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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 (계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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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경제위기 한파로 어수선한 것과는 달리, 미국을 비롯한 선진 각국은 소위 인간복제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지난 6일 시카고에서 인공수정을 연구해 온 물리학자 리처드 시드란 사람이 인간복제 병원을 설립할 것이라 밝히면서 인간복제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다시 부각되었습니다. 물론 미 식품의약국 FDA는 즉각 무책임한 행동이라 비난을 했고, 미 의회는 인간복제 금지를 입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도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인간복제 또는 동물복제란 인위적 조작과정을 통해서 외모나 유전형질이 같은 다수의 인간 또는 동물을 만들어내는 유전공학 기술을 말합니다. 동물복제가 연구되고 시행되어 온 것은 이미 20년 전부터였습니다. 올챙이 복제로부터 시작되어 다양한 동물복제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를 복제해서 화제가 된 일도 있습니다. 이런 인간복제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면서 사회에 충격을 던지기 시작했던 것은 작년부터였습니다.
97년 2월 23일 영국 에든버러의 로슬린 연구소는 동물복제로 만들어 낸 생후 7개월 짜리 복제 양 돌리를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돌리라는 양의 복제 경우는 기존의 동물복제와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유전 공학적으로 전문적인 설명이긴 합니다만 지금까지 동물복제는 생식세포를 이용했답니다. 즉 정자 또는 수정란을 이용해서 복제가 이루어졌답니다.
그런데 돌리의 경우 일반 체세포를 이용해서 복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체세포를 복제한다는 것은 이미 살아있는 생명체와 생김새와 유전형질이 같은 생명체를 또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문서를 복사기에서 그대로 복사해 내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아무리 아들이 아빠를 닮았다고 해도 유전형질은 다릅니다. 전혀 다른 생명체입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복제를 하면 아빠와 생김새도 똑같고 유전형질도 똑같은 아이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것도 여럿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작년 2월 로슬린 연구소의 윌머트 연구팀이 복제 양을 발표하자 과학 잡지 '네이쳐'는 "양의 복제가 가능하다면 다음은 양치기의 차례가 아닌가"라고 지적했고, 앞으로 10년 이내의 인간복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이미 예고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인 금년에 벌써 미국의 물리학자 시드가 인간복제를 시험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이에 동의한 부부 4쌍을 확보했고, 기금도 마련 중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인간이 남녀간의 사랑의 열매로 어머니 모태에서 신비로운 생명형성과정을 거쳐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실험실에서 만들어지고 제조되고 대량으로 생산될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도중에 불량품은 제거되고, 인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인간만 이 땅에 생산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수수께끼를 드려볼까요 사람 가운데 배꼽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아담과 하와입니다. 아직은 인간복제도 대리모의 모태에서 태어나 배꼽이 있습니다만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면 배꼽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태어날 수도 있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도 다시 바꿔 써야 할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욥10:8은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습니다"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복제로 태어날 인간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라 말할까요 아마 이렇게 노래하겠지요 "박사님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시날 평야에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께 도전했던 것처럼, 이제 타락한 현대 과학문명이 또 다른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의 고유 영역을 침범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탑이 하나님의 진노로 무너지고 인간에게 감당키 어려운 형벌이 찾아왔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진노는 또 어떤 형벌로 인류에게 찾아들 것인지 두려울 뿐입니다. 이런 두렵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봉독해 주신 본문 말씀을 대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셨다. 본문 계4:11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안에서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홀로 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실 때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존재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창 2:21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자인 하와를 어떻게 만드셨는지에 관해서 말씀해 줍니다.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물론 아담의 통증을 덜어주시기 위해 일종의 마취를 하신 것이라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행위에 인간의 개입을 막으신 것입니다. 신성한 생명창조 과정을 인간으로 하여금 보지 못하도록 막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작업은 하나님 한 분만의 작업입니다. 그 누구도 본 일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돕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혼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지창조와 생명창조에 관해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아니 알 수 없습니다. 현대과학이 우주 생성과정과 생명의 기원에 관해 알려고 몸부림치지만 알 수 없습니다.
아인쉬타인의 말처럼 현대과학이 알아낸 지식은 고작해야 어린아이가 바닷가에 앉아 조개 껍질로 바닷물을 담아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작업은 하나의 신비 그 자체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신비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그 신비가 파헤쳐진다면 그것은 곳 우리에게 재앙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알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래서 겸손히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둘은,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어 성경을 보면 성경에서 제일 먼저 쓰인 단어는 '브레시트'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번역해 보면 '태초에'입니다. 우리야 그 내용을 따라서 '창세기'라고 부르지만 유대인들은 창세기의 이름을 그 첫 단어를 따라서 브레시트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두 번째로 쓰인 단어가 '바라'라는 말입니다. '창조하다', '만들다' 그런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창조하신 일임을 밝혀줍니다. 아무 것도 없던 상태에서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무에서 출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만들다는 말을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바라라는 동사와 아사라는 동사입니다. 바라라는 말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재료 없이 무엇을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아사라는 말은 목수가 나무로 장을 짜는 것같이, 주방장이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짜장면을 만드는 것같이 어떤 재료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인간이 무엇을 만든다 할 때 바라라는 말을 쓴 일이 없습니다.
