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창조의 질서 (계4:11)
본문
본문에는 하나님/만물/그리고 찬송을 드리는 인간 이렇게 3 자의 모습을 본다. 하나님, 인간, 만물은 이 세상에서의 가장 아름다운 조화라고 본다. 이 말은 서로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1. 물질세계 (物質世界) 우리가 사는 세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지으신 곳이다. (시 148:5) 우리는 자연에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교훈한 내용들을 많이 발견한다. 인생을 '풀과 풀의 꽃'으로 비유한 것, 환란을 '성난 파도'로 표현한 것이나 불과 홍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 것들이 그렇다.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없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자연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결실을 맺으며 반복되는 현상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세계는 인간이 살아 가는데 중요한 장소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인간에게 주시며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해야 한다. (롬 1:20) 하나님은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발견'하게 해 주셨다. 시편기자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도다.'라고 말하였다.(시19:1)
하나님은 그가 친히 옥수로 만드신 이 세상을 우리 인간에게 맡겨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만을 볼 것이 아니라 물질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을 하나님에게서 맡았으니 우리는 청지기적 사명을 가졌다.
그러므로 a) 물질에 대한 충성 b)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겸손함 c) 이웃과 함께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2) 선용해야만 한다. (고후 9:10) 하나님이 지으신 물질 자체는 선악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다. 물질을 사용하는 인간과의 상관관계에서 선과 악이 나타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물질에 대하여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가르쳤다.(딤전 4: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한 가르침처럼 문제는 인간에게 있는 탐심이지 이 세상이 악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우리는 도피주의나 금용주의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유물주의자나 배금주의자도 아니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사랑을 따라 모든 만물을 선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2. 이 웃 인간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지라도 일시적으로 산다. 그러나 이웃이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도록 하나님이 창조해 주셨다. 탈무드에는 이렇 말이 있다. '영혼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지만 육체는 푸줏간 주인의 신세를 져야 한다.'
1) 이웃은 창조의 동반자이다. (창 2:18)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아담의 처음 이웃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 졌다. 이웃은 단순히 사회적 관계이기전에 창조의 동반자로 주어진 것을 믿어야 한다.
2) 이웃은 삶의 조력자이다. (창 2:20) 하나님은 아담의 돕는 배필로 하와를 주셨다. 에덴은 돕는 사람들의 터이다. 나의 이익의 대상,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동안 에덴은 파괴되고 만다.
3) 이웃은 사명의 동반자이다. (창 1:28) 아담 하와가 지음 받은 이후에 하나님에게서 받은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함과 정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이웃이 함께 함으로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교회도 함께 하는 이웃이 존재할 때에 교회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이웃이나 이웃이 없는 하나님 섬김은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4) 이웃은 삶의 교사이다.(롬 13:4)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중풍병자 … 얼마나 부덕한 사람인가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好 不好를 당하며 산다. 이 두 종류의 이웃들은 자신의 인격의 거울이다. 이웃은 때로 하나님의 대리자로 내 앞에 설 때가 있다. 이웃에게 대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하는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에 한 사람이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에게 자기의 담요를 벗어 주었다. 이 사람이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천국에 계신 예수님께서 좋아 하시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랑하는 담요를 보니 반쪽이었다. 반쪽을 너풀거리며 자랑하는 담요는 그가 한 거지에게 자기의 담요를 절반 찢어서 나눠 가졌기 때문이었다. 랏셀 로우웰의 작품으로 '라운폴 공의 꿈'이라는 짧은 시가 있다. 이 시의 내용인즉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과 함게 나눈 잔을 찾아내는 일인데 자기 신하들에게 국사를 맡기고 여러해 금잔을 찾아 다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성문에 들어 왔다.
그런데 성 문에는 한 문둥이가 적선을 요구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수년 전에 자기를 화나게 했던 문둥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운폴은 가지고 있던 빵을 나눠주고 허리에 찬 표주박으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다 마시게 하였다. 그순간 문둥이가 홀연히 변하여 흰 옷을 입으신 예수로 변하더니 라운폴 경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하였다. '보라, 내니 두려워 말라. 거룩한 잔을 찾으려고 여러 나라를 다닌 너의 수고를 안다마는 네가 찾는 금잔은 여기 있다. 샘물을 기어다 준 바로 이 표주박이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한 그것이 바로 나를 향하여 한 것이다.' 라운폴은 이후로 나라의 창고를 열어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선정을 베풀어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3.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無에서 有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어거스틴 '하나님은 인간이 없이는 만족할 수 없으시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다.'는 말을 하였다.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지음 받은 존재임을 시인하는 사람은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바르게 가지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가장 좋은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하신 그의 작품이다.(엡 2:10) 인간은 하나님을 섬김의 대상으로 모셔야 한다.(전 12:13)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인생의 도리요. 삶의 이치요, 복받는 비결이다. (잠1:7,신 28:)
1. 물질세계 (物質世界) 우리가 사는 세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지으신 곳이다. (시 148:5) 우리는 자연에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교훈한 내용들을 많이 발견한다. 인생을 '풀과 풀의 꽃'으로 비유한 것, 환란을 '성난 파도'로 표현한 것이나 불과 홍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 것들이 그렇다.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없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자연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결실을 맺으며 반복되는 현상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세계는 인간이 살아 가는데 중요한 장소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인간에게 주시며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해야 한다. (롬 1:20) 하나님은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발견'하게 해 주셨다. 시편기자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도다.'라고 말하였다.(시19:1)
하나님은 그가 친히 옥수로 만드신 이 세상을 우리 인간에게 맡겨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만을 볼 것이 아니라 물질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을 하나님에게서 맡았으니 우리는 청지기적 사명을 가졌다.
