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만에 듣는 음성 (계1:17-18)
본문
재림 예수의 모습을 본 사도 요한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리어 죽은 자 같이 되어 버렸다. 아마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을 것이다. 저는 요한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부족한 종에게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런 영적 깊은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저도 예수님을 만나고 죽은 자 같이 되었다.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쁜데 몸은 죽은 자처럼 된 적이 있었다. 죽은 자 같이 된 사도요한에게 예수님은 오른 손으로 요한의 몸을 어루만지면서 자신의 누구인가를 정확히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이 얼마나 황홀한 체험인가 성도 여러분! 이 광경이 그려지십니까 예수님의 휘황 찬란한 모습만 보아도 황홀한데 그 예수님이 요한의 몸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누구인가를 들은 사도요한은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을 것이다. 예수님과 60년만에 만남이 아닌가 예수가 붙잡힐 때 나만 살겠다고 도망쳤던 요한 그러나 되돌아 와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가실 때 요한 에게 마리아를 부탁하시고 가셨던 그 예수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3일만에 부활하시어서 자신의 몸을 보여주셨던 예수. 승천하시면서 내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그 예수를 사도 요한은 지금 천국에서 약 60년만에 예수님 손길을 몸에 느끼면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60년 동안 하루도 예수님을 잊어 본적이 없는 사도 요한 이었다. 그 예수가 지금 요한에 말씀하고 계신다. 오늘 이 말씀이 이 시간 바로 우리에게 들려지는 주님의 음성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두려워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7절
찬란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 모습에 요한은 그만 죽은 자처럼 주님 발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요한 에게 주님의 첫 음성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다 "고 말씀 하셨다. 인간은 주님 앞에 서면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런 나약함을 아시는 주님은 항상 먼저 "두려워 말라" 말씀부터 하시는 것을 본다.
두려워 말라 요한을 안심시키는 말씀이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주님 자신이 누구인가를 요한 에게 먼저 가르쳐 주고 있다. 처음 맨 처음. 우주의 시작되심을 의미한다 구원의 시작이심을 의미한다. 나중 세상 종말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구원의 종말을 이루시고 심판의 종말을 이루는 의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 앞에서 죽은 자의 모습이 되어 보셨습니까 죽은 자가 될 때 예수님의 은혜가 임한다. 죽는 다는 것은 나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마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내가 진정으로 주님 앞에서 죽을 때 우리는 주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다. 그런 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재림때 무서운 심판주로 임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나 자신을 죽이며 부인하며 사는 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두려워 말라" 라는 사랑의 음성으로 말씀해 주실 것이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 " 우리 예수님은 좋으신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반면에 두려운 분이시기도 하다. 예수님의 양면성을 알아야 한다. 좋으신 분만 알지 말고 무서운 분이시라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처음 되신 예수님만 알아서도 안된다. 나중 되신 예수님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 성도가 예수님을 두려워 않은가 처음 되신 예수님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나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는 것만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두려워 않으신다. 예수님은 처음이시고 나중까지 되시는 분이시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지만 마지막 때는 세상을 심판 하시러 오시는 분이시다. 그 심판 속에는 나도 들어 갈 수도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 안에서 죽은 자 같은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 하실 것이다. 예수 안에서 두려워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예수 밖에서 두려워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처음과 나중 되시는 분이라는 것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예수가 곧 하나님이시다.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가 세상을 마치게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모르고 있다. 예수를 4대 성인 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예수를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조차도 예수를 자세히 모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처음 되신 예수를 알지만 나중 되신 예수를 알지 못하고 있다. 나중 되신 예수를 자세히 안다면 믿는 자 들의 신앙생활이 미지근한 신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나중 되신 예수님을 우리는 지난주까지 열 가지 모습으로 살펴보았다 얼마나 무서운 두려운 모습이었는가 사랑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주님의 모습이었다. 나중 되신 예수는 세상을 심판하시는 모습이다. 심판에는 조금도 긍휼하심과 사랑을 보여주지 않은주님이시다. 초림에는 사람들에게 한 없은 사랑과 긍휼하심을 나타내셨지만 나중 되신 예수는 무서운 심판주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처음 되시는 예수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나중 되시는 예수도 알어야 하고 믿어야 한다. 