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벨의열매 (계2:18-29)
본문
지난주 우리는 접목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이세벨의 나무로 정하였습니다.
첫째 주에는 이세벨이라는 사상적 뿌리를 캐어 보고 두 번째 주에는 그 사상적 근원을 가지고 이 방 세상과 접붙이는 것을 보았고 이제
셋째 주에는 접붙인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볼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께서는 예수를 믿는 현재적 나의 삶의 방식이 어디에다 뿌리를 박고 접목되어서 나오는 사건의 나무냐 또 지금 결실을 맺고 있는 열매는 세상 이라는 귀염 나에서 맺은 선악과냐 아 니면 그리스도에 뿌리를 두고 자라난 참 포도나무의 생명과냐 하는 점을 분명하게 구분 지어야 합니다. 만일에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소경이 꽁지에 불을 달고 천방지축 뛰어 다니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도 타죽고 남도 태워 죽이는 결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젊은 엄마가 어린애를 업고 부흥 예배를 드리러 왔더랍니다.
그래 한참 박수 치고 찬송하고 아멘 하고 설 교를 듣는데 등뒤에 업고 있던 아기가 차갑게 느껴져 살펴보니 아기가 경 기(아기가 놀라는 병)로 죽었더랍니다. 전해들은 얘기니 과장이 되었는지 아니면 허무 맹랑한 소린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등에 업고 있는 아기가 경기를 하는지 , 놀래서 숨을 못 쉬는 지도 모 르고 무엇에-그것은 십대들이 연예인을 보고 환호하며 이성을 잃고 울부짖는 것과 같다.-정신이 팔려 가지고 방방 뛰었는가 선악과에 미쳐서 생명과에 미쳐서 선악과에 미치든 생명과에 미치든 미쳐서 먹는 진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 습니다. 진리는 이성적이지 감성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흥 예배 열심히 드린다고 구원이 크고 믿음이 좋을 것 같습니까 박수 많이 치고 아멘 소리 크게 한다고 죽은 자가 일어나고 앉은뱅이가 걸어 다닐 것 같습 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 땅에 공원 묘지는 없을 것이고 나 같은 앉은뱅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있지 않습니까 오늘도 사람은 죽고 앉은뱅 이는 앉아서 기지 않습니까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치에 도 맞지 않는 것을 믿습니까 천국도 가고 싶고 세상도 갖고 싶고 그래서 미쳐버린 것입니다. 등에 업은 애가 죽었는지 꽁지에 불이 붙었는지도 모르게 미쳐 버렸습니다. 미쳐버렸다는 것은 이성이 마비 되었다는 말인데 술에 미치고 마약에 미치고 도박에 미친 사람들 보세요. 그 사람들 이성이 마비 되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치적이고 이성적인 것에 둔하고 아 둔하고 미련맞은 사람들은 다 미친자들입니다. 아합도 인본주의 평화에 미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할 왕이 되어가지고 영원한 나라를 못보고, 영원한 생명을 못보고, 영원한 영광을 못보고 , 영원한 안식을 못보는데 그자가 미친자가 아니고 누구란 말입니가
1. 이룰 구원을 세상에 팔다. 아합이라는 위인이 ''임시 세상의 평화와 안녕''이라는 제물에 자신의 이 룰 구원을 팔아먹으며 이세벨이라는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 리고 그 나라에 가서 바알신을 섬기며 그 종교에 대해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는 것보다는 바알이 주는 것이 더욱더 실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는 사상적으로 이방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목적과 즐김성이 이방 세상에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세벨이 이세벨의 신이 그런 것들을 풍성하게 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이 이스라엘에 들어올 때 외국에서 왕비가 온다고 하니 백성들이 구경을 나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과중한 세금으로 못살고, 솔로몬이 죽 고나자 내란으로 못살고, 이래저래 죽지 못해 사는 인생들이 훌륭한 왕-잘 먹고 등 따시고 전쟁이 업게 하니 훌륭한 왕이라고 부른다.-아합이 등장하 여 평화와 안녕을 위해 동맹국 시돈의 공주를 데려 오는데 구경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무역의 도시 시돈의 왕녀 이세벨은 외 국의 온갖 희귀한 보석들로 치장하고 왕족의 품위로 이스라엘을 압도하였 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요이 성도요 교회라면 마땅히 "금은 보석이 무엇이며 육체 의 아름다움이 무엇이냐 일장춘몽(一場春夢)과 같은 짧은 인생이 아니냐
