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델비아 교회 (계3:7-13)
본문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데에서 동남쪽으로 28마일 되는 국경도시로 동방의 관문으로 문화전달의 관문이요,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평원이 있는 빌라델비아 도시에 세워진 교회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설립된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세상적으로는 보잘 것 없는 교회 였으나 주님 보시기에는 책망할것이 없는 일곱교회 가운데 가장 신앙이 건전한 좋은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여섯 번째로 기록하신 것은 순위적으로 여섯 번째가 아니라, 구원을 이루는 순서에 있어서 “거룩과 진실로 적은 능력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이름을 배반치 않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순서에 있어서 여섯 번째로 기록한 것입니다.
나타난 주님의 모습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문을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7-8절 상반절)라는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거룩하고”란 따져서 구별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사이비한 것이 가득차서 진리 같으나 진리가 아니고, 신앙의 말 같으나 신앙의 말이 아니고, 사랑하는 것 같으나 사랑이 아니고, 나를 유익하게 하는 것 같으나 나를 몰아다가 멸망케 하는 그런 것들이 가득찬 세상입니다. 우리는 평소 자기 현실에서 중심 위주가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소욕이 성령님의 소욕이냐, 육신의 소욕이냐, 복음이 천국복음이냐, 세상 복음이냐, 설교가 말씀위주냐, 세상 복이나 흥미나 감정위주냐, 사랑이 하나님 사랑이냐, 인간 사랑이냐, 내가 사는 생활이 믿음으로냐, 믿음 떠난 생활이냐, 하나님 뜻대로냐, 하나님 배반이냐, 금식기도가 인간정욕을 끊기 위한 것이냐, 인간 육신의 소욕달성을 위한 것이냐 이것을 구별하는 것이 ‘거룩’에서 나옵니다. 무지하고 연약한 사람이지만 자기 힘 있는대로는 구별하는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인 말씀을 지킬 수 있는 필연적인 행위가 나옵니다. 거룩을 버리면 그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라고 애를 쓸 수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고, 필연적으로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마귀가 제일 좋아하고 소원하는 전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뜻을 찾지 못하도록 하고, 깨닫지 못하도록 하고, 구별하지 못하게 혼합시키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에게 구별하는 성질과 성품이 선천적으로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는데, 구별하는 성품이 적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 더불어 화친하는 장점이 있고, 구별성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화평이 안되는 단점이 있는데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하리라” 거룩과 화평은 상극적인 것 같으나, 실은 처음 시작과 진행과정은 둘이나 마지막에 종착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선천적으로 거룩성이 약한 사람, 강한 사람, 풍부한 사람, 모자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쨋든지 우리는 하나님이 지어주신대로 구별하는 것을 내게 있는 것 다 해서 힘써 하기만 하면, 주님이 칭찬하시고, 주의 말씀 지키고, 그 이름을 배반치 아니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그 원천이 ‘거룩과 진실’에 있습니다. 우리는 크든지, 작든지, 자기의 평범한 평소 생활에서 구별하는 것을 놓지 안해야 됩니다. 구별하는 것을 세상은 싫어하고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진실하사’란 구별하고 구별해서 하나인 하나님의 뜻인 옳고 참된 것에 도달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다윗의 열쇠’는 다윗 왕은 전쟁에서 백전백승한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이는 마귀, 죄, 사망, 세상으로 더불어 싸우는 전투 투쟁에서 이기고 점령하는 권세를 말합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 란 말씀에서 ‘문’은 하나님을 향하여 천국을 향하여 가는 천국노정을 말합니다. 하나님 향하여 나아가는 천국노정에 시온의 대로 같이 형통케 해 주셔서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셔서 신앙성공 신앙승리의 생애를 하도록 열어 주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거룩과 진실한 행위를 가지면 주님은 우리의 신앙의 길을 형통케 하시고, 신앙 성공, 승리의 생애를 하도록 열어 줄 수 있는 다윗의 열쇠를 받아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과 진실은 신앙성공의 열쇠요, 신앙 형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는 거룩과 진실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걸어가는 신앙걸음은 거룩과 진실을 가지면 그것이 열쇠가 되어서 신앙의 길을 열어 형통하고, 신앙성공 승리의 생애를 할 수 있고, 거룩과 진실이 없으면 신앙의 길은 자물쇠로 잠겨 있어 신앙성공 신앙승리의 생애를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칭찬 8절 중반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행위에 대해서 주님께서 칭찬을 하셨습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주님께 받은 자원, 하나도 남기지 않고 있는 것을 다 기울여 충성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 다하여, (눅10:25) 몸 다하고, 마음 다하고, 뜻 다하고, 성품 다하고, 목숨 다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있는 것은 몇번이든지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냐, 작으냐, 많으냐, 적으냐를 상관치 않고 다 하느냐, 다 하지 않느냐를 가지고 판단하십니다.
