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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간과한 두아디라 교회 (계2: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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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물결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최근에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를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힘의 전환이라는 책인데, 여기서 그는 앞으로의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은첫째로 지식을 가진 자,둘째로 권력을 가진 자,셋째 로 부요함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꼭 예언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사람들이 너무도 목말라 하는 그런 요소들을 잘 지적한 듯합니다. 토플러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우리는 이 세 요소를 거의 광적으로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권력과 더 많은 부요를 좇아서 헤매는 사람들,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조상님들이 서낭당에 가서 물 떠 놓고 비는 것만 우상 숭배가 아닙니다. 문명이 발달한 만큼 우상의 성격도 간교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현대인들을 공략하기 위해서 현대적인 우상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식의 우상, 권력의 우상, 부요의 우상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오늘 이 우상 앞에 항복하며 쩔쩔매고 있 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지식에서 자유합니까 당신은 얼마나 권력에서 자유합니까 당신은 얼마나 물질에서 자유합니 까 당신 자신은 우상 숭배자가 아닌지 하나님 앞에서 자문해 보십시오. 교회 안에도 이 우상의 영향력이 미친다는 것은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앞 장에서 공부한 버가모 교회를 위협하고 있 던 우상이 있다면, 그것은 권력의 우상, 지식의 우상, 건강 의 우상입니다. 나에게 권력이 주어질 수만 있다면, 나에게 지 식이 주어질 수만 있다면 양심까지도 팔아넘길 수 있었던 버가모 주민들의 모습은 현대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또 건 강을 위해서 아스콜레피온에 찾아가 그 신 앞에 절하고 기도하는 버가모 사람들의 모습이나 병 고침을 위해 성경적이지 못한 치유의 수단 앞에 영혼을 파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나 같은 것입니다. 주께서 버가모 교회를 향해서 지적하고 있는 죄는 이러한 우상 숭배의 죄와 또 하나 음행의 죄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죄가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서도 동일하게 지적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 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버가모 교회는 지식과 권력과 건강의 우상을 추구하다가 결국 우 상 숭배와 음행의 죄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바로 물질적인 풍요 의 욕망을 이용해서 그들로 우상 숭배와 음행의 죄악에 빠져들게 했던 것입니다. 저는 현대의 가장 간교한 우상은 물질이라는 우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모든 도시를 점거하고 있는 가장 거대하고 힘 있는 물질의 우상, 두아디라는 바로 이 우상 앞에 서 있었 던 것입니다. 두아디라는 버가모에서 동쪽으로 약 64km 떨어진 곳에 위 치한 도시로서, 별로 큰 도시는 아닙니다. 그러나 직조,염색, 피혁, 도기업 등이 성행했고 특별히 옷감 장사로 유명했습니다. 또 이런 산업의 발달로 오늘날의 노동조합과 비슷한 길 드라는 동업 조합이 발달했습니다. 여성으로서 일찌감치 해외 진출을 시작한 사업가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두아디라 도시가 배출했던 유명한 여성 사업가 중의 한 사람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자주 장사 루디아입니다. 이 여인이 마케도니아 빌립보에 왔었는데, 장사하려고 소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진출했던 것입니다. 두아디라 사람들은 부지런히 돈을 모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하나님의 사업에도 아주 열심으로 투자했습니다. 19절 을 보십시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 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여기에서 사업은 비지니스(business)가 아니라 주님의 일입니다.
