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에배소 교회의 모습 (계2:1-7)

본문

우리의 인생의 삶을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선는 육체의 건강과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그러나 영적 건강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도 생각 해야합니다. 육체보다도 정신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영적 건강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 건강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않됩니다. 우리가 매주일 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들 드린다고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일수가 있습니다. 교회를 수십년 다녔다고 해서 다 영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건강상태를 점검해 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초대교회중의 하나인 에배소 교회를 택해서 우리의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고자합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7교회는 모두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교회들입니다.
또한 7교회에 나타났던 사건들 역시 역사적인 사실들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교회시대에 있었던 모든 교회의 형태를 그림자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들도 7교회와 같은 단점과 장점을 다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7교회에 주신 말씀을 한교회 한교회 분류해보게 되면 7가지 내용이 있는데 먼저 주님은 그 교회에 상태에 따라 각기 나타나시는 모습이 다릅니다. 어두운 교회는 빛으로 나타나시고 병든 교회는 의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는 칭찬과 책망과 권면과 경고와 약속과 끝으로 "귀있는자는 들을지어다" 라는 말씀과 함께 종결 지으십니다. 이 짧은 시간에 다 말씀드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걸쳐 칭찬에 대해서만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에배소 교회는 지금의 터키 서부 항구지역입니다. 1세기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서는 가장 중심되는 도시로서 육로와 해로의 교통 요지였습니다. 그래서 상업이 발달했고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죄악이 관영한 도시였습니다. 특별히 아테네(다이아나) 여신을 섬기는 큰 신전이 있었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대표적 도시였습니다. 또한 로마와 깊이 관련된 도시기에 황제숭배도 강요된 도시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세속도시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던 대표적인 도시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3년동안 복음을 증거하며 교회를 세웠고 후임으로 디모데와 사도요한이 목회했던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에배소 교회는 창립한지 약40년이 지난 이후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이교회에 7별을 붙잡고 계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너희들 보기에 이 교회가 이런 저런 복잡한 문제로 한심스럽게 보일런지는 모르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그래도 이 교회의 주인은 나다.
그러므로 이 교회와의 관계를 소홀히 하지 말라" 이러한 격려와 위로를 하시기 위해 7촛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6가지를 칭찬하셨습니다. 에배소 교회가 받은 칭찬을 더듬으면서 하나님께 과연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교회인가 나는 예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성도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첫번째 칭찬은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2) 이 말씀의 의미는 "내가 네 행위를 보니 과연 칭찬할만 하구나"라는 뜻일 겁니다. 여기서 행위란 믿음이 생활화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믿는대로 행함이 뒤따르는 너희들의 모습이 과연 칭찬할만 하다는 뜻입니다. 믿음 다르고 생활이 다른것이 아니라 믿음과 생활이 같다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믿음은 생활속에서 삶의 행위로 증명되어져야만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인격으로 설명 되어져야만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얻는다고 해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생각합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는다고 해서 너무 십게 생각합니다. 회개하면 다 용서한다니까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는 그것이 생활로 증명되어져야 하며 십자가의 은혜는 인격으로 증명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님은 생명이 없는 몸은 죽은 몸이듯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던 것입니다. 이시간 주님이 이자리에 오셔서 우리를 감찰하실 때 우리나름대로 자랑할 것이 있겠죠. 기도를 많이 했노라도 성경지식이 있노라고, 신학지식이 있노라고, 교회 직분을 가졌노라고, 신앙연륜이 얼마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러나 네 믿음의 행함이 얼마뇨"라고 물으실 때 머리를 들고 담대히 말할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안믿는자와 구별된 삶을 살지 못했던 우리라면 주님께 한마디의 칭찬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 에배소 교회에 말씀하신 "네 행위를 안다"는 말씀은 믿음의 행위됨을 칭찬하신 말씀입니다.
