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든지 죽든지 (빌1:19-26)
본문
우리의 실제적인 적은 사단도 죄도 아닙니다. 왜냐면,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세력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이 어떤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적은 바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 이루어 놓았어도 차지하지를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죄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믿어지기 않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집니다. 이 불신앙은 끝없는 불신앙으로 빠져들어가게 되어집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이며, 구원받은 자의 비밀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꾸만 떨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자꾸만 안믿어지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적이요, 가장 큰 병입니다.
우리에게 자꾸만 의심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무엇을 자꾸만 만들어 내고 그럽니다. 이것 자체가 불신앙이라는 것을 모르게 됩니다. 그만큼 무서운 지경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구원받은 자의 축복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에 대해서 모릅니다. 그러다보니까, 자꾸만 다른 것을 하게 되어집니다. 믿어도, 미신적으로 하게 되는겁니다. 또한, 열심은 내는데, 다른 파트에 열심을 내게 되는 겁니다. 진짜 행복은 없고, 다른 부분에 열심을 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니, 나오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자꾸만 만들어 내는 겁니다. 염려가 생기니까, 무슨 대책을 세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마음 속에는 더 큰 염려가 자꾸 밀려오고 그럽니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것이 불신입니다. 자꾸 불신앙하게 되어지면 나중에는 그 사람의 모습도 달라져 버립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무서운 병에서 빠져 나와야 될것입니다. 사단은 여러분이 만약에 믿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나가게 되면 큰일 나거든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얼마만큼 무서운 존재인가 하는 것을 사단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자꾸만 우리가 구원받은 자의 축복을 모르기를 원합니다. 이래서, 구원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불신하게 만듭니다. 죄 가운데 가장 큰 죄가 불신입니다. 불신으로 염려하게 되고, 대책세우고, 인본주의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믿는 것이니까, 문제가 오게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0절에 보니까, “살든지, 죽든지”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분명한 말입니까 무언가 체험된 말입니다. ‘살든지, 죽든지’라는 것은 ‘살아도 좋고,죽어도 좋다!’는 뜻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세계를 사로잡고 복음 전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1.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비밀을 알았다는 뜻입니다(복음) 여기에는 몇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증거와, 응답과, 함께하심을 체험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 기쁘느냐 응답받으면 기쁩니다. 우리가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면,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것이 자꾸만 쌓이고, 쌓일때에 믿음이 생깁니다. 바울은 이 체험을 확실히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체험을 분명히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책을 읽어도 그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좋은 영화를 보아도 감동을 받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좋은 옷을 하나 사입어도 내 마음에 맞고 어울리면 그것도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집을 사도 우리 인간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된다면, 오는 기쁨은 엄청납니다. 두번째, 살든지 죽든지라는 뜻은
2) 하나님을 아는 것이 수준중에 최고의 수준이요, 방법중 최고의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세번째, 살든지 죽든지라는 뜻은
3) 하나님 아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깨달아야 하는 첫번째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깨달아야 됩니다. 학생들이 드디어, ‘아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구나!’하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때부터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가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것은 다 책임지실 것입니다. 이 쉬운 것을 못깨달아서 그렇지, 깨닫기만 하면 놀라운 축복이 임하는데, 장래 문제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래문제를 더 확실하게 책임지실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이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가장 강한 사상을 가진 바리새인들이 초대교회를 못꺾었습니다. 왜냐 초대회는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분명한 비밀이 있었습니다. 이 비밀이 지식 중에 제일 큰 지식입니다. 이것은 공상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마게도냐 헬라 철학이 얼마나 강합니까 이 사상들이 기독교인들을 못꺾었습니다. 로마 군대가 얼마나 강합니까
그런데, 기독교를 못 꺽었습니다. 왜 못꺽었느냐 성도들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주 큽니다. 이것이 확실하면,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이렇게 되어집니다. “살든지 죽든지”되는 겁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불가운데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이고, 건져주지 아니하더라도 들어갑니다!’ 이것은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는 말입니다. 어찌하여서 똑같은 사람인데, 그런 말이 나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해야 될 것은, 사업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해야될 것은 공부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해야될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계시는구나!’는 비밀을 깨닫는 겁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경건해도 하나님 살아계심을 모르면 실패합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열심히 살아도 하나님 살아계심을 모르면 실패합니다. 