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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무익했으나, 이제는 유익하니라 (몬1:8-22)

본문

I. 세월의 힘은 엄청납니다. 세월은 한때는 유익했던 것을 무익하게 만 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한때는 자전거가 참으로 유익했던 때가 있읍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전거가 더이상 유익하지 못합니다. 한때는 석유곤로가 참으로 유익했습니다. 석유곤로가 처음 나올때, 집에 석유곤 로 하나만 생겨도, 주부들에게는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석유 곤로가 더이상 주부들에게 유익하지 않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한때는 무익했던 것이 이제는 유익하게 되는 경우도 있읍니다. 충북 단양에 가면, 돌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에는 그 돌산들 은 아무 가치가 없던 산들입니다. 돌산이라, 나무도 자라지 못하고, 돌산 이라 매장지로도 쓰이지 못했습니다. 아무 쓸모 없는 무익한 땅이였읍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돌을 캐서 시멘트를 만듭니다.
그러므로 그 돌 산이 이렇게 매우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익한 산이 되자, 그 산의 가치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전에 아무 쓸모 없는 무익한 산이였을때는, 그 산을 살려고 하는 자들이 없었읍니다. 산의 가치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귀한 산 이 되었습니다. 꽤 비싼 산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무익하던 것이 유익하게 되면 가치가 크게 달라집니다. 가치 가 크게 올라갑니다. 반대로 유익하던 것이 무익하게 되면, 가치가 크게 떨어집니다. 고장나지 않은 세탁기는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가치가 있습니다. 값이 꽤 나갑니다. 그러나 고장난 세탁기는 무익합니다.
그러므로 가치 가 없습니다.
값이 전혀 없습니다. 고장난 세탁기는 무익하기 때문에,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보고 그냥 가져가라고 해도 가져가지 않 습니다. 무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사람에게도 일어 납니다. 전에는 주산을 잘 놓는 사람들이 유익한 자들이였습니다. 그래서 상고 를 나와서 주산을 잘 놓아서, 단을 따면 은행에 쉽게 들어 갔습니다. 그 때에는 주산 잘 놓는 자들이 유익한 자들이였습니다. 그러나 컴퓨터가 생기면서, 주산 잘 놓는 사람이 무익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주산 학원도 다 없어졌습니다. 사람의 가치도 이렇게 변화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오네시모를 전에는 무익했던 자인데, 이제는 유익한 자가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무익한 자가 되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무익한 자는 쓸모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무익한 사람은 다 퇴출시켜 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은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마25:30)고 화를 내셨습니다. 무익한 자는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김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익한 자들은 남에게 해도 가져다 줍니다.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줍니다. 그래서 무익한 자들은 내어쫓김을 당합니다. 그러나 쓸모 있는 유익한 자가 되면, 가치가 있습니다. 그
래서 유익한 자들은 존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열심히 일하여 이익을 남기는 종들에게는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 다"(마25:21)하셨습니다. 무익한 자와 유익한 자들 사이에는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피타고라스 학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훈련 중점으로 삼았다. 만 약 그 학교 견습생 중에 공부하는 것이 싫증이 나거나, 게으른 옛날의 생활 로 돌아가면, 그 학교는 그들을 퇴교 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을 장례식을 행 했다. 학교는 그들을 무덤에 묻고, 거기에 비문을 새겨 두었다. 그것은 그와 같은 학생이 되려는 견습생들을 경고하여, 그들의 나태해진 정신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무익한 자는 죽은 자와 같이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익한 자가 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시간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유익한 자와 무익한 자에 대하여 생각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오네시모는 왜 무익한 자가 되었는가 부모가 자식을 낳을 때는, 다 자기 자식이 세상에 유익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존귀하게 쓰임받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자기 자식이 세상 에 무익한 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네시모의 부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그들은 종의 집안이였지 만, 그들이 낳은 사랑하는 아들이 귀하게 쓰임을 받는 유익한 자기가 되기 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을 "오네시모"라고 졌습니다. 오네시모란 말은 "유익하다", "쓸모 있다"는 뜻입니다. 오네시모의 부모는 그들이 낳은 아들이 세상에 유익한 자가 되어 존귀하게 되기를 원해서 그의 이름을 오네시모라고 졌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그의 부모님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무익한 자가 되었 습니다. 