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나의 힘 (빌4:10-13)
본문
어제 이북을 탈출하여 우리 남한으로 귀순한 김경호씨 일가족 17명이 어느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롯데 백화점을 구경하면서 놀라워하는 모습이 텔레비젼으로 방송되었습니다. 소감이 어떻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저들은 지상천국 같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와같은 대답을 의도하고 기자는 질문을 한 것이고 의도대로 저들은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조금도 거짖이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모두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얼마동안은 그럴 것이다. 몇일 아니면 몇달 길게 잡아 일년만 지나 그와같은 생활에 길들여지게 되고 그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생활이 되어지게 될 때 저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절대로 그것 때문에 놀라워하고 기뻐하고 행복해 하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저는 속으로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겨울에 방안의 물이 꽁꽁 어는 그러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나라에 처음 아파트가 생겼을 때 그곳에 사는 친척 집에 가보니 겨울에도 반팔 옷을 입고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좋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저렇게 겨울에도 반팔 옷을 입고 살아보나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저희도 겨울에도 반팔옷을 입고 살 수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시집올 때 해온 두꺼운 솜 이불은 한 겨울에도 덮을 수 없는 그러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좋고 그러더니 몇 년 살다보니 그저 그렇구 그런 것이 되어 요즘은 그것이 나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전무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만큼 별 것 아닌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꿈도 못 꾸었지만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자가용이 들어와 웬만한 사람들이 하나 둘 자가용을 가지게 되었을 때 자가용을 타고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자가용을 탈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만 신학을 졸업하고 목회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라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리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었습니다. 저는 정말 제가 자가용을 타고 살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차를 타고 다닐 때 내가 자가용을 타고 산다는 것이 꿈과 같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처음으로 내게 내 몫의 자가용이 주어졌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폐차 직전의 차 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새서 심방을 할 때 옆의 앉은 구역의 권사님이나 권찰님이 물바가지를 하나들고 보트의 물을 퍼내듯 바닥에 고인 물을 퍼내야만 하는 그러한 차이었고 갈 때만큼 설 때도 많았던 그러한 차이었지만 그 차를 운전하여 다니는 일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모릅니다. 그 차를 타면서 새차를 배정받은 선배 목사를 부러워하고 배기량 2천의 중형차를 타시는 당회장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새차도 배정받아 타보기도 하고 부러워했던 중형차를 타보기도 하였는데 그것도 몇 년 되다보니 그저 그렇고 그런것이지 그것 때문에 그렇게 삶이 늘 꿈꾸는 것만 같지는 않습니다.
1 교회학교 교육전도사를 하면서 교사들과 함께 강습회에 다닐 때 강습회에 나와서 강의하는 강사가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저렇게 강습회에 불려나와 많은 교사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강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강의를 들었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도 강습회에서 강의를 하는 강사가 되었었고 제법 유명강사중의 한 사람이 되어 지금은 너무 오라는 곳이 많아서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만큼 분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도사와 부목사 시절 나는 언제나 크고 훌륭한 교회의 당회장이 되어 목회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크고 훌륭한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들을 부러워 한적이 있었습니다. 아직 그와같은 자리에 까지 이른 것은 아니나 제법 크고 유명한 교회의 당회장도 되고 책도 몇권씩 쓴 목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책을 쓰고 목회를 하고 이곳 저곳에 불려다니며 강의도하고 집회를 하는 것은 앞의 일들과는 다른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큰 교회의 목사가 되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쁨 뿐이지 큰 교회의 목사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그러한 자리에 있게 되었기 때문에 오는 기쁨은 하나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정말 목회인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인가 회의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이와같은 마음이 어찌 저만의 마음이겠습니까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가 아니십니까 그와같은 마음은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일에 전무후무한 삶을 살았던 솔로몬도 마찬가지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그와같은 마음을 우리가 잘 아는 전도서(표현하고 있는데 저는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솔로몬의 전도서 1장과 2장의 말씀중 몇구절을 읽어 드리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 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 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 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 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 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 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 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 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 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 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 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 2 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 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 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 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 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저의 문제와 고민은 전에 꿈꾸고 바랐던 모든 것들이 다 그렇구 그런 것이 되어 되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와같은 것들만을 생각하고 욕심내며 그와같은 것들을 부러워하며 그것을 위하여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ㄴ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이사야 55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여 주고 계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 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 거움을 얻으리라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는 말씀에 우리는 우리의 주의를 기우려야만 합니다. 