이것이 되어지면, 아주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좋은 영화를 보아도 기쁨이 있고, 좋은 책을 읽어도 행복하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된다면, 너무 큰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면, 어떤 일을 만나도,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원하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생애의 절반은 ‘하나님이 정말로 나와 함께하시는가’하는 부분에 의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생 절반은 실패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언제부터 성공했느냐 ‘아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는 것을 깨닫는 날부터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해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눈에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이 간단한 것을 우리가 못깨닫고 방황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어리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이제부터는 “주의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하여 주옵소서”라고 늘 기도하십시요 이렇게 기도하면 문이 열릴 것입니다. 이렇게 한달만 계속 기도해버리면 여러분 분야에 최고갈 것입니다. 이것을 일년만 가면 역사가 막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답답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놓고서, 서로 ‘네가 잘했다! 내가 잘했다! 맞다! 틀렸다!’할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여러분과 같이 계시는데,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오늘부터 응답받는 문이 열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가 철야기도 마치고, 사모님이 뒤에 서있다가, 50만원짜리 수표 한장씩 나누어 준다면, 아마 철야기도는 차고 넘칠 것입니다. 2부, 3부까지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마도 평내 호평의 거지는 다 오겠지요 가족이 4명이 가족대로 다 올겁니다. 병자는 업고도 나올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기도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백주수표 하나씩을 주시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려고 하면, 바로 거기에 하나님은 돈이 부으시고, 밥을 주시고, 땅을 주시고, 사람을 붙이십니다. 그러니, 알고보면 복음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재물이 전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려는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문을 다 열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깨달아져 버려야 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백한 자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 예수께서 약속하시기를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못붙잡고, 안되어지니까, 교회 안에서는 아주 조그마한 일에 메입니다. 무슨 인기, 명예, 자리를 가지고 싸우고 틀어지고 그럽니다. 그게 아무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국회에 나가니 국회가 그 수준이고, 그 사람이 학교에 나가니 학교도 그 수준, 그 사람이 사업에 나가니 사업도 그 수준, 이래서 우리나라가 수준이 그 수준밖에 안됩니다. 우리가 전지역에 말씀운동을 펴면, 흑암의 권세는 다 묶여 버립니다. 그때부터 역사는 일어납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역사였습니다. 이것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중고등학교에 말씀운동이 퍼지면, 과학자들이 모르는 흑암의 권세가 묵여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목표를 놓쳤습니다.
그러므로 이 목표를 회복하여 그것 때문에 사업하고, 그것 때문에 기도하고, 그것때문에 말씀운동을 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제일 깨달아야 될 것은, 주님께서 지금 영으로 우리와 함께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니까,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고 되어버립니다. 바울이 지금 오기로, ‘좋다! 살아도 죽어도 좋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속에서 바로 깨닫고, 당연한 말로 나온 겁니다. 교인들이 교리적으로도 틀린 것이 없고, 성경적으로도 틀린 것이 없는데, 색깔이 다릅니다. 그러니, 교역자도 벌써 색깔이 다릅니다. 교리적으로, 성경적으로 틀린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 색깔이 달라요! 무엇이 다르냐 당연히 그리스도가 나와야 되는데, 마치 특별한 것처럼 말하는 겁니다. 그리스도 이야기하고, 복음운동하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당연하게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할때에, 기술부터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능력을 준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깨닫게한지 압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했던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리고는 떠난 겁니다.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도록 전부 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제일 실패하는 원인이 이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살아계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 아는 만큼 무엇이 없어지느냐 핑계가 없어진다. 하나님 아는만큼 말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능력 아는만큼 소리가 없어집니다. 없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왜냐 답이 나와버리니까요. 하나님의 능력 알면 문이 다 열립니다. 기독신자가 이것을 못깨달으면 실컫 고생합니다. 여러분에게 승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고 했는데, 다니엘도 ‘조서에 어인 찍힌 것을 알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머리가 나빠서 죽는줄 모르고 그런것이 아닙니다. 알고 기도하러 들어갔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하여 역사하신 기적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좋다! 그러면 내가 죽겠다!’ 하면서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살든지 죽든지”입니다. 바울이 감옥소 안에 들어온 이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바울은 담대해졌습니다. “살든지 죽든지”가 된 것입니다. 다락방 교회 성도님들에게 이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역을 살릴 요원들에게 이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믿음이 필요합니까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왜냐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니까!’ 요셉에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죽음 속에서 뭐라고 하였는지 압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식인들, 모든 사람들이 제일 처음으로 경험해야 될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신자가 못깨닫는다면 또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가 못깨달았거든요. 이것이 큰일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쓰임받았느냐 “살든지, 죽든지 나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했습니다. ‘어찌하든지 감옥에서 나가게 해주옵소서!’라고 하지 않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감옥에서도 주님이 역사하셨다는 뜻입니다. 다락방 교회 성도님들이 가는 곳마다 주님은 역사하실줄 믿습니다. 딱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로 깨달아야 될 것은
2.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누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서 온다는 사실입니다.-“온전히 담대하여”(20절) 이것이 전도입니다. 전도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을 길이 없는데, 실제로 주어지는 축복의 길이 그리스도다!는 겁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전도요, 깨닫는 것이 전도입니다.
