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림 예수의 모습 (계1:4-6)
본문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계시를 받은 사도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7 교회에 편지를 했다. 그 계시의 편지가 바로 이 요한 계시록이다. 교회들을 위해서 예수께서 보내신 특별한 책이 요한 계시록이다. 그 증거로 계 22:16 에서 주님이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 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그러므로 교회들은 전 성경을 알어야 되듯이 계시록 또한 분명히 알어서 성도들에게 가르쳐야만 한다 진정코 주님의몸된 교회라면 계시록을 덮어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때가 때인 만큼 더욱 계시록을 열고 선포해야 할 것이다 2장 3장에서 7교회 모습이 나온다. 일곱 교회의 모습을 과거주의 해석학파들 처럼 당시에 존재했던 7 교회에만 주신 말씀이다고 해석한다면 성경해석에 엄청난 오류를 범하게 된다. 계시록의 내용이 "장차 될 일" 이라는 원리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사도요한이 아시아 7교회에 보낸 편지지만 이 편지는 사도 요한 임의대로 보낸 것이 아니다.
10절 "주의 날에 내가 성령님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 그리고 11절에서 일곱 교회 이름이 나온다.
그러므로 이 7교회는 단순한 7교회로 보는 것은 계시록의 깊은 뜻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장차 될 일들이 무수히 기록된 이 계시록을 7교회를 이름을 정해서 계시를 주신데 에는 예수님의 깊은 뜻이 있다.
그러므로 7교회는 당시에 있는 교회에만 극한 되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이 계시록 결론에서 계22:16 에서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 하게 하였노라 " 7교회는 어떤 상징적으로 나타낸 교회라는 것을 깨닫자. 장차 될 사건들로서 당시에 7교회를 정하여 교회들에게 이 계시록을 주셨다면 이 7교회의 모습이 오늘날도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존재 할 수 있다고 보아야만 한다. 당시에 7교회 말고도 많은 교회가 있었는데 왜 하필 이 7교회만 택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거기에는 분명히 7교회의 이름과 특색이 앞으로도 있을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정했을 것이다. 7교회 모습을 살펴볼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더욱 확실히 놀랍게 깨닫게 될 것이다. 왜 이렇게 7교회 말씀을 하는가 하면 이 계시록이 교회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성경 65권과 똑같이 이 계시록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고 교회에서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제 1장에서 부터 5장까지 모습이 나온다. 초림예수 모습. 재림예수 모습. 여호와 하나님 모습. 사도 요한 모습. 2장 3장 교회 모습이 또 나오고 4장 천국 모습이 나오고 5장 드디어 인봉한 책을 떼고 계시가 쏟아진다 이 계시가 교회에 주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달아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한 것이다. 1:4-6절 초림예수의 모습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초림의 예수의 없이는 재림 예수는 있을 수 없다. 이 땅에 초림으로 오신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 이 땅에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성경에 초림 예수에 대해서 약 360회 기록되어 있는데 비해 재림은 무려 약1560 회 기록 되어있다는 것만 보아도 성경은 재림에 더욱 깊은 뜻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한다
그러나 예수가 이 땅에 오시지 아니했다면 인류는 구원받을 길이 없었다. 재림 예수도 중요하지만 초림 예수 또한 얼마나 우리에게 귀한 시간인가 그러면 자세히 살펴보자 ! 4-6절까지 초림 예수의 7대 모습이 나타난다. 1:4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1)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 장차 오실 이. 일곱 교회에 문안 인사를 먼저 예수 그리스도 영원성부터 말함으로 인사 편지를 시작한다. 그 예수는 하나님 보좌 앞에 일곱 영과 함께 계셨다. 그 모습은 영원성이었다. 삼위일체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었다.
이제도 계시고 현재는 물론이고 계속해서 계시는 상태를 뜻. 전에도 계시고 계신 상태가 언제인지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는 알 수 없는 상태을 뜻한다. 장차 오실 이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의미다. 즉 현재적이면서 영원성을 나타내고 있다. 보좌 앞 하나님 보좌를 말함. 일곱 영 성령님으로 본다. 보좌 하나님 그 보좌 앞에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삼위일체의 위치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요 1:2-3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다. 예수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하나님과 함께 창조 사역에 함께 하셨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성령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 항상 삼위일체로 이제도 전에도 장차 에도 함께 하실 것이다. 삼위일체를 바로 아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삼위일체를 바로 알아야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게되고 성령님을 가장 잘 아는 성도가 된다.