쓸모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무익한 자가 되어 감옥에 갇히는 불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무익한 자가 되면 가치가 떨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많은 해도 주는데, 그럼 왜 오네시모는 무익한 자가 되었을까요 어떤 자들이 세상에 무 익한 자들일까요 어리석운 자입니다. 어리석운 자들은 무익합니다. 그들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큰 피해를줍니다. 지난번 구덕관 총장님이 와서 설교를 하시는데, 어리석운 자는 사회의 환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환 자는 자기만 아픈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까지 피해를 줍니다. 어리석은 자는 부모의 뼈를 마르게 하고, 마음을 멍들게하고, 처자식의 가슴을 조이게하고, 한맺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잠10:1) 말씀을 보면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고 하셨 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리석운 자들은 무익한 자들입니다. 그럼 어리석운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요 성경은 어떤 자들을 어리석 운 자들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1) 욥의 아내와 같은 자가 어리석운 자입니다.(욥2:10) 욥의 아내는 욥이 큰 시험에 빠지자, 자기 남편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고 하였습니다. 이런 아내를 보고 욥은 "그대의 말이 어 리석운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욥2:10)하고 책망을 했습니다. 하는 일이 조금 안된다고 하나님을 욕하는 자들이 어리석운 자들입니다. 조금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나님을 욕하는 자들이 어리석운 자들입니다. 자기의 형편이 어렵다고 하나님을 욕하는 자들이 어리석운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생각을 가진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보니,
마침 토기장이가 그 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만든 그릇이 그의 손에서 망가졌 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것을 가지고 자기 마음에 드는 다른 그릇을 만들 었습니다. 토기장이가 흙으로 자기 마음대로 그릇을 마든다고 해서, 토기들이 그 토기장이에게 욕을 할 수 있습니까 "왜 나는 이렇게 천한 그릇을 만들 었습니까 "하고 하나님을 욕할 수 있습니까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람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읍 니까 "하고 욕을 하면 그는 어리석운 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모든 피조물 중에 제일 훌륭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사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 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 은혜를 가지고, 오히려 조금 생각할 수 있다고,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하나님을 욕해서 되겠습니까 욥처럼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욥1:21) 우리는 그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을 욕해서는 안됩니다. 욥의 아내는 어려움을 당했다고 하나님을 욕했기 때문에 어리석운 자가 되었습니다. 무익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버림 받은 자가 되 었습니다. 그래서 욥기 나머지 부분에 다시는 욥의 아내에 관한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익하여 버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 모래위에 집을 짓는 자가 어리석운 자입니다.(마7:26) 예수님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 은 지혜로운 사람 같고, 듣고도 행치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 리석운 사람 같다고 하셨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는 어리석운 자입니다.
왜냐하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면 그 집이 곧 무너지고 말기 때문 입니다. 이렇게 모래위에 집을 짓는 자들은 무너질 집을 짓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일이 곧 무익한 일입니다. 이것은 구멍뚫린 전대에 돈을 넣는 것과 같이 어리석운 일입니다. 무익한 일입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이 어리석운 일입니다. 그러한 일은 아무 결과도 없는 무익 한 일입니다. 이렇게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들은 어리석운 자들이요, 무익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런 자들을쓰지를 않습니다. 그럼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들이 무익한 자들입니다. 세상에서도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은 쓰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사 장 말 듣지 않는 자를 사원으로 쓰는 회사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들을 쓰시 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들은 쓰임받지 못하는 자 들입니다. 쓰임받지 못하는 자들은 무익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들이 바로 무익한 자들입니다.
3)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가 어리석운 자입니다.(마25:1-3) 예수님은 천국을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유했읍니다.