1) 그리스도란-하나님 만나는 길, 저주에서 해방받는 길, 흑암의 세력 결박 되는 이름입니다. 그리스도 이름 부를때에, 성령님이 역사하고, 그리스도 이름 부를 때에, 흑암의 권세가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2) 이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담대해 질수 있는 것입니다. (빌1: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어떻게 이렇게 담대해 집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까요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흑암의 세력이 무너지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지금 이 시간에 임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문들이 쫘악 열립니다. 우리는 할 수가 없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고백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신자를 만나거든, 얼른 4가지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1 예수 영접해 버리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요1:12).
2 예수님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냐 하는 증거로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간단한 기도문을 적어 주어야 합니다. 요14:14절에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요15:16절에 “내가 시행하리라!” 요16: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무슨 귀신 이름과 같지 않으니, 기도해 보아라! 응답이 오는지 안오는지’라는 겁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 7가지 축복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 성경 전체가 다 열립니다. 구원받은 자는 어떤 축복을 받았느냐 그것을 성경구절을 적어주면 됩니다. 다락방 멧세지에서 다 나오지요 새신자가 그 성경구절을 찾아서 기도하다가 은혜받습니다.
4 하나님의 권능, 그리스도의 권능이 어마어마한데, 그 권능이 당신 속에 와있다. 그것을 가리켜 권세라고도 하고, 구원이라고도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4가지만 적어주면 이 사람의 신앙에 변화가 옵니다. 이 새신자가 한 주간 동안에 이 4가지를 붙잡고 살도록 자꾸만 만날때마다 멧세지를 가지고 확인시켜야합니다. 그것이 다락방입니다. 그러면 응답받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전도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의 아버지신데 만나는 길이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가 모든 저주에서 빠져 나오는 길이 그리스도, 사단 권세에서 해방되는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3)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21절)-행4:12, 마16:16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하노라!” 이것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21절에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영으로 살아서 지금 여러분들과 같이 계십니다. 이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깨달아져야 “살든지 죽든지”가 되어집니다.
3. 그리스도 안에 풍성함을 깨달아야 합니다(26절) (빌1:26)“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살든지, 죽든지”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하는 믿음이 어디서 나왔느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을 깨닫게 될때에 나오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 안에 있는 비밀은 어마어마합니다. 구원의 풍성한 비밀을 깨달을때 놀라운 축복 가운데 들어갑니다. 사업하는 분이 이것을 깨닫고 나면, 사업은 승리하게 될 것이고, 세상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1)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난뒤에 뭐라고 말한지 압니까(빌3:1-20)
1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최고의 지식이다. ‘내가 모르고 집안 자랑하고, 내가 모르고 학벌 자랑한것, 내가 모르고 세상 것을 자랑한 그것이 부끄럽다!’하면서, 뭐라고 했는지 압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를 알고나니, 참 인생의 눈이 확 다 터인다는 겁니다. 그리스도 알고나면, 경제의 문, 축복의 문, 다 열립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모르면 너무 불쌍한 겁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 것을 붙잡고 헤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리스도를 깨달은 사업가가 가면, 거기에 전부 다 있습니다. 이것이 깨달아져야 됩니다. 학생들이 정말 그리스도를 깨닫고 나면, 학문의 문이 세계적으로 다 열립니다. 정치하는 분들이 가장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하고, 사업하는 분들이 가장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됩니다. 왜요 그 안에 다 들어 있으니까요. 문이 확열리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머리를 잘 써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이 깨닫고 나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전부 몽땅 다 내버렸습니다. ‘나는 죽었다!’ 죽은 자가 무엇을 가지고 다닙니까 다 내버리고 뭐라고 했습니까
2 나는 이제 그리스도께 발견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쓰이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3 그리스도의 손에 잡힌바 된 것을 잡으러 가노라!고 했습니다.