그런데 그 물질이 최고 인줄 알고 썩어 없어질 고기 덩어리 자랑하며 뽑내 며 위세 떠는 저 인생이 가련하구나!" 이런 신앙 정신을 가졌으어야 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세벨이 오던 이세벨 할머니가 오던 부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없으련만 이미 오므리와 아합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영광 대신에 임시적 평화와 안녕을 먹였기 때문에 세상이라는 마약에 미쳐버렸기 때문에 미쳐버린(이성이 없는) 백성들은 화려한 이세벨이 얼마나 부럽고 또 그 렇게 되고 싶은 욕심이 나겠느냐 말입니다. 나도 하나님 열심히 믿어서 저런것좀 달라고 그래야지. 아니 저런것만 준다면 하나님보다 바 알을 섬기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이짓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양과 형태만 다를 뿐이지 지금 우리가 하는 기도의 내용중 90%이상이 이런 기도 아닙니까 ''자주국방 이룩하여 나라 경제 되살리자''는 운동을 하는 자의 속이 이 세벨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부러워하고 목적하는 속이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이스라엘로 시집을 오면서 이렇게 저렇게 꾸며가지고 오 니 눈으로 본자는 다 부러워 하지요 술에 미친놈 술보면 더 미치고 마약 에 미친놈 마약보면 더 미치고 도박에 미친놈 화투장 보면 미쳐버리듯 세상것에 미쳐버린 백성들 세상에 화려함이 오는데 환장하지 않고 버티겠습 니까
이제 우리를 한번 돌아 봅시다. 단칸방 신세 면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신앙적으로 그 환경을 딛 고 정복하여 구원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까 환경을 신앙으로 정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뭐에 욕심 성을 두고 있느냐 하면 방이 두개인 사람은 소형 승용차라도 갖기를 원하고 소형 승용차 갖은 사람은 중형이라도 갖기를 원하고 중형차 가지면 이제자기 집 갖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도 믿고 그 예수 이름으로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립하여 독립된 생활 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정말 예수 잘 믿으니 영원한 것에 욕 심이 많아 임시적은 것은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고 그렇게 살다보니 평생 동안 집 한 채 없이 살게 되더란 말입니다. 지지리 가난해도 지지리 못났 어도 지지리 불쌍해도 예수 바로 믿어서 천국의 기쁨(천국에서 주님과 함 께 의사적 단일을 누리는 기쁨)을 이루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고 말들을 하면서도 실질적으 로 자기 손에 들려진 물질과 연 관이 되면 말을 못하고 결론을 못 내립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욕구(欲求)성 자체가 물질계의 누림에 있기 때문 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계의 누림에 대한 욕심이 목적이고 취미고 즐김 성이기 때문입니다. 아니할 말로 예수 믿는 사람을 다 죽인다고 하면 예수 믿으려면 산 속으로 들어가 살아야 하는데 직장 버리고 사회-이 사회에는 누림성 이용성 만족 성이 있다.-를 버리고 홀홀단신 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말입니다. 이미 극장에서 보여주는 영화라는 가상 스토리를 즐 기는 재미와 축구장 야구장 볼링장에서 느끼는 짜릿한 쾌감을 알고 즐기고 있는데 그것 버리고 예수나 잘 믿자 천만에 말씀입니다. 비디오가 고장 이 나면 성경 볼 시간 뺏는 마귀 단지 그거 고장 잘났다. 우리 비디오 볼 시간에 성경을 봅시다. 이런 말이 나옵니까 이런 말이 나오지는 않고 수리센타 전화걸 생각이 먼저 나오는데 . 평소에 세상 잼미 보던자가 진리 지키겠다고 산속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말입니다. 세상 재미에 맛들이게 되면 보이지 않는 실상을 믿고 구원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아니지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축구보고 야구 보고 영화보고 설날 추석날 고향가서 가족형제 친지친척 만나 세상 재미 보는것이 좋은데 고것이 최곤데 예수따라 높은 진리봉우리로 올라간다고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 신앙에 구원이라는 주체가 바뀌었습니다. 너희는 나의-+ +-하나님은-++-로 변해 버렸다는 것 +가-+ 입니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구원의 주체 백성이 되고-+ +-나의 하나님이 되고-+ 가 바뀜으로서 구원 목 적자(救援 目的自)가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구원을 해서 천국을 주고자 하시는데 , 인간나는 구원을 받아서 세상을 누리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2 . 이룰 구원이 없으면 배교다. 비록 아합이 물질계를 목적으로 한 인생관을 가지고 정치 노선을 걸었다 하더라도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왕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합이 라는 인간이 자신의 나라가 어떻게 해서 세워지고 또한 어떻게 통치되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었단 말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누군가가 묻기를 "당신은 누구요"라고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아합이라는 사람도 자신이 선민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 지는 않단 말입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인데. 그런데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을 한 후에 최초로 맺어진 열매는 바알신 섬기는 것을 공식화 시키고 하나님의 제사장들에게 바알신에게 절하도록 명령하였다는 것입니다.
