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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의 4가지 모습 (계1:7)

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예수를 믿는 자 들에게 최대의 소망이고 꿈이다. 일곱 교회에 예수의 초림으로 시작된 편지는 이제 재림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소망을 주고 있다. 당시에 교회와 성도들은 로마제국의 엄청난 핍박과 환난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한 성도들에게 초림 예수의 모습으로 인사할 때 성도들이 얼마나 힘이 솟았겠는가 그런 그들에게 사도 요한은 재림의 예수를 전하므로 성도들에게 더욱 용기와 소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 성도들의 신앙이 왜 시들어 빠진 배추 잎 같은가 교회에서 강하게 재림 예수를 증거하지 안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가 작으면서도 뜨거운 이유가 뭔가 재림 예수를 소망 삼고 알리기 때문이다.
신부는 신랑이 올 때가 가까워 질 때 사는 맛이 나는 것이다.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친히 확증하신 말씀이다. 마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26:6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공개적으로 만 천하에 그 모습을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 예수의 초림도 사실을 공개적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하늘에 별이 그 징조를 확실히 알려주었지만 인간들은 그 별에 관심이 없었다. 이 시대도 예수님이 오실 때가 가까웠다고 해도 도무지 관심이 없다. 재림을 외치는 자들을 마치 미치광이로 여겨 버린다. 같은 기독교 계통에서도 좋은 눈으로 보지 않은다. 그러나 그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저들이 아무리 부인하고 미친소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다시 오신다는 예수 소식을 가볍게 여기고 비웃던 저들의 입에서는 그 날에 통곡이 나올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오신다.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성도 여러분 재림 예수로 우리의 신앙이 불타야 한다. 다른 말씀도 다 좋지만 이 마지막 때에 재림 말씀으로 신앙이 무장된다면 복된 자중에 복된 자이다. 7절 " 볼지어다 " 7절에만 본다는 의미의 말이 세 번 나온다. 볼지어다, 보겠고, 볼 터이요. 이것은 반드시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볼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계시록에는 본다라는 의미의 말이 약 72회 정도 있다. "볼지어다" 라는 말은 "본다보라" 라는 말과는 좀 다른 아주 강한 신앙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는 용어이다.
 "볼지어다" 라는 단어가 1장-3장에만 6번 강조하고 있다.
1.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2. 1:18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3. 2:10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4. 2: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5. 3:8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6. 3:20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계시록 서두에 이렇게 "볼지어다" 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마지막 때에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책은 "보는 책" 임을 증거하고 있다. 계시록 말씀은 듣고만 해서는 잘 모른다. 듣고, 읽고, 지켜야만 하는 말씀이다. 읽는다는 것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씀들은 잘 듣기만 해도 되지만 계시록은 연구하고 잘 가르침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려면 열심 볼 수밖에 없다. 우리 인체에는 세 가지 눈이 있다
1. 육안 이 눈을 실명하게 되면 맹인이 된다. 맹인이 되면 다시 볼 수 있는 것이 어렵다.
2. 지안 지식을 통하여 열려지는 눈이다 이 눈은 실명하게 되면 문맹인이 된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으로 회복될 수 있다.
3. 영안 신령한 세계를 볼줄아는 눈이다. 이 눈은 인간의 힘으로 노력으로 보는 눈이 아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어야만 보이는 눈이다. 세가지 눈 중에서 제일 중요한 눈이다. "볼지어다" 이 소리는 영적인 눈을 가지고 역사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이다. 영안의 어두운 자는 이 말씀을 볼 수가 없다. 보아도 깨닫지 못할 것이고 들어도 들을 때뿐일 것이다. 계시록의 말씀을 가르침 받고 또 열심히 들었다 할지라도 지키는 자가 되지 못하면 "볼지어다" 라는 소리가 무의미하게 들려질 것이다. 계 1:3 을 ' 다같이 ' 마지막 때 복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영안은 열려질 것이고 우리 눈앞에 하나님의 비밀이 벗겨지는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볼지어다" 하시는 것은 다 볼 수 있게 해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은 다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모두 보이시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 재림의 모습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그러면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예수님이 오시는 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오시는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다. 뭉실뭉실한 솜털 같은 구름을 타고 오실까요 계시록은 상징으로 가려진 내용들이 많이 있다. 이 상징을 잘못 풀면 성경의 본 뜻을 헤칠 수 있고 이단이 될 수도 있다.