4 어디로 잡으러 가느냐 위에서 부른 부름의 상을 바라보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옛날에 멋도 모르고 로마 시민권을 자랑했는 데.’이제는 ; 5 나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이상한 신비주의자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 교회를 망치고 있는 것 두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이상한 신비주의와 불신주의입니다. 교회를 이상하게 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또한, 안믿고 머리로 똑똑한척 합니다. 이 둘이 교회를 망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실에 대한 증거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실을 믿고, 이 남양주시에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진짜 받아 버리면, 바울처럼 “살든지 죽든지” 되어버립니다. 걱정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체험을 합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체험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2) 이 비밀을 어떻게 체험하느냐
1언약을 잡고 기도하였다-성령님의 역사, 전도의 문이 열림, 길을 보이심
2정시기도
3무시기도
4집중기도를 해야 합니다. 언약 붙잡고 기도하지 않으면 달리 체험하게 됩니다. 언약 붙잡지 않으면 특별 코스를 힘들게 돌고나서 깨닫는 겁니다. 그것도 여러 종류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두드려 깨어서 체험하게 하고, 어떤 사람은 큰 사고를 통해서 체험하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큰 질병을 통해서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깨닫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로 보면, 교인 중에는 어두운 전력을 가진 전과자가 많습니다. 얻어 터쳐서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를 건너라!’해서, 낭패 중에 깨닫게 합니다. 또 잊어먹으니까, ‘요단을 건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될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깨닫느냐 하는 것입니다. 못깨달으면, 하나님이 또 건드리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얼른 말씀 붙잡고 빨리 깨달아 버려야 합니다.
3)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냐 말씀으로 깨달아야 되고, 성령님의 감동 으로 깨달아야 됩니다. ‘주님은 살아 계시고,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고, 기도하면 응답이 올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마어마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이 말은 ‘이판사판이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니, 나는 제일 좋은 것을 가졌다! 그러니 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겁니다. ‘나는 가장 큰 것을 가지고 있으니, 여기에 있어도 좋고, 저기에 있어도 좋다!’는 뜻입니다. 신자가 이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이때부터 응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자꾸만 의심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무엇을 자꾸만 만들어 내고 그럽니다. 이것 자체가 불신앙이라는 것을 모르게 됩니다. 그만큼 무서운 지경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구원받은 자의 축복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에 대해서 모릅니다. 그러다보니까, 자꾸만 다른 것을 하게 되어집니다. 믿어도, 미신적으로 하게 되는겁니다. 또한, 열심은 내는데, 다른 파트에 열심을 내게 되는 겁니다. 진짜 행복은 없고, 다른 부분에 열심을 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니, 나오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자꾸만 만들어 내는 겁니다. 염려가 생기니까, 무슨 대책을 세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마음 속에는 더 큰 염려가 자꾸 밀려오고 그럽니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것이 불신입니다. 자꾸 불신앙하게 되어지면 나중에는 그 사람의 모습도 달라져 버립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무서운 병에서 빠져 나와야 될것입니다. 사단은 여러분이 만약에 믿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나가게 되면 큰일 나거든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얼마만큼 무서운 존재인가 하는 것을 사단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자꾸만 우리가 구원받은 자의 축복을 모르기를 원합니다. 이래서, 구원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불신하게 만듭니다. 죄 가운데 가장 큰 죄가 불신입니다. 불신으로 염려하게 되고, 대책세우고, 인본주의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믿는 것이니까, 문제가 오게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0절에 보니까, “살든지, 죽든지”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분명한 말입니까 무언가 체험된 말입니다. ‘살든지, 죽든지’라는 것은 ‘살아도 좋고,죽어도 좋다!’는 뜻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세계를 사로잡고 복음 전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1.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비밀을 알았다는 뜻입니다(복음) 여기에는 몇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증거와, 응답과, 함께하심을 체험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 기쁘느냐 응답받으면 기쁩니다. 우리가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면,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것이 자꾸만 쌓이고, 쌓일때에 믿음이 생깁니다. 바울은 이 체험을 확실히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체험을 분명히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책을 읽어도 그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좋은 영화를 보아도 감동을 받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좋은 옷을 하나 사입어도 내 마음에 맞고 어울리면 그것도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집을 사도 우리 인간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된다면, 오는 기쁨은 엄청납니다. 두번째, 살든지 죽든지라는 뜻은