1) 왕 이 여 왕이라는 존재는 누구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절대 왕권(絶對 王權)이란 일반 백성의 생사 여탈 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 나라를 흥하게도 할 수 있고 망하게도 할 수 있습니다. 왕이 정치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 백성은 편할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가난뱅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찍이 다윗이 하나님 앞에 의로우며 그 의로움으로 정치를 잘하여 이스 라엘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더니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그 전성기를 맞았 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죄악으로 나라는 두동강이 났습니다. 비록 솔로 몬이 지혜롭고 명석하며 세상 이치에 밝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자기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성경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이스라엘이 두 동강이 난 원인은 바로 솔로몬에게 있습니다. 이 교훈을 잘 알고 있는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을 하고 바알을 섬기기 시 작했습니다. 그것도 공개적이며 강압적으로 바알 섬기기를 강요하였습니다. 한 가정에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천국에 소망을 두고 그 소망 을 품고 현실 세계를 정복하여 천국 소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천국 소망 은 명분에 불과하고 목적은 현실 세계에 누림에 두고 있다면 그는 아합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 아합과 같은 아버지가 고등교 3학년 아들이 토요일 학생 예배에 1시간씩 참석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교회에 가고 오고 1시간 예배에 1시간 모두 두시간이 소요되는데 이것을 1년동안 계산 하면 2×4=8+12=96이다.
서울대를 목적으로 밤새워 공부하는 아들에게 이 시간은 너무나 많은 낭비다. 이 시간을 낭비하고 어떻게 다른 학생들 과 경쟁이 되겠는가 대학갈 때까지 교회에 나가지 마라. 이런 말이 나옵니다. 단순히 명문 대학 인기 학과에 가고 또 출세를 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라면 또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사람들이라면 당연한 말이지만 예수 믿고 천국 가고 그 천국에서 영광 자가 되는 것이 목적인 사람에게 과연 명문 대학 인기 학과가 무슨 연 관이 있느냐 명문 대학을 가야지 만이 예수를 잘 믿고 예수님이 더 사랑하여 준다는 성경 말씀이라도 있습 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꿀과 같이 달고 좋아서 그 말씀을 먹어 보니 눈이 밝아 져서 선과 악을 구별하고 세상을 정복할 용기가 생깁니다.-요나 단과 같이-그래서 그 말씀을 먹다가 세상 지식 쌓지 못해 서울대 정치 외교 학과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자가 전문대밖에 가지 못하게 되였다면 그것으로 만족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지금 어떻습니까 목적은 세상 누 림이고 위주는 예수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위주(爲主-예수를 주된 이용물)로하여 세상 누리는 목적(目的-결론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곳-)으 로 살고 있단 말입니다. 목사 아들이 공부한다고 예배 시간에 참석치 않으면 죄가 되고 장로 아들이 공부한다고 예배 시간에 참석치 않으면 죄가 되고 집사 아들이 공부한다고 예배 시간에 참석치 않으면 죄가 되고 내 아들이 공부한다고 예배 시간에 참석치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 되고 회개하면 되지요 명분이 좋으면 과정이 어찌되었든 상관이 없지요 내가 세상에서 썩은 것을 먹으니 자기 자식도 세상에서 썩은 것을 먹어야 좋은 줄 알기가 쉽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아 합 왕이 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 세상과 짝짝꿍을 해 가지고 이방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 다 따라 하니까 임시적으로 좋은 사건과 환경이 조 성이 되자 그것이 최고인 줄 알고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인 줄 알고 자식에 게 백성에게 먹으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먹지를 않으면 죽일 놈 살릴 놈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면서 입에다 게거품 물고서 길길이 날뛰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 짓하고 있지 않아요 왕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 주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구원(삶-삶을 통해 구원을 이루기 때문이다.)을 이루도록 가르치고 훈계하고 채찍 하여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왕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하나님의 뜻은 버리고 제뜻 제 주장을 가지고 바알에게 붙어 바알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들에게 바알의 통치를 받도록 강요하였습니다.
