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다시 발견된 사람 (빌3:2-9)
본문
현대사회를 흔히 이력서 문화라고 평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입사하든지 남에게 나를 소개할 때에는 반드시 따라가는 것이 이력서이기 때문입니다. 이력서는 바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평가하는 한 부분입니다. 그가 배워오고 일해온 것을 토대로 그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력서라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절대적인 평가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과거가 어떻든지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변화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의 과거의 행적에 대한 이력서에 의한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예수안에서 어떻게 새로워지고 변화되었는가 하는 사실이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할수있으면 자신의 평가가 좋기를 바라고 있으며, 사람들이 자기에 대하여 좋은 점수를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기를 애쓰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지나치면 바로 위선이 만들어 지는 것이고,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위장되고 가면 속의 삶을 살기가 쉬워집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보아주는가 하는 사실보다도 나 자신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이 나를 잘 보아주기만을 바라며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의 옳바른 평가를 내리지 못함으로 인하여서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의 평가를 잘못내리므로 인하여 남은 자신을 좋게 평가하는데도 스스로가 자신을 깍아내리는 사람도 있으며, 남은 잘못내리는 데도 자신은 스스로 자찬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평가를 잘못내리면 교만해지기도 하고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에 빠져 자신을 자학하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라는 대명제를 가지고 자신의 철학의 주체를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분명하게 알 수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학벌이나 가진 재산이나 세상적인 명예나 권세로서 가능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안에서 가능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바울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려는 것입니다. 그는 4절 이하에서 자신의 세상적인 자랑을 내 세웁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진실한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저는 한 가지 부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형재는 어떻다고 합니다. 자신의 집안과 가문은 어떻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것 한가지도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도 내가 처음 믿은 것이고, 우리 집안은 어떤 자랑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바울 같이 자신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획기적인 순간을 통하여서 은혜를 받고 이런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저 아무런 죄도 안 짓고 그저 평범하게 정상적으로 자라서 목회의 길을 그저 평범하게 걸어왔습니다. 정말로 세상의 자랑거리도 내세울 만한 것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 목회를 해도 남에게 나설만하고 자랑할 만한 교회로 부흥시키지도 못한 사람. 저는 정말로 아주 평범하고 정말로 보통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성경의 인물가운데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인물은 에녹입니다. 정말로 평범하게 살아간 사람. 모세처럼, 노아처럼, 바울처럼, 아브라함처럼, 다윗처럼 살아가지는 못했지만 일생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변하지 않는 믿음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 사람. 정말로 한낮 농사지며 좋은 학벌도 가문도 내세울 만한 업작도 없지만 하늘로 들려 올라간 사람.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세상의 것을 기준으로하여 어떤 사람이다 라고 하는 사실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분명히 깨닫고 힘있고 아름다운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의 모든 자랑할 만한 것들을 버리고 예수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 새로운 인생의 삶을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 분은 이제껏의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세상의 자랑거리가 오히려 자신이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고 새로운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데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어떤 사람은 정말로 저 사람에게 돈만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저런 직책만 없었으면, 명예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세상적인 그것이 하나님을 믿으며 새로운 인생의 사람을 살아가는데 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해를 배설물로 여기고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일류대학 나왔다는 것, 우리집 가문이 어떻다는 것, 왕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것, 세상에서 나의 지위가 어떻다는 것, 나는 부자라는 생각 등. 이 모든 것들을 배설물 처럼 버리고 정말 겸손하고 낮아진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여야 합니다.
