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푯대를 향하여 (빌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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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방법론이 있습니다. 그냥 마구잡이로 되는대로 사는 것은 용납되지 않으며 그렇게 사는 자는 사회의 패륜아 입니다. 동물에게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하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냥 살면 됩니다. 그러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그냥 믿으면 되는 것이아니고,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난번 성경공부하면서 물어보니 에수믿는 것이 어렵다고 다 대답합니다. 왜 어렵습니까 그것은 말씀대로 살아야 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저 되는대로 믿으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믿으려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교회생활하려니까 나 자신과 부딪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여러분은 발견하셨습니까 이것을 아직 확실하게 발견하지 못한채 인생을 살아가시고 계신다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직 동물티를 다 벗지 못하신 분이십니다. 아직 사람쪽 보다는 동물 쪽에 더 가까운 분이십니다. 아직 어떻게 살아야 하는냐하는 고민도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삶이 나타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은 못먹을 것도 잘 먹습니다. 술, 담배, 굼벵이, 뱀등 사실 이런 것을 사람이 먹을 것이 못됩니다.
그런데 잘 먹어요. 또 육체의 욕구대로 삽니다. 이것 죄송한 말씀이지만 성적욕구가 나면 더러운 곳에가서 아무나 하고 풀어버리려고 합니다.
예)지난 10월 14일 보사부국정감사자료에 의하면 지난 6월말까지 유홍업소의 여종업원의 숫자는 50만2천9백41명이라고 합니다. 이 숫자는 우리나나 20-30대여자의 숫자가 약8백만명이니까 약6.3%에 해당되는 숫자입니다. 한때 인신매매등으로 시끄러웠던 경험을 알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동물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병이요 악입니다. 그리고 동물들은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는 힘이 없습니다. 화가나면 주인이고 누구고 물면서 달려듭니다.
예)뉴스보니 써커스의 곰이 사람을 물고 달려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방법을 가지고 때로는 자신을 절제하고, 감정을 다스려 이겨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감정절제하지 못해서 사나와지고 관계를 부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 인간은 그냥 마구잡이로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 인하여 때로는 절제도 하고, 때로는 참기도 하고, 때로는 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더욱 힘써 자신을 훈련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사도는 자신의 살아가는 방법을 우리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신앙생활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먼저 그는 자신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된 그것”(12절) 자신의 존재를 예수님에게 붙잡혔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일단 자신 마음대로 살수있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사로잡힌 포로라는 것입니다. 이 사로잡힘은 예수님이 힘으로, 무력으로 우리를 장악하고 사로잡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에 의하여 포로가 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이 완전히 그에게 사로잡혀 버렸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그에게 완전히 반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서 그분의 말씀이 자신을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듣는다고 합니다. 하늘의 달도 따다가 목에 걸어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답니다. 어떤 사람은 낭떠러지에 핀 꽃한송이 따 달라고 하니까 그것 따러내려가다가 떨어져서 죽었답니다. 죽으면서 ‘날 잊지 마세요’하고 죽었답니다. 그래서 그 꽃이름이 이름하여 물망초라고 한답니다. 이런 여자 만나면 일찍 죽을 확율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그 말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그 사랑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포로가 되어 잡히면 자유가 박탈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못합니다. 사랑하는 상대방과 함께 삶의 모든 것이 공유되게 됩니다.
예)서로가 사랑하여 결혼하면 서로에게 붙잡힙니다. 다른 이성을 못만나게 되고, 일찍 들어와야 하고, 집나가서 자면 안되고, 돈도 마음대로 쓰면 안됩니다. 서로에게 포로로 잡혀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괴롭다고 하여 결혼하고도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내 마음대로 이전에 하던 대로 산다면 그것은 더 큰 괴로움이 오는 것입니다. 행복한 결혼이란 서로가 사로잡혀야 합니다. 한쪽만 잡히면 안됩니다. 가장 불행한 결혼은 한쪽만 잡힌 가정입니다. 한쪽은 잡혀서 시는데 한쪽은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한 편의 의사를 무시하고 인격을 무시합니다. 결혼이란 서로에게 얶매이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잡히는 일입니다. 잡힌것이 서로 괴롭다고 하고살면 그것은 실패하는 가정이 됩니다. 그러나 잡힌 그것을 서로가 인정하고 서로가 존경하면서, 서로의 아름다운 가정과 삶을 창조해 갈 때 거기에 행복이 있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에게 붙잡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붙잡힘이 괴롭거나 힘들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붙잡힌 것을 내가 또 잡으려고 열심히 좇아간다고 합니다. 여기에 축복된 신앙의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 믿는 것이 어려우냐 붙잡혔는데 그것을 안 붙잡히고 도망가려고 하니까 힘든 것입니다.