왜냐하면 맡기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막12:41-44)에서도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의 연보를 크게 여기시고 칭찬하셨다. ‘내 말 지키며’ 신구약 성경에 발표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것을 말씀합니다. ‘내 이름 배반치 않고’ 하나님께서 큰 힘들여 한 없는 희생으로 자기를 위하여 설정해 주신 사활의 대속의 피 공로를 벗지 아니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의 이름’이란 주님이 어떠하신 분이며, 무슨 일을 하신 것을 다 총칭해서 말합니다. 자기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모든 존재를 창조하신 것을 인정치 않는 것도 주님 배반하는 것이요, 나는 주님이 나를 값 주고 사신 주님의 것인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도 주님 배반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심을 바로 알고, 하신 일을 바로 알아 감사해야 합니다. 9절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하리라 ‘보라’는 다음 기록에 주목하여 증거로 참고로 삼아 그들의 하는 일에 유혹이나 협박을 당하지 말고 담대함을 가지라는 강조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이냐 사단의 회=자칭유대인=거짓말 하는자들입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교회에서 두 갈래의 노선이 생길 때 불완전하나, 그 중에서도 어느 편이 주님에게 소속된 옳은 편인지, 생사 화복 흥망의 문제이기 때문에 감정이나 일시적 이해나 고집에서 벗어나 냉정한 비판으로 심사해야 합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자의 표’는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알게하리라 거짓 말 하는 자 중 몇을 네게 주어 네 발 앞에 절하게 하리라” 하신 말씀에서 앞에 ‘회개하라’는 권고가 없는 것을 보아서, 거룩과 진실로 적은 능력 가지고, 내 말 지키고,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하고 살려할 때에 대적들의 껍데기는 자칭 유대인이요, 알맹이는 사탄이요, 목적은 구원을 방해하는 거짓말 하는 자들 중 몇을 하나님이 직접 치셔서 꺽으시고, 낭패되는 일을 당하게하여 네 발 앞에 절하게 하는 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자라는 표요, 자칭 유대인은 내가 미워하는 자라는 표시로 삼겠다는 말씀입니다. 전지와 전능으로, 절대 주권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거룩과 진실로 적은 능력가지고, 내 말지키고, 내 이름 배반치 않고 살려고 할 때, 사탄의 방해에도 있는 것 다하여 사는 성도에게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요 위로의 표시요 칭찬입니다. 우리는 어떤 변명을 합니까 “믿음이 없다, 믿음이 적다, 돈이 없다, 무식하다, 형편, 사정이 어렵다, 방해물이 많다, 몸이 안 좋다” 이유와 변명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에게는 이유가 없습니다, 있는대로만 있는 그것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몇을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겠다.”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한다는 표시를 해서 알게 하신답니까 안 하신답니까 전지자, 전능자, 사랑의 주권자가 보호합니까 안 합니까 한다면 어느 정도 하십니까 부족함이 없도록 하십니다.