우리의 삶의 기쁨과 즐거움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하나님에게서 찾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찾으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관심을 세상에 쏟으면 쏟을수록 우리의 삶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되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의 삶에서 참 기쁨과 즐거움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쯤되면 세상에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청종하며 하나님께 열심을 품어야 할터인데 어리석은 우리들은 아직도 세상이 부족하여 우리의 삶에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줄 알고 전보다 더 깊이 세상으로 들어가려고 힘쓰며 그 때문에 하나님을 점점 더 멀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삶의 관심과 자세를 바꾸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관심과 열심을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청종하여야만 합니다.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제 삶속에 조그마한 기쁨과 보람 그리고 행복함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새벽에 성경을 읽으며 그 성경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그분과 만나는 것이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주신 말씀을 삶속에서 조금이라도 실천해 보았을 때 그 결과로 얻어지는 열매들은 나의 삶을 참으로 황홀한 천국되게 하였습니다.
3 그러나 세상의 많은 분주한 일들 때문에 많은 시간을 보내느라 하나님과 만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에 나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는 교회 본연의 생활은 점점 형식화되어가고 교회를 운영하는데 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드려야만 함으로 교회생활 속에도 기쁨과 즐거움은 점점 사라지게 되고 인간적인 스트레스와 부담만 늘어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기쁨과 즐거움이 점점 사라지는 교회는 아주 위험한 교회입니다. 우리가 바로 지금 그러한 위기에 처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쬽蔘¸ 합니다. 예수의 부모들은 예루살렘을 다녀오는 길에 예수님을 잃어 버렸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일년에 한 번 예루살렘 성전을 다녀온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큰 종교적인 행사중에 정작 중요한 예수는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교회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당회와 제직회를 구성하여 큰 교회를 운영은 해 나가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예수는 잃어 버리고 있다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큰 예배당도 짓고 수십억 수백억원의 예산도 집행하면서 이런일 저런일들을 많이 하지만 그 속에 정작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음식을 먹으며 넓고 편안한 집에서 넉넉한 삶을 살지만 그속에 정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는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 기쁨과 즐거움은 오히려 전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의 말씀을 청종하여야만 합니다. 말씀을 읽고 깨달으며 은혜받는 생활을 늘려 가야만 합니다. 깊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의 시간이 깊어지고 길어져야만 합니다. 그의 말씀을 씨앗처럼 우리의 삶속에 뿌려 그것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기쁨으로 추수하는 일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능력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요함을 삶의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도 아니하였고 가난함과 비천함을 삶의 능력의 상실이라고 생각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에게 능력을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안에 있으면 부요함과 비천함이 자신에게는 큰 문제가 될 수 없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맞습니다. 부요함은 우리의 능력이 될 수 없습니다. 가난함과 비천함도 우리의 무능함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참 삶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무심하고 게으르며 능력과는 관계없는 세상에 쓸데 없는 관심과 정력을 쏟음으로 사탄에게 속아사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4 다음 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축하하는 성탄주간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정말 필요한 것은 좋은 집과 좋은 자동차가 아닙니다. 높은 지위와 명예도 아닙니다.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것도 아니고 필요없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그와같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참 믿음의 생활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의 빈곤과 외로움은 그리고 허무함은 영적빈곤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진정한 힘이 될 수 없습니다.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행복과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기쁨이요 능력이요 구원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번 성탄에는 참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삶속에 성탄 하실 수 있기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절기를 대강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강림을 기대하고 고대하는 기간이라하여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를 기대하고 고대하면서 이 대강절을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난은 세상적인 것에 있지 아니하고 신앙적인 것에 있음을 제발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 이 땅에 살면서도 힘있는 사람이 되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천국의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렸을 때 겨울에 방안의 물이 꽁꽁 어는 그러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나라에 처음 아파트가 생겼을 때 그곳에 사는 친척 집에 가보니 겨울에도 반팔 옷을 입고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좋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저렇게 겨울에도 반팔 옷을 입고 살아보나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저희도 겨울에도 반팔옷을 입고 살 수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시집올 때 해온 두꺼운 솜 이불은 한 겨울에도 덮을 수 없는 그러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좋고 그러더니 몇 년 살다보니 그저 그렇구 그런 것이 되어 요즘은 그것이 나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전무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만큼 별 것 아닌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꿈도 못 꾸었지만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자가용이 들어와 웬만한 사람들이 하나 둘 자가용을 가지게 되었을 때 자가용을 타고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자가용을 탈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만 신학을 졸업하고 목회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라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리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었습니다. 