2) 하나님을 아는 것이 수준중에 최고의 수준이요, 방법중 최고의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세번째, 살든지 죽든지라는 뜻은
3) 하나님 아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깨달아야 하는 첫번째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깨달아야 됩니다. 학생들이 드디어, ‘아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구나!’하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때부터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가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것은 다 책임지실 것입니다. 이 쉬운 것을 못깨달아서 그렇지, 깨닫기만 하면 놀라운 축복이 임하는데, 장래 문제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래문제를 더 확실하게 책임지실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이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가장 강한 사상을 가진 바리새인들이 초대교회를 못꺾었습니다. 왜냐 초대회는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분명한 비밀이 있었습니다. 이 비밀이 지식 중에 제일 큰 지식입니다. 이것은 공상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마게도냐 헬라 철학이 얼마나 강합니까 이 사상들이 기독교인들을 못꺾었습니다. 로마 군대가 얼마나 강합니까
그런데, 기독교를 못 꺽었습니다. 왜 못꺽었느냐 성도들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주 큽니다. 이것이 확실하면,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이렇게 되어집니다. “살든지 죽든지”되는 겁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불가운데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이고, 건져주지 아니하더라도 들어갑니다!’ 이것은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는 말입니다. 어찌하여서 똑같은 사람인데, 그런 말이 나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해야 될 것은, 사업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해야될 것은 공부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해야될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계시는구나!’는 비밀을 깨닫는 겁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경건해도 하나님 살아계심을 모르면 실패합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열심히 살아도 하나님 살아계심을 모르면 실패합니다. 이것이 되어지면, 아주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좋은 영화를 보아도 기쁨이 있고, 좋은 책을 읽어도 행복하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된다면, 너무 큰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면, 어떤 일을 만나도,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원하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생애의 절반은 ‘하나님이 정말로 나와 함께하시는가’하는 부분에 의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생 절반은 실패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언제부터 성공했느냐 ‘아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는 것을 깨닫는 날부터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해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눈에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이 간단한 것을 우리가 못깨닫고 방황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어리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이제부터는 “주의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하여 주옵소서”라고 늘 기도하십시요 이렇게 기도하면 문이 열릴 것입니다. 이렇게 한달만 계속 기도해버리면 여러분 분야에 최고갈 것입니다. 이것을 일년만 가면 역사가 막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답답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놓고서, 서로 ‘네가 잘했다! 내가 잘했다! 맞다! 틀렸다!’할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여러분과 같이 계시는데,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오늘부터 응답받는 문이 열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가 철야기도 마치고, 사모님이 뒤에 서있다가, 50만원짜리 수표 한장씩 나누어 준다면, 아마 철야기도는 차고 넘칠 것입니다. 2부, 3부까지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마도 평내 호평의 거지는 다 오겠지요 가족이 4명이 가족대로 다 올겁니다. 병자는 업고도 나올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기도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백주수표 하나씩을 주시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려고 하면, 바로 거기에 하나님은 돈이 부으시고, 밥을 주시고, 땅을 주시고, 사람을 붙이십니다. 그러니, 알고보면 복음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재물이 전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려는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문을 다 열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깨달아져 버려야 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백한 자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 예수께서 약속하시기를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못붙잡고, 안되어지니까, 교회 안에서는 아주 조그마한 일에 메입니다. 무슨 인기, 명예, 자리를 가지고 싸우고 틀어지고 그럽니다. 그게 아무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국회에 나가니 국회가 그 수준이고, 그 사람이 학교에 나가니 학교도 그 수준, 그 사람이 사업에 나가니 사업도 그 수준, 이래서 우리나라가 수준이 그 수준밖에 안됩니다. 우리가 전지역에 말씀운동을 펴면, 흑암의 권세는 다 묶여 버립니다. 그때부터 역사는 일어납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역사였습니다. 이것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중고등학교에 말씀운동이 퍼지면, 과학자들이 모르는 흑암의 권세가 묵여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목표를 놓쳤습니다.