누가 어디에 그렇게 말씀했습니까 시편 23편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0절 내가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하나님께서 인내의 말씀만 지키면, 내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조건만 지키면, 약속대로 이행해 주십니다.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말씀 지키는 일을 언제 할 수 있습니까 과거에 지킬 수 있습니까, 현재에 지킬 수 있습니까, 미래에 지킬 수 있겠습니까 말씀 지키는 일은 언제 지킬 수 있습니까 현재에서만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전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일 어떻게 할까 하는 내일도 상관 말고, 과거에 내가 어떻게 했다 하는 과거도 내버려두고, 현재에 내가 말씀 어기지 말고, 말씀 지키면 됩니다. 우리가 힘쓸 것은 현재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여기에다가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울이면 얼마를 기울여야 합니까 네가 가진 것이 많다고 하여 안심하고 남겨놓고 기울이지 말고, 적고 모자란다고 낙망이나 원망 불평이나 탄식하지 말고, 많든지 적든지 상관하지 말고, 네 있는 것만 다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지키되 내게 있는 것만 다하면 됩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내신 조건대로 살면,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이행하십니다. 네가 나를 대우한 것만큼 소망한대로 내가 다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1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전지자의 보호 전능자의 보호 주권섭리자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목자되신 여호와께서 지켜주시니 부족함이 없도록 해 주십니다. 성도의 배후에 누가 계십니까 배후의 하나님이 무엇 하십니까 나를 지켜 주십니다. 믿습니까 두려울 것, 겁낼 것, 걱정할 것, 염려할 것 있습니까 없습니까
2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시험을 면제해 주시겠다’는 말은 무시험 통과가 아니라, 평소에 다 통과 했기 때문에 시험이 시험이 되지 않고, 시험볼 필요가 없어집니다. 높은 산이라도 평소 한 걸음, 한 걸음 씩 올라가서, 산 정상을 한 발만 뛰면 되는 사람에게는 높은 산 정상 올라가기는 아무런 어려움이 안되는 것입니다. 평소에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가운데서 연단되어 제일 고통스럽고 힘드는 때가 없도록 극복할 실력을 길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험은 장차,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누구에게나 다 임할 것인데 시험의 때를 면하는 능력은 평소 현재에서 자기 있는 힘 다하여 주의 말씀 지키는 데서 하나님이 주십니다.
주님의 권면 11절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내가 속히 오리라’:“거룩과 진실로 인내의 말씀 지키는 신앙생활 계속하는 것은 심히 피곤한 줄을 내가 잘 안다. 너희들이 심히 피곤하지만 지극히 작은 이 피곤 가지고 무한한 것을 얻기 때문에 무한한 것을 얻는 그 결과에 비해서는 원인되는 피곤은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들에게 지루하게 피곤을 많이 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단축시키고, 축소시켜, 신속하게 무한한 것을 짧은 보호막을 가지고 이루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참고 견디라는 권면입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라고 말씀하신 ‘네가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거룩과 진실입니다. ‘거룩과 진실’이 무엇을 낳았습니까 “적은 능력 가지고서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함”은 거룩과 진실에서 나왔지, 딴 데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작은 능력으로 내말 지키며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하는 것을 세상 마칠 때까지 심히 힘들고 피곤해도 굳게 잡고 놓치지 말고 그대로 계속 지켜야 합니다. 적은 능력 가지고 굳게 잡고 놓치지 아니하려면 많은 투쟁, 애로가 있습니다.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면류관’은 투쟁의 결과인 승리로 얻는 상인데 성도의 생애는 전투의 생애요, 전투의 승패는 현실 현실에서 패전과 승리가 결정되므로 찰라라도 패전이 없도록 어떤 애로가 있어도 끝까지 승리하도록 하라는 권면입니다.