삼위일체란 우리가 믿고있는 신에는 삼위(三 位)가 있는데 그 삼위가 한 실체를 이루고 있다. 즉 ㅋ으로 보기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 세분이 따로 계시는 것 같으나 사실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분이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삼위 일체론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우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 하나 이상의 수의 인격이 있음을 가르쳐 주는 표현이다. 예수님도 곳곳에서 하나님과 하나됨을 말씀 하셨다.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14:9-11)"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삼위일체를 쉽게이해하려면 자연 속에 찾아보면 된다. 태양 본체. 빛. 열. 물 고체. 기체. 액체. 나무 뿌리. 열내. 줄기. 곤충 알. 누에. 나비. 꽃 본체. 색깔. 향기. 우리 인간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사람 영. 혼. 육. 이러한 삼위는 시간상 동일함을 항상 함께 하신다. 세분이 하나라는 뜻은 사실 모순되는 말이긴 하지만 기독교는 이 삼위가 무너져 버리면 모든 신학이 다 무너진다. 인간의 머리로 하나님에 대한 것을 온전히 알기란 무리다.
그 삼위를 지금 사도 요한은 일곱 교회에 맨 처음 인사로 말하면서 편지를 쓰고 있다. 이것은 사도 요한도 그만큼 삼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정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부인한다면 온전한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성령님을 믿지 못하고 신앙생활 한다면 그 신앙은 선장이 없이 표류하는 난파선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계시록에서는 그 성령님을 일곱 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곱 영이라는 용어가 3번 나온다 (계3:1, 4:5, 5:6) 일곱 수는 완전수로 볼 때 강력한 성령님의 역사가 계시록에서 나타난다. 초대교회 같은 성령님충만 함이 다시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그러하기를 바라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동시에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온전히 의지해야만 할 것이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서두에 삼위를 나타내 보인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삼위일체를 부인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신앙이 아무리 뜨겁고 열심일지라도 우리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 삼위 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5절 충성된 증인
2) 충성의 모습.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3) 부활의 첫 열매 땅의 임금들의 머리
4) 머리되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5) 은혜의 근원.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구원의 주. 6절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7)나라와 제사장 삼으신 초림예수의 6가지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충성. 부활, 왕, 은혜, 구원, 우리를 제사장 삼으신, 6가지 초림 예수의 모습을 사도 요한은 일곱 교회에 먼저 인사로 대신하고 있다. 초림 예수가 없는 재림 예수는 있을 수 없다. 초림 예수가 없이 우리의 구원 있을수 없다.
1. 충성된 증인 선지자직. 선지자에게는 오직 충성 뿐이다. 그 무엇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만을 전하다가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는 자가 선지자다. (신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2.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사심 부활의 첫 열매. 이는 제사장직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히3:1)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
3. 땅의 임금들의 머리 그리스도의 왕직을 의미한다. (계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예수로 시작된다. (계22:13) "나는 알파의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5.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십자가의 대속의 피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6.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삼으신 만인 제사장 선포이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왜! 사도요한은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서두에 초림예수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말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이제 앞으로 닥칠 환난을 이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앞으로 사단과 적그리스도 세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조금도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는 승리가 보장 되어있다. 선지자적 사명으로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신 예수를 의지하시기 바람. 사망권세 이기신 예수를 의지하시기 바람. 왕중의 왕이신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되고 끝난다는 것을 믿자. 십자가 피로 우리의 더러운 죄가 사함 받았고 저주에서 해방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람. 우리가 이 사실을 믿으면 그 어떤 환난이 올지라도 두렵지 않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왜 그렇게 두려움을 몰랐을까요 바로 이 초림예수의 모습이 그들에게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성도 여러분 ! 예수를 믿으십니까 초림예수는 우리를 또 제사장 삼아 주셨다. 이것은 어떤 제도적인 제사장이 아니다. 영적 제사장을 말한다. 제도적 제사장은 목사이다. 성도가 나도 제사장이다고 목사와 동등한 자리에 올라서려고 하면 큰일이다. 만인 제사장 시대라는 것은 영적으로누구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그의 피로 우리 죄를 다 사해 주셨는데 또 우리의 그의 나라 제사장 삼아 주셨는데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 환난이 온다고 그 환난 속에 우리를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십니까 일곱 교회에 보낸 사도 요한의 편지는 지금 우리 주님의 교회 성도들에게 지금 읽어지고 있다. 우리에게 지금 주님은 내가 초림에 이런 모습으로 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믿으십니까 반드시 이 사실을 믿고 계시록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초림 예수의 모습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앞으로 닥칠 무서운 환난에 이길 방법이 없다. 초림 예수를 모르면 재림 예수를 알 수가 없다. 초림 예수를 믿지 못하고 재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있을수 없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왜 만인 제사장을 삼으셨을까요 여기에 목적이 분명히 나온다.