2) 백성이여 우리의 부모가 말씀하시기를 "아따 니가 지금 뭘 몰라서 그란디. 세상 이란 고로코롬 녹녹한 것이 아니어, 늬가 길거리에 나가서 전도지 백장을 나눠주는 것과 늬가 공부를 열심히 해가 지고 기업의 사장이 되거나 높은 직위에 있어 갔고 부하 직원들을 예수 믿게 하는 것과 어느 것이 더 효과 적이것냐 물론 사장이 되는 것이재 그랄라먼 공부를 열심히 해야 안컷 냐 이말 이여 내 말은. 공부를 열심히 할란디 아 언제 교회 가고 예 배 드리고 또 성경 공부하고 그란 다냐. 그란께 우선은 대학부터 가 놓고 하나님의 일을 해도 늦지 않다 이 말이여" 이치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사장이 되지못하면 여러분이 출세하지 못하면 저 가련한 영혼 이 그대로 지옥으로 갑니까 하나님의 구원 예정이 무산되어 버립니까 만일에 상관이 있다고 가르치는 교훈-부모의 말씀이나 목사의 말-이 이 치에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교훈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과 대학가서 출세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잘 믿어서 예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는 것과 내가 세상에서 출세를 해가 지고 부귀 명예와 권세를 누리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거지와 부자가 믿는 예수님이 다릅니까 흑인을 창조 한 하나님과 백인을 창조한 하나님은 다른 신입니까 거지나 부자나 백인 이나 흑인이나 병신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한 하나님이 창조하고 구원하셨 습니다. 또한 다 같이 사랑하고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현재 내가 예수를 믿고 목적하는 위주가 무어냐! 하는 이것을 보십니다. 그러니 그 위주를 이루는 방편이 BMW고급 승용차를 타든 짐바리 자전거 를 타든 상관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자신이 누군 지도 모르니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빤짝거리고 그저 쿵쾅거리면 좋다고 고것이 최고라고 고것 한 번 가져볼라고 발버둥 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다. 아합이 말하기를 시돈은 바알을 섬겨서 이렇게 잘먹고 잘살 산다. 우리 도 바알을 섬기자 그러니까 왕이여 좋습니다. 어서어서 바알께 제사를 드 립시다. 라고 화답하는 이 꼴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성도)가 누구입니까
3) 택 자 들 이 여 나는 왕도 되고 백성도 됩니다. 때로는 내가 나를 다스릴 때에 내가 왕으로서 하나님의 구원 목적에 조 금도 어그러짐이 없도록 다스려야 하고 사건과 환경이 진리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줄 때에 나는 그것들에게 절하고 가증한 것으로 먹으며 목적하 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그렇게 살기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경제적 으로 손해를 보며 가정에서 따돌림당하고 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진다 할 지 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백원짜리 사탕을 먹기 위해 십만원짜리 저녘식 사를 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자 이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돈도 중요하지만 교회에 봉사하는 것을 더 기뻐하자 이 차원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행위적 행동 양식의 마음 가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 자신이 가져야 할 인생관(신앙관) 그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리 적인 어떤 행동이나 그 밖에 어떤 결과는 관(觀-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 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속(세상을 보는 눈)은 그대로 있으면 서 외형적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고 외형적으로 어떤 장식을 하고 외형적으 로 어떤 명분을 둔다고 해서 썩어서 냄새나는 시체가 예쁘게 포장이 되어 서 생명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다고 썩은 시체 냄새가 감추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본질적으로 같은 질문입니다. 질문
(1)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려서 죽게 되었다 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고 싶지 않아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살려 달라 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당신에게 신앙 상담 을 해 오면서 "예수님이 병 고쳐 주실 줄 믿고 기도하면 고쳐 주시겠죠" 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손을 잡으며 "우리함께 기도합시다."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니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니 산다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예수 믿어 구원받았 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주어진 삶만큼 열심히 성경보고 말씀 깨닫고 깨달은 대로 사십시오."라고 하겠습니까 질문
(2) 당신이 아합왕입니다. 국내 정치는 반란에 반란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상태고 남쪽은 유다와, 불레셋,모압이 으르렁 거리고 서쪽은 바다고 동쪽은 아람 족이 북쪽은 아 람족과 시돈이 버티고 서 혼란한 상황입니다. 이 현실 세상에서 자신과 백성들에게 평화와 안녕을 주는데 목적을 삼겠 습니까 아니면 나라가 망하고 치욕을 당하며 자식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사랑하는 아내가 이웃나라 왕의 첩이 되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 이스 라엘에서 이방 신을 멸하고 이방 신을 믿는 자를 죽이며 이방 신을 믿으라 고 들고 오는 자와 싸우겠습니까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행동하면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다. 나라 가 잘살고 잘먹고 부강해 질 것이다 하는 기대는 애당초 없어야 합니다. 만일에 이 기대감이 깔려 있다면 본질적으로 또다시 하나님을 이용 해 먹는 꼴이 됩니다.) 어떤 행동을 어떤 사람과 똑같이 한다고 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는 그 사람을 지배하는 정신 사상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대답 하느냐에 따라 다윗왕이 될 수도 있고 아합 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이냐에 따라 예수처 럼 될 수도 있고 가룟유다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내가 어떤 사상, 무슨 목적으로 세상을 사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합은 이미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시고자 하는 영광(救援目的)을 버리고 임시세상것을 취하였습니다. 이제 아합이 여러분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행복과 평화와 안녕을 주는 것이다. 이것을 먹지 않는 자는 반역자이니 죽 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합과 똑같은 사람이 되던가 아합이 주는 것 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구원 목적대로 살던가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아합의 길을 걸으면 안됩니다.
