이다 (마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 할지어다 하고 "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 우리는 교회에서 세상에서 주님께 칭찬 받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찾아보는 자가 된다면 칭찬 받을 일들이 우리들 앞에 수 없이 널려 있을 것이다.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할 때 주님께 칭찬을 받을 것이다. 에베소 교회에 하신 주님의 칭찬이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네 번째:책망하시는 예수님 4절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 칭찬은 하신 후에 강한 책망을 하셨다. 그 책망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했으며. 올바른 믿음을 갖고 있었고. 심지어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싸울 준비까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교회 일에만 열심이었다. 주님은 그러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신 것이다.
 사랑에 대한 헬라어는 4가지 단어를 사용한다
1. 스톨케 동포애 적인 사랑이다
2. 에로스 이성간의 사랑이다.
3. 필레오 친구간의 우정을 말한다.
4. 아가페 희생적인 사랑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주로 아가페와 필레오가 사용되고 있다. 본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아가페 적인 희생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만이 베풀 수 있는 사랑이다. 에베소 교회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교회를 위하여 너무나 열심히 일을 하는 그들이었지만 자신들의 정통주의를 고수하려는 그들의 열성이 그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하고 말았다. 사실 예수를 위하여 너무 열심히 일하다 보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잊을 경우가 많다. 에베소 교회도 처음에는 그러한 사랑의 교제를 주님과 나누었지만 교회의 행사에 맡겨진 일에 바쁜 일정 속에서 교회는 점점 형식과 의식주의로 되어 가버렸다. 거짓된 무리들과 싸웠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교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 것이지 그리스도 사랑 때문에 싸운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모습은 그렇게 뜨거웠던 초대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에도 나타났다. 3000 명씩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예루살렘 교회는 점차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행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행 6장 구제와 봉사를 놓고 서로 싸우게 되었고 행 8장 성령님의 능력을 돈으로 살려는 마술쟁이 시몬까지 교회 안에 들어와 판을 쳤다. 행15장 율법과 복음을 놓고 구원에 대한 논쟁까지 벌였다. 왜 이렇게 뜨거웠던 예루살렘 교회가 이렇게 되었는가 처음 사랑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교회 생활에 열심 있는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오늘날 성도들이 말씀을 너무 잘 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잘하고 교회 일에 충성하고 맡겨준 일에 열심을 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기쁨이 없다. 물론 그들의 수고와 인내 열심 주님께 칭찬 받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한다면 책망 또한 못 면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일은 예수의 사랑에서 시작하고 예수의 사랑에서 마쳐야 할 것이다 .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 십자가의 사랑이다. 나를 위해서 예수 자신의 십자가에서 몸을 아낌없이 드려서 나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이다. 누구나 우리가 처음 예수 믿을 때 이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고 모두 울었었다. 이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해서 얼마나 우리가 울었던가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예수에 대해 아는 것은 더 많은데 교회 일도 더 열심히 하는데 우리의 가슴에 이 십자가 사랑이 없어져 버렸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그렇다.교회 강단에서 예수 십자가 복음의 소리가 작아졌다. 십자가 사랑이 없는 복음은 있을 수 없다. 십자가에서 주님의 죽으심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죄가 사함 받고 구원 받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예수의 사랑이 없이 한다면 그것은 곧 형식이고 외식에 불과 한 것이다. '고전13:1-
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여기에서 나오는 사랑은 모두 아가페 사랑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주님의 아가페 사랑이 없다면 무엇을 하더라도 모든 것이 다 헛일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아가페 사랑 없이도 인간은 구제를 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놓을 수 있다. 예수의 사랑을 모르고도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고 평생을 그런 단체에 몸 바쳐 살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교회에서도 주님의 아가페 사랑 없이도 형식적으로 교회 일에 충성하고 열심을 낼 수 있다. 어떤 직책에 매여서. 주위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또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헌신할 수있다. 물론 그런 충성. 열성 주님께 칭찬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의 아가페 사랑 없이 한다면 주님께 책망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어떤 일을 정성껏 했는데 칭찬보다는 책망을 더 강하게 받은 다면 기분이 어떠하겠는가 주님의 아가페 사랑을 잊어버리고 무슨 일을 한다면 그 일 자체는 칭찬을 받을지 몰라도 나 자신에게는 촛대가 옮겨 버리는 비참한 일을 만날 수 있다. 에베소 교회에 책망은 결국은 네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다고 했는가 촛대를 옮겨 버리겠다고 하셨다. 결국 이 말씀은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는 것이다. 십자가 사랑 없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아담을 창조하신 것은 복음으로 온 세상을 구원시키려는 목적만 가진 게 아니었다. 에덴동산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가 큰 교회를 지으려고 하신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아담과의 깊은 사랑의 교제를 원하셨다. 아담은 그 사랑을 저버렸다. 성도 여러분 ! 우리의 하는 일에 혹시나 예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교회 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일찍이 이 예수의 사랑의 비밀을 깨달은 자였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의 사랑에 대해서 수 없이 말하고 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결론' 에베소 교회는 훌륭했다. 그러나 처음 사랑을 버렸다. 에베소 교회의 금촛대는 영원히 옮기어 지고 말았다. 옛날 그 교회들의 전성기를 자랑하던 폐허에서 지금은 흔적마저도 찾아 볼 수 없는 교회가 되었다. 그 뜨거웠던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 처음 사랑을 저버리므로 이 땅에서 역사적으로 남기기만 하고 사라져 버렸다.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를 옮겨 버리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에베소 교회는 계속 처음 사랑을 되찾지 않고 자신들의 열심만 내세우고 말았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외양은 훌륭하지만 속이 썩고 있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사랑이 메말라 가는 현상이다. 아니 처음부터 사랑으로 시작하지 아니하는 교회들이 너무도 많다. 은사의 경험은 많지만 사랑의 경험은 없다. 은사는 한국 교인들을 열심있게 하는 반면 교만하고 비뚤어지게 한다. 사랑을 체험하는 성도들, 처음 사랑을 가지는 교회들이 되어야 한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주님은 그 자리에서 금촛대를 옮기실 것이다. 지금 그 예수의 사랑이 이 땅에서 퇴색되어져 가고 있다. 다시 한번 우리는 예수의 그 뜨거운 처음 사랑을 되찾지 아니하면 안될 것이다. 교회 성장. 교회 건축. 교회 행사. 성경 공부. 은사적 활동 모두 다 좋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수의 처음 사랑을 회복치 못한다면 우리도 에베소 교회처럼 책망을 못 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주님 오시기 전에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이 땅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겠는가 이 시대 교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너무 어렵다고 힘들다고 교회를 마음대로 없애 버리는 현실 앞에 우리는 역사속에서 사라져 버린 에베소 교회를 조용히 생각해보자. 에베소 교회 모습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고 처음사랑을 회복하고 회개를 게으르게 하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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