6절
1.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2.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마지막 때에 우리가 제사장들이라면 우리는 예배드리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구약에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듯이 지금도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와 만나 주신다. 초림 예수를 만나시고 의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초림 예수가 없이는 재림 예수는 있을 수 없다. 초림 예수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재림 예수 영접할 수 없다. 재림 예수가 중요하듯이 초림 예수 또한 중요하다. 어떻게 우리가 초림 예수를 모르고 재림 예수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가지 우리에게 초림 예수를 알게 하신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 예수를 알기를 원하신다. 초림 예수에만 머물러 있는 신앙은 진정한 예수를 아직 모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 요한도 재림 예수를 강조 하기 전에 일곱 교회에 먼저 초림 예수로 인사를 한 것은 초림 예수 중요성을 먼저 밝히고자 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바로 이어서 재림 예수를 또 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다. 그 어디를 보아도 마지 막 때이다. 이러한 때 우리들이 초림 예수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재림 예수를 알기 원해서는 초림 예수에 대해서 뜨거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초림 예수의 모습이 뜨거움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는 담대히 재림 예수를 소망 삼을 수 있을 것이고 단장한 신부의 모습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이 될 것이다. 이 땅에 인간의 육을 입으시고 오셔서 철저하게 배척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이제 머지않아 이 땅에 심판 주로서 오시게 될 것이다. (행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교회들은 전 성경을 알어야 되듯이 계시록 또한 분명히 알어서 성도들에게 가르쳐야만 한다 진정코 주님의몸된 교회라면 계시록을 덮어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때가 때인 만큼 더욱 계시록을 열고 선포해야 할 것이다 2장 3장에서 7교회 모습이 나온다. 일곱 교회의 모습을 과거주의 해석학파들 처럼 당시에 존재했던 7 교회에만 주신 말씀이다고 해석한다면 성경해석에 엄청난 오류를 범하게 된다. 계시록의 내용이 "장차 될 일" 이라는 원리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사도요한이 아시아 7교회에 보낸 편지지만 이 편지는 사도 요한 임의대로 보낸 것이 아니다.
10절 "주의 날에 내가 성령님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 그리고 11절에서 일곱 교회 이름이 나온다.
그러므로 이 7교회는 단순한 7교회로 보는 것은 계시록의 깊은 뜻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장차 될 일들이 무수히 기록된 이 계시록을 7교회를 이름을 정해서 계시를 주신데 에는 예수님의 깊은 뜻이 있다.