첫째 주에는 이세벨이라는 사상적 뿌리를 캐어 보고 두 번째 주에는 그 사상적 근원을 가지고 이 방 세상과 접붙이는 것을 보았고 이제
셋째 주에는 접붙인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볼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께서는 예수를 믿는 현재적 나의 삶의 방식이 어디에다 뿌리를 박고 접목되어서 나오는 사건의 나무냐 또 지금 결실을 맺고 있는 열매는 세상 이라는 귀염 나에서 맺은 선악과냐 아 니면 그리스도에 뿌리를 두고 자라난 참 포도나무의 생명과냐 하는 점을 분명하게 구분 지어야 합니다. 만일에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소경이 꽁지에 불을 달고 천방지축 뛰어 다니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도 타죽고 남도 태워 죽이는 결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젊은 엄마가 어린애를 업고 부흥 예배를 드리러 왔더랍니다.
그래 한참 박수 치고 찬송하고 아멘 하고 설 교를 듣는데 등뒤에 업고 있던 아기가 차갑게 느껴져 살펴보니 아기가 경 기(아기가 놀라는 병)로 죽었더랍니다. 전해들은 얘기니 과장이 되었는지 아니면 허무 맹랑한 소린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등에 업고 있는 아기가 경기를 하는지 , 놀래서 숨을 못 쉬는 지도 모 르고 무엇에-그것은 십대들이 연예인을 보고 환호하며 이성을 잃고 울부짖는 것과 같다.-정신이 팔려 가지고 방방 뛰었는가 선악과에 미쳐서 생명과에 미쳐서 선악과에 미치든 생명과에 미치든 미쳐서 먹는 진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 습니다. 진리는 이성적이지 감성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흥 예배 열심히 드린다고 구원이 크고 믿음이 좋을 것 같습니까 박수 많이 치고 아멘 소리 크게 한다고 죽은 자가 일어나고 앉은뱅이가 걸어 다닐 것 같습 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 땅에 공원 묘지는 없을 것이고 나 같은 앉은뱅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있지 않습니까 오늘도 사람은 죽고 앉은뱅 이는 앉아서 기지 않습니까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치에 도 맞지 않는 것을 믿습니까 천국도 가고 싶고 세상도 갖고 싶고 그래서 미쳐버린 것입니다. 등에 업은 애가 죽었는지 꽁지에 불이 붙었는지도 모르게 미쳐 버렸습니다. 미쳐버렸다는 것은 이성이 마비 되었다는 말인데 술에 미치고 마약에 미치고 도박에 미친 사람들 보세요. 그 사람들 이성이 마비 되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치적이고 이성적인 것에 둔하고 아 둔하고 미련맞은 사람들은 다 미친자들입니다. 아합도 인본주의 평화에 미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할 왕이 되어가지고 영원한 나라를 못보고, 영원한 생명을 못보고, 영원한 영광을 못보고 , 영원한 안식을 못보는데 그자가 미친자가 아니고 누구란 말입니가
1. 이룰 구원을 세상에 팔다. 아합이라는 위인이 ''임시 세상의 평화와 안녕''이라는 제물에 자신의 이 룰 구원을 팔아먹으며 이세벨이라는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 리고 그 나라에 가서 바알신을 섬기며 그 종교에 대해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는 것보다는 바알이 주는 것이 더욱더 실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는 사상적으로 이방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목적과 즐김성이 이방 세상에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세벨이 이세벨의 신이 그런 것들을 풍성하게 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이 이스라엘에 들어올 때 외국에서 왕비가 온다고 하니 백성들이 구경을 나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과중한 세금으로 못살고, 솔로몬이 죽 고나자 내란으로 못살고, 이래저래 죽지 못해 사는 인생들이 훌륭한 왕-잘 먹고 등 따시고 전쟁이 업게 하니 훌륭한 왕이라고 부른다.-아합이 등장하 여 평화와 안녕을 위해 동맹국 시돈의 공주를 데려 오는데 구경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무역의 도시 시돈의 왕녀 이세벨은 외 국의 온갖 희귀한 보석들로 치장하고 왕족의 품위로 이스라엘을 압도하였 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요이 성도요 교회라면 마땅히 "금은 보석이 무엇이며 육체 의 아름다움이 무엇이냐 일장춘몽(一場春夢)과 같은 짧은 인생이 아니냐
