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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 별 (벧후1:2-3)

본문

얼마 전에 그림을 하나 보았다. 캄캄한 밤에 폭풍이 친다. 물결은 산더미 처럼 덮여오고 천둥 번개 속에 폭우는 퍼붙는다. 큰 배는 거의 침몰되어 가 고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배에 가득찬 그들은 물을 퍼내는 사람, 물에 쓸려나가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보물을 끌어 안고 있는 사람 제각 기이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다. 그들은 다 이성을 잃고 절망 속에 있다.
그런데 작가의 의도는 다른데 있다. 단 한 사람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선장이었다. 모두가 절망하고 있었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키를 움켜쥐고 배를 조정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그에게는 남이 못 보는 무엇을 보고 있었다. 바로 등대빛이다. 그 빛은 갈길을 보여준다. 그리고 육지가 가까움을 알려준다. 그 빛을 보는 사람은 두려움을 잊는다. 이 그림에는 여러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크게 보면 단 두 종류의 사람들뿐이다. 등대를 볼 수 있는 사람과 순전히 폭풍만을 보는 사람이다. 둘 은 똑같은 존재이지만 삶의 형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난다. 자기가 가는 방향도 알고 할 일도 안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만약 등대가 불을 비추 고 있고 우리가 그것을 보고 있다면 풍랑이 와도 건재할 수 있다. 신자에게는 확실한 인도자가 있다. 오늘의 말씀은 샛별이라고 말한다. 한 번 대답해 보라. 샛별을 본 일이 있는가 샛별이건 어느 별이건 보려면 일단 하늘을 보아야 한다. 땅만 보는 사람들은 볼 수 없다. 별의 아름다움을 평생 모른다. 샛별은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빛난다. 신자의 샛별은 마음에 비치고 있다. 언제든지 마음을 들여다 보면 인도하는 것이 바로 신자의 샛별이다.
1. 샛별은 말씀을 통해 마음을 비춘다. 말씀이 성경이라는건 누구나 안다. 말하자면 성경은 하늘이다. 샛별을 보 려면 성경을 보라. 일주일에 몇 장씩 읽자고 숙제를 내주는데 우리 전체 교인들중에 1/5정도밖에 참여하지 않는다. 오늘부터라도 꼭 참여하기를 바란다. 세상만 보는게 아니다. 아무리 다 아는 내용이라도 보아야 한다. 하늘을 보아 야 별을 보는 것이다. 하늘의 도움을 얻으려면 조금이라도 성경을 보라. 본래 성경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게 아니었다. 인쇄술이 없던 시절에는 한 권 값이 집 한채보다 더 비쌌다. 개인은 거의 가질 수가 없었다. 지금도 가난한 나라에서는 대단히 성경이 귀하다. 성경이 흔하고 싼 나라는 이 지구 상에 몇 되지 않는다. 그동안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성경을 받아썼다. 극동방 송에서 읽어주는 것을 받아써서 여러 해 걸려 성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성경이 주는 것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모든 좋은 것을 주신다. 그를 받는 것은 마음이지 두뇌가 아니다. 머리로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된다. 그리고 거기서 주장하는 내용이 너무 고지식한 느낌도 온다. 어거스틴도 젊어서 성경을 읽은적이 있었다. 그책은 당시의 키케로나 베르길리우스 같은 위대한 철학자 시인들의 글에 비해서 유치했다. 몇 장을 읽어본 뒤에 그만둔다. 우리 교회 나오다 만 어떤 분은 국문학 박사과정에 있었다. 문학적인 입 장에서 성경을 읽어보니 너무도 조잡했다. 번역한 한글도 너무 문제가 많았다. 박사 수준의 완벽한 논리와 문체는 성경에 잘 보여지지 않았다. 이 분은 성경을 보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이다. 성경은 머리로 보는게 아니었다. 마음 으로 보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자세로 보고 들어야 했던 것이다. 어거스틴은 그후 10년간 진리를 찾아 헤매었다. 자기 머리에 잘 이해될 만한 모든 것을 찾았다. 마니교를 비롯해서 플라톤, 아리스토렐레스, 스토익, 에피큐리안등 당대의 모든 최고의 가르침을 찾았다. 지금도 밀라노는 유럽의 중심지이다. 거기 대학에서 수사학 교수를 하면서 그는 한껏 마음이 교만해 있었다. 그러나 모든 철학을 이해했지만 마음에는 평안도 기쁨도 없었다. 그러다가 직업상 암브로시우스라는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간다. 그 목사는 당대에 위대한 설교자였다. 황제도 그의 말에는 떨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 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변화되었는지 모른다. 그의 명성 때문에 어거스틴은 그를 연구하러갔다. 무슨 말을 하느냐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말하느냐를 알려고 한 것이다. 수사학적으로 비판도 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의 설교는 방법에서 특이한게 없었다. 재치있는 말도 없었고 감동적인 예화도 없었다. 그냥 보통 설교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이상스럽게도 마음을 끌었다. 알 수 없는 힘이 그에게 있었다. 어거스틴은 어 리둥절했다. "내가 왜 이 사람에게 끌리는가 도대체 그의 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암브로시우스는 선장보다 더 확실하게 샛별을 보고 있었다. 암브로시우스는 말한다. "마음으로 성경을 보라. 어두움을 비치는 등불처 럼 샛별이 떠오른다." 어거스틴은 전혀 다른 자세로 성경을 대하게 된다. 로 마서의 한 귀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말며 싸우고 질투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3,4) 이 정도 말씀은 어느 종교에서나 본다. 그러나 성경은 그냥 수신제가의 책이 아니다. 전능의 하나님이 영적 교제 속에서 하시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머리로 받으면 별 것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대하듯 받아보라. 어거스틴 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한 존재를 만난다. 그 내용을 그대로 받는 이들은 마음 속에 빛나는 별을 본다. 그 별은 모든 난관을 극복해준다.