예)군에 가서 훈련소에 맨 처음에 가면 머리다 깍고 훈련복입고 서면 다 똑 같습니다. 거기에는 대학교 나온 사람도 있고, 국민학교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구두닦기 하다가 온 사람도 있고, 트럭 운전사도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부자인 사람도 있고, 집안이 좋은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다 똑 같습니다. 괜히 세상적인 어떤 자랑으로 거드름 피우다가는 오히려 괴롭습니다. 제가 예수 믿고 맨 처음 은혜 받은 이후 훈련소에서 두번째로 감동스러운 예배를 드려봤습니다. 첫 주일날 주일 지킨다고 고집하다가 맞아 죽을 뻔하고는 예배드리는데 큰 은혜가 넘쳤습니다. 적어도 저는 전도사입니다. 나이도 당시 제가 가장 많았습니다.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안 듣고 모두가 깍득했습니다. 그 마음으로는 괴로워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매 맞고 훈련의 고됨보다도 그것이 더욱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다만 훈련병으로 나 자신을 세우니까 마음이 편했습니다. 계속 말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다만 개고 돼지라는 것입니다. 이후 전도하고 기도하면서 그래도 즐겁게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은혜와 축복의 삶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세상적인 자랑이나 나의 소중히 생각하는 육신적인 자랑들을 해로 여길 줄 알고 배설물로 여기는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바울은 이러한 결단이 있은 후에 비로서 얻어지는 은혜를 말하는 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1.‘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8절)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헛것입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2000년전 유대 땅에 오셨다는 역사적인 분으로만 알아도 안됩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지식적인 앎이 아닙니다. 그것은 체험적인 앎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나 자신과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어느 분의 고백입니다. 자신의 외동딸 아이 하나가 교통사고를 만나 뇌에 이상이 생김으로 백치비슷하게 되었습니다. 수년동안을 고생하며 그 아이의 병 간호를 하였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고 남과 구별을 못합니다. 그 어머니는 “그 아이가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알아보고 엄마라고 불러만 준다면 나의 이 모든 수고가 가 기쁨으로 바뀔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그를 잘 모른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아픔일 것입니다. 자신을 위하여서 십자가에 죽어주신 사랑을 깊이 깨닫고 주님을 부르며 감사를 돌리고 그 예수를 더욱 깊이 알아서 영광을 돌리기를 그 분은 지금도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알때에 예수님만 아는 것이 아니요 비로서 나를 바로 알게 됩니다.
예)탕자를 보십시오. 그는 집에 돌아올 때에 자신을 생각하기를 무능한 사람이요, 배반자요,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를 알았을 때에 자신이 아버지에게 얼마나소중한 사람이며, 필요한 존재인가를 깊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을 알은 후에 그 십자가의 사랑안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구원시키기 위하여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기까지 하셨던 그 사랑을 생각하며 우리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2.‘그리스도를 얻는다’고 합니다.(8절) 이 말은 예수님을 소유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아는 것으로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얻음으로서 예수님의 능력이 내 것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내 것이 되고, 예수님의 영광이 내 것이 되며, 예수님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의 집 천국이 내 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소유한 존재로서 자신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예)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응답하시기를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줄까” 그 때 그는 “나는 그리스도만을 원할 뿐입니다.” 에)어떤 왕에게 세명의 신하가 공로를 세워서 왕이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준다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높은 지위를 원했습니다. 또한사람은 많은 재물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사람은 왕의 외동딸을 아내로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공주를 얻은 신하는 다른 모든 사람이 소유한 모든 것을 동시에 소유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얻으면 그의 모든 축복이 다 내 것이 됩니다. 어리석게 세상것만을 얻으려고 애쓰다가 시험에들고 범죄하여 넘어지지말고 무엇보다도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얻을 수있는 지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이제 바울사도는 자신의 신분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발견한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자랑과 꿈을 다 배설물로 여긴 후에 예수님을 진심으로 알게되고,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얻게 되었고, 이제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사실을 예수님안에서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과 의미있는 생애를 위하여서 우리는 예수님안에서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만약에 인생이 이러한 발견이 없이 이 세상의 것으로만 인생이 판단되고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면 이 세상은 정말로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힘있는 사람만 활기치며, 돈 있는 사람만 대접받고, 많이 배운 사람만 인정받는 다면 그 외의 사람들은 살만한 세상이 못됩니다. 집안이 좋고 가문이 좋고 세상의 것으로 가득히 채워져야지만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옛날의 양반과 상놈으로 갈렸던 그런 불합리한 세상일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예수님의 친구이며,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유한 사람. 더구나 주님의 능력과 힘으로 승리하며, 기도하면 하늘에서 비상으로 걸고 도와주는 그런 사람. 