나에게 구원을 주신 예수님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 심핀도 하신다.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내가 믿지 아니할 때 내 죄를 벌하실 것이다. [빌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워 온다. 언제 개인적인 종말이 올지 모르고. 역사적 종말이 올지 모른다.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중 되신 예수를 기다리며 신앙생활 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매일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내 멋대로 살아간다면 그 날에 주님의 두려움을 감당치 못할 것이다. 처음과 나중 되신 예수는 말씀대로 오셨고 이제 말씀대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성도 여러분 !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두려워 말라"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18절
예수님은 요한 에게 60년 전에 있었던 일을 말씀하셨다.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죽으셨던 사실을 말씀하셨다. 다른 제자보다도 요한은 그 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모습도 잊을 수 없지만 3일만에 부활하셔서 나타나셨던 예수의 모습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산 자라 부활을 의미한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지금 요한 앞에 나타나신 예수는 요한 에게 이전에 요한이 보았고 만났던 예수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요한이 예수를 몰라본 것을 너무 당연 할 것이다. 그런 요한 에게 예수님은 60년 전에 있었던 그 날을 말씀해 주었다. 어찌 그 날을 잊을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죽으신 사건과 죽으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이다. 기독교가 살아있는 종교라는 것은 바로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건이다. 어떤 성자가 위인이 죽음을 이긴 자가 있는가 사도 요한 역시 그 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제자보다도 사도 요한은 더욱 그 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요한은 주님의 고통을 가장 가까운 십자가 밑에서 직접 보았고 주님의 고통 하는 신음소리를 직접 들었고 운명하시기 직전에 숨을 몰아시면서 자신에게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시는 주님의 유언을 들었다. 주님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주님의 얼굴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못 박힌 손에서 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도 보았다 못 박힌 발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도 보았다. 로마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찌를 때 터져 나오는 피를 보았다. 싸늘한 시체로 변한 예수님 몸을 붙잡고 목을 놓아 울던 일이 그때가 주마등 같이 요한의 머리를 스쳐 지나 갔을 것이다. 어찌 그 뿐인가 예수님 시체를 장례를 잘 치르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고 돌아와서 또 얼마나 울었던가 그런 슬픔에 잠긴 요한 에게 안식 후 첫날 막달아 마리아가 전해주던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함께 단숨에 무덤에 달려갔지만 예수님의 시체는 온데 간데 없었던 그 날을 어찌 요한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안식일이 저물어 가던 그날 밤에 예수님 부활 얘기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홀연히 나타나시면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던 그 주님의 모습을 요한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후에도 40일 동안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시고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신 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행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 예수님은 어느 날 500명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는데 그 날의 그 예수님 모습을 본 요한은 한시도 그 날을 잊을 수 없었다. 그 예수가 지금 60년 전에 일을다시 요한 에게 하고 계신다. "내가 전에 십자가에서 죽었으나 다시 살아난 예수라고" 지금 예수님은 요한 에게 다정스럽게 말씀하고 계신다. 성도 여러분 !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 위에서 죽으신 예수를 만나셨습니까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셨습니까 사도 요한 에게 나타나셨던 예수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동일하게 나타나셔서 우리에게도 십자가 예수로 만나 주신다. 부활의 예수로도 만나 주신다. 오직 예수. 십자가 예수.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자는 예수에 향한 마음 변하지 않은다. 어떻게 그 만남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 악한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어 예수를 전하다가 예수를 위해 죽었다. 어찌 바울 뿐이겠는가 수많은 이 땅에 믿음의 조상들이 십자가 예수 !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기 때문에 그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갔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그들의 발걸음을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요한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만난 자들 아닙니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자들 아닙니까 그 만남을 혹시나 잊지는 않았습니까 지금도 예수는 우리에게 "내가 전에 죽었으나 산 자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 놀라운 역사적 사건을 우리는 개인적으로 느끼지 못하고는 예수를 만났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세 번째: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8절.
예수님은 요한 에게 예수님의 권세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셨다. 초림때 그 나약한 예수가 이제 아니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손에 쥐고 계신 예수이시다. 다시 말해서 죽고 사는 권세가 예수께 있는 것이다.