그러므로 7교회는 당시에 있는 교회에만 극한 되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이 계시록 결론에서 계22:16 에서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 하게 하였노라 " 7교회는 어떤 상징적으로 나타낸 교회라는 것을 깨닫자. 장차 될 사건들로서 당시에 7교회를 정하여 교회들에게 이 계시록을 주셨다면 이 7교회의 모습이 오늘날도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존재 할 수 있다고 보아야만 한다. 당시에 7교회 말고도 많은 교회가 있었는데 왜 하필 이 7교회만 택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거기에는 분명히 7교회의 이름과 특색이 앞으로도 있을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정했을 것이다. 7교회 모습을 살펴볼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더욱 확실히 놀랍게 깨닫게 될 것이다. 왜 이렇게 7교회 말씀을 하는가 하면 이 계시록이 교회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성경 65권과 똑같이 이 계시록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고 교회에서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제 1장에서 부터 5장까지 모습이 나온다. 초림예수 모습. 재림예수 모습. 여호와 하나님 모습. 사도 요한 모습. 2장 3장 교회 모습이 또 나오고 4장 천국 모습이 나오고 5장 드디어 인봉한 책을 떼고 계시가 쏟아진다 이 계시가 교회에 주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달아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한 것이다. 1:4-6절 초림예수의 모습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초림의 예수의 없이는 재림 예수는 있을 수 없다. 이 땅에 초림으로 오신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 이 땅에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성경에 초림 예수에 대해서 약 360회 기록되어 있는데 비해 재림은 무려 약1560 회 기록 되어있다는 것만 보아도 성경은 재림에 더욱 깊은 뜻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한다
그러나 예수가 이 땅에 오시지 아니했다면 인류는 구원받을 길이 없었다. 재림 예수도 중요하지만 초림 예수 또한 얼마나 우리에게 귀한 시간인가 그러면 자세히 살펴보자 ! 4-6절까지 초림 예수의 7대 모습이 나타난다. 1:4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1)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 장차 오실 이. 일곱 교회에 문안 인사를 먼저 예수 그리스도 영원성부터 말함으로 인사 편지를 시작한다. 그 예수는 하나님 보좌 앞에 일곱 영과 함께 계셨다. 그 모습은 영원성이었다. 삼위일체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었다.
이제도 계시고 현재는 물론이고 계속해서 계시는 상태를 뜻. 전에도 계시고 계신 상태가 언제인지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는 알 수 없는 상태을 뜻한다. 장차 오실 이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의미다. 즉 현재적이면서 영원성을 나타내고 있다. 보좌 앞 하나님 보좌를 말함. 일곱 영 성령님으로 본다. 보좌 하나님 그 보좌 앞에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삼위일체의 위치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요 1:2-3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다. 예수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하나님과 함께 창조 사역에 함께 하셨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성령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 항상 삼위일체로 이제도 전에도 장차 에도 함께 하실 것이다. 삼위일체를 바로 아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삼위일체를 바로 알아야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게되고 성령님을 가장 잘 아는 성도가 된다.
삼위일체란 우리가 믿고있는 신에는 삼위(三 位)가 있는데 그 삼위가 한 실체를 이루고 있다. 즉 ㅋ으로 보기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 이 세분이 따로 계시는 것 같으나 사실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분이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삼위 일체론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우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 하나 이상의 수의 인격이 있음을 가르쳐 주는 표현이다. 예수님도 곳곳에서 하나님과 하나됨을 말씀 하셨다.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14:9-11)"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삼위일체를 쉽게이해하려면 자연 속에 찾아보면 된다. 태양 본체. 빛. 열. 물 고체. 기체. 액체. 나무 뿌리. 열내. 줄기. 곤충 알. 누에. 나비. 꽃 본체. 색깔. 향기. 우리 인간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사람 영. 혼. 육. 이러한 삼위는 시간상 동일함을 항상 함께 하신다. 세분이 하나라는 뜻은 사실 모순되는 말이긴 하지만 기독교는 이 삼위가 무너져 버리면 모든 신학이 다 무너진다. 인간의 머리로 하나님에 대한 것을 온전히 알기란 무리다.
그 삼위를 지금 사도 요한은 일곱 교회에 맨 처음 인사로 말하면서 편지를 쓰고 있다. 이것은 사도 요한도 그만큼 삼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정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부인한다면 온전한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성령님을 믿지 못하고 신앙생활 한다면 그 신앙은 선장이 없이 표류하는 난파선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계시록에서는 그 성령님을 일곱 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곱 영이라는 용어가 3번 나온다 (계3:1, 4:5, 5:6) 일곱 수는 완전수로 볼 때 강력한 성령님의 역사가 계시록에서 나타난다. 초대교회 같은 성령님충만 함이 다시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그러하기를 바라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동시에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온전히 의지해야만 할 것이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서두에 삼위를 나타내 보인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삼위일체를 부인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신앙이 아무리 뜨겁고 열심일지라도 우리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 삼위 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5절 충성된 증인
2) 충성의 모습.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3) 부활의 첫 열매 땅의 임금들의 머리
4) 머리되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5) 은혜의 근원.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구원의 주. 6절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7)나라와 제사장 삼으신 초림예수의 6가지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충성. 부활, 왕, 은혜, 구원, 우리를 제사장 삼으신, 6가지 초림 예수의 모습을 사도 요한은 일곱 교회에 먼저 인사로 대신하고 있다. 초림 예수가 없는 재림 예수는 있을 수 없다. 초림 예수가 없이 우리의 구원 있을수 없다.