우리가 예수안에서 발견되어지는 모습은 너무나 황홀한 모습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것으로 기준하여 자신을 발견하려다가 쓸데없는 욕심에 빠지고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다가 실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하며, 실의에 빠져 용기를 잃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인생과 위대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 것으로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자신을 발견하고 평가하지 말고 오직 우리 예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평가하십시오. 그래서 외모는 보잘 것없고 세상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없어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새러워진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힘과 용기를 내고 자신감으로 가지고 모든 일에 도전하여 더욱 아름답고 위대한 인생을 창조해 갈 수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력서라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절대적인 평가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과거가 어떻든지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변화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의 과거의 행적에 대한 이력서에 의한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예수안에서 어떻게 새로워지고 변화되었는가 하는 사실이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할수있으면 자신의 평가가 좋기를 바라고 있으며, 사람들이 자기에 대하여 좋은 점수를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기를 애쓰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지나치면 바로 위선이 만들어 지는 것이고,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위장되고 가면 속의 삶을 살기가 쉬워집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보아주는가 하는 사실보다도 나 자신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이 나를 잘 보아주기만을 바라며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의 옳바른 평가를 내리지 못함으로 인하여서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의 평가를 잘못내리므로 인하여 남은 자신을 좋게 평가하는데도 스스로가 자신을 깍아내리는 사람도 있으며, 남은 잘못내리는 데도 자신은 스스로 자찬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평가를 잘못내리면 교만해지기도 하고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에 빠져 자신을 자학하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라는 대명제를 가지고 자신의 철학의 주체를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분명하게 알 수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학벌이나 가진 재산이나 세상적인 명예나 권세로서 가능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안에서 가능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바울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려는 것입니다. 그는 4절 이하에서 자신의 세상적인 자랑을 내 세웁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진실한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저는 한 가지 부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형재는 어떻다고 합니다. 자신의 집안과 가문은 어떻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것 한가지도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도 내가 처음 믿은 것이고, 우리 집안은 어떤 자랑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바울 같이 자신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획기적인 순간을 통하여서 은혜를 받고 이런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저 아무런 죄도 안 짓고 그저 평범하게 정상적으로 자라서 목회의 길을 그저 평범하게 걸어왔습니다. 정말로 세상의 자랑거리도 내세울 만한 것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 목회를 해도 남에게 나설만하고 자랑할 만한 교회로 부흥시키지도 못한 사람. 저는 정말로 아주 평범하고 정말로 보통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성경의 인물가운데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인물은 에녹입니다. 정말로 평범하게 살아간 사람. 모세처럼, 노아처럼, 바울처럼, 아브라함처럼, 다윗처럼 살아가지는 못했지만 일생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변하지 않는 믿음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 사람. 정말로 한낮 농사지며 좋은 학벌도 가문도 내세울 만한 업작도 없지만 하늘로 들려 올라간 사람.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세상의 것을 기준으로하여 어떤 사람이다 라고 하는 사실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분명히 깨닫고 힘있고 아름다운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의 모든 자랑할 만한 것들을 버리고 예수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 새로운 인생의 삶을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 분은 이제껏의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세상의 자랑거리가 오히려 자신이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고 새로운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데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어떤 사람은 정말로 저 사람에게 돈만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저런 직책만 없었으면, 명예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세상적인 그것이 하나님을 믿으며 새로운 인생의 사람을 살아가는데 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해를 배설물로 여기고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일류대학 나왔다는 것, 우리집 가문이 어떻다는 것, 왕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것, 세상에서 나의 지위가 어떻다는 것, 나는 부자라는 생각 등. 이 모든 것들을 배설물 처럼 버리고 정말 겸손하고 낮아진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여야 합니다.
