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빌3:1-9)
본문
오늘은 빌립보서 3장1절부터 1절부터 9절까지 함께 봉독 우리는 2장까지 공부해 오면서 그리스도안에서 싹튼 진한 사랑을 느낀바가 되었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주님의 일을 위해 서로 위로하며 기도해 줌으로 믿음이 더욱 성장하게 되어서 결국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진짜 신앙인은 어려움을 직면했을 때 그 진가가 나타난다. 이제 바울은 그동안 부드러운 어조로 얘기 했으나 좀더 강렬한 어조로 얘기하기 시작한다 1절에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바울이 항상 즐겨 쓰는 낱말이 있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알겠는가 = 바로 '주 안에서'라는 말이다. 바울은 자기가 주를 떠나서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알고 있었다. = 먹든지 마시든지 항상 주의 영광을 위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바울이 3장 서두에서부터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강조한 이유가 있다. 1절 끝 부분에 보면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라고 했는데 아주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절에 보면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고 했다. 즉 당시 빌립보교인들에게는 그들의 믿음을 흔들어 놓기 위해 거짓 교사들이 바울이 없는 틈을 타서 활동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왜 율법을 무시하느냐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냐 친히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 =우리가 행위로 구원을 받게 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행위로 구원을 받을 것 같으면 무엇때문에 주님이 그런 고통을 당하셨겠는가 십자가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거룩한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면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를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바울은 주님의 그 위대한 사랑을 율법이라는 것을 통해 부인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분노가 섞인 어투로 말한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예수님의 고귀한 보혈을 부인하는 자를 개로 취급해 버리는 바울의 심정을 우리는 알만하다. '손할례당을 삼가라 ' 사도행전15:1에보면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 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육신적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바울은 이미 예수를 믿고 그 마음을 회심한 자는 마음에서 할례를 받았으므로 꼭 표면적인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에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언약을 받은 사람은 율법에 메달려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예수께서 몸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으므로 육신적 할례를 파하셨다. 그리고 새로운 언약을 새우신 것이다. = 창17:10-14를 보면 할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간의 언약의 한 표징으로 하나님께서 삼으신 것을 볼 수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언약을 파하시고 그분의 피로써 새 언약을 세우셨다. '고전11:25-26 식후에 또한 이와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믿음 외에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어느 조건도 없다.
3절 '하나님의 성령님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 이제 바울은 진정한 할례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1) 하나님의 성령님으로 봉사하라. = 여기에서 봉사의 의미는 유대인들의 특권을 말한다. 그들의 특권이란 바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때는 한정적인 특권이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의 특권이 되었다. = 요4:19-24를 보면 진정한 에배란 어느 특정한 장소나 아름다운 성전에서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장엄한 의식이 없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면 곧 그것이 예배라는것이다.
2)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라. = 유대인들은 율법 지키는 것을 자랑했다. = 자기 의가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안에서 자랑한다. =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가 나타난다. 고전2:2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 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알고 있다면 자랑할 것은 그것밖에 없을 것이다.
3) 육체를 신뢰하지 마라. = 유대인들의 특권의식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과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의 표시 로써 받은 할례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된 진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나님의 선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었지 결코 어떤 행함으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창15:6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 요즘 교회에서도 육체를 신뢰하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보기보다는 한 곳으로만 치우쳐 보기가 일쑤다.-헌금을 많이 하는 자가 대우를 받는 교회.-세상 권력을 가진자가 대우를 받는 교회-성도들 중에도 봉사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의로움인양 착각하는 사람들.-사람들이 그러한 자기 의를 알아주지 않을 때 의문을 품고 불평하게 된다.
그러므로 행함이 앞서고 믿음이 뒤로 가면 안된다. 항상 믿음이 앞에 있어야하고 행함은 그 믿음을 바탕으로해서 이루어 져야한다. 그러한 사람이 지정한 할례당이라고 바울은 지적한다. 4절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 사실 누구에게든지 육체를 신뢰할만한 것이 있게 마련이다. = 다 자기 잘난 멋으로 산다고 한다. 요즘엔 별로 잘나지도 않은 것 같은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잘난척을 잘 하는지 나 외에는 모두 못난 이고 내가 제일 이쁘고, 내가 제일 똑똑하고, 나만 죄가 없고, 그런 현대인을 풍자한 우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바울 자신에게도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5절에서 6절에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세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바울은 육체를 신뢰할만한 사람이었다. 그의 혈통과 가문과 학식과 그의 모든 경험들을 볼 때 그는 많은 것을 갖고 있었다. = 그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할례받은 백성이요, =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족속이요, = 그중에서도 베냐민 지파요-베냐민은 유일하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 가나안에서 태어났다.(창35:16-20)-이스라엘(야곱)의 가장 사랑받은 아내 라헬의 아들이었다.-이스라엘의 초대왕(사울)은 베냐민 지파에서 세워졌고,-포로 귀환때에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타국에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이미 불모지가 되어버린 가나안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그 주축이 되었고, (에4:1)-하만의 민족 말살음모를 붕괴시킨 모르드개도 베냐민 지파다. 그의 위대한 신앙과 용기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보존될 수 있었고, 민족의 위상까지 되찾을 수 있었다. 바울은 그러한 자기 지파에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살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라고 했다. 거기에다가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다.