저는 정말 제가 자가용을 타고 살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차를 타고 다닐 때 내가 자가용을 타고 산다는 것이 꿈과 같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처음으로 내게 내 몫의 자가용이 주어졌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폐차 직전의 차 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새서 심방을 할 때 옆의 앉은 구역의 권사님이나 권찰님이 물바가지를 하나들고 보트의 물을 퍼내듯 바닥에 고인 물을 퍼내야만 하는 그러한 차이었고 갈 때만큼 설 때도 많았던 그러한 차이었지만 그 차를 운전하여 다니는 일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모릅니다. 그 차를 타면서 새차를 배정받은 선배 목사를 부러워하고 배기량 2천의 중형차를 타시는 당회장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새차도 배정받아 타보기도 하고 부러워했던 중형차를 타보기도 하였는데 그것도 몇 년 되다보니 그저 그렇고 그런것이지 그것 때문에 그렇게 삶이 늘 꿈꾸는 것만 같지는 않습니다.
1 교회학교 교육전도사를 하면서 교사들과 함께 강습회에 다닐 때 강습회에 나와서 강의하는 강사가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저렇게 강습회에 불려나와 많은 교사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강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강의를 들었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도 강습회에서 강의를 하는 강사가 되었었고 제법 유명강사중의 한 사람이 되어 지금은 너무 오라는 곳이 많아서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만큼 분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도사와 부목사 시절 나는 언제나 크고 훌륭한 교회의 당회장이 되어 목회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크고 훌륭한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들을 부러워 한적이 있었습니다. 아직 그와같은 자리에 까지 이른 것은 아니나 제법 크고 유명한 교회의 당회장도 되고 책도 몇권씩 쓴 목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책을 쓰고 목회를 하고 이곳 저곳에 불려다니며 강의도하고 집회를 하는 것은 앞의 일들과는 다른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큰 교회의 목사가 되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쁨 뿐이지 큰 교회의 목사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그러한 자리에 있게 되었기 때문에 오는 기쁨은 하나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정말 목회인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인가 회의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이와같은 마음이 어찌 저만의 마음이겠습니까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가 아니십니까 그와같은 마음은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일에 전무후무한 삶을 살았던 솔로몬도 마찬가지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그와같은 마음을 우리가 잘 아는 전도서(표현하고 있는데 저는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솔로몬의 전도서 1장과 2장의 말씀중 몇구절을 읽어 드리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 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 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 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 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 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 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 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 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 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 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 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 2 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 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 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 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 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저의 문제와 고민은 전에 꿈꾸고 바랐던 모든 것들이 다 그렇구 그런 것이 되어 되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와같은 것들만을 생각하고 욕심내며 그와같은 것들을 부러워하며 그것을 위하여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ㄴ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이사야 55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여 주고 계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 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 거움을 얻으리라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는 말씀에 우리는 우리의 주의를 기우려야만 합니다. 우리의 삶의 기쁨과 즐거움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하나님에게서 찾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찾으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관심을 세상에 쏟으면 쏟을수록 우리의 삶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되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의 삶에서 참 기쁨과 즐거움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쯤되면 세상에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청종하며 하나님께 열심을 품어야 할터인데 어리석은 우리들은 아직도 세상이 부족하여 우리의 삶에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줄 알고 전보다 더 깊이 세상으로 들어가려고 힘쓰며 그 때문에 하나님을 점점 더 멀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삶의 관심과 자세를 바꾸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관심과 열심을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청종하여야만 합니다.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제 삶속에 조그마한 기쁨과 보람 그리고 행복함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새벽에 성경을 읽으며 그 성경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그분과 만나는 것이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주신 말씀을 삶속에서 조금이라도 실천해 보았을 때 그 결과로 얻어지는 열매들은 나의 삶을 참으로 황홀한 천국되게 하였습니다.