그런데 이 10명의 신부들 중에 5 명은 슬기가 있고, 5 명은 미련했 습니다. 미런한 신부들은 등은 가지되, 기름은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5 신부는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더디와서 10명의 신부가 다 졸았습니다.
그런데 한 밤 중에 갑자기 "신랑을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10명 의 신부들이 다 일어나서 등을 준비하는데,
그런데 그동안 기름이 다 타고 없었습니다. 슬기로운 신부들은 준비해 간 기름을 보충하여 나갔습니다. 그러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5 신부들은 급히 기름을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기름을 사가지고 와보니, 이미 신랑이 왔서 5 신부들을 데리고 혼인잔 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혔습니다. 그래서 문을 두드리며, 열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안에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대답만 들려 왔습니다. 이렇게 준비하지 못한 자들이 어리석운 자들입니다. 무익한 자들입니다. 기름준비하지 못한 5 처녀가 무익하기 때문에, 신랑은 그녀들을 잔치 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쓸모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들이 무익한 자들입니까 준비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아무 리 등잔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합니까 기름이 없는데. 기름이 없는 등은 무익합니다. 쓸모가 없습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자들, 깨어 있지 않는 자들이 어리석운 자들이요, 무익한 자들입니다.
4)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는 부자가 어리석운 자입니다.(눅 12:16-21) 한 부자가 농사를 졌는데, 대풍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곡 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그의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려고 계획 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어리석운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 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 이런 자들은 참으로 어리석운 자들입니다. 오늘 밤에 죽을 텐데 그것 도 모르고 천년 만년 살것이 생각하고 사는 자들이 바로 어리석운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 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1)고 하셨습니다. 오네시모가 무익한 자가 된 것은 바로 주인의 물건을 도적질하여 도망을 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만 살려고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어리석운 자들입니다. 자기만 살려고 하나님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자기만 살려고 남에게 해를 주는 자들이 바로 어리석운 자들이요, 무익한 자들입니다. 그런 자 들은 하나님께도 무익하고, 사회에도 무익한 자들입니다. 물질에 눈이 어두어서, 얼마 가지 않아 죽을 터인데도, 천년 만년 살려 고 물질을 쌓아두고, 하나님께는 부요치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 들이 어리석운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무익한 자들입니다.
2. 그럼 이렇게 무익한 자가 어떻게 지금은 유익한 자가 되었을까요 바울은 오네시모를 "갇힌 자 중에서 낳은 내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이미 바울은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장가도 가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오네시모는 바울의 육신의 아들이 아닙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내 아들"이라고 한 것은 영적인 아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한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난 사람이 되니,무익해서 감옥에 갇혔던 오네시모 가 참으로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종인데, 주인의 물질을 도적질하여 도망을 간자입니다.
그러므로 오네시모는 매우 무익한 종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영접하 고나자 매우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네시모가 지난 날에는 빌레몬에게 무익한 자였지만, 이제는 빌레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유익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사도 바울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심복이란 가장 믿는 종을 뜻합니다. "심복"이란 말을 영어 성경은 "바로 내 마음이다"(my very heart)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을 다 헤아리는 자 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영접하고 나면, 무익하던 자들이 유익한 자로 변합니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가 골로새 교회에 있는 동역자인 빌레몬의 종이였 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써서 오네시모에게 주면서, 그 주인에게 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에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했 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다"는 글이 들어 있었습니다. 무익했던 오네시모가 유익한 자가 된 것은 예수님을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무익해서 감옥에 갇히는 자가 유익한 자가 되어,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유익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익하던 오네시모가 어떻게 이렇게 유익한 자가 되었을까요 오네시모가 유익한 자가 된데에는 사도 바울의 아들이 된 것이 결정적인 역활을 했습니다. 오네시모가 바울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영적인 중생을 체험했다는 뜻 입니다. 예수를 모르던 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중생할때 그들의 가치도 달라지게 됩니다. 무익하던 자들이 유 익하게 됩니다.