2. 말씀에서 받은 선물을 마음에 간직하라 만약 머리로 이 귀절을 읽었더라면 자기의 힘으로 그대로 행하려고 생각 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 말씀은 율법이 되고 그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이다. 감각기관은 방탕을 원한다. 술취하고 싶고 음란하고 호색하고 싶다. 당연히 싸우며 질투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맡기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거룩한 삶은 육신에게는 부담이요 고통인 것이다. 하지만 마음으로 그 말씀을 대해보라. 영과 마음은 하나님을 원한다. 진리와 거룩한 삶을 원한다. 마음으로 말씀을 대할 때 그리스도를 만난다. 순전 한 기쁨으로 이러한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음으로 받을 때 이처럼 단정하 고 순결한 삶보다 더 기쁨을 주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영혼의 자유 요 이것이 구원의 삶이다.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과 기쁨이 솟아난다. 베드로 사도는 "언제나 내가 전해준 복음의 내용을 간직하고 늘 생각하 라"고 한다. 어디에 간직하는가 마음이다. 간직한다는 것은 한 번 들은 다음 잊는게 아니다. 자꾸만 그 말씀을 바라보는 것이다.
선장이 등대를 보듯 신자 가 샛별을 보듯 자꾸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힘이 솟아나온다. 신비한 힘이다. 억지로 하지않는 능력이 나온다. 샛별을 자꾸만 바라보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 어다."(벧후1:2) 어떻게 아는가 머리로 아니, 마음으로 아는 것이다. 은혜와 평강이 많아지는 방법은 하나님과 예수를 아는 것이다. 성경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가 샛별이다. 그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그외에는 길이 없다. 그를 알수록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갖는다. 정말이다. 마음을 들여다 보라. 예수가 계신가 그를 늘 바라보라. 바라볼수록 삶은 이상스러운 힘을 얻는다. 암브로시우스의 놀라운 확신, 사람을 움직이고 운명 을 바꾸는 능력, 황제까지도 흔드는 권세가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아침에 일 어나면 기도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샛별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에게 인도하 심을 요청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를 생각하라. 잠자기 전에 그리하라. 다음 귀절이 이를 더 자세히 말한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 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 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1:3) 여기서도 앎이란 단어가 나온다. 마음 속의 샛별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어 떻게 했다고 하는가 "우리에게" 주셨다고 한다. 감격스럽지 않은가! 대답해 보라. 더 받을 것이 있다고 하는가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은 모 두 받았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이 무엇인가 이 생명은 목숨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짐승이 가진 그런 목숨이 아니다. 그런 것은 하루살이도 가 졌다. 하루뿐이지만. 단지 조금 더 길게 가졌을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죽지 않는다. 병이 낫는다. 빛처럼 뻗어나간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어둠을 밝힌다. 이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배의 선장처럼 능력이 있으리라. 사람들을 구원하리라.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 그의 생명이 있다. 그의 능 력이 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믿는가 확인하는가 샛별을 바라보라. 볼 수록 더욱 확신이 일어난다. 우리 속에 있다. 경건을 위한 모든게 다 있다. "부르시는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 앎은 머리로 아는게 아니다. 감각으로 아는 것도 아니다. 마음으로 아는 것이다. 부모를 알고 사랑하는 이 들을 알 듯이 아는 것이다. 조국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깃발만 보아도 가 슴이 뿌듯하고 감격스럽다. 같은 종자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생각만해도 마음 이 감격스럽다. 하늘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소속을 알고 아버지를 안다.
3. 그 빛의 인도를 받으라.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 라."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무엇을 하지 말라. 특히 마음에 풍랑이 일어날 때는 그러하다. 불안하고 초조할 때, 누구를 미워할 때, 미래에 희망이 없어 보 일 때 마음 속에 주어진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바라보라. 샛별이 떠 오를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을 가르쳐주고 어디로 갈지를 설명해 준다.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할 때, 자기 배우자 를 원할 때, 신비한 도움을 원할 때, 바라보라. 마음 속에 일어나는 구름을 몰아내라. 그리고 평안과 감사의 마음을 찾으라. 신자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미 그리스도와 한 몸이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게 맡기라. 적합한 때에 샛별처럼 떠오를 것이다. 문제가 없을 때에라도 샛별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다. 더 높은 이상과 아 름다운 꿈을 위해서도 그렇다. 구름 위로 빛나는 별을 항상 바라보라. 회교도 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고 유대인들은 세 번씩 기도한다. 그들이 그렇 게 함으로 다른 신앙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자기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 더욱 율법적인 신앙에 매인다. 자유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자유했다. 이 자유가 어떤 것인지 늘 명상해야 한다. 복있는 사람은 그렇다. 하루 적어도 세 번이상 예수가 주신 생명과 능력을 생각하라.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얼마나 큰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 나 더 클 수 있는 존재인지 확인해 보라. 절대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내 지 말라. 매 순간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은 그대로 밖으로 투영됨을 잊지말라. 자, 이제 함께 마음으로 보자. 세상의 모든 우수사려를 놓으라.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도 말고 감각으로 느끼려 하지도 말라. 그냥 평안한 마음으로 들으라. 신령과 진정으로 말씀을 받으라. 그리고 마음으로 보라. 샛별이 보이 리라. 삶을 인도한다. 그로부터 오는 영원한 생명과 능력을 보라. 그것으로 삶을 변화시키라. 우리는 삶의 주인이다. 선장이다.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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