그런데 그 물질이 최고 인줄 알고 썩어 없어질 고기 덩어리 자랑하며 뽑내 며 위세 떠는 저 인생이 가련하구나!" 이런 신앙 정신을 가졌으어야 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세벨이 오던 이세벨 할머니가 오던 부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없으련만 이미 오므리와 아합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영광 대신에 임시적 평화와 안녕을 먹였기 때문에 세상이라는 마약에 미쳐버렸기 때문에 미쳐버린(이성이 없는) 백성들은 화려한 이세벨이 얼마나 부럽고 또 그 렇게 되고 싶은 욕심이 나겠느냐 말입니다. 나도 하나님 열심히 믿어서 저런것좀 달라고 그래야지. 아니 저런것만 준다면 하나님보다 바 알을 섬기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이짓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양과 형태만 다를 뿐이지 지금 우리가 하는 기도의 내용중 90%이상이 이런 기도 아닙니까 ''자주국방 이룩하여 나라 경제 되살리자''는 운동을 하는 자의 속이 이 세벨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부러워하고 목적하는 속이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이스라엘로 시집을 오면서 이렇게 저렇게 꾸며가지고 오 니 눈으로 본자는 다 부러워 하지요 술에 미친놈 술보면 더 미치고 마약 에 미친놈 마약보면 더 미치고 도박에 미친놈 화투장 보면 미쳐버리듯 세상것에 미쳐버린 백성들 세상에 화려함이 오는데 환장하지 않고 버티겠습 니까
이제 우리를 한번 돌아 봅시다. 단칸방 신세 면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신앙적으로 그 환경을 딛 고 정복하여 구원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까 환경을 신앙으로 정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뭐에 욕심 성을 두고 있느냐 하면 방이 두개인 사람은 소형 승용차라도 갖기를 원하고 소형 승용차 갖은 사람은 중형이라도 갖기를 원하고 중형차 가지면 이제자기 집 갖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도 믿고 그 예수 이름으로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립하여 독립된 생활 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정말 예수 잘 믿으니 영원한 것에 욕 심이 많아 임시적은 것은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고 그렇게 살다보니 평생 동안 집 한 채 없이 살게 되더란 말입니다. 지지리 가난해도 지지리 못났 어도 지지리 불쌍해도 예수 바로 믿어서 천국의 기쁨(천국에서 주님과 함 께 의사적 단일을 누리는 기쁨)을 이루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고 말들을 하면서도 실질적으 로 자기 손에 들려진 물질과 연 관이 되면 말을 못하고 결론을 못 내립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욕구(欲求)성 자체가 물질계의 누림에 있기 때문 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계의 누림에 대한 욕심이 목적이고 취미고 즐김 성이기 때문입니다. 아니할 말로 예수 믿는 사람을 다 죽인다고 하면 예수 믿으려면 산 속으로 들어가 살아야 하는데 직장 버리고 사회-이 사회에는 누림성 이용성 만족 성이 있다.-를 버리고 홀홀단신 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말입니다. 이미 극장에서 보여주는 영화라는 가상 스토리를 즐 기는 재미와 축구장 야구장 볼링장에서 느끼는 짜릿한 쾌감을 알고 즐기고 있는데 그것 버리고 예수나 잘 믿자 천만에 말씀입니다. 비디오가 고장 이 나면 성경 볼 시간 뺏는 마귀 단지 그거 고장 잘났다. 우리 비디오 볼 시간에 성경을 봅시다. 이런 말이 나옵니까 이런 말이 나오지는 않고 수리센타 전화걸 생각이 먼저 나오는데 . 평소에 세상 잼미 보던자가 진리 지키겠다고 산속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말입니다. 세상 재미에 맛들이게 되면 보이지 않는 실상을 믿고 구원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아니지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축구보고 야구 보고 영화보고 설날 추석날 고향가서 가족형제 친지친척 만나 세상 재미 보는것이 좋은데 고것이 최곤데 예수따라 높은 진리봉우리로 올라간다고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 신앙에 구원이라는 주체가 바뀌었습니다. 너희는 나의-+ +-하나님은-++-로 변해 버렸다는 것 +가-+ 입니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구원의 주체 백성이 되고-+ +-나의 하나님이 되고-+ 가 바뀜으로서 구원 목 적자(救援 目的自)가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구원을 해서 천국을 주고자 하시는데 , 인간나는 구원을 받아서 세상을 누리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2 . 이룰 구원이 없으면 배교다. 비록 아합이 물질계를 목적으로 한 인생관을 가지고 정치 노선을 걸었다 하더라도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왕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합이 라는 인간이 자신의 나라가 어떻게 해서 세워지고 또한 어떻게 통치되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었단 말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누군가가 묻기를 "당신은 누구요"라고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아합이라는 사람도 자신이 선민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 지는 않단 말입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인데. 그런데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을 한 후에 최초로 맺어진 열매는 바알신 섬기는 것을 공식화 시키고 하나님의 제사장들에게 바알신에게 절하도록 명령하였다는 것입니다.
