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세세토록 살아 있는 사람 (계1:9-20)

본문

I. 사도 요한의 밧모섬 체험 주후 95년경 저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Domitianus, A.D. 81-96)의 박해시, 에 베소교회를 목회하던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정배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계시의 굴'이라고 이름하는 사도 요한의 수도원이 현존하고 있 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수난의 자리는 은총의 보좌요, 하늘 문이 열리는 성전이 요, 축복의 밀실이요, 하늘 계시가 임하는 은총의 지성소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밧모섬 정배의 의의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 때문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계 1:9). 그는 그곳에서 주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는 성령님 안으로 끌림 받게 되었고, 그 순간 그 등 뒤에서 나팔 같은 큰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소리가 들려 오기를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 아디라, 사데, 빌라델피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고 하였습니다(계 1:11). 이 영음(靈音)에 사로잡혀 버린 사도 요한이 순간적으로 그 나팔 같은 음성이 들려 오는 곳을 향하여 몸을 돌이켰을 때, 일곱 금촛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리고 그는 그 금촛대 사이에서 자기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거기 밧모섬 정배지에 사도 요한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실로 영광의 주님이었 음을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1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신 제사장의 주님을 보았습니다(계 1:13).
2 가슴에 금띠를 띠신 왕이신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계 1:13).
3 그 머리털의 희기가 양털 같으신 영존하신 성결의 주님을 보 았습니다(계 1:14).
4 그 눈이 불꽃같으신 전지전능의 주님을 보았습니다(계 1:14). 5 그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으신 심판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계 1:15). 6 그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으신 불가항력적 그리스도를 보 았습니다(계 1:15). 7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시는 안전보장이신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계 1:16). 바로 금촛대 사이에 일곱 별을 붙잡으신 주님이었습니다. 곧 교회 가운데 그의 사자들을 붙잡고 계시는 교회의 왕인 그리스도를 보 았습니다(계 1:20). 8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 를 보았습니다(계 1:16). 9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으신 영광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계 1:16). 이 엄청난 장관 앞에서 사도 요한은 순간적으로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때 주님은 요한에게 오른손을 얹어 주시며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과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 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계 1:17-18)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의 밧모섬 정배지에서의 체험은 바로 세세토록 살아 있는 부활의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영광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과 영존의 영광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분으로부터 반드시 속히 될 세계 종말의 계시를 받은 것이 요한계시록이 되었습니다. 초자연적 체험이 요, 인격적 체험이요, 계시적 체험이었습니다.
Ⅱ. 교회 중에 살아 계신 예수 요한계시록 2장 1절에 에베소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 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2장 8절에 서머나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 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12절에 버가모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 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에 두아디라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에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7절에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 라오디게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라고 하였 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과연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는가 그렇습니다. 과연 지금도 예수님이 살아 계십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 증거가 무엇인가 그가 피 로 값주고 사신 지상의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그를 사랑 하고, 그가 명하신 분부를 수행함에서 입증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역사 중에 존재한 2000년 기독교는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왕으로 섬기고, 그 왕명을 따라 복음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 고 있는 것입니다.
1 주일 성수를 통하여 그에게 전인(全人)을 동원하는 예배의 사명을 다합니다. 신령(성령님)과 진정(진리)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곧 성령님과 말씀 중심의 예 배를 드립니다. 성령님과 말씀 중심의 예배가 무엇인가 바로 예수 중심의 예배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님과 그 성령님이 기록한 성경은 예수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십일조와 감사 연보와 여러 류의 복음 선교를 위한 희생의 물질들을 바침 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있는 일입니다.
3 간절한 기도로 부르짖게 합니다. 이것은 그가 살아 계신 증거입니다.
4 몸으로 제물이 되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됩니다. 그것은 살아 계신 그 분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5 심지어 복음을 위하여 핍박과 죽음(순교)에 이르기를 감수합니다. 누가, 무슨 힘으로 이 일을 할 수 있게 합니까 죽은 사람이 무슨 힘과 영향 으로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까 죽기까지 충성을 다해 놓고도 내 이름, 내 공로가 아니고 주의 이름, 주의 은혜, 주의 공로로 했을 뿐이라고 그 앞 에서 겸손합니다. 그리고 영광을 그 분에게만 돌립니다. 이것은 예수가 지금도 우리 중에 살아 있다는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가 아닙니 까 살아서 영향을 끼치던 사람들도 죽고나면 점점 우리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다가 마침내는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아무런 힘이 나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2000년 세월이 계속되는 지금까지도 살아 계셔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불사조의 힘을, 영향 을, 용기를 주십니다. 그것이 그 분의 어떤 무력인가 지식인가 재력인가 아 닙니다. 그분의 사랑의 힘입니다. 죄인을 사랑했기 때문에 지신 그 십자가 대속 의 사랑의 힘이 우리를 세상 중에서 순교에 이르게 하고, 당신만을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바로 예수의 힘, 곧 구원의 힘입니다.