-완전한 율법 주의자요-유대교인 이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교회들을 핍박했는가 그렇게 육신적으로 자신만만했던 그가 예수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난후 부터 그의 가치관은 달라진다. 인간의 의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 없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그는 알게 된 것이다. 그러한 보잘것 없는 육신의 조건으로 구원 받겠다는 인간의 어리석은 발상에 대해 바울은 혐오감까 지 갖게 된 것이다. = 육체를 신뢰하게 되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른다. 교회와 영혼은 자신의 야심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 도구로만 생각한다.-많은 유대인들 그들은 종교를 통해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상석에 올라가는 일에만 전력했다.-예수를 통해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고 영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때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게 됐고 사회적 종교적 지위가 위태로워지자 서슴없이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를 공모.-그들에게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사실 관심이 없었다. = 우리가 에수 믿는 것은 나를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만일 내속에 나의 의와 자랑으로 가득차 있다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 나타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바울은 고백한다. 7절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 =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 족속이요 귀족가문의 출신이요 신앙에 있어서 정통파요 행위에 있어서는 흠이 없는 자로서의 우월성을 갖고 있었음을 앞에서 열거했었다. 그는 사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그러한 자신의 조건으로 하나님께로 올라 가려 고 했었다. = 그러나 조금의 진보도 없었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는 예수를 만난다. = 그의 전 생애가 변화되는 사건. = 그가 하나님께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그에게로 내려 오신 것.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올라가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셔서 주시는 것.-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는 위해 비천한 가운데로 내려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 그 사실을 알게 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올라가겠다고 끌어 모았던 것들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것인가를 보게 된 것이다. = 나에게 진정으로 유익한 것이 무엇일까-천국행 열차표 한장이 나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다.-열차표 한 장값만 있으면 되지 가는길에 이것도 사먹고 저것도 사먹고 ,천안역에 들려서 가락국수도 사먹고 잡지책도 사보기 위해 더 벌려고 하다가 열차를 놓쳐버리면 가면서 쓰겠다고 벌어 놓은 것들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오히려 그것들이 해가 될 뿐이다.-바울은 바로 그런 심정으로 말했을 것이다. = 그가 가장 천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았던 기독교가 그에게 가장 귀한 것으로, 그가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겼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에 가장 추한 것으로 변했다면 그것이 과연 인간의 힘으로 나 어떤 사상에 의해 가능할까 더군다나 아직까지도 세상은 옛날 바울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 외에는, 다메섹 도상에서의 예수를 만난 사건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8절 상반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이렇게 변화된 바울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지만 그보다 그를 이와같이 변화시키신 다메섹 도상의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참으로 위대하신 분이시다. 한 사람을 쓰시기 위해서 이렇게 완벽하게 변화를 시키실까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너무나도 멋진 변화다. 세상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던 자가 이렇게 변화되어 살고 있다면 분명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증거다. 가장 사악한 박해자인 그를, 세상 죄로 얼룩진 악하기 이를데 없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야 말로 가장 고상하고 값진 진주인 것을 여러분도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8절 하반절에 바울은 계속해서 말한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바울 특유의 언어가 구사되고 있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을 일컬어 '개'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을 이제는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한다. 죽, 예수를 만나기 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이 개들이나 먹을 수 있는 식탁의 음식 찌꺼기나 분토들이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만큼 더러운 것들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바로 '개'라는 것이다. 어찌 됐든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사상이나 철학이나 과학이나 그 무엇으로도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하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스도를 얻고 9절에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율법에서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의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자기의 공로로 하나님앞에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진정한 의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악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시종일관 이런 마음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자랑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해가 될 뿐이다. 호화로운 여객선이 대서양을 지나고 있었다. 그 배 안에는 세계에서 내노라 할 만한 부자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선상 파티가 시작되자 저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서 온 몸을 보석으로 치장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뽐내고 있었다. 위급한 상황이 다가왔다. 그만 이 배가 짙은 안개로 인하여 유조선과 충돌을 하고만 것이다. 배는 점점 밑으로 가라앉게 되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갑판위로 올라갔다. 잠시후에 구조선이 왔고 사람들은 구조선으로 헤험쳐 가기 위해 바다위로 뛰어내렸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물에 뜰 수 있는 것들을 품에 안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장돼 죽어갔다. 