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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하심 (빌2:12-13)

본문

지난주에 우리는 선택하는 것이냐 혹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냐에 대하여 생각했었습니다. 믿음에 의해서 선택하는 것은 결국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믿음이 그 사람 속에서 움직이면서 그 사람을 이끌어 가고 그 사람은 믿음에 의해서 이끌림을 받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자가 그러한 이끌림을 항상 받는다는 것도 아니며 인간이 또한 그러한 이끌림에 완전히 순종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이 이끌리며 사는 삶을 신자의 삶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신자는 그렇게 이끌리며 사는 삶을 택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믿음의 삶을 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그러한 능력으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의 말씀과 연결해서 좀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믿음이 능력으로 일한다고 하는 말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이 능력으로 일한다고 할 때에 믿음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확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확신을 가지고 하면 무엇이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병이 낳을 줄을 믿습니다', '사업이 잘 되고 돈벌이가 잘 될 줄 믿습니다', '직장을 주실 줄 믿습니다'식으로 생각을 하면서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믿음이 아니라 인간이 바라는 소원일 뿐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의 소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선택하는 삶은 자기의 최면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음으로 사는 삶을 자기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막 밀어붙여서 이루어 내려고 합니다. 자기의 의지를 강력하게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취해 내려고 하고 그리고 성취감에 만족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택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믿음의 선택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믿음의 선택은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본문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행한다는 말은 '일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가운데 일하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라는 말이 물론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교회에 부름을 받은 믿는 사람 모두를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5절에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고 12절에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면서 너희라는 말이 신자들의 마음과 관계가 있는 말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관계되어 있는 말이라면 집단체적으로 사용되었다기 보다는 신자 개개인들을 향해서 하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서 너희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시고 있다고 할 때에 교회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시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신자라면 모두에게 하나님이 일하시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신다는 말은 신자 각자에게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신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 신자 각자에게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신자 각자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마음이란 인간 인격의 중심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신자 각자의 마음 속에 계시면서 신자의 인격을 다스리시면서 일하신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은 신자 각자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되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신자 각자의 마음속에 계십니다. 이 사실을 거듭거듭 되새겨 보도록 합시다.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는 오랜 역사를 거쳐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일해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일해오시기는 했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계시면서 일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많던지 적던지 그 믿는 자를 중심으로 해서 임재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예수님에게 임재해 계셨고 그 후에는 예수님이 부르신 사람들 모두에게 임재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은 믿는 사람 개개인까지도 성전을 삼아서 임재해 계시는 것입니다(고전6:19참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믿는 사람 각자에게 와서 계시면서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하나님이 각자에게 와서 계시면서 일하십니까 13절의 끝 부분이 말해줍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다시 번역하면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하게 하시고 또 일하게 하시나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믿는 자로 하여금 소원하게 하는 것이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하겠다는 소원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겠다는 소원이 생겨나거든 그것이 하나님이 자기 속에서 계시면서 주시는 마음인 줄 아십시오. 하나님은 이 마음을 신자의 마음 속에 일으키십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가지거든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 속에 계시는 줄을 아십시오. 신자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다가 죽겠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이 마음으로 사는 자여야 합니다.
둘째는 일하게 하십니다. 소원을 주신 분이 일하게 하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신자로 하여금 일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위한 소원이 나오지 않으며 일할 마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에게 새 마음을 주시고 또 머물고 계시면서 소원을 일으키시고 일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마음만 주고 나가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계속해서 계시면서 소원을 주시며 일하게 하십니다. 일하게 한다는 것은 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새로운 생명의 삶을 살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하고 끝나는 일시적인 일이나 사건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새로운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사람은 한 사람도 아니요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있고 그것도 한 곳에 사는 것도 아니요 온 세상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데 이 많은 사람 속에 하나님은 어떻게 임재하여 계십니까 하나님은 말씀으로 또는 성령님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소원하게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누군가가 신자 각자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알려주는 분이 누구입니까 이렇게 알려주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시면서 자기의 소원을 신자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신자의 마음에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잊어버렸다가도 또 생각납니다. 말씀은 그의 마음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즉 믿음으로 받아들여 놓았습니다. 성령님은 이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소원을 가지게 하고 따라서 살도록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소원하게 하시고 또 살게 하신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입니까 12절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신자의 구원 이룸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마음속에 계시면서 신자가 구원을 이루도록 소원을 주시고 또 살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해놓고 또 구원을 이루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전후를 살펴보면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는 주님이 자기를 비우고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신자된 너희는 바로 이 마음을 품고 서로 돌아보고 섬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시비가 없도록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빛의 자녀 곧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라고 합니다(15). 이 세상은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고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십자가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십자가 정신을 잃어버리지 말고 그 정신가지고 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주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신자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이미 주님에 의해 이루어진 구원을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삶으로 인해 신자와 세상 사람이 구분이 됩니다. 신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정신을 잃지 않고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신자 안에서 성령님으로 가르치시고 소원을 가지도록 하며 살도록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신자 속에서 일하시는 것은 특별히 신비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어떤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르는 구원의 도리를 반복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 믿을 때 얻게 된 그 마음을 따라서 살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일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무시하지 말라는 뜻으로 '복종하라'고 합니다. 사람이 얼마든지 이 마음을 거스르고 무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거스르고 무시는 것이 성령님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9절에 '성령님을 소멸치 말라'고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우리 속에서 일하시는 것을 소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우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역은 우리들의 소원을 풀어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낮아지신 모습을 덧입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자기를 낮추어 죽으셨으니 우리도 그 분의 낮아지심을 따라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이것을 깨우치시고 우리가 이 뜻을 따라 살도록 일하고 계십니다. 믿는 자로서 살아가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이러한 사역은 인격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 지신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심이 생겨났다는 말입니다. 이 마음을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일깨워서 우리가 이 마음을 따라 살도록 일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은 우리 속에 없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믿고 받아들여서 우리 속에 와 있는 것 즉 예수의 모습을 되새기고 되새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6절에도 보면 사도 바울은 침체에 빠져있는 디모데에게 자기가 안수함을 통하여 이미 디모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일깨우려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디모데를 일깨우려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역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받아들여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일깨우고 가르쳐서 우리가 믿는 자로서 살아가도록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성으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것을 소멸하지 않도록 합시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일깨워 줄 때 그것을 소멸하지 않도록 하며 두려워 떨리는 마음으로 따르도록 합시다. 이런 마음이 없을 때는 죄성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두려워 떠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소원을 주시고 일해가시는 대로 따라 가도록 하십시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성령님으로 계시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 지신 주님의 모습을 따라가도록 일하고 계십니다. 이 마음을 거스르거나 무시하지 말고 살아가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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