1) 왕 이 여 왕이라는 존재는 누구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절대 왕권(絶對 王權)이란 일반 백성의 생사 여탈 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 나라를 흥하게도 할 수 있고 망하게도 할 수 있습니다. 왕이 정치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 백성은 편할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가난뱅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찍이 다윗이 하나님 앞에 의로우며 그 의로움으로 정치를 잘하여 이스 라엘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더니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그 전성기를 맞았 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죄악으로 나라는 두동강이 났습니다. 비록 솔로 몬이 지혜롭고 명석하며 세상 이치에 밝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자기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성경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이스라엘이 두 동강이 난 원인은 바로 솔로몬에게 있습니다. 이 교훈을 잘 알고 있는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을 하고 바알을 섬기기 시 작했습니다. 그것도 공개적이며 강압적으로 바알 섬기기를 강요하였습니다. 한 가정에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천국에 소망을 두고 그 소망 을 품고 현실 세계를 정복하여 천국 소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천국 소망 은 명분에 불과하고 목적은 현실 세계에 누림에 두고 있다면 그는 아합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 아합과 같은 아버지가 고등교 3학년 아들이 토요일 학생 예배에 1시간씩 참석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교회에 가고 오고 1시간 예배에 1시간 모두 두시간이 소요되는데 이것을 1년동안 계산 하면 2×4=8+12=96이다.
서울대를 목적으로 밤새워 공부하는 아들에게 이 시간은 너무나 많은 낭비다. 이 시간을 낭비하고 어떻게 다른 학생들 과 경쟁이 되겠는가 대학갈 때까지 교회에 나가지 마라. 이런 말이 나옵니다. 단순히 명문 대학 인기 학과에 가고 또 출세를 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라면 또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사람들이라면 당연한 말이지만 예수 믿고 천국 가고 그 천국에서 영광 자가 되는 것이 목적인 사람에게 과연 명문 대학 인기 학과가 무슨 연 관이 있느냐 명문 대학을 가야지 만이 예수를 잘 믿고 예수님이 더 사랑하여 준다는 성경 말씀이라도 있습 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꿀과 같이 달고 좋아서 그 말씀을 먹어 보니 눈이 밝아 져서 선과 악을 구별하고 세상을 정복할 용기가 생깁니다.-요나 단과 같이-그래서 그 말씀을 먹다가 세상 지식 쌓지 못해 서울대 정치 외교 학과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자가 전문대밖에 가지 못하게 되였다면 그것으로 만족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지금 어떻습니까 목적은 세상 누 림이고 위주는 예수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위주(爲主-예수를 주된 이용물)로하여 세상 누리는 목적(目的-결론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곳-)으 로 살고 있단 말입니다. 목사 아들이 공부한다고 예배 시간에 참석치 않으면 죄가 되고 장로 아들이 공부한다고 예배 시간에 참석치 않으면 죄가 되고 집사 아들이 공부한다고 예배 시간에 참석치 않으면 죄가 되고 내 아들이 공부한다고 예배 시간에 참석치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 되고 회개하면 되지요 명분이 좋으면 과정이 어찌되었든 상관이 없지요 내가 세상에서 썩은 것을 먹으니 자기 자식도 세상에서 썩은 것을 먹어야 좋은 줄 알기가 쉽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아 합 왕이 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 세상과 짝짝꿍을 해 가지고 이방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 다 따라 하니까 임시적으로 좋은 사건과 환경이 조 성이 되자 그것이 최고인 줄 알고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인 줄 알고 자식에 게 백성에게 먹으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먹지를 않으면 죽일 놈 살릴 놈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면서 입에다 게거품 물고서 길길이 날뛰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 짓하고 있지 않아요 왕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 주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구원(삶-삶을 통해 구원을 이루기 때문이다.)을 이루도록 가르치고 훈계하고 채찍 하여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왕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하나님의 뜻은 버리고 제뜻 제 주장을 가지고 바알에게 붙어 바알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들에게 바알의 통치를 받도록 강요하였습니다.