허락한 상급 12절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이기는 자’는 거룩과 진실을 가지고, 적은 능력으로, 내 말 지키며, 내 이름 배반치 않는 자에게는-‘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성전기둥은 가장 요긴한 재목으로 성전에서 제일 힘 받는 위치에 사용되고 있음 같이 없어서는 안되는 보배요, 필요하고 요긴한 사람이요, 교회에 요긴하고 귀중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교회는 네 힘으로 서게 되도록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기둥을 빼면 성전이 다 무너져 버립니다. 성전은 네 어깨 위에 들려가지고 있다. 네 힘으로 들고 있다. 이렇게 이기는 자의 신앙생활하는 그 사람으로 인해서 교회는 들려가지고 있고, 서 있고, 교회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게으름 부리고 명예, 영광 가지고, 무슨 큰 소리 하고, 그 속에 악이 들어가서 공명 중심, 사욕 중심 가지고 다 되는 줄 아는 것이 외식입니다. 이런 사람은 있어서 문제되는 인물입니다.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거룩과 진실을 버리지 아니하고, 적은 능력으로 내 말 지키고,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하면, 마귀가 너를 유혹하는 틈을 탈 수가 없고, 다시는 너에게 탈선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의 기둥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당시 사회에서는 국가에 잘 충성한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그들이 섬기는 신전의 기둥에 새겨 그 사람들을 존귀케 하였다고 합니다. 거룩과 진실을 가지고 적은 능력으로 내 말 지키며,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하는 이러한 신앙생활한 사람들을 존귀케 하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 기둥에 새겨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 하나님의 이름:하나님의 역사가 그를 통하여 나타나서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세상이 볼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도 그를 통해 나타내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도 그 사람을 통하여 나타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12장을 보면, 다니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셔서 굶주린 사자굴의 다니엘을 사자가 해치지 못하였고,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살아났고, 다니엘의 대적은 사자밥이 되게 하셨고, 다니엘이 섬기던 하나님의 영광도 나타내서 다리오왕으로 하여금 조서를 내리게하여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 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도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고 말씀했습니다.
2 새 예루살렘의 이름:‘새 예루살렘’은 천국을 가르켜 말하는데, 이기는 자에게 천국 시민권을 주셔서 그 사람을 통하여 영광스런 천국, 권위 있는 천국을 모든 사람에게 보일 수 있도록 나타내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거룩과 진실을 가지고 적은 능력으로 내 말 지키며,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하는 그 사람에게 마음의 천국이 이루어지고, 그 사람을 통하여 영광스런 권위 있는 천국을 나타내시겠다는 것입니다. 3 나의 새 이름:주님의 ‘새 이름’은 복음운동을 말합니다. 복음운동이 무슨 유력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잘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힘센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거룩과 진실을 가지고 적은 능력으로 내 말 지키며,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하는 그 사람들에게 개혁도 있고, 보수도 있고,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붙들고 복음운동을 하십니다. 돈 가지고 하는 것 아니고, 권세 가지고 하는 것 아니고, 큰 교회 가지고 하는 것 아니고, 사람 많이 모인 것 가지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도 계시고, 하나님의 능력도, 영광도 나타나고, 천국도 건설되고, 복음운동도 됩니다.
나타난 주님의 모습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문을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7-8절 상반절)라는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거룩하고”란 따져서 구별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사이비한 것이 가득차서 진리 같으나 진리가 아니고, 신앙의 말 같으나 신앙의 말이 아니고, 사랑하는 것 같으나 사랑이 아니고, 나를 유익하게 하는 것 같으나 나를 몰아다가 멸망케 하는 그런 것들이 가득찬 세상입니다. 우리는 평소 자기 현실에서 중심 위주가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소욕이 성령님의 소욕이냐, 육신의 소욕이냐, 복음이 천국복음이냐, 세상 복음이냐, 설교가 말씀위주냐, 세상 복이나 흥미나 감정위주냐, 사랑이 하나님 사랑이냐, 인간 사랑이냐, 내가 사는 생활이 믿음으로냐, 믿음 떠난 생활이냐, 하나님 뜻대로냐, 하나님 배반이냐, 금식기도가 인간정욕을 끊기 위한 것이냐, 인간 육신의 소욕달성을 위한 것이냐 이것을 구별하는 것이 ‘거룩’에서 나옵니다. 