그러므로 이 목표를 회복하여 그것 때문에 사업하고, 그것 때문에 기도하고, 그것때문에 말씀운동을 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제일 깨달아야 될 것은, 주님께서 지금 영으로 우리와 함께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니까,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고 되어버립니다. 바울이 지금 오기로, ‘좋다! 살아도 죽어도 좋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속에서 바로 깨닫고, 당연한 말로 나온 겁니다. 교인들이 교리적으로도 틀린 것이 없고, 성경적으로도 틀린 것이 없는데, 색깔이 다릅니다. 그러니, 교역자도 벌써 색깔이 다릅니다. 교리적으로, 성경적으로 틀린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 색깔이 달라요! 무엇이 다르냐 당연히 그리스도가 나와야 되는데, 마치 특별한 것처럼 말하는 겁니다. 그리스도 이야기하고, 복음운동하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당연하게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할때에, 기술부터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능력을 준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깨닫게한지 압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했던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리고는 떠난 겁니다.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도록 전부 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제일 실패하는 원인이 이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살아계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 아는 만큼 무엇이 없어지느냐 핑계가 없어진다. 하나님 아는만큼 말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능력 아는만큼 소리가 없어집니다. 없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왜냐 답이 나와버리니까요. 하나님의 능력 알면 문이 다 열립니다. 기독신자가 이것을 못깨달으면 실컫 고생합니다. 여러분에게 승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고 했는데, 다니엘도 ‘조서에 어인 찍힌 것을 알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머리가 나빠서 죽는줄 모르고 그런것이 아닙니다. 알고 기도하러 들어갔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하여 역사하신 기적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좋다! 그러면 내가 죽겠다!’ 하면서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살든지 죽든지”입니다. 바울이 감옥소 안에 들어온 이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바울은 담대해졌습니다. “살든지 죽든지”가 된 것입니다. 다락방 교회 성도님들에게 이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역을 살릴 요원들에게 이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믿음이 필요합니까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왜냐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니까!’ 요셉에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죽음 속에서 뭐라고 하였는지 압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식인들, 모든 사람들이 제일 처음으로 경험해야 될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신자가 못깨닫는다면 또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가 못깨달았거든요. 이것이 큰일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쓰임받았느냐 “살든지, 죽든지 나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했습니다. ‘어찌하든지 감옥에서 나가게 해주옵소서!’라고 하지 않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감옥에서도 주님이 역사하셨다는 뜻입니다. 다락방 교회 성도님들이 가는 곳마다 주님은 역사하실줄 믿습니다. 딱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로 깨달아야 될 것은
2.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누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서 온다는 사실입니다.-“온전히 담대하여”(20절) 이것이 전도입니다. 전도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을 길이 없는데, 실제로 주어지는 축복의 길이 그리스도다!는 겁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전도요, 깨닫는 것이 전도입니다.
1) 그리스도란-하나님 만나는 길, 저주에서 해방받는 길, 흑암의 세력 결박 되는 이름입니다. 그리스도 이름 부를때에, 성령님이 역사하고, 그리스도 이름 부를 때에, 흑암의 권세가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2) 이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담대해 질수 있는 것입니다. (빌1: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어떻게 이렇게 담대해 집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까요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흑암의 세력이 무너지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지금 이 시간에 임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문들이 쫘악 열립니다. 우리는 할 수가 없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고백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신자를 만나거든, 얼른 4가지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1 예수 영접해 버리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요1:12).
2 예수님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냐 하는 증거로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간단한 기도문을 적어 주어야 합니다. 요14:14절에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요15:16절에 “내가 시행하리라!” 요16: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무슨 귀신 이름과 같지 않으니, 기도해 보아라! 응답이 오는지 안오는지’라는 겁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 7가지 축복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 성경 전체가 다 열립니다. 구원받은 자는 어떤 축복을 받았느냐 그것을 성경구절을 적어주면 됩니다. 다락방 멧세지에서 다 나오지요 새신자가 그 성경구절을 찾아서 기도하다가 은혜받습니다.