사망 죽음을 뜻한다. 음부 지옥을 뜻한다. 열쇠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의미한다. [계3:7]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죽음의 사망 권세를 친히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이시다. 그 죽음을친히 겪으시고 친히 이기셨기 때문에 이제 모든 인간이 죽어서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는 예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 사망 권세 이기신 예수를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죽고 사는 것이 예수께 달려 있다.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 가 예수 한 분께 달려 있다. 요한 에게 60년만에 들려준 예수님의 음성은 너무나 힘이 있는 말씀이었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내가 목마르다내 어머니를 부탁한다" 나약한 말씀이 아니었다. "내가 세상 권세를 다 가지고 있느니라" 강한 말씀이셨다. "내가 죽고사는 권세를 가지고 있느니라" 요한 에게 얼마나 기쁜 말씀인지 모를 것이다. 왜 천국의 열쇠를 말하지 않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요한에게 말씀하셨을까요 다시오 실 예수는 심판주의 예수로 오신다는 뜻이다. 재림하실 때 예수의 모습에는 이제 긍휼하심이 하나도 없다. 세상을 무섭게 심판하실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예수께 돌아오지 않은 자들에게 무서웁게 심판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하나님은 구약에서 예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많이 있다. 창7장에서 하나님은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찬 것을 보시고 홍수로 세상을 심판 하셨다. 40일 동안 밤 낮을 가리지 않고 비를 이 땅에 내려서 세상을 물로 심판 하셨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성적으로 타락하자 하나님은 유황 불을 그 성에 비오듯 내려서 성 안에 있는 사람들과 성을 심판 하셨다. 어디 이 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때마다 이모저모로 당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은 바로 우리들이 보고 깨달으라고 내린 심판의 모델 케이스다. 마지막 때 예수를 믿지 않고서는 그 누구나 이 심판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가 예수에 손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요3: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계19:15-16]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다는 것이 이해가 가십니까 포도주를 만들려면 포도를 짓이겨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틀에 포도를 넣고 위에서 누를 때 포도들이 터지면서 짓이겨 진다. 포도주 틀에 밟힌 포도처럼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심판은 인정사정 없는 무서운 심판이다. 예수님은 [마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이런 심판이 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망과 음부과 필요 없다.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러 이 땅에 오실 때 우리는 이 땅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 땅에 있는 자들은 가슴을 치고 통곡할 것이다 [마24:30-31]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우리 생애에 예수님이 재림을 안하신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죽음이 찾아 올 것이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죽은 자는 천국을 갈것이지만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자는 음부에 갈 것이다 그 날에 예수를 부인하고 살았던 자들은 예수님 손에 사망과 음부의 열쇠가 있는 것을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 예화 > 어느 집사님이 돌리는 희한한 전도지가 있었다. 그 전도지에는 "지옥에 가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 집사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이 전도지를 주면서 "그 뒤를 보십시오"라고 했다. 거기에는 별 내용이 씌어 있지 않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큰 글씨만 씌어 있었다. 지옥을 가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고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간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결단이 없다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오는 사건이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하고 있으면 지옥은 저절로 가게 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무관심 속에서 지옥을 향해 걷고 있습니까 흥미 있는 사실은,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도 사람들이 왜 지옥이란 단어를 완전히 떠나지 못할까요 유명한 기독교 심리학자는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 어쩌면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무의식과 잠재의식의 공포가 그 영혼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천국이 어디 있느냐 지옥이 어디 있느냐 하는 자들은 그 날에 예수님 손에 사망과 음부의 열쇠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플라톤은 "누가 감옥이 없기를 제일 바라겠는가 그것은 거기에 가야 할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 누가 지옥이 없기를 제일 바랍니까 지옥 가야할 사람들이 제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아무리 부인해도 창조 때부터 있는 천국과 지옥은 없어질 수 없다. 천국과 지옥이 똑같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시간이 멈추어 진 영원한 곳이라는 것이 동일하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영원한 세계이다. 성경에서 지옥은 [막9:48-49]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 성도 여러분 !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를 놓치지 말기를 축원합니다.