무가치하던 것들이 아주 귀하게 됩니다. 폐품들은 무익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재활용되면, 유익하게 됩니다. 가치들을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한번은 베이커(H.P.Baker)목사가 비누공장들이 있는 지방에서 부흥회를 했다.
그런데 그 집회에 믿음이 좋은 비누공장 사장이 나왔다. 그 사장 은 베이커 목사를 자기 비누공장에 초청했다. 베이커 목사가 비누공장에 가자, 사장은 베이커 목사님을 데리고 공장을 구경시켜 주었다. 첫번째 간 곳이 비누를 만드는 재료가 있는 곳이였다. 거기에는 지방들이 가득들어 있는 통들이 있었는데, 그 냄새가 몹씨 지독했다. 이 지방은 돼지나, 소, 닭과 같은 고기에서 사람이 먹지 않아서 버리는 지방살들을 모아든 것이였습니다. 베이커 목사는 그곳을 지나가자 한 숨을 쉬었다.
왜냐하면 그곳 냄새가 너무나 지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장을 한바귀 돌고 나자, 그 공장 사장이 아름다운 포장지로 포 장한 것을 선물로 주었다. 그것은 그 공장에서 만든 비누였다. 사장은 이 향기롭고 귀한 비누가 바로 베이커 목사님이 처음에 보았던 그 지독한 냄새가 나는 보기도 싫은 그 기름 덩어리로 만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 향기나는 비누가 바로 처음에 보았던 그 냄새나는 썩는 지방으로 만 들어 졌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변화이다. 예수 안에서는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 기독교는 무익한 자들을 유익하게 만든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도, 바로 무익한 자들을 유익한자들로 만드 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마9:13)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죄 인은 쓸모 없다고 버리지만, 예수님은 무익하게 된 죄인들을 온전한 의인을 만들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세상은 무익하면 버립니다. 적합하지 않으면 버립니다. 전체와 어울 리지 않으면 추방시켜 버립니다. (삼상30:11-15)에는 세상이 어떠한 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 나오 고 있습니다. 어떤 젊은 애굽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말렉 사람을 주인으로 섬겼습니다. 그가 건강하고 전쟁을 할 수 있을 때에는 주인이 그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병이 들자 주인은 그를 길에다 버렸읍니다.(삼상30:13)
이렇게 세상은 무익하게 되면, 쓸모 없어지면, 버립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무익하게 되었다고 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고, 그 들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기독교의 제일 관심사는 세상에 적합하지 않아 버림을 받고, 무익해서 버림을 받고, 세상에 적응을 하지 못하여 버림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마12:20) 말씀을 보면 우리 예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 며,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안는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상한 갈대는 무익해서 꺾어 버립니다. 꺼져가는 등불은 무익하기 때문에 꺼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무익하게 된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그것을 유익 하게 다시 만드십니다.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고,거기에 성령님의 기 름을 부어서 다시 유익하게 하십니다. 우리 예수님만이 무익해도 버리지 않고, 그들을 받아주시고, 그들을 다 시 유익한 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마18:12)에서 "어떤 사람이 양 100마리가 있다가,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어 버리면, 그 99 마리를 버려 두고, 길 잃은 양 한마리를 찾는다"고 말씀하시면, 우리 예수님은 세상에 길잃은 자, 무익한 자를 찾고 계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이런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공장이 쓸모 없는 폐 품으로 새로운 재활용 품을 만들듯시, 의학이 이 땅에서 그냥 나는 쓸모 없 어 보이는 풀과 뿌리로 병을 치료하는 유익한 약을 만들어 내듯이, 우리 예수님도 세상에 무익한 자들을 하나님과 세상에 유익한 자들로 만드는 능력 이 있습니다. (사43:20)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시겠 다"고 하셨습니다. 쓸모 없는 사막에 물을 내고, 강을 내서 쓸모 있는 옥토로 바꾸는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막과 같이 쓸모 없는 자 들도 하나님은 버리시지 않고, 그들을 받아 주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 어 그들을 옥토와 같이 유익한 자들로 만드십니다. 그럼 무익한 우리들이 예수님 안에서 유익한 자들이 되려면, 무엇을 해 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무익한 우리가 유익한자가 될까요 오네시 모는 어떻게 무익했던 자가 유익한 자로 변했을까요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할 때, 무익한 우리가 유익한 자들이 됩니다. 