4 하나님의 권능, 그리스도의 권능이 어마어마한데, 그 권능이 당신 속에 와있다. 그것을 가리켜 권세라고도 하고, 구원이라고도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4가지만 적어주면 이 사람의 신앙에 변화가 옵니다. 이 새신자가 한 주간 동안에 이 4가지를 붙잡고 살도록 자꾸만 만날때마다 멧세지를 가지고 확인시켜야합니다. 그것이 다락방입니다. 그러면 응답받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전도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의 아버지신데 만나는 길이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가 모든 저주에서 빠져 나오는 길이 그리스도, 사단 권세에서 해방되는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3)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21절)-행4:12, 마16:16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하노라!” 이것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21절에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영으로 살아서 지금 여러분들과 같이 계십니다. 이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깨달아져야 “살든지 죽든지”가 되어집니다.
3. 그리스도 안에 풍성함을 깨달아야 합니다(26절) (빌1:26)“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살든지, 죽든지”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하는 믿음이 어디서 나왔느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을 깨닫게 될때에 나오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 안에 있는 비밀은 어마어마합니다. 구원의 풍성한 비밀을 깨달을때 놀라운 축복 가운데 들어갑니다. 사업하는 분이 이것을 깨닫고 나면, 사업은 승리하게 될 것이고, 세상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1)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난뒤에 뭐라고 말한지 압니까(빌3:1-20)
1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최고의 지식이다. ‘내가 모르고 집안 자랑하고, 내가 모르고 학벌 자랑한것, 내가 모르고 세상 것을 자랑한 그것이 부끄럽다!’하면서, 뭐라고 했는지 압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를 알고나니, 참 인생의 눈이 확 다 터인다는 겁니다. 그리스도 알고나면, 경제의 문, 축복의 문, 다 열립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모르면 너무 불쌍한 겁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 것을 붙잡고 헤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리스도를 깨달은 사업가가 가면, 거기에 전부 다 있습니다. 이것이 깨달아져야 됩니다. 학생들이 정말 그리스도를 깨닫고 나면, 학문의 문이 세계적으로 다 열립니다. 정치하는 분들이 가장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하고, 사업하는 분들이 가장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됩니다. 왜요 그 안에 다 들어 있으니까요. 문이 확열리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머리를 잘 써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이 깨닫고 나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전부 몽땅 다 내버렸습니다. ‘나는 죽었다!’ 죽은 자가 무엇을 가지고 다닙니까 다 내버리고 뭐라고 했습니까
2 나는 이제 그리스도께 발견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쓰이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3 그리스도의 손에 잡힌바 된 것을 잡으러 가노라!고 했습니다.
4 어디로 잡으러 가느냐 위에서 부른 부름의 상을 바라보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옛날에 멋도 모르고 로마 시민권을 자랑했는 데.’이제는 ; 5 나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이상한 신비주의자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 교회를 망치고 있는 것 두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이상한 신비주의와 불신주의입니다. 교회를 이상하게 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또한, 안믿고 머리로 똑똑한척 합니다. 이 둘이 교회를 망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실에 대한 증거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실을 믿고, 이 남양주시에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진짜 받아 버리면, 바울처럼 “살든지 죽든지” 되어버립니다. 걱정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체험을 합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체험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2) 이 비밀을 어떻게 체험하느냐
1언약을 잡고 기도하였다-성령님의 역사, 전도의 문이 열림, 길을 보이심
2정시기도
3무시기도
4집중기도를 해야 합니다. 언약 붙잡고 기도하지 않으면 달리 체험하게 됩니다. 언약 붙잡지 않으면 특별 코스를 힘들게 돌고나서 깨닫는 겁니다. 그것도 여러 종류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두드려 깨어서 체험하게 하고, 어떤 사람은 큰 사고를 통해서 체험하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큰 질병을 통해서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깨닫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로 보면, 교인 중에는 어두운 전력을 가진 전과자가 많습니다. 얻어 터쳐서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를 건너라!’해서, 낭패 중에 깨닫게 합니다. 또 잊어먹으니까, ‘요단을 건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될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깨닫느냐 하는 것입니다. 못깨달으면, 하나님이 또 건드리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얼른 말씀 붙잡고 빨리 깨달아 버려야 합니다.
3)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냐 말씀으로 깨달아야 되고, 성령님의 감동 으로 깨달아야 됩니다. ‘주님은 살아 계시고,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고, 기도하면 응답이 올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마어마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이 말은 ‘이판사판이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니, 나는 제일 좋은 것을 가졌다! 그러니 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겁니다. ‘나는 가장 큰 것을 가지고 있으니, 여기에 있어도 좋고, 저기에 있어도 좋다!’는 뜻입니다. 신자가 이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이때부터 응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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