무지하고 연약한 사람이지만 자기 힘 있는대로는 구별하는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인 말씀을 지킬 수 있는 필연적인 행위가 나옵니다. 거룩을 버리면 그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라고 애를 쓸 수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고, 필연적으로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마귀가 제일 좋아하고 소원하는 전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뜻을 찾지 못하도록 하고, 깨닫지 못하도록 하고, 구별하지 못하게 혼합시키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에게 구별하는 성질과 성품이 선천적으로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는데, 구별하는 성품이 적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 더불어 화친하는 장점이 있고, 구별성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화평이 안되는 단점이 있는데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하리라” 거룩과 화평은 상극적인 것 같으나, 실은 처음 시작과 진행과정은 둘이나 마지막에 종착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선천적으로 거룩성이 약한 사람, 강한 사람, 풍부한 사람, 모자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쨋든지 우리는 하나님이 지어주신대로 구별하는 것을 내게 있는 것 다 해서 힘써 하기만 하면, 주님이 칭찬하시고, 주의 말씀 지키고, 그 이름을 배반치 아니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그 원천이 ‘거룩과 진실’에 있습니다. 우리는 크든지, 작든지, 자기의 평범한 평소 생활에서 구별하는 것을 놓지 안해야 됩니다. 구별하는 것을 세상은 싫어하고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진실하사’란 구별하고 구별해서 하나인 하나님의 뜻인 옳고 참된 것에 도달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다윗의 열쇠’는 다윗 왕은 전쟁에서 백전백승한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이는 마귀, 죄, 사망, 세상으로 더불어 싸우는 전투 투쟁에서 이기고 점령하는 권세를 말합니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 란 말씀에서 ‘문’은 하나님을 향하여 천국을 향하여 가는 천국노정을 말합니다. 하나님 향하여 나아가는 천국노정에 시온의 대로 같이 형통케 해 주셔서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셔서 신앙성공 신앙승리의 생애를 하도록 열어 주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거룩과 진실한 행위를 가지면 주님은 우리의 신앙의 길을 형통케 하시고, 신앙 성공, 승리의 생애를 하도록 열어 줄 수 있는 다윗의 열쇠를 받아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과 진실은 신앙성공의 열쇠요, 신앙 형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는 거룩과 진실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걸어가는 신앙걸음은 거룩과 진실을 가지면 그것이 열쇠가 되어서 신앙의 길을 열어 형통하고, 신앙성공 승리의 생애를 할 수 있고, 거룩과 진실이 없으면 신앙의 길은 자물쇠로 잠겨 있어 신앙성공 신앙승리의 생애를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칭찬 8절 중반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행위에 대해서 주님께서 칭찬을 하셨습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주님께 받은 자원, 하나도 남기지 않고 있는 것을 다 기울여 충성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 다하여, (눅10:25) 몸 다하고, 마음 다하고, 뜻 다하고, 성품 다하고, 목숨 다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있는 것은 몇번이든지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냐, 작으냐, 많으냐, 적으냐를 상관치 않고 다 하느냐, 다 하지 않느냐를 가지고 판단하십니다.
왜냐하면 맡기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막12:41-44)에서도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의 연보를 크게 여기시고 칭찬하셨다. ‘내 말 지키며’ 신구약 성경에 발표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것을 말씀합니다. ‘내 이름 배반치 않고’ 하나님께서 큰 힘들여 한 없는 희생으로 자기를 위하여 설정해 주신 사활의 대속의 피 공로를 벗지 아니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의 이름’이란 주님이 어떠하신 분이며, 무슨 일을 하신 것을 다 총칭해서 말합니다. 