 구름 물과 말씀으로 해석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뜻한다. 구름 자체는 상징이 아니다. 자연계의 구름이다. (박윤선 목사, J.P. Lange(랑게) 이렇게 해석 ) 타고 오시리라 지금 현재 오고 계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입고 오시는 예수님을 말한다.
 구름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수레이다. 예수님의 자가용이시다. 어떤 상징이 아니다. 자연계의 구름 그대로 보면서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왜 자연계 구름으로 보는가 그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실 때 구름에 가리워 주님의 모습이 보이지 아니했다고 했다. 이 모습을 고전 15:5 에 500명 형제들이 일시에 보았다. 이러므로 구름은 그 의미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할 수는 있어도 그 구름 자체는 상징이 아닌 자연계의 것으로 보는 것이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구름 속에 임재 하셨다. 출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출19: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일함은 . " 출 24:15-16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니라" 민11:2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대하5:13-14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이상과 같이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자연계의 구름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알려주시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예수님도 이 구름을 많이 인용하셨다. 마24:30, 마26:64, 막13:26, 막14:62, 눅21:27, 사도 바울도 이 구름을 증거 했다 살전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서도 구름은 어떤 상징이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 영광속에 동참하는 것을 알리는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수님은 영광 중에 반드시 오실 것이다. 구름 자체를 상징화하면 안된다. 구름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구름 자체를 상징화 해버리면 주님 재림 또한 상징이 될 수가 있다. 주님의 재림과 구름을 수레 삼고 오실 그 사건은 절대적으로 상징이 될 수가 없음을 기억하자. 두 번째 재림의 모습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온 천하에 공개된다. 지금은 그리스도인들만이 그리스도 재림을 인식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예수님 재림 때는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확연히 볼 것이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원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모든 눈이 그를 보겠다" 이다. 각인 온 세상 사람 눈 육적인 눈으로 모든 인간들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는 예수를 보게 될 것이다. 어떻게 모든 눈이 볼 수 있는가 그 방법에 대해서는 침묵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역사 하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므로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해석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님이 이루시리라는 자세로 기다리는 것이 성경적인 자세다. 섣불리 텔레비젼 같은 것으로 보게 될 것이라는 해석은 조심하자.
 말세가 되면 주님의 재림을 부인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난다. 또 부인은 안하면서 주님 재림으로 미혹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난다. 즉 시간과 날짜를 정해 가지고 미혹하기도 하고 자신들에게 속해야만 휴거 될 수 있다고 미혹 할 것이다. 또 환난이 오기 전에 휴거 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런 모든 자들이 다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도 마지막 때에는 이런 미혹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나겠다고 하셨다. 마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요이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벧후3:3-4)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재림을 부인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정욕을 따라 사는 자들이다. 이런 모든 자들이 주님의 재림을 보게 될 것이다. 초의 예수는 초라한 마굿간을 통하여 은밀한 중에 오셨지만 재림의 주님은 만 천하에 공개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은 막연한 이야기 아니다. 모든 사람이 보게되는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종말의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것을 뜻하고 있다. 재림의 그날에 미혹하고 부인하고 믿지 아니한 자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 할 것이다. 세 번째 주님의 재림 모습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예수를 핍박하고 찌르고 죽이는 자들도 모두 다 주님의 재림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실제로 예수를 죽인 무리들로 보아서는 안된다. 역사적으로는 유대인들이 분명하지만 신앙적으로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더욱 악하여져서 주님을 배척하는 모든 불순종하는 자들이다 또 은혜를 받고도 다시 타락한 자들도 포함된다.
 그를 찌른 자 역사적으로는 예수를 죽인 자들이지만 여기에서는 주님 재림 때까지 살아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자들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주님을 십자가에서 죽였던 유대인들의 무리는 이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지도 못할 것이다. 주님 재림 때에 부활할 수 있는 자들은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이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 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문자적으로 찌른 자들이 유대인들이라면 주님이 부활하시고 부터 지금까지 . 아니 주님 재림 때까지 예수를 찌른 자들은 계속 될 것이다. 그 찌른 자들의 모습을 7가지로 살펴보자.