그러므로 a) 물질에 대한 충성 b)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겸손함 c) 이웃과 함께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2) 선용해야만 한다. (고후 9:10) 하나님이 지으신 물질 자체는 선악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다. 물질을 사용하는 인간과의 상관관계에서 선과 악이 나타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물질에 대하여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가르쳤다.(딤전 4: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한 가르침처럼 문제는 인간에게 있는 탐심이지 이 세상이 악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우리는 도피주의나 금용주의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유물주의자나 배금주의자도 아니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사랑을 따라 모든 만물을 선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2. 이 웃 인간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지라도 일시적으로 산다. 그러나 이웃이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도록 하나님이 창조해 주셨다. 탈무드에는 이렇 말이 있다. '영혼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지만 육체는 푸줏간 주인의 신세를 져야 한다.'
1) 이웃은 창조의 동반자이다. (창 2:18)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아담의 처음 이웃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 졌다. 이웃은 단순히 사회적 관계이기전에 창조의 동반자로 주어진 것을 믿어야 한다.
2) 이웃은 삶의 조력자이다. (창 2:20) 하나님은 아담의 돕는 배필로 하와를 주셨다. 에덴은 돕는 사람들의 터이다. 나의 이익의 대상,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동안 에덴은 파괴되고 만다.
3) 이웃은 사명의 동반자이다. (창 1:28) 아담 하와가 지음 받은 이후에 하나님에게서 받은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함과 정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이웃이 함께 함으로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교회도 함께 하는 이웃이 존재할 때에 교회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이웃이나 이웃이 없는 하나님 섬김은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4) 이웃은 삶의 교사이다.(롬 13:4)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중풍병자 … 얼마나 부덕한 사람인가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好 不好를 당하며 산다. 이 두 종류의 이웃들은 자신의 인격의 거울이다. 이웃은 때로 하나님의 대리자로 내 앞에 설 때가 있다. 이웃에게 대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하는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에 한 사람이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에게 자기의 담요를 벗어 주었다. 이 사람이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천국에 계신 예수님께서 좋아 하시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랑하는 담요를 보니 반쪽이었다. 반쪽을 너풀거리며 자랑하는 담요는 그가 한 거지에게 자기의 담요를 절반 찢어서 나눠 가졌기 때문이었다. 랏셀 로우웰의 작품으로 '라운폴 공의 꿈'이라는 짧은 시가 있다. 이 시의 내용인즉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과 함게 나눈 잔을 찾아내는 일인데 자기 신하들에게 국사를 맡기고 여러해 금잔을 찾아 다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성문에 들어 왔다.
그런데 성 문에는 한 문둥이가 적선을 요구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수년 전에 자기를 화나게 했던 문둥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운폴은 가지고 있던 빵을 나눠주고 허리에 찬 표주박으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다 마시게 하였다. 그순간 문둥이가 홀연히 변하여 흰 옷을 입으신 예수로 변하더니 라운폴 경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하였다. '보라, 내니 두려워 말라. 거룩한 잔을 찾으려고 여러 나라를 다닌 너의 수고를 안다마는 네가 찾는 금잔은 여기 있다. 샘물을 기어다 준 바로 이 표주박이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한 그것이 바로 나를 향하여 한 것이다.' 라운폴은 이후로 나라의 창고를 열어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선정을 베풀어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3.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無에서 有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어거스틴 '하나님은 인간이 없이는 만족할 수 없으시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다.'는 말을 하였다.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지음 받은 존재임을 시인하는 사람은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바르게 가지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가장 좋은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하신 그의 작품이다.(엡 2:10) 인간은 하나님을 섬김의 대상으로 모셔야 한다.(전 12:13)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인생의 도리요. 삶의 이치요, 복받는 비결이다. (잠1:7,신 28:)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