그들은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 살면서 열심으로 주 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믿고 봉사하고 인내하는 아름다운 교회였 습니다. 그들은 에베소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 뿐만 아니 라 에베소 교회가 잃어버리고 있던 사랑까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에 출발을 잘 했다가 첫사랑을 잃어버 려서 주님 앞에 거의 버림받는 교회로 전락해 가고 있던 반면 에,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보다 나중에 좋은 일을 더 많이 했 다고 말씀하십니다. 물질적인 축복을 받고 있던 교인들이 열심 을 다해 주님을 섬기면서 더욱더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던 번영의 교회, 이것이 두아디라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물질의 축복 속에서 주님을 섬기던 두아디라 교회가 서서 히 그 생명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직면한 위기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주님은 이 교회를 향해서 무엇을 권면하십니까 두아디라 교회의 실수
첫째로, 그들은 이세벨을 지도자의 자리에 용납했습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부인으로서 이미 구약에 나타났던 인물입니다. 아합 왕 당시에 아합 왕의 통치력도 막강했지만 그 부인 의 영향력도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져들게 했고 도덕적으로도 문란한 생활 을 하도록 부추겼습니다. 20절을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 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많은 학자들은 이 이세벨이 두아디라 교회 지도자의 부인이 아 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런 추측은, 구약 시대에 이세벨이 이 스라엘 백성들을 우상 숭배의 죄악으로 유도했던 것처럼 어떤 특정한 여인의 영향이 그 당시 두아디라 교회의 교인들에게 미 친 것이라는 가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여인은 아마도 경제 적으로 대단히 부요한 여인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헌금을 많이 해서 교회 안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여인일 것입니다.이것 때문에 두아디라 교회는 이 여자를 쉽게 지도자의 자리에 용납 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두아디라 교회는 중요한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 그의 신앙보다도 물질을 우선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물론 이 여자가 신앙이 전혀 없는 여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여자에 게 붙은 명칭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 세벨을…. 자칭 선지자라는 것을 보아서, 이 여인은 아직 교회 안에서 공식 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지도자는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영향력을 상당히 갖고 있는 여인임은 틀림없습니다. 여하튼 이 여인이 물질적인 풍요함으로 교회 안에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갔다면, 이 교회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이러한 풍토가 조 성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두아디라 교회를 쉽게 정죄할 수 없음을 압니. 우리도 바로 그 정죄 속에 빠질 수 있는 연약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이세벨의 철학을 수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 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문맥을 잘 살펴보면, 여기서 말하는 간음은 반드시 육체적인 것 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여인의 잘못 된 사상을 동조하면서 그것을 따라가는 영적인 음행을 언급한다 고 볼 수 있습니다.23절에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고 말씀합니다. 이세벨의 잘못된 사상을 수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세벨의 잘못된 철학과 사상이 무엇일까요 성경학자들 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두아디라 도시가 자랑하고 있었던 것은 동업 조합입니다. 그곳에서 장사를 잘 하려면 특별한 절 기마다 조합 내에서 지내는 제사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제사 지 내는 대상은,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로였습니다. 아폴로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또 그의 관심을 사면 장사가 잘 된다고 해서, 그 곳 상인들은 정기적으로 아폴로 신전 앞에 절을 하고 그의 도 움을 빌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위기가 있습니다. 이 도시에 살면서 장사를 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밖에 숭배할 수 없 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폴로 신에게 제사하는 문제 에서 갈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마도 이세벨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영향력을 끼쳤을 것입니다. 이 도시에 살면서 조합에 들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장사를 할 수 있단 말이오. 그리고 장사할 때 관습적으로 문화적으로 절 한번 한다고 해서 신앙이 더럽혀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 오. 열심히 돈을 벌어서 많이 헌금함으로써 열심히 주를 섬깁시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에서 이윤을 취하기 위해서 이세 벨의 철학에 동조하게 되고, 이세벨은 이 교회 안에서 사람들 을 거느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옛날 이야기입니까 오늘날 이윤 추구를 위해서는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다는 사고 방식이 얼마나 통하고 있 습니까 장사하는 순간만은 내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좋고, 기독교적인 생각을 고집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중에는 그리스도인다운 양심을 팔아 버리고 맘몬의 제단 앞에 무릎 꿇는 자들이 없습니까 어느 신 문을 보니까 한국의 어느 교회에서 교회 건축 헌금을 갖고서 돈 놀이를 하다가 그 돈을 모두 잃었다고 합니다. 목표를 달성하 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습니까 그리스도 인들이 날마다 부딪치는 윤리적인 딜레마를 이런 삶의 현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적이고 반성경적인 철학을 따르도록 선동하고 있는 이세벨의 유혹 앞에 한덩이가 되어서 돌아가고 있던 그녀의 제자들 때문에, 이 교회는 심각한 윤리적인 딜레마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세벨의 철학을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회개의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21절에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왜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에 게는 하나님 앞에서 맑은 양심을 지키는 것보다 황금과 권력과 출세가 더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급하지 않 았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일이 급해 보이니까 거기에 매달리고, 그러다 보니까 자신의 모습이 서서 히 부패하고 변질되어 갑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맘몬의 신이 가져다 주는 그 추악함을 볼 수 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 었으되 그 기회를 거절한 두아디라 교회의 비극이 우리의 비극 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경고의 말씀 2장 22,23절에 두 가지 경고가 나옵니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 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침상에 던진다는 것은 병 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23절에서는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겠다고 했 습니다. 