< 결론 > 60년 만에 요한 에게 들리는 주님의 음성은 너무나도 강하신 권세 있는 말씀이었다. 창조주로서 말씀하고 계셨고. 사망권세 이기신 부활의 예수로 말씀하셨고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로 말씀하셨다. 요한이 그런 사실을 모른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힘있는 말씀을 듣고 참으로 기뻤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알고있는 예수 ! 믿고 있는 예수 ! 힘있고 권세 있는 예수이시다.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져 있는 요한을 어루만지며 하시는 주님의 힘있고 따스한 음성은 그동안 예수 때문에 요한이 당한 고통을 말끔히 씻어 주었을 것이다. 이 다음에 주님은 우리의 눈물도 닦아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 되신 예수에서 머물지 말고 나중 되신 예수를 더욱 알기 힘써야 할 것이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예수를 더욱 알아야 할 것이다. 은혜 시대라고 해서 은혜 받기에만 급급하는 자가 되지 말고 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심히도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운 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은혜 받은 상태에서 멈추지 말고 이제 그 큰 은혜를 받은 우리는 이제 예수님 앞에 낮아지고 죽은 자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될 것이고 기름 준비한 다섯 처녀처럼 우리 또한 성령님 충만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은혜 받은 자는 . 기름 준비한 자는 다시 오실 예수를 알려야 한다. "신랑이 오신다" 외치는 자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첫 번째:두려워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7절
찬란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 모습에 요한은 그만 죽은 자처럼 주님 발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요한 에게 주님의 첫 음성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다 "고 말씀 하셨다. 인간은 주님 앞에 서면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런 나약함을 아시는 주님은 항상 먼저 "두려워 말라" 말씀부터 하시는 것을 본다.
두려워 말라 요한을 안심시키는 말씀이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주님 자신이 누구인가를 요한 에게 먼저 가르쳐 주고 있다. 처음 맨 처음. 우주의 시작되심을 의미한다 구원의 시작이심을 의미한다. 나중 세상 종말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구원의 종말을 이루시고 심판의 종말을 이루는 의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 앞에서 죽은 자의 모습이 되어 보셨습니까 죽은 자가 될 때 예수님의 은혜가 임한다. 죽는 다는 것은 나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마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내가 진정으로 주님 앞에서 죽을 때 우리는 주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다. 그런 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재림때 무서운 심판주로 임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나 자신을 죽이며 부인하며 사는 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두려워 말라" 라는 사랑의 음성으로 말씀해 주실 것이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 " 우리 예수님은 좋으신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반면에 두려운 분이시기도 하다. 예수님의 양면성을 알아야 한다. 좋으신 분만 알지 말고 무서운 분이시라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처음 되신 예수님만 알아서도 안된다. 나중 되신 예수님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 성도가 예수님을 두려워 않은가 처음 되신 예수님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나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는 것만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두려워 않으신다. 예수님은 처음이시고 나중까지 되시는 분이시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지만 마지막 때는 세상을 심판 하시러 오시는 분이시다. 그 심판 속에는 나도 들어 갈 수도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 안에서 죽은 자 같은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 하실 것이다. 예수 안에서 두려워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예수 밖에서 두려워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처음과 나중 되시는 분이라는 것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예수가 곧 하나님이시다.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가 세상을 마치게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모르고 있다. 예수를 4대 성인 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예수를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조차도 예수를 자세히 모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처음 되신 예수를 알지만 나중 되신 예수를 알지 못하고 있다. 나중 되신 예수를 자세히 안다면 믿는 자 들의 신앙생활이 미지근한 신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나중 되신 예수님을 우리는 지난주까지 열 가지 모습으로 살펴보았다 얼마나 무서운 두려운 모습이었는가 사랑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주님의 모습이었다. 나중 되신 예수는 세상을 심판하시는 모습이다. 심판에는 조금도 긍휼하심과 사랑을 보여주지 않은주님이시다. 초림에는 사람들에게 한 없은 사랑과 긍휼하심을 나타내셨지만 나중 되신 예수는 무서운 심판주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처음 되시는 예수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나중 되시는 예수도 알어야 하고 믿어야 한다. 나에게 구원을 주신 예수님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 심핀도 하신다.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내가 믿지 아니할 때 내 죄를 벌하실 것이다. [빌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워 온다. 언제 개인적인 종말이 올지 모르고. 역사적 종말이 올지 모른다.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중 되신 예수를 기다리며 신앙생활 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매일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내 멋대로 살아간다면 그 날에 주님의 두려움을 감당치 못할 것이다. 처음과 나중 되신 예수는 말씀대로 오셨고 이제 말씀대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성도 여러분 !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두려워 말라"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18절