1. 주님 재림이 더디 오리라고 하는 악한 종. (마24:48-51)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주님이 아직도 멀었다고 떠들어서는 안된다.
2. 기름을 준비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들. (마25:11-12)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왜 이들이 주님을 찌른 자들입니까 (히6:4-6)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님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게으른 신앙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열심히 기도생활하고 말씀 충만하고 성령님충만 해야만 한다
3. 한 달란트를 받고서 남기지 못한 종. (마25:28-30)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맡겨준 달란트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스러운 종이 되어야만 한다
4. 왼편에 있는 자들. (마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교회의 하는 일에 반대편에서만 서있으면 안된다. 옳지 않은 일에는 반대 할 수 있지만 교회를 위하는 일에는 반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5. 주의 강림을 기롱하는 자들. (벧후3:3-4)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주님의 재림을 놀리거나 농담으로 여기면 안된다. 6.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 더하는 자. (계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7. 기록된 말씀을 제하는 자들. (계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말씀을 더하거나 제해서는 안될 것이다. 얼마나 말씀을 가감하는 것이 무서운 것인 줄 알아야 될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을 찌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알았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주님을 찌르고 있는 자는 아니었는지 깨닫고 재림 예수로 소망 삼고 무장하기를 축원합니다.
 네 번째 주님의 재림 모습 땅에 있는 모든 자들의 통곡. 주님이 재림 하실 때에 이 땅에 일어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애곡이 있고 그 애곡의 원인은 주님의 재림으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애곡의 범위는 모든 족속이다.
 애곡 가슴을 치고 애간장이 끓어지는 통곡을 말한다. 이 애곡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게 해당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의 재림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고 준비한 자들은 주께서 호령과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끌어 올라갈 것이지만 예수를 믿지 않고 재림을 부인하고 날라리 신앙을 가진 자들은 땅을 치고 가슴을 치고 몸부림 칠 것이다. 애곡하는 자의 모습을 살펴보면 마25장 기름 준비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 통곡이 있다. 마25: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노아의 홍수 때에도 배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의 통곡이 있었을 것이다. 한 번 닫힌 방주의 문은 열려지지 않았다. 마지막 때에도 닫혀진 문을 두드리며 통곡 할 것이다. 또한 달란트를 받고서 남기지 못한 무익한 종의 통곡이 있다. (마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또 주님의 재림이 더디 오리라 하고 오지 않았으면 하는 악한 종의 통곡이 있다. (마24:50-51)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외식하는 자의 율 마23장에서 받은 7가지 화를 당할 것이다. 주님이 더디 오리라 하는 자의 벌은 더욱 무섭다. 이러한 사건들을 보면 심은대로 거두는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본다. 자신들의 하는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 날의 통곡이 우리에게는 오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재림에 소망을 가지고 오직 예수 신앙을 하여야만 할 것이다. 우리 형제 친척 친구에게도 이 통곡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도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 약한 믿음으로 지금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에게도 우리는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 날에 통곡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임할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들림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 휴거의 사건은 환난 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믿음이 약한 자들이 어찌 환난을 통과할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금도 조금한 어려움에 믿음이 시험하고 세상에 미혹 당하고 있는데 마지막 때 그 환난을 어떻게 통과할지.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재림 신앙으로 무장되어 있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준비한 자와 준비하지 않은 자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게될 것이다. 그 날의 통곡이 우리 가정에는 없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재림하실 때 주님의 4가지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반드시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영적인 사건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로 우리들 눈앞에 일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지도 모른다 그 날과 그 시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시대적을 바라볼 때 너무나도 주님의 때가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무슨 재림이야!" 하는 이런 소리는 이제 하지 말기를 바란다. "오시기는 오시는데 아직 멀었다" 떠들지 말기를 바란다. 세월이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을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주님의 재림이 너무 빠르게 다가오고있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의 역사는 이제 주님의 재림의 시간표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 이제 우리의 복음도 주님의 재림의 초점을 맞추고 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소망 삼을 것도 저 천국보다는 이제 우리는 재림 예수 만나는 것에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 한다면 우리는 뜨거운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재림 신앙은 우리의 믿음을 뜨겁게 한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계22:20)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 (계22:7) 예수님의 오시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자가 없다. 그 날은 반드시 이 땅에 임할 것이다. 우리 모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는 자들의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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