다만 아사라는 말을 쓸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만 바라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유에서 유를 만듭니다. 인간은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있던 것을 변형시킬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창조되었습니다. 있던 재료를 변형시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귀합니다. 셋,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시간도 만드셨습니다. 공간도 만드셨습니다.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 동물도 식물도 그리고 우리 인간도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이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뜻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뉴욕 맨해튼의 미술관을 관람한 일이 있습니다. 때 마침 세계 유명 작가들의 원작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명작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습니다. 제가 별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만 그 유명한 고호의 해바라기는 알 수 있었습니다. 안내하는 분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 동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지금은 어느 부호가 소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그림의 주인은 당장 이름 모를 그 부호일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 갔듯이 또 얼마 지나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누가 소유하고 있느냐는 이런 명품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렸느냐 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호가 진정한 이 그림의 주인이요 또한 영원한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 그 모두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비록 등기상에 내 이름으로 등록이 되어있을 지 모르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가족도, 내 집도, 내 재산도, 그리고 내 생명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이것을 깨닫고 인정하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어졌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만물이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쑥 들어갔습니다만 지난 2-3년 동안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부실 시공 문제입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지하철이 금이 가서 물이 새고, 지은 지 얼마 않되는 건물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조사 결과 결론은 하나입니다. 설계도대로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함량미달인 자제를 썼고, 불량 자제를 썼고, 졸속으로 시공했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감리도 엉터리고, 준공 검사도 엉터리여서 설계도 따로 건물 따로 그래서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작업은 한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설계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창1:31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리 결과요, 준공 합격 평가입니다. 완벽 시공이요, 성실 시공의 표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보면 그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이 하나님의 작품에 드리어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정교하게 꽃을 만들어도 들에 막 핀 들꽃의 아름다움을 감히 흉내낼 수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6.3 빌딩 너머로 저물어 가는 저 낙조를 감히 흉내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작품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36:9에 말씀했습니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 눈에 하찮아 보여도 하나님께서 뜻을 세우시고 만드신 작품이라는 것을 잊으면 않됩니다.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더더욱 생명은 경외하는 마음으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특히 인간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 아닌 너의 생명도 소중하고, 내 인격이 귀하듯이 너의 인격도 귀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이토록 아름답게 만드신 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이런 우리 인간의 과제를 JP
IC 곧 창조질서의 보전이라고 개념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만물을 만드실 때 그 안에 담아 놓으신 뜻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설계대로 우주 만물을 보존하자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주만물은 지금 신음하고 있습니다. 마치 맑고 깨끗한 물웅덩이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들어가 다 흙탕물을 만들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화가가 다 그려놓은 그림에 철부지 어린이가 붓을 들고 그 위에 장난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물에 손을 대면 물이 썩습니다. 땅에 손을 대면 땅이 썩습니다. 바다에 손을 대면 바다가 썩고, 하늘에 손을 대면 하늘이 썩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욕심을 반영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설계를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자연과 우리 인간 생명을 잘 보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뜻대로 보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본문에서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마땅히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만물을 이토록 아름답게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찬양을 드려야 합니까 우선 감사해야 합니다. 시139:14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사람들이 거울을 보면서 느끼는 느낌은 각자마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뿌듯함을 느낍니다. 또 어떤 분들은 열등감을 느끼거나 절망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않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시고 "심히 좋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요. 우리는 모드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실패작을 이 땅에 내지 않으십니다. 개나 돼지나 소나 말 같은 짐승들이 자기 외모 때문에 고민하는 것 보셨습니까 동물들이 성형 수술해 달라 하는 것 보셨습니까 우리 인간들만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에 불만을 표시합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시 139편 기자의 노래처럼 하나님께서 신기하게 만드셨다고 찬미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일본의 테레사라 불리는 다마키라는 여인은 평생을 한센씨 병을 앍고 있는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요양원을 만들고 고름이 나는 환자들의 피부를 치료하다가 자신도 결국에는 한센씨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거울을 보는 순간 처음에는 절망을 했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 절망을 이긴 후에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이제 육의 눈이 가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 감사합니다. 눈썹이 빠지면서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습니다. 먼지가 자꾸 눈에 들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님 내게 병을 주셔서 오히려 하나님께 여러 가지 감사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썹이 빠지고, 외모가 일그러지면서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창조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어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감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당하게 자신 있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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