자기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모든 존재를 창조하신 것을 인정치 않는 것도 주님 배반하는 것이요, 나는 주님이 나를 값 주고 사신 주님의 것인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도 주님 배반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심을 바로 알고, 하신 일을 바로 알아 감사해야 합니다. 9절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하리라 ‘보라’는 다음 기록에 주목하여 증거로 참고로 삼아 그들의 하는 일에 유혹이나 협박을 당하지 말고 담대함을 가지라는 강조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이냐 사단의 회=자칭유대인=거짓말 하는자들입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교회에서 두 갈래의 노선이 생길 때 불완전하나, 그 중에서도 어느 편이 주님에게 소속된 옳은 편인지, 생사 화복 흥망의 문제이기 때문에 감정이나 일시적 이해나 고집에서 벗어나 냉정한 비판으로 심사해야 합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자의 표’는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알게하리라 거짓 말 하는 자 중 몇을 네게 주어 네 발 앞에 절하게 하리라” 하신 말씀에서 앞에 ‘회개하라’는 권고가 없는 것을 보아서, 거룩과 진실로 적은 능력 가지고, 내 말 지키고,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하고 살려할 때에 대적들의 껍데기는 자칭 유대인이요, 알맹이는 사탄이요, 목적은 구원을 방해하는 거짓말 하는 자들 중 몇을 하나님이 직접 치셔서 꺽으시고, 낭패되는 일을 당하게하여 네 발 앞에 절하게 하는 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자라는 표요, 자칭 유대인은 내가 미워하는 자라는 표시로 삼겠다는 말씀입니다. 전지와 전능으로, 절대 주권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거룩과 진실로 적은 능력가지고, 내 말지키고, 내 이름 배반치 않고 살려고 할 때, 사탄의 방해에도 있는 것 다하여 사는 성도에게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요 위로의 표시요 칭찬입니다. 우리는 어떤 변명을 합니까 “믿음이 없다, 믿음이 적다, 돈이 없다, 무식하다, 형편, 사정이 어렵다, 방해물이 많다, 몸이 안 좋다” 이유와 변명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에게는 이유가 없습니다, 있는대로만 있는 그것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몇을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겠다.”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한다는 표시를 해서 알게 하신답니까 안 하신답니까 전지자, 전능자, 사랑의 주권자가 보호합니까 안 합니까 한다면 어느 정도 하십니까 부족함이 없도록 하십니다.
누가 어디에 그렇게 말씀했습니까 시편 23편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0절 내가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하나님께서 인내의 말씀만 지키면, 내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조건만 지키면, 약속대로 이행해 주십니다.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말씀 지키는 일을 언제 할 수 있습니까 과거에 지킬 수 있습니까, 현재에 지킬 수 있습니까, 미래에 지킬 수 있겠습니까 말씀 지키는 일은 언제 지킬 수 있습니까 현재에서만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전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일 어떻게 할까 하는 내일도 상관 말고, 과거에 내가 어떻게 했다 하는 과거도 내버려두고, 현재에 내가 말씀 어기지 말고, 말씀 지키면 됩니다. 우리가 힘쓸 것은 현재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여기에다가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울이면 얼마를 기울여야 합니까 네가 가진 것이 많다고 하여 안심하고 남겨놓고 기울이지 말고, 적고 모자란다고 낙망이나 원망 불평이나 탄식하지 말고, 많든지 적든지 상관하지 말고, 네 있는 것만 다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지키되 내게 있는 것만 다하면 됩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내신 조건대로 살면,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이행하십니다. 네가 나를 대우한 것만큼 소망한대로 내가 다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1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전지자의 보호 전능자의 보호 주권섭리자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목자되신 여호와께서 지켜주시니 부족함이 없도록 해 주십니다. 성도의 배후에 누가 계십니까 배후의 하나님이 무엇 하십니까 나를 지켜 주십니다. 믿습니까 두려울 것, 겁낼 것, 걱정할 것, 염려할 것 있습니까 없습니까
2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시험을 면제해 주시겠다’는 말은 무시험 통과가 아니라, 평소에 다 통과 했기 때문에 시험이 시험이 되지 않고, 시험볼 필요가 없어집니다. 높은 산이라도 평소 한 걸음, 한 걸음 씩 올라가서, 산 정상을 한 발만 뛰면 되는 사람에게는 높은 산 정상 올라가기는 아무런 어려움이 안되는 것입니다. 평소에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가운데서 연단되어 제일 고통스럽고 힘드는 때가 없도록 극복할 실력을 길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험은 장차,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누구에게나 다 임할 것인데 시험의 때를 면하는 능력은 평소 현재에서 자기 있는 힘 다하여 주의 말씀 지키는 데서 하나님이 주십니다.