나중에 물속에서 죽은 시신을 건져 올렸을 때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죽은 사람 거의가 다 그들의 몸에 무거운 황금 주머니를 차고 잇었다는 것이다. 죽음 직전에서도 보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것들을 몸에 두른 채 바다로 뛰어 내려 헤험을 쳤지만 몸이 무거워 멀리 갈수 없게된 그들은 지쳐 물속으로 가라 앉을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얻어진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가 여러분의 진정한 보화가 되시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가 돼야 할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의 심령속에 참다운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왜 율법을 무시하느냐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냐 친히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 =우리가 행위로 구원을 받게 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행위로 구원을 받을 것 같으면 무엇때문에 주님이 그런 고통을 당하셨겠는가 십자가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거룩한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면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를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바울은 주님의 그 위대한 사랑을 율법이라는 것을 통해 부인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분노가 섞인 어투로 말한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예수님의 고귀한 보혈을 부인하는 자를 개로 취급해 버리는 바울의 심정을 우리는 알만하다. '손할례당을 삼가라 ' 사도행전15:1에보면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 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육신적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바울은 이미 예수를 믿고 그 마음을 회심한 자는 마음에서 할례를 받았으므로 꼭 표면적인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에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언약을 받은 사람은 율법에 메달려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예수께서 몸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으므로 육신적 할례를 파하셨다. 그리고 새로운 언약을 새우신 것이다. = 창17:10-14를 보면 할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간의 언약의 한 표징으로 하나님께서 삼으신 것을 볼 수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언약을 파하시고 그분의 피로써 새 언약을 세우셨다. '고전11:25-26 식후에 또한 이와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믿음 외에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어느 조건도 없다.
3절 '하나님의 성령님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 이제 바울은 진정한 할례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1) 하나님의 성령님으로 봉사하라. = 여기에서 봉사의 의미는 유대인들의 특권을 말한다. 그들의 특권이란 바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때는 한정적인 특권이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의 특권이 되었다. = 요4:19-24를 보면 진정한 에배란 어느 특정한 장소나 아름다운 성전에서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장엄한 의식이 없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면 곧 그것이 예배라는것이다.
2)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라. = 유대인들은 율법 지키는 것을 자랑했다. = 자기 의가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안에서 자랑한다. =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가 나타난다. 고전2:2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 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알고 있다면 자랑할 것은 그것밖에 없을 것이다.
3) 육체를 신뢰하지 마라. = 유대인들의 특권의식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과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의 표시 로써 받은 할례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된 진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나님의 선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었지 결코 어떤 행함으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창15:6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 요즘 교회에서도 육체를 신뢰하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보기보다는 한 곳으로만 치우쳐 보기가 일쑤다.-헌금을 많이 하는 자가 대우를 받는 교회.-세상 권력을 가진자가 대우를 받는 교회-성도들 중에도 봉사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의로움인양 착각하는 사람들.-사람들이 그러한 자기 의를 알아주지 않을 때 의문을 품고 불평하게 된다.
그러므로 행함이 앞서고 믿음이 뒤로 가면 안된다. 항상 믿음이 앞에 있어야하고 행함은 그 믿음을 바탕으로해서 이루어 져야한다. 그러한 사람이 지정한 할례당이라고 바울은 지적한다. 4절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 사실 누구에게든지 육체를 신뢰할만한 것이 있게 마련이다. = 다 자기 잘난 멋으로 산다고 한다. 요즘엔 별로 잘나지도 않은 것 같은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잘난척을 잘 하는지 나 외에는 모두 못난 이고 내가 제일 이쁘고, 내가 제일 똑똑하고, 나만 죄가 없고, 그런 현대인을 풍자한 우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바울 자신에게도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5절에서 6절에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세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바울은 육체를 신뢰할만한 사람이었다. 그의 혈통과 가문과 학식과 그의 모든 경험들을 볼 때 그는 많은 것을 갖고 있었다. = 그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할례받은 백성이요, =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족속이요, = 그중에서도 베냐민 지파요-베냐민은 유일하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 가나안에서 태어났다.(창35:16-20)-이스라엘(야곱)의 가장 사랑받은 아내 라헬의 아들이었다.-이스라엘의 초대왕(사울)은 베냐민 지파에서 세워졌고,-포로 귀환때에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타국에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이미 불모지가 되어버린 가나안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그 주축이 되었고, (에4:1)-하만의 민족 말살음모를 붕괴시킨 모르드개도 베냐민 지파다. 그의 위대한 신앙과 용기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보존될 수 있었고, 민족의 위상까지 되찾을 수 있었다. 바울은 그러한 자기 지파에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살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라고 했다. 거기에다가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다.