2. "네 수고를 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이 말의 뜻은 믿음을 지키면서 그 믿음이 생활화하기 위해 했던 그 수고를 내가 안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생활화되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수고가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성도를 말하기를 이리떼 가운데 양과 같이 사는 것이라고, 울부짖는 사단의 소굴에 사는 것이라고, 어둠속에 빛과 같이, 부패된 곳에 소금과 같이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진정한 삶속에는 핍박과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길 영생으로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어려움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역사 2000년을 살펴보아도 오늘날의 놀라운 복음확장은 먼저 믿은 믿음의 선진들이 고생과 수고를 기꺼이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 100년사도 먼저 믿은 선진들의 피와 땀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위해, 믿음지키기 위해, 주님 사랑하기 위해, 주님 섬기기에, 교회 부흥위해 과연 수고했습니까 주님을 향한 신앙에는 반드시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맹점은 수고없이 편하게 예수 믿으려는데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라면, 교회를 위해서라면 수고를 아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에배소 교회와 같이 칭찬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믿음을 위한 수고가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고에는 반드시 인내가 필요합니다. 에배소 교회에 이것이 있었고 주님은 이것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참기 어려운 긴 세월이었습니까 참고 참고 또참고 여가까지 왔으니 참으로 갸륵하구나. 이것을 칭찬하신 말씀입니다. 춘향전을 보면 춘향이가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하다가 옥에 갇혀 마침내 변사또의 생일날 죽는 자리에 까지 오게 됩니다. 그러나 춘향이는 여인의 절개를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보입니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그토록 사모하던 이도령이 암행어사로 출두합니다. 이제 고난이 끝났습니다. 위협도 끝났습니다. 죽음의 절망도 끝났습니다. 이제 춘향이에게 남은 것은 이도령의 사랑과 절개지킨 영광뿐입니다. 주님위한 여러분의 절개, 과연 춘향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위해 얼마나 절개를 지켰으며, 얼마나 수고했으며 얼마나 인내해 왔습니까 직분을 가졌다고 칭찬받는 것 아닙니다. 믿음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으며 그 수고를 얼마나 인내했는가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에배소 교회는 이것을 갖추었기에 주님으로 부터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4. 악을 용납하지 않은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양면이 있었는데 사회적인 악이 자꾸 교회안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고 또한 내부적인 악이 자꾸 교회를 좀먹어가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인 악은 안일주의, 향락주의, 황금만능주의, 과학만능주의, 쾌락주의.등의 것들로서 자꾸 교회안으로 침투해 들어오니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서 선이 희미해 집니다. 신자와 불신자 사이가 희미해 집니다. 죄와 선 사이가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것들을 용서하지 않는 날카로움이 필요했습니다. 에배소 교회는 바로 이 선을 정확하게 그었던 것입니다. 또한 비 성경적이고 비신앙적이고 비 복음적이며 비 신학적인 사이비적 요소들이 교회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것을 용납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니골라당은 노스틱 사상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말해 육체의 죄는 죄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초대교회에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배소 교회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바로보고 바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것을 용납하게 될 때 진리고 복음이고 뭐고 다 잠식당하고 맙니다. 선을 분명히 긋지 않으면 교회인지 세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악을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5. 거짓 사도와 거짓 진리를 밝혀냈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사회적인 악은 물론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만 영원문제까지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진리문제는 영이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날카로와야 합니다. 바울의 경우를 보면 방법적인 면에서는 모든 것을 다 양보했지만(율법문제, 우상제물 문제, 이방인과의 문제.)복음문제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늘의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지금 시대는 과거와 다릅니다. 그렇기에 신앙의 선을 긋는데 그 어느때 보다 날카로와야 합니다. 어느것이 진리이고 어느것이 비진리인지, 어느것이 성경적이고 어느 것이 비 성경적인지 날카롭게 구분해야 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우리는 진리의 지도와 복음의 나침판을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지옥이라는 골짜기에 빠져들게 되버리고 말기 대문입니다. 6. 주님이 미워하시는 니골라당을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니골라당은 이미 말씀드렸듯이 교회내에 잘못된 신앙운동이었습니다.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안에 있는 합리주의, 인본주의, 쾌락주의, 세속주의.등입니다. 주님이 미워하셨던 이것을 미워할 때 주님의 칭찬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길이 주님 원하시는 길이기에, 이길을 안갈 수 없습니다. 이길 가야만 주님께 칭찬받을 수 있고 마지막 오시는 주님 맞이할 때 칭찬받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853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