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하기를 배우라 (빌4:10-13)
본문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빌립보교회를 향해 주신 자족하고 살라고 부탁하신 본문 말씀은 오늘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약 같은 말씀이기에 함께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족이란 스스로 만족하며 산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으로 감사하며 사는 생활을 가르칩니다. 어떻게 하면 자족할 수 있을까 그 구체적인 방법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1. 자족의 비결은 체험적으로 얻습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는데 여기 배웠다는 말은 모든 경험을 통하여 얻었다는 뜻입니다. 자족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얻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당장에 안 것도 아니요, 날 때부터 가지고 온 것도 아니라 다만 배움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얻은 생의 철학을 의미합니다. 저는 식성이 좋은 편입니다. 음식은 가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그것은 억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성장 과정에서 가난 때문에 무엇이든지 먹을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 무슨 음식이든지 먹고살았던 것이 체질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족은 어디서 배우는가 그럼 자족은 어디서 배우는가 그것은 ‘어떠한 형편에든지’라는 학교에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학교든 학교에는 건강이란 과목도 있고 질병이란 과목도 있습니다. ‘순경’이란 학과도 있고 ‘역경’이란 학과도 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학교에는 ‘부요함’의 과목도 있고 ‘가난’이라는 학과도 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라는 학교에서 이상과 같은 ‘자족’이라는 학과를 통달한 사람이 우리 기독 신자들입니다. 이 학과를 이수할 때 크리스챤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족’이라는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성도 되시기 빕니다.
2. 자족의 비결은 적응력입니다. 본문 12절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적응력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살았던 인물이었으나 숱한 고통과 아픔을 감수하면서도 주를 위한 생활 속에서 그것들을 받아넘기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가난이 문제지 부유해지면 죄 짓는 것도 적고 인색한 마음도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할 때보다 부유할 때 죄를 더 많이 짓고 삽니다. 가난한 자보다 부요한 자가 더욱 인색합니다. 지금 청소년 비행도 가난한 자녀들보다 부유층의 자녀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기독교 선진 국가들에는 주일날 교회가 텅텅 빈다고 합니다. 경제적 부요가 주말이면 세상으로 향하게 만들고 교회는 오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들이 자녀들을 키울 때 과잉 보호하지 말고 적응력 있도록 키워서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적응할 수 있는 자립정신을 키워야 합니다.
3. 자족의 비결은 예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본문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이것이 자족의 최고 비결입니다. “예수 안에서” 이것이 사도 바울의 신학이요 그의 열쇠였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이 말은 인간 이성에 근거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는 할 수 있다. 주님 힘주시면 능치 못할 것 없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세 글자는 없다던 나폴레옹도 결국 불가능 앞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모두 ‘어떠한 형편에서든지’라는 학교를 통하여 ‘자족’이라는 학과를 이수할 수 있는 성도 되시기 빕니다.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부유하거나 가난할 때에라도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삽시다. 나는 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함께 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 붙들어 주시면 이길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이 주의 능력이 성도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지켜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1. 자족의 비결은 체험적으로 얻습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는데 여기 배웠다는 말은 모든 경험을 통하여 얻었다는 뜻입니다. 자족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얻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당장에 안 것도 아니요, 날 때부터 가지고 온 것도 아니라 다만 배움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얻은 생의 철학을 의미합니다. 저는 식성이 좋은 편입니다. 음식은 가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그것은 억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성장 과정에서 가난 때문에 무엇이든지 먹을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 무슨 음식이든지 먹고살았던 것이 체질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족은 어디서 배우는가 그럼 자족은 어디서 배우는가 그것은 ‘어떠한 형편에든지’라는 학교에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학교든 학교에는 건강이란 과목도 있고 질병이란 과목도 있습니다. ‘순경’이란 학과도 있고 ‘역경’이란 학과도 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학교에는 ‘부요함’의 과목도 있고 ‘가난’이라는 학과도 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라는 학교에서 이상과 같은 ‘자족’이라는 학과를 통달한 사람이 우리 기독 신자들입니다. 이 학과를 이수할 때 크리스챤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족’이라는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성도 되시기 빕니다.
2. 자족의 비결은 적응력입니다. 본문 12절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적응력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살았던 인물이었으나 숱한 고통과 아픔을 감수하면서도 주를 위한 생활 속에서 그것들을 받아넘기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가난이 문제지 부유해지면 죄 짓는 것도 적고 인색한 마음도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할 때보다 부유할 때 죄를 더 많이 짓고 삽니다. 가난한 자보다 부요한 자가 더욱 인색합니다. 지금 청소년 비행도 가난한 자녀들보다 부유층의 자녀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기독교 선진 국가들에는 주일날 교회가 텅텅 빈다고 합니다. 경제적 부요가 주말이면 세상으로 향하게 만들고 교회는 오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들이 자녀들을 키울 때 과잉 보호하지 말고 적응력 있도록 키워서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적응할 수 있는 자립정신을 키워야 합니다.
3. 자족의 비결은 예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본문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이것이 자족의 최고 비결입니다. “예수 안에서” 이것이 사도 바울의 신학이요 그의 열쇠였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이 말은 인간 이성에 근거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는 할 수 있다. 주님 힘주시면 능치 못할 것 없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세 글자는 없다던 나폴레옹도 결국 불가능 앞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모두 ‘어떠한 형편에서든지’라는 학교를 통하여 ‘자족’이라는 학과를 이수할 수 있는 성도 되시기 빕니다.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부유하거나 가난할 때에라도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삽시다. 나는 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함께 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 붙들어 주시면 이길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이 주의 능력이 성도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지켜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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