-완전한 율법 주의자요-유대교인 이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교회들을 핍박했는가 그렇게 육신적으로 자신만만했던 그가 예수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난후 부터 그의 가치관은 달라진다. 인간의 의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 없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그는 알게 된 것이다. 그러한 보잘것 없는 육신의 조건으로 구원 받겠다는 인간의 어리석은 발상에 대해 바울은 혐오감까 지 갖게 된 것이다. = 육체를 신뢰하게 되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른다. 교회와 영혼은 자신의 야심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 도구로만 생각한다.-많은 유대인들 그들은 종교를 통해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상석에 올라가는 일에만 전력했다.-예수를 통해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고 영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때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게 됐고 사회적 종교적 지위가 위태로워지자 서슴없이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를 공모.-그들에게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사실 관심이 없었다. = 우리가 에수 믿는 것은 나를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만일 내속에 나의 의와 자랑으로 가득차 있다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 나타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바울은 고백한다. 7절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 =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 족속이요 귀족가문의 출신이요 신앙에 있어서 정통파요 행위에 있어서는 흠이 없는 자로서의 우월성을 갖고 있었음을 앞에서 열거했었다. 그는 사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그러한 자신의 조건으로 하나님께로 올라 가려 고 했었다. = 그러나 조금의 진보도 없었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는 예수를 만난다. = 그의 전 생애가 변화되는 사건. = 그가 하나님께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그에게로 내려 오신 것.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올라가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셔서 주시는 것.-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는 위해 비천한 가운데로 내려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 그 사실을 알게 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올라가겠다고 끌어 모았던 것들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것인가를 보게 된 것이다. = 나에게 진정으로 유익한 것이 무엇일까-천국행 열차표 한장이 나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다.-열차표 한 장값만 있으면 되지 가는길에 이것도 사먹고 저것도 사먹고 ,천안역에 들려서 가락국수도 사먹고 잡지책도 사보기 위해 더 벌려고 하다가 열차를 놓쳐버리면 가면서 쓰겠다고 벌어 놓은 것들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오히려 그것들이 해가 될 뿐이다.-바울은 바로 그런 심정으로 말했을 것이다. = 그가 가장 천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았던 기독교가 그에게 가장 귀한 것으로, 그가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겼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에 가장 추한 것으로 변했다면 그것이 과연 인간의 힘으로 나 어떤 사상에 의해 가능할까 더군다나 아직까지도 세상은 옛날 바울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 외에는, 다메섹 도상에서의 예수를 만난 사건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8절 상반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이렇게 변화된 바울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지만 그보다 그를 이와같이 변화시키신 다메섹 도상의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참으로 위대하신 분이시다. 한 사람을 쓰시기 위해서 이렇게 완벽하게 변화를 시키실까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너무나도 멋진 변화다. 세상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던 자가 이렇게 변화되어 살고 있다면 분명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증거다. 가장 사악한 박해자인 그를, 세상 죄로 얼룩진 악하기 이를데 없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야 말로 가장 고상하고 값진 진주인 것을 여러분도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8절 하반절에 바울은 계속해서 말한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바울 특유의 언어가 구사되고 있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을 일컬어 '개'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을 이제는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한다. 죽, 예수를 만나기 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이 개들이나 먹을 수 있는 식탁의 음식 찌꺼기나 분토들이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만큼 더러운 것들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바로 '개'라는 것이다. 어찌 됐든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사상이나 철학이나 과학이나 그 무엇으로도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하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스도를 얻고 9절에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율법에서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의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자기의 공로로 하나님앞에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진정한 의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악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시종일관 이런 마음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자랑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해가 될 뿐이다. 호화로운 여객선이 대서양을 지나고 있었다. 그 배 안에는 세계에서 내노라 할 만한 부자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선상 파티가 시작되자 저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위해서 온 몸을 보석으로 치장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뽐내고 있었다. 위급한 상황이 다가왔다. 그만 이 배가 짙은 안개로 인하여 유조선과 충돌을 하고만 것이다. 배는 점점 밑으로 가라앉게 되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갑판위로 올라갔다. 잠시후에 구조선이 왔고 사람들은 구조선으로 헤험쳐 가기 위해 바다위로 뛰어내렸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물에 뜰 수 있는 것들을 품에 안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장돼 죽어갔다. 나중에 물속에서 죽은 시신을 건져 올렸을 때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죽은 사람 거의가 다 그들의 몸에 무거운 황금 주머니를 차고 잇었다는 것이다. 죽음 직전에서도 보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것들을 몸에 두른 채 바다로 뛰어 내려 헤험을 쳤지만 몸이 무거워 멀리 갈수 없게된 그들은 지쳐 물속으로 가라 앉을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얻어진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가 여러분의 진정한 보화가 되시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가 돼야 할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의 심령속에 참다운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될 것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