Ⅲ. 예수의 영존은 우리의 위로요 소망입니다. 예수께서 세세토록 살아 계심은 바로 우리 존재의 힘이요, 소망입니다. 우리 존재의 모든 가능이요, 미래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가능입니다. 훌륭한 부모가 살아 있을 동안 그 자식들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든든한 남편이나, 사랑스러운 아내가 살아 있을 동안 그 부부는 피차 행복합니다. 유력한 사회의 선배가 살아 있을 동안, 그 후배는 모든 사회생활에 도움을 받게 됩니다. 훌륭한 선생님이 살아 계실 동안 그 제자들은 갈 길을 인도받게 됩니다. 명장이 살아 있는 부대의 병졸은 언제나 든든합니다. 선한 통치자가 살 아 있을 동안 그 나라와 백성은 참으로 국태민안(國泰民安) 할 수 있습니다. 말 하자면 살아 있을 동안에는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죽어 세상을 떠나버릴 경우 여러 가지 예측하지 못한 인생의 불행들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세세토록 살아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신자들에게 복음이요, 활로요, 행복입니다. 그 이유는,
1 우리는 연약하여 실패하고, 실수하며, 죄에 빠져 고통을 당하는 죄인들이 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세상에서 연약한 죄인일 동안 살아 계신 구주의 용서와 위로와 축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예수는 죄인의 소망이 되기 때 문입니다.
2 우리의 온갖 기도의 응답에는 살아 계신 구주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신은 응답이 없습니다. 능력도 없습니다. 오직 살아 계신 인격적 신만이 우리 기도에 응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3 뿐아니라 우리 여로 중 선택의 기로에 설 때, 살아 계신 구주만이 완전한 인도자가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오직 살아 계신 신(예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 입니다. 우리의 갈 길을 알고 계시는 분이 영원히 살아 있다는 자체가 우리의 안전이요, 위로요, 소망이 됩니다.
4 인생 최후의 여로에는 살아 계신 구주만이 있을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음의 최후를 맞는 순간,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치 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최후에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바 로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소망 중에 맞는 천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살아 계 신 그리스도만이 이것을 보장하고 약속하여 주었습니다(요 14:1-3). 제2차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의 바탄(Battan) 지역을 떠나면서 남아 있는 자들에게 "내가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포로가 되어 버린 미군들은 그가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오지 않으므로 기다림에 지쳐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군 탱크들 이 들이닥쳐 일본군들을 물리치고, 포로 수용소에 있던 미군과 필리핀 군대들을 석방시켜 주었습니다. 그것은 맥아더 장군이 그 전쟁 중에 죽지 않고 살아 있었 기 때문에 저들에게 던진 약속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의 생 존은 포로가 된 미군의 병사들에게 결국 소망이 된 것입니다. 재생의 힘이 되 고, 활로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으나 이제는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여기에 부활하신 예수 자신의 주장과 약속이 있습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세세 무궁토록 영원히 살아 있는 자 라고 주장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다!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산 소망이 있습니다. 역사상의 수많은 영웅들과 호걸들과 가인들과 재사들이 당대에 영향 을 끼쳤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세기마다 살아갔던 소위 역사의 거인들은 오늘 우리의 기억에서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 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저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제국들이 일어나고 또 쓰러지는 흥망성쇠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들 중에 참으로 위대한 능력과 비범한 통치자들이 태어났고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저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났고, 나사렛 목수 의 집에서 자라났고, 거기서 일하다가 나머지 3년 동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는 전도자였습니다. 결코 어떤 사람에게 해를 끼친 일이 없습니다. 죄인에 대한 사랑만으로 가득 찼 던 분이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분이 었습니다. 전혀 비정치적이요, 비이데올로기(사상)적이요, 비경제적, 비사회적, 비공명적인 죽음이었습니다. 오직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에 있었습니다(막 10:4
5). 그 분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장사지낸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자신의 부활을 여러 경우들에서 입증하였습니다. 그 리고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감람산에서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산채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행 1:11).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였습니다(롬 8:34). 그 이후 10일만에 그 분이 다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중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으로 우리 중에 오신 것입니다. 그 성령님께서 성경을 기록하 여 그 분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모든 말씀을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이 기록한 성경만이 예수님의 영원하신 존재와 영존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놀라웁게도 이 성경의 진리를 받는 자는,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 중에 살아 계심을 믿게 됩니다. 이 생명의 신비는 주신 자와 받은 자만이 아는 공개 된 비밀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 왕으로 임재하고 있습니다. 오늘 1998년 4월 12일! 바로 저 서울 을지로 3가 110번지에서 경향이 태어난 지 꼭 25주년이 되는 때입니다. 그 후에 경향은 서울역 앞 동자동 소재 기독교 여자절제회관을 거쳐, 23년 어간의 여의도에서의 축복의 삶을 마감하고, 바야흐 로 주께서 열어 주신 강서 시대의 새 장(章) 앞에 우리 모두가 앉아 있습니다. 과연 누가 여기까지 경향을 주장하였는가 지난 25년, 사반 세기 경향의 역사 를 누가 만들었는가 누가 고려신학교 운동을, 세계 선교 운동을, 개척 교회 운 동을, 기독교 복지사업 운동을 주장했는가 누가 과연 학원복음화 운동과 교회사적인 새 성전 역사를 주장했는가 우리 중에 세세토록 살아 계신 그 사람, 예수가 우리와 함께 하신 임마누엘 그 자체의 표적이 아닌가 우리 중에 세세토록 살아 계신 그 사람 예수가 우리 무리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축복하신 은총의 표적이 아닌가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854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