예수님은 요한 에게 60년 전에 있었던 일을 말씀하셨다.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죽으셨던 사실을 말씀하셨다. 다른 제자보다도 요한은 그 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모습도 잊을 수 없지만 3일만에 부활하셔서 나타나셨던 예수의 모습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산 자라 부활을 의미한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지금 요한 앞에 나타나신 예수는 요한 에게 이전에 요한이 보았고 만났던 예수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요한이 예수를 몰라본 것을 너무 당연 할 것이다. 그런 요한 에게 예수님은 60년 전에 있었던 그 날을 말씀해 주었다. 어찌 그 날을 잊을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죽으신 사건과 죽으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이다. 기독교가 살아있는 종교라는 것은 바로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건이다. 어떤 성자가 위인이 죽음을 이긴 자가 있는가 사도 요한 역시 그 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제자보다도 사도 요한은 더욱 그 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요한은 주님의 고통을 가장 가까운 십자가 밑에서 직접 보았고 주님의 고통 하는 신음소리를 직접 들었고 운명하시기 직전에 숨을 몰아시면서 자신에게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시는 주님의 유언을 들었다. 주님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주님의 얼굴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못 박힌 손에서 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도 보았다 못 박힌 발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도 보았다. 로마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찌를 때 터져 나오는 피를 보았다. 싸늘한 시체로 변한 예수님 몸을 붙잡고 목을 놓아 울던 일이 그때가 주마등 같이 요한의 머리를 스쳐 지나 갔을 것이다. 어찌 그 뿐인가 예수님 시체를 장례를 잘 치르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고 돌아와서 또 얼마나 울었던가 그런 슬픔에 잠긴 요한 에게 안식 후 첫날 막달아 마리아가 전해주던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함께 단숨에 무덤에 달려갔지만 예수님의 시체는 온데 간데 없었던 그 날을 어찌 요한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안식일이 저물어 가던 그날 밤에 예수님 부활 얘기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홀연히 나타나시면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던 그 주님의 모습을 요한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후에도 40일 동안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시고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신 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행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 예수님은 어느 날 500명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는데 그 날의 그 예수님 모습을 본 요한은 한시도 그 날을 잊을 수 없었다. 그 예수가 지금 60년 전에 일을다시 요한 에게 하고 계신다. "내가 전에 십자가에서 죽었으나 다시 살아난 예수라고" 지금 예수님은 요한 에게 다정스럽게 말씀하고 계신다. 성도 여러분 !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 위에서 죽으신 예수를 만나셨습니까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셨습니까 사도 요한 에게 나타나셨던 예수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동일하게 나타나셔서 우리에게도 십자가 예수로 만나 주신다. 부활의 예수로도 만나 주신다. 오직 예수. 십자가 예수.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자는 예수에 향한 마음 변하지 않은다. 어떻게 그 만남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 악한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어 예수를 전하다가 예수를 위해 죽었다. 어찌 바울 뿐이겠는가 수많은 이 땅에 믿음의 조상들이 십자가 예수 !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기 때문에 그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갔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그들의 발걸음을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요한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만난 자들 아닙니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자들 아닙니까 그 만남을 혹시나 잊지는 않았습니까 지금도 예수는 우리에게 "내가 전에 죽었으나 산 자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 놀라운 역사적 사건을 우리는 개인적으로 느끼지 못하고는 예수를 만났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세 번째: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8절.
예수님은 요한 에게 예수님의 권세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셨다. 초림때 그 나약한 예수가 이제 아니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손에 쥐고 계신 예수이시다. 다시 말해서 죽고 사는 권세가 예수께 있는 것이다.