오네시모가 감옥에서 거듭났다는 것은 그의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회개해야 무익하던 자가 다시 유익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회개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사도 바울이 그를 다시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로 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주인을 떠났던 자가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렇게 회개할 때, 무익하던 우리가 유익한 자가 됩니다. 탕자도 회개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알갈 때 무익하던 그가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 조차도 먹지 못할 정도로 무익하던, 그가 귀한 잔치에 참여하여 먹고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유익한 자가 되었읍니다. 이렇게 회개할 때, 무익한던 자가 유익한 자가 됩니다. 회개는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잘 못된 것을 다시 고치는 것을 의 미합니다. 잘못된 길을 가던 자가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쓸모 없는 자들이 쓸모 있는 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다시 유익하게 될 수 없습니다. 잘 못을 해서 무익하게 되어 쫓겨 난 자가 회개하지도 않았는데, 그를 다시 쓰는 회사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으면, 무익한 자가 유익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무익한 나라로 가서, 무익한 자가 되었으면, 그곳에서 돌이켜 유익한 나라 로 와야 유익한 자가될 수 있습니다. 그냥 계속 무익한 나라에 머물러 있 으면, 절대로 유익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이 알아서 우리를 유익한 자로 만 들어 주십니다. 무익한 우리가 유익한 자로 변화되는 것은 우리가 할 바 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무익하던 탕자가 유익한 탕자로 변화되는데에도 탕자가 한 것은 없읍니다. 그는 다만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를 유익한 자 로만드신 분은 아버지였습니다. 우리는 그냥 회개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유익한 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제롬 에미리아니(Jerome Emiliani)에 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제롬은 군인으로 있을 때,무서운 죄를 범하여 체포되어서 단단히 사슬에 매여서 악취가 나는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의 두 발은 함께 사슬에 매여 있었고, 바위에 묶여 있었다. 제롬은 그 감옥에서 석방될 가망이 전혀 없 었다. 제롬은 거기서 자기의 지나온 과거를 돌아 보았다. 그는 자기가 행한 악한 일들을 깨달았고, 그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기회들을 잃어 버렸는가를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거듭나기로 결심을 했다. 그가 행하던 악을 개선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는 만약 그가 석방만 된다면 어떻게 살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때 그는 자기의 사슬을 풀 수 있는 열쇠를 발견했다. 그리고 자기 옆에 사람과 같은 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제롬이 사슬들을 푸는 것을 도와 주었다. 그리고는 옥문을 열어주고는 제롬을 안전하게 자유 의 몸으로 인도해주었다. 이렇게 기적적으로 석방된 제롬은 감옥에 있을 때 그를 억압했던 쇠사슬 들과 같이 그를 구속하고 있던 그의 옛날의 악한 습관의 사슬들을 다 끌러 버렸다. 그리고는 병든자들을 돌보며 고귀한 삶을 살았다. 그가 차고 있었던 족쇄는 뜨레비소에 있는 버진 성당(the chapel of the Virgin at Treviso)에 그의 석방을 기념하기 위하여 걸려 있다. 그는 1537년에 베니스 가까이에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다가 페스트에 걸 려서 죽었다. 무익하던 자가 얼마나 유익한 자가 되었는가 회개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무익하던 자가 유익하게 되는 길이 열린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자기가 참으로 무익한 자라고 하나님께 고백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매였던 것에 풀 수 있는 열쇠를 주십니다. 닫혔던 옥문 을 열어 주십니다. 자유를 주십니다. 존귀한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 십니다. 그래서 유익한 자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다 무익하던 자였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여 새롭게 유익한 자로 변화되시는 은혜를 맛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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