3 그러나 세상의 많은 분주한 일들 때문에 많은 시간을 보내느라 하나님과 만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에 나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는 교회 본연의 생활은 점점 형식화되어가고 교회를 운영하는데 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드려야만 함으로 교회생활 속에도 기쁨과 즐거움은 점점 사라지게 되고 인간적인 스트레스와 부담만 늘어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기쁨과 즐거움이 점점 사라지는 교회는 아주 위험한 교회입니다. 우리가 바로 지금 그러한 위기에 처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쬽蔘¸ 합니다. 예수의 부모들은 예루살렘을 다녀오는 길에 예수님을 잃어 버렸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일년에 한 번 예루살렘 성전을 다녀온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큰 종교적인 행사중에 정작 중요한 예수는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교회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당회와 제직회를 구성하여 큰 교회를 운영은 해 나가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예수는 잃어 버리고 있다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큰 예배당도 짓고 수십억 수백억원의 예산도 집행하면서 이런일 저런일들을 많이 하지만 그 속에 정작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음식을 먹으며 넓고 편안한 집에서 넉넉한 삶을 살지만 그속에 정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는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 기쁨과 즐거움은 오히려 전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의 말씀을 청종하여야만 합니다. 말씀을 읽고 깨달으며 은혜받는 생활을 늘려 가야만 합니다. 깊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의 시간이 깊어지고 길어져야만 합니다. 그의 말씀을 씨앗처럼 우리의 삶속에 뿌려 그것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기쁨으로 추수하는 일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능력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요함을 삶의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도 아니하였고 가난함과 비천함을 삶의 능력의 상실이라고 생각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에게 능력을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안에 있으면 부요함과 비천함이 자신에게는 큰 문제가 될 수 없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맞습니다. 부요함은 우리의 능력이 될 수 없습니다. 가난함과 비천함도 우리의 무능함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참 삶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무심하고 게으르며 능력과는 관계없는 세상에 쓸데 없는 관심과 정력을 쏟음으로 사탄에게 속아사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4 다음 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축하하는 성탄주간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정말 필요한 것은 좋은 집과 좋은 자동차가 아닙니다. 높은 지위와 명예도 아닙니다.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것도 아니고 필요없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그와같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참 믿음의 생활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의 빈곤과 외로움은 그리고 허무함은 영적빈곤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진정한 힘이 될 수 없습니다.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행복과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기쁨이요 능력이요 구원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번 성탄에는 참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삶속에 성탄 하실 수 있기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절기를 대강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강림을 기대하고 고대하는 기간이라하여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를 기대하고 고대하면서 이 대강절을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난은 세상적인 것에 있지 아니하고 신앙적인 것에 있음을 제발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 이 땅에 살면서도 힘있는 사람이 되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천국의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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