사망 죽음을 뜻한다. 음부 지옥을 뜻한다. 열쇠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를 의미한다. [계3:7]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죽음의 사망 권세를 친히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이시다. 그 죽음을친히 겪으시고 친히 이기셨기 때문에 이제 모든 인간이 죽어서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는 예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 사망 권세 이기신 예수를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죽고 사는 것이 예수께 달려 있다.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 가 예수 한 분께 달려 있다. 요한 에게 60년만에 들려준 예수님의 음성은 너무나 힘이 있는 말씀이었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내가 목마르다내 어머니를 부탁한다" 나약한 말씀이 아니었다. "내가 세상 권세를 다 가지고 있느니라" 강한 말씀이셨다. "내가 죽고사는 권세를 가지고 있느니라" 요한 에게 얼마나 기쁜 말씀인지 모를 것이다. 왜 천국의 열쇠를 말하지 않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요한에게 말씀하셨을까요 다시오 실 예수는 심판주의 예수로 오신다는 뜻이다. 재림하실 때 예수의 모습에는 이제 긍휼하심이 하나도 없다. 세상을 무섭게 심판하실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예수께 돌아오지 않은 자들에게 무서웁게 심판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하나님은 구약에서 예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많이 있다. 창7장에서 하나님은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찬 것을 보시고 홍수로 세상을 심판 하셨다. 40일 동안 밤 낮을 가리지 않고 비를 이 땅에 내려서 세상을 물로 심판 하셨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성적으로 타락하자 하나님은 유황 불을 그 성에 비오듯 내려서 성 안에 있는 사람들과 성을 심판 하셨다. 어디 이 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때마다 이모저모로 당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은 바로 우리들이 보고 깨달으라고 내린 심판의 모델 케이스다. 마지막 때 예수를 믿지 않고서는 그 누구나 이 심판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가 예수에 손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요3: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계19:15-16]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다는 것이 이해가 가십니까 포도주를 만들려면 포도를 짓이겨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틀에 포도를 넣고 위에서 누를 때 포도들이 터지면서 짓이겨 진다. 포도주 틀에 밟힌 포도처럼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심판은 인정사정 없는 무서운 심판이다. 예수님은 [마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이런 심판이 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망과 음부과 필요 없다.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러 이 땅에 오실 때 우리는 이 땅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 땅에 있는 자들은 가슴을 치고 통곡할 것이다 [마24:30-31]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우리 생애에 예수님이 재림을 안하신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죽음이 찾아 올 것이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죽은 자는 천국을 갈것이지만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자는 음부에 갈 것이다 그 날에 예수를 부인하고 살았던 자들은 예수님 손에 사망과 음부의 열쇠가 있는 것을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 예화 > 어느 집사님이 돌리는 희한한 전도지가 있었다. 그 전도지에는 "지옥에 가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 집사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이 전도지를 주면서 "그 뒤를 보십시오"라고 했다. 거기에는 별 내용이 씌어 있지 않고 "아무 것도 없다"라고 큰 글씨만 씌어 있었다. 지옥을 가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고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간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결단이 없다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오는 사건이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하고 있으면 지옥은 저절로 가게 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무관심 속에서 지옥을 향해 걷고 있습니까 흥미 있는 사실은,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도 사람들이 왜 지옥이란 단어를 완전히 떠나지 못할까요 유명한 기독교 심리학자는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 어쩌면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무의식과 잠재의식의 공포가 그 영혼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천국이 어디 있느냐 지옥이 어디 있느냐 하는 자들은 그 날에 예수님 손에 사망과 음부의 열쇠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플라톤은 "누가 감옥이 없기를 제일 바라겠는가 그것은 거기에 가야 할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 누가 지옥이 없기를 제일 바랍니까 지옥 가야할 사람들이 제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아무리 부인해도 창조 때부터 있는 천국과 지옥은 없어질 수 없다. 천국과 지옥이 똑같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시간이 멈추어 진 영원한 곳이라는 것이 동일하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영원한 세계이다. 성경에서 지옥은 [막9:48-49]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 성도 여러분 !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를 놓치지 말기를 축원합니다.
< 결론 > 60년 만에 요한 에게 들리는 주님의 음성은 너무나도 강하신 권세 있는 말씀이었다. 창조주로서 말씀하고 계셨고. 사망권세 이기신 부활의 예수로 말씀하셨고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로 말씀하셨다. 요한이 그런 사실을 모른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힘있는 말씀을 듣고 참으로 기뻤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알고있는 예수 ! 믿고 있는 예수 ! 힘있고 권세 있는 예수이시다.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져 있는 요한을 어루만지며 하시는 주님의 힘있고 따스한 음성은 그동안 예수 때문에 요한이 당한 고통을 말끔히 씻어 주었을 것이다. 이 다음에 주님은 우리의 눈물도 닦아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 되신 예수에서 머물지 말고 나중 되신 예수를 더욱 알기 힘써야 할 것이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예수를 더욱 알아야 할 것이다. 은혜 시대라고 해서 은혜 받기에만 급급하는 자가 되지 말고 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심히도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운 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은혜 받은 상태에서 멈추지 말고 이제 그 큰 은혜를 받은 우리는 이제 예수님 앞에 낮아지고 죽은 자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될 것이고 기름 준비한 다섯 처녀처럼 우리 또한 성령님 충만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은혜 받은 자는 . 기름 준비한 자는 다시 오실 예수를 알려야 한다. "신랑이 오신다" 외치는 자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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