예)군에 가서 훈련소에 맨 처음에 가면 머리다 깍고 훈련복입고 서면 다 똑 같습니다. 거기에는 대학교 나온 사람도 있고, 국민학교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구두닦기 하다가 온 사람도 있고, 트럭 운전사도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부자인 사람도 있고, 집안이 좋은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다 똑 같습니다. 괜히 세상적인 어떤 자랑으로 거드름 피우다가는 오히려 괴롭습니다. 제가 예수 믿고 맨 처음 은혜 받은 이후 훈련소에서 두번째로 감동스러운 예배를 드려봤습니다. 첫 주일날 주일 지킨다고 고집하다가 맞아 죽을 뻔하고는 예배드리는데 큰 은혜가 넘쳤습니다. 적어도 저는 전도사입니다. 나이도 당시 제가 가장 많았습니다.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안 듣고 모두가 깍득했습니다. 그 마음으로는 괴로워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매 맞고 훈련의 고됨보다도 그것이 더욱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다만 훈련병으로 나 자신을 세우니까 마음이 편했습니다. 계속 말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다만 개고 돼지라는 것입니다. 이후 전도하고 기도하면서 그래도 즐겁게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은혜와 축복의 삶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세상적인 자랑이나 나의 소중히 생각하는 육신적인 자랑들을 해로 여길 줄 알고 배설물로 여기는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바울은 이러한 결단이 있은 후에 비로서 얻어지는 은혜를 말하는 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1.‘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8절)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헛것입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2000년전 유대 땅에 오셨다는 역사적인 분으로만 알아도 안됩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지식적인 앎이 아닙니다. 그것은 체험적인 앎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나 자신과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어느 분의 고백입니다. 자신의 외동딸 아이 하나가 교통사고를 만나 뇌에 이상이 생김으로 백치비슷하게 되었습니다. 수년동안을 고생하며 그 아이의 병 간호를 하였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고 남과 구별을 못합니다. 그 어머니는 “그 아이가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알아보고 엄마라고 불러만 준다면 나의 이 모든 수고가 가 기쁨으로 바뀔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그를 잘 모른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아픔일 것입니다. 자신을 위하여서 십자가에 죽어주신 사랑을 깊이 깨닫고 주님을 부르며 감사를 돌리고 그 예수를 더욱 깊이 알아서 영광을 돌리기를 그 분은 지금도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알때에 예수님만 아는 것이 아니요 비로서 나를 바로 알게 됩니다.
예)탕자를 보십시오. 그는 집에 돌아올 때에 자신을 생각하기를 무능한 사람이요, 배반자요,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를 알았을 때에 자신이 아버지에게 얼마나소중한 사람이며, 필요한 존재인가를 깊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을 알은 후에 그 십자가의 사랑안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구원시키기 위하여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기까지 하셨던 그 사랑을 생각하며 우리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2.‘그리스도를 얻는다’고 합니다.(8절) 이 말은 예수님을 소유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아는 것으로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얻음으로서 예수님의 능력이 내 것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내 것이 되고, 예수님의 영광이 내 것이 되며, 예수님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의 집 천국이 내 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소유한 존재로서 자신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예)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응답하시기를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줄까” 그 때 그는 “나는 그리스도만을 원할 뿐입니다.” 에)어떤 왕에게 세명의 신하가 공로를 세워서 왕이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준다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높은 지위를 원했습니다. 또한사람은 많은 재물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사람은 왕의 외동딸을 아내로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공주를 얻은 신하는 다른 모든 사람이 소유한 모든 것을 동시에 소유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얻으면 그의 모든 축복이 다 내 것이 됩니다. 어리석게 세상것만을 얻으려고 애쓰다가 시험에들고 범죄하여 넘어지지말고 무엇보다도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얻을 수있는 지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이제 바울사도는 자신의 신분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발견한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자랑과 꿈을 다 배설물로 여긴 후에 예수님을 진심으로 알게되고,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얻게 되었고, 이제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사실을 예수님안에서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과 의미있는 생애를 위하여서 우리는 예수님안에서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만약에 인생이 이러한 발견이 없이 이 세상의 것으로만 인생이 판단되고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면 이 세상은 정말로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힘있는 사람만 활기치며, 돈 있는 사람만 대접받고, 많이 배운 사람만 인정받는 다면 그 외의 사람들은 살만한 세상이 못됩니다. 집안이 좋고 가문이 좋고 세상의 것으로 가득히 채워져야지만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옛날의 양반과 상놈으로 갈렸던 그런 불합리한 세상일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예수님의 친구이며,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유한 사람. 더구나 주님의 능력과 힘으로 승리하며, 기도하면 하늘에서 비상으로 걸고 도와주는 그런 사람. 우리가 예수안에서 발견되어지는 모습은 너무나 황홀한 모습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것으로 기준하여 자신을 발견하려다가 쓸데없는 욕심에 빠지고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다가 실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하며, 실의에 빠져 용기를 잃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인생과 위대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 것으로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자신을 발견하고 평가하지 말고 오직 우리 예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평가하십시오. 그래서 외모는 보잘 것없고 세상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없어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새러워진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힘과 용기를 내고 자신감으로 가지고 모든 일에 도전하여 더욱 아름답고 위대한 인생을 창조해 갈 수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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