2) 백성이여 우리의 부모가 말씀하시기를 "아따 니가 지금 뭘 몰라서 그란디. 세상 이란 고로코롬 녹녹한 것이 아니어, 늬가 길거리에 나가서 전도지 백장을 나눠주는 것과 늬가 공부를 열심히 해가 지고 기업의 사장이 되거나 높은 직위에 있어 갔고 부하 직원들을 예수 믿게 하는 것과 어느 것이 더 효과 적이것냐 물론 사장이 되는 것이재 그랄라먼 공부를 열심히 해야 안컷 냐 이말 이여 내 말은. 공부를 열심히 할란디 아 언제 교회 가고 예 배 드리고 또 성경 공부하고 그란 다냐. 그란께 우선은 대학부터 가 놓고 하나님의 일을 해도 늦지 않다 이 말이여" 이치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사장이 되지못하면 여러분이 출세하지 못하면 저 가련한 영혼 이 그대로 지옥으로 갑니까 하나님의 구원 예정이 무산되어 버립니까 만일에 상관이 있다고 가르치는 교훈-부모의 말씀이나 목사의 말-이 이 치에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교훈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과 대학가서 출세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잘 믿어서 예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는 것과 내가 세상에서 출세를 해가 지고 부귀 명예와 권세를 누리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거지와 부자가 믿는 예수님이 다릅니까 흑인을 창조 한 하나님과 백인을 창조한 하나님은 다른 신입니까 거지나 부자나 백인 이나 흑인이나 병신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한 하나님이 창조하고 구원하셨 습니다. 또한 다 같이 사랑하고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현재 내가 예수를 믿고 목적하는 위주가 무어냐! 하는 이것을 보십니다. 그러니 그 위주를 이루는 방편이 BMW고급 승용차를 타든 짐바리 자전거 를 타든 상관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자신이 누군 지도 모르니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빤짝거리고 그저 쿵쾅거리면 좋다고 고것이 최고라고 고것 한 번 가져볼라고 발버둥 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다. 아합이 말하기를 시돈은 바알을 섬겨서 이렇게 잘먹고 잘살 산다. 우리 도 바알을 섬기자 그러니까 왕이여 좋습니다. 어서어서 바알께 제사를 드 립시다. 라고 화답하는 이 꼴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성도)가 누구입니까
3) 택 자 들 이 여 나는 왕도 되고 백성도 됩니다. 때로는 내가 나를 다스릴 때에 내가 왕으로서 하나님의 구원 목적에 조 금도 어그러짐이 없도록 다스려야 하고 사건과 환경이 진리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줄 때에 나는 그것들에게 절하고 가증한 것으로 먹으며 목적하 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그렇게 살기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경제적 으로 손해를 보며 가정에서 따돌림당하고 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진다 할 지 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백원짜리 사탕을 먹기 위해 십만원짜리 저녘식 사를 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자 이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돈도 중요하지만 교회에 봉사하는 것을 더 기뻐하자 이 차원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행위적 행동 양식의 마음 가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 자신이 가져야 할 인생관(신앙관) 그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리 적인 어떤 행동이나 그 밖에 어떤 결과는 관(觀-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 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속(세상을 보는 눈)은 그대로 있으면 서 외형적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고 외형적으로 어떤 장식을 하고 외형적으 로 어떤 명분을 둔다고 해서 썩어서 냄새나는 시체가 예쁘게 포장이 되어 서 생명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다고 썩은 시체 냄새가 감추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본질적으로 같은 질문입니다. 질문
(1)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려서 죽게 되었다 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고 싶지 않아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살려 달라 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당신에게 신앙 상담 을 해 오면서 "예수님이 병 고쳐 주실 줄 믿고 기도하면 고쳐 주시겠죠" 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손을 잡으며 "우리함께 기도합시다."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니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니 산다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예수 믿어 구원받았 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주어진 삶만큼 열심히 성경보고 말씀 깨닫고 깨달은 대로 사십시오."라고 하겠습니까 질문
(2) 당신이 아합왕입니다. 국내 정치는 반란에 반란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상태고 남쪽은 유다와, 불레셋,모압이 으르렁 거리고 서쪽은 바다고 동쪽은 아람 족이 북쪽은 아 람족과 시돈이 버티고 서 혼란한 상황입니다. 이 현실 세상에서 자신과 백성들에게 평화와 안녕을 주는데 목적을 삼겠 습니까 아니면 나라가 망하고 치욕을 당하며 자식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사랑하는 아내가 이웃나라 왕의 첩이 되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 이스 라엘에서 이방 신을 멸하고 이방 신을 믿는 자를 죽이며 이방 신을 믿으라 고 들고 오는 자와 싸우겠습니까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행동하면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다. 나라 가 잘살고 잘먹고 부강해 질 것이다 하는 기대는 애당초 없어야 합니다. 만일에 이 기대감이 깔려 있다면 본질적으로 또다시 하나님을 이용 해 먹는 꼴이 됩니다.) 어떤 행동을 어떤 사람과 똑같이 한다고 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는 그 사람을 지배하는 정신 사상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대답 하느냐에 따라 다윗왕이 될 수도 있고 아합 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이냐에 따라 예수처 럼 될 수도 있고 가룟유다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내가 어떤 사상, 무슨 목적으로 세상을 사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합은 이미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시고자 하는 영광(救援目的)을 버리고 임시세상것을 취하였습니다. 이제 아합이 여러분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행복과 평화와 안녕을 주는 것이다. 이것을 먹지 않는 자는 반역자이니 죽 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합과 똑같은 사람이 되던가 아합이 주는 것 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구원 목적대로 살던가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아합의 길을 걸으면 안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