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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따를 자의 각오 (마8:18-22)

본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결심을 하고서 시작하게 된다. 예-공부, 축산, 사업 만약에 결심이 굳세지 못하다면 그리고 결심이 잘못되어 있다면 일이 제대로 되지를 않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도 각오가 필요하다. 오락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기독교의 전래를 보면-믿음을 지키기위하여 참수, 화형등 수많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어떤 각오를 가지고 따라야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1. 성급한 제자 19, 19절-"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 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예수께 나아와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쫏으리이다." 무리가 에워쌀때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다. 병을 고치는 것보다 제자들을 개인적으로 교훈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본문의 교훈은 두 제자에 관한 것이다. 우선 첫 번째 나오는 제자는 맹목적으로 적극적인 제자였다. 율법 선생으로 열심있는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와서 완전히 헌신한 사람처럼 말하였다. 서기관들은 늘 예수님의 적대편이었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꼬투리를 잡는 사람들 이었는데 이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 것은 참으로 기특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맹목적이었다. 아마도 서기관인 그는 예수님의 교수법에 매혹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쨋던 그는 주를 따르는 길에 놓여있는 고난을 알지 못한 자이다. 더구나 그는 이고난을 헤아릴만한 안목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순간적인 감정의 지배를 받고 흥분을 주채하지 못하는 성급하고 분별력이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성급한 제자에게 당신을 따르는 길에 놓여있는 고난을 각오해야함을 가르치셨다. 이는 또 맹목적인 제자에 대한 거절의 뜻을 내포한 말씀이기도하다. (십자가의 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따르는 자세에 대한 경계) 공중의 새들과 산의 짐승도 거처가 있고 모든인간도 집이 있으나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은 일정한 거처가 없으셨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가난을 통하여 모든 인류를 부요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고난을 생각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고 성급하게 제자가 되려고 하는 자에게 경고하신 것이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기초이다. 우리 성도들은 고난의 십자가가 있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다는 각오를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 주저하는 제자 (21절하)-"주여, 나로 먼저 가서 부친을 장사하게 하소서." 아무런 마음의 결단도 없이 주님을 따르겠다는 성급한 제자와는 달리 두 번재 제자는 소극적인 제자였다. 이제자는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다. 이 제자는 이미 믿음을 소유했지만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제자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경시하고 핑게만있으면 피하려고 하는 사람을 대표하고 있다. 성경을 보면 바람과 바다는 이런제자들 보다 더 순종적이다. 이 제자는 성급하게 서두르는 제자와는 정 반대의 이유로 번민하고 있다. 그는 나이 많은 부친을 두고서 떠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소명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부친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다하도록 잠시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생각으로 이 제자의 태도가 올바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시급성을 생각할 때 이런 제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 있어서 부모에 대한 효성의 척도는 십계명중 제 오 계명이 기초가 되었다.(약속이 있는 첫 계명) 자식된 자는 반드시 부모의 장례식에 참석 하여야만 하였다. 유대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날로 장사 하게 되어 있다. 여러 상황으로 보아 이 제자는 부친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제자는 더더욱 자식된 도리와 율법 , 특히 제 5계명을 거역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율법을 지키고 자식의 도리를 다하려는 이제자의 마음이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는 지체하고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여러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주님의 일을 기피할 때가 많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곤란한 상황에서도 결단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는 것이다. 예'자식결혼, 가정행사, 교육-아낌없는 투자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용기있는 자만이 똑바로 신앙 생활을 할수 있다는 말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자기 부인과 포기를 결단할 때 이 세상에서도 저세상에서도 여러 배를 갚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성도들은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과감하게 결단내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3. 중용의 도리 (22절)-"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하고….," 이 말씀은 예수께서 장례식에 가는 것과 장례식을 금하신것 이 아니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장례식을 부활의 소망을 더하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으로 엄수했다. 구약의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르기전에 부모에게 작별하였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제자의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경우에 하나님을 섬긴다는 핑계아래 부모에 대한 의무를 등한시 하는 무리에 대해서 책망하신 적이 있으시다. (부모에게 할 것을 하나님께하면 괜찮다는-고르반) 이 말씀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부모의 장례를 치를 책임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너는 나를 따르라."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각오를 우리에게 가르치신 교훈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땅 위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일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없음을 우리에게 교훈하신 것이다. 우리는 주저하는 제자를 붇들어 고귀한 직분을 맡겨 주시는 그리스도의 선하심을 생각 할 때 , 예수님은성도나 직분 자를 항상 붙들어 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가있다. 예수님은 성급한 제자에게 교훈하셨고 주저하는 제자에게는 바른 길을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성급해서도 안되며 주저해서도 안된다. 예수님은 제자됨의 중용의 도리를 가르쳐 주셧다. 성도는 자신의 삶에 있어 아무리 중요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에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심이나 하늘 나라를 전파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과감하게 버리는 신앙의 결단을 배워야 한다. Cf, 눅 9:60-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고난이 뒤따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상급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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