질병과 사망은 종종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 들을 훈계하고 일깨우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수단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이 말씀의 배경은 성찬식에 관한 것입니다. 성찬식은 하나님과 내가 바른 관계에 있는가를 검토하는 자아 성찰의 시간입니다. 깊이 자기 자신을 살피지 못하고 타락하고 변질되고 부패해 가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 하는 자녀들을 징계하기 위해서 채찍을 드십니다. 징계는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에게만 있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1장 30절 은 그 징계의 세 가지 단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나를 약하게 하십니다. 자신의 몸이 갑자기 약해지면,이것 이 혹시 나를 사랑하는 징계의 채찍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침상에 눕게 하십니다.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 보도록 말입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육 체적인 사망을 주십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 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들,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들의 목숨을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십니다. 우리는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침상에 눕게 하시고 목숨을 앗아가겠다고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책망 앞에 서 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25절에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말씀합니다. 그 앞 절에서는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었던 것, 그것은 주께서 칭찬하셨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말하는데 거기에서 더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 입니다. 우리가 언제 잘못됩니까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하면서 조금 더 해 보려고 욕심을 낼 때, 뜻하지 않았던 큰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예수 믿고 하나님을 아 버지로 섬기면서 무엇을 더 욕심 내려 합니까 서양 속담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 우리가 죽고 나서 입게 될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주를 위하여 이 땅에서 남겼던 고귀한 삶의 발자취만이 영원히 하나님 앞에 기억될 것 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을 잡으려고 하지 말고 주님이 인정하 시고 칭찬하시는 그것을 굳게 잡고 사십시오. 약속의 말씀 주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두 가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첫째/철장의 권세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돈에 매달리는 것은 결국 권력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나중에 주님과 함께 만국을 다스릴 자라는 것을 알면, 이 세상에서의 시시한 권력 추구를 위해 기를 쓰고 덤벼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새벽별 히브리 사람들은 새벽별을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간을 알리는 신호로 이해합니다. 별은 언제나 왕의 상징입니다. 새로운 나라의 왕, 새로운 시대의 왕, 이 새벽별은 누구입니까 요한계시록 22장 16절을 보면, 그 새 벽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새로운 세대의 왕,다가올 시대의 왕, 저 영원한 나라의 왕이신 새벽별이신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만국을 다스릴 자들입니다. 우리 가 온 세상을 다스릴 그 그리스도의 제자들임을 안다면, 이 세상에서 작은 것을 조금 더 얻기 위해서 발버둥칠 필요가 있느 냐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지나치게 물 질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은 참된 의미의 내세 신앙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천국의 주인이고 우리가 다가 올 저 영원한 나라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참으로 믿는다면, 조 금 더 잘살고 조금 더 못사는 것이 그렇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장로님 한 분이 부산에 살았는데, 그 분은 자수 성가해서 큰 회사의 중역이 되셨습니다. 그 어머니는 경건한 기도의 어머니였고,자식들도 다 잘되었습니다.그 어머니는 옛날 콩 나물 장사를 하면서 자식들을 기르던 그 조그만 집에서 살기를 언제나 고집하셨다고 합니다. 자식들이 자기들 체면을 생각해서 라도 어머니에게 좋은 집으로 이사가시라고 권면했더니, 한번은 이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위해서 좋은 집 주기를 그렇게 원한다면,내가 원하는 집을 지어다오.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내가 이사하마. 어머님, 염려 마시고 어떤 집인지 말씀만 하십시오. 내가 원하는 집은 바닥을 다 금으로 깔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집에는 열두 개의 기둥을 세워야 하는데, 그 열두 개의 기둥도 다 금으로 입혀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열두 개의 문 이 있어야 하는데, 그 문도 다 금으로 입혀야 하느니라. 어머니, 무슨 농담을 하십니까 세상에 그런 집이 있습니까 없다면 말아라.나는 이미 그런 집을 하늘에 가지고 있단다. 이 경건한 신앙의 할머니의 교훈! 주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한 영원한 나라가 있고 그 나라의 주인 이신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이 되셨다면, 너무 욕심 내지 마십시다. 사담 후세인의 교훈을 기억합시다. 그가 망한 것은 쿠웨이트의 유전을 욕심 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작은 욕심 때문에 서서히 병들고 추해져 가고 있는 내 모습! 지금까지 잘 달려 왔지만 그것이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 앞에 섰던 두아디라 교인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분노하 시고 책망하시고 경고하시면서 말씀하시던 그 주님이 우리를 향 해서, 우리 교회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주여, 우리를 더욱 순결하게 세워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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