주님의 권면 11절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내가 속히 오리라’:“거룩과 진실로 인내의 말씀 지키는 신앙생활 계속하는 것은 심히 피곤한 줄을 내가 잘 안다. 너희들이 심히 피곤하지만 지극히 작은 이 피곤 가지고 무한한 것을 얻기 때문에 무한한 것을 얻는 그 결과에 비해서는 원인되는 피곤은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들에게 지루하게 피곤을 많이 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단축시키고, 축소시켜, 신속하게 무한한 것을 짧은 보호막을 가지고 이루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참고 견디라는 권면입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라고 말씀하신 ‘네가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거룩과 진실입니다. ‘거룩과 진실’이 무엇을 낳았습니까 “적은 능력 가지고서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함”은 거룩과 진실에서 나왔지, 딴 데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작은 능력으로 내말 지키며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하는 것을 세상 마칠 때까지 심히 힘들고 피곤해도 굳게 잡고 놓치지 말고 그대로 계속 지켜야 합니다. 적은 능력 가지고 굳게 잡고 놓치지 아니하려면 많은 투쟁, 애로가 있습니다.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면류관’은 투쟁의 결과인 승리로 얻는 상인데 성도의 생애는 전투의 생애요, 전투의 승패는 현실 현실에서 패전과 승리가 결정되므로 찰라라도 패전이 없도록 어떤 애로가 있어도 끝까지 승리하도록 하라는 권면입니다.
허락한 상급 12절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이기는 자’는 거룩과 진실을 가지고, 적은 능력으로, 내 말 지키며, 내 이름 배반치 않는 자에게는-‘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성전기둥은 가장 요긴한 재목으로 성전에서 제일 힘 받는 위치에 사용되고 있음 같이 없어서는 안되는 보배요, 필요하고 요긴한 사람이요, 교회에 요긴하고 귀중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교회는 네 힘으로 서게 되도록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기둥을 빼면 성전이 다 무너져 버립니다. 성전은 네 어깨 위에 들려가지고 있다. 네 힘으로 들고 있다. 이렇게 이기는 자의 신앙생활하는 그 사람으로 인해서 교회는 들려가지고 있고, 서 있고, 교회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게으름 부리고 명예, 영광 가지고, 무슨 큰 소리 하고, 그 속에 악이 들어가서 공명 중심, 사욕 중심 가지고 다 되는 줄 아는 것이 외식입니다. 이런 사람은 있어서 문제되는 인물입니다.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거룩과 진실을 버리지 아니하고, 적은 능력으로 내 말 지키고,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하면, 마귀가 너를 유혹하는 틈을 탈 수가 없고, 다시는 너에게 탈선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의 기둥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당시 사회에서는 국가에 잘 충성한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그들이 섬기는 신전의 기둥에 새겨 그 사람들을 존귀케 하였다고 합니다. 거룩과 진실을 가지고 적은 능력으로 내 말 지키며,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하는 이러한 신앙생활한 사람들을 존귀케 하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 기둥에 새겨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 하나님의 이름:하나님의 역사가 그를 통하여 나타나서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세상이 볼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도 그를 통해 나타내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도 그 사람을 통하여 나타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12장을 보면, 다니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셔서 굶주린 사자굴의 다니엘을 사자가 해치지 못하였고,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살아났고, 다니엘의 대적은 사자밥이 되게 하셨고, 다니엘이 섬기던 하나님의 영광도 나타내서 다리오왕으로 하여금 조서를 내리게하여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 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도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고 말씀했습니다.
2 새 예루살렘의 이름:‘새 예루살렘’은 천국을 가르켜 말하는데, 이기는 자에게 천국 시민권을 주셔서 그 사람을 통하여 영광스런 천국, 권위 있는 천국을 모든 사람에게 보일 수 있도록 나타내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거룩과 진실을 가지고 적은 능력으로 내 말 지키며,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하는 그 사람에게 마음의 천국이 이루어지고, 그 사람을 통하여 영광스런 권위 있는 천국을 나타내시겠다는 것입니다. 3 나의 새 이름:주님의 ‘새 이름’은 복음운동을 말합니다. 복음운동이 무슨 유력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잘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힘센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거룩과 진실을 가지고 적은 능력으로 내 말 지키며, 내 이름 배반치 아니하는 그 사람들에게 개혁도 있고, 보수도 있고,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붙들고 복음운동을 하십니다. 돈 가지고 하는 것 아니고, 권세 가지고 하는 것 아니고, 큰 교회 가지고 하는 것 아니고, 사람 많이 모인 것 가지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도 계시고, 하나님의 능력도, 영광도 나타나고, 천국도 건설되고, 복음운동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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