예)염소와 양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압니까 염소는 주인이 끌고가려고 하면 안 가려고 버티고 질질 끌려갑니다. 그러다가 받습니다.
그런데 양은 주인이 몰고가면 졸졸 따라갑니다. 열심히 뛰어서 좇아옵니다. 그래서 염소는 목을 메야하고 양은 목을 안 매어도 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의 스타일이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신앙인은 염소스타일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힘들고 어렵지요.
예)엣날 학교다닐때에 공부잘하는 아이들은 예습 복습해 옵니다. 그러니 공부가 재미있고 학교가기가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못하는 아이들은 복습도 예습도 안합니다. 그러니 공부하기가 재미없고 학교가기가 싫어집니다. 점점 더 뒤 떨어지면 나뿐 짓합니다. 예수 믿는 것도 이왕에 예수 믿게 된 것 다시는 빠져나갈 수가 없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수없는 길이라면 화끈하게 믿어보자, 이왕에 믿는 것 잘 믿고 이 세상에서 축복이라는 것 무진장 받아보자 하고 열심히 믿으면 재미있고 신나고 멋집니다.
그런데 매일 흐느적 거리고, 도망갈 궁리하고, 매일 시험에 들어 비틀거리고, 마지 못해서 억지로 목사 얼굴 때문에, 체면 때문에, 그런 식으로 믿으면 힘들고 괴롭고, 재미없고, 잘못하다가는 하나님에게 죽도록 매맞고 교회다니게 됩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그는 또한가지 좇아가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다시말하면 우리가 열심히 이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그가 살아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자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고 하셨습니다.-예수님 안에서 이러한 힘찬 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축복의 인생을 살려면 몇가지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좋은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14절) “푯대를 향하여” 가끔 세상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면 삶의 목표가 없는 것 같이 느낄 때가 많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다니는 것을 보면서 그냥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어느 대학교의 학장의 행위-“왜 뛰어야 하는지 나도 모른다” 이렇듯 그저 수고하고 노력하면서 사는데 목표가 없으니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 삶의 의욕도 없어지고,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목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선한 목표, 좋은 목표를 새워야 합니다. 바울 사도의 목표는 예수님이십니다. 즉 예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자신의 목표로 삼고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삶의 목표는 너무나 세상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조차 너무나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목표일 때가 많습니다. 신앙적인 좋은 목표를 세우고 전력하십시오. 신앙적인 목표가 잘 이루어지면 우리의 삶의 목표는 아름다운 축복의 목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자만하여서는 안됩니다.(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인간은 늘 부족합니다. 그러기에 노력하고 애쓰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두 종류의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는 자만심에 가득차서 착각속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 스스로가 자신은 신앙의 삶을 잘 산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신이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주관적인 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신앙은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 잘 믿는다고 평가해 주어야 합니다.
둘째는 자신은 부족하다고 늘 말하면서 그 부족을 채우려고 노력하거나 애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을 위하여서 도전하고 달려나가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가는 날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늘 부족하지만 그 부족을 하나님에게 고하면 채워주실 줄로 믿고 열심히 도전하며 힘쓰는 삶이어야 합니다. 과거에 매여서는 안됩니다.(13절)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있는 것을 잡으려고” 과거에 매여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인생은 행복한 인생을 만들수가 없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지금의 시간만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시간입니다. 과거의 아픔, 상처, 죄, 뿐아니라 과거의 영화까지도 잊어버리고 오늘의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서 도전하여야 합니다.
예)갑돌이와 갑순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들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못하고 달보고 울면서 삽니다. 못난입니다. 물론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떨쳐버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창조와 오늘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서 나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예)자동차 운전할 때에 빽밀러만 보면서 가면 사고 납니다. 앞을 보아야 합니다. 뒤를 보는 이유는 앞으로 더 잘가기 위하여서 보는 것이지 거기에 미련을 두고 붙잡혀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의 상처가 있습니까 용서하지 못할 아픔이 있습니까 지우지 못할 죄가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 분은 오늘의 당신을 원하시는 것이지. 과거의 당신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과거의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든, 어떤 일을 하였든, 어떻게 살았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당신이 바르기를 원하시며 오늘의 당신의 삶을 통하여 내일의 축복을 준비하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에게 붙잡힌 사람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을 벗어나서 세상으로 도망갈 수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매, 끌려가는 신앙인이 되지 마십시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행하는 재미없는 신앙인이 되지 마십시다. 오직 붙잡힌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신앙인의 삶을 사십시다. 푯대를 향하여, 자만하지 말고, 과거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떨쳐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더 놀랍고 축복된 영화를 바라보면서 힘들고 어렵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힘을 다하여 달려가는 아름다운 신앙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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