1. 충성된 증인 선지자직. 선지자에게는 오직 충성 뿐이다. 그 무엇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만을 전하다가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는 자가 선지자다. (신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2.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사심 부활의 첫 열매. 이는 제사장직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히3:1)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
3. 땅의 임금들의 머리 그리스도의 왕직을 의미한다. (계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예수로 시작된다. (계22:13) "나는 알파의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5.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십자가의 대속의 피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6.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삼으신 만인 제사장 선포이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왜! 사도요한은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서두에 초림예수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말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이제 앞으로 닥칠 환난을 이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앞으로 사단과 적그리스도 세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조금도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는 승리가 보장 되어있다. 선지자적 사명으로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신 예수를 의지하시기 바람. 사망권세 이기신 예수를 의지하시기 바람. 왕중의 왕이신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되고 끝난다는 것을 믿자. 십자가 피로 우리의 더러운 죄가 사함 받았고 저주에서 해방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람. 우리가 이 사실을 믿으면 그 어떤 환난이 올지라도 두렵지 않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왜 그렇게 두려움을 몰랐을까요 바로 이 초림예수의 모습이 그들에게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성도 여러분 ! 예수를 믿으십니까 초림예수는 우리를 또 제사장 삼아 주셨다. 이것은 어떤 제도적인 제사장이 아니다. 영적 제사장을 말한다. 제도적 제사장은 목사이다. 성도가 나도 제사장이다고 목사와 동등한 자리에 올라서려고 하면 큰일이다. 만인 제사장 시대라는 것은 영적으로누구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그의 피로 우리 죄를 다 사해 주셨는데 또 우리의 그의 나라 제사장 삼아 주셨는데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 환난이 온다고 그 환난 속에 우리를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십니까 일곱 교회에 보낸 사도 요한의 편지는 지금 우리 주님의 교회 성도들에게 지금 읽어지고 있다. 우리에게 지금 주님은 내가 초림에 이런 모습으로 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믿으십니까 반드시 이 사실을 믿고 계시록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초림 예수의 모습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앞으로 닥칠 무서운 환난에 이길 방법이 없다. 초림 예수를 모르면 재림 예수를 알 수가 없다. 초림 예수를 믿지 못하고 재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있을수 없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왜 만인 제사장을 삼으셨을까요 여기에 목적이 분명히 나온다.
6절
1.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2.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마지막 때에 우리가 제사장들이라면 우리는 예배드리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구약에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듯이 지금도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와 만나 주신다. 초림 예수를 만나시고 의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초림 예수가 없이는 재림 예수는 있을 수 없다. 초림 예수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재림 예수 영접할 수 없다. 재림 예수가 중요하듯이 초림 예수 또한 중요하다. 어떻게 우리가 초림 예수를 모르고 재림 예수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가지 우리에게 초림 예수를 알게 하신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 예수를 알기를 원하신다. 초림 예수에만 머물러 있는 신앙은 진정한 예수를 아직 모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 요한도 재림 예수를 강조 하기 전에 일곱 교회에 먼저 초림 예수로 인사를 한 것은 초림 예수 중요성을 먼저 밝히고자 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바로 이어서 재림 예수를 또 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다. 그 어디를 보아도 마지 막 때이다. 이러한 때 우리들이 초림 예수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재림 예수를 알기 원해서는 초림 예수에 대해서 뜨거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초림 예수의 모습이 뜨거움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는 담대히 재림 예수를 소망 삼을 수 있을 것이고 단장한 신부의 모습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이 될 것이다. 이 땅에 인간의 육을 입으시고 오셔서 철저하게 배척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이제 머지않아 이 땅에 심판 주로서 오시게 될 것이다. (행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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