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마7:21-23)
본문
본문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되 참되게 바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입술의 고백뿐인 신앙생활을 하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던 지의 두 갈래 길에서 참된 길은 생명의 길은, 상급을 받되 풍성히 받는 아름다운 신앙의 길을 택해야 된다는 것을 잘 말씀해 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바로 예수믿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직면하게 될 두 갈래의 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해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두 갈래의 신앙의 길의 특징을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본문에서는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본문을 중심으로 차례대로 살펴봄으로써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本論:두 가지의 믿음 A:주여! 주여!하는 믿음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 먼저 신앙의 두 갈래 길 가운데 걸어가서는 안될 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구절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대비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주여 주여 하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에 대해 알아야 오늘 본문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이 두 종류의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봅시다.
첫째로, 주여 주여 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열두 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는 열두 명이지만,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들은 이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셨을 때에, 그들은 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어떻습니까 그들도 처음엔 십자가 앞에서 도망을 쳤지만, 나중엔 다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사도행전 1:15절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무리의 수가 120명이나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120명이 예수님을 위해 끝까지 남은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는 수다한 무리들이 ‘주여 주여’ 하며 그를 따랐지만, 그들 앞에 십자가가 놓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에 주여 주여 하는 자란 바로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버린 자들을 말합니다. 또한 초대 교회에서 주여 주여 하는 자란 배교자들을 가리킵니다. 박해는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했지만, 훨씬 더 많은 배교자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추수 때에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듯이, 박해는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가려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에서 주여 주여 하는 자란 신앙을 버린 배교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여!라는 말의 원어는 '퀴리오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초대교회 당시에 오직 예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시도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쓰던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여!라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께 목숨까지도 드려서 충성하겠노라고 결단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말이었고, 삶 속에서 반드시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리라는 사람이 쓸 때만이 참되다고 인정받는 말이었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 땅위에서 하늘의 기쁨을 맛보며 살아갑니다. 오히려 예수님 때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를 따르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노라고 고백하고, 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살겠노라고 결단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광만이, 축복만이, 좋고 나는 십자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살고파요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자 도망한 사람들처럼 십자가를 져야 할 순간 십자가를 기꺼이 지기보다는 그만 예수님 앞에서 도망쳐 버리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과 같습니다. 또 이런 사람은 평안할 때는 예수를 잘 믿으나 고난의 순간이 닥치게 되면, 환난의 날에 이르게 되면 그만 예수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본문을 살펴 보십시요.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 날에 우리 주님으로부터 외면 당하고야 말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입술로만 주여!,주여!하는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기쁠 때나 즐거울 때뿐만 아니라 슬플 때나 괴로울 때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셔서 여러분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때 하나님의 칭찬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환영을 받으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둘째로,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뜻에 해당되는 희랍어는 텔레마(θελημα)입니다. 이 말은 뜻, 목적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하나님의 목적대로 행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감당하겠나이다라고 심령 속 깊숙이1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날로 솟구치는 그러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하게 되었을 때, 義人 열 명만 있었어도 멸망당하지 않았을텐데 義人 열 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하지 않았습니까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주위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여러분의 낯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냥 계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그러한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 앞에서 義人이라고 칭함을 받는,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오늘날도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주여 주여 하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자입니다. 낮고 낮은 이 세상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헛된 목적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엔 이 두 종류의 인간이 뒤섞여 있습니다. 서로 혼합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포의 주교 성 어거스틴은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도성에 속한 시민과 지상의 도성에 속한 시민이 혼합되어서 산다고 말했으며 또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이 세상은 하나님 왕국의 세력과 지상 왕국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다고 설파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 두 세력이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안전한 곳은 못됩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의 분부를 행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도 가라지와 알곡이 섞여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주여 주여 하는 자”와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종류의 인간은 뒤섞여 있어서, 서로 잘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 B:두 종류의 믿음과 그 결과 그러나 그 날이 오면, 알곡과 가라지가 가려지게 될 것입니다. 양과 염소가 갈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2-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너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나님의 심판 날이 되면 주님!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한 사람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능력을 행한 사람들입니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밝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여기서 밝히 말씀하시되의 원어는 호몰로게소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공적인 선포를 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말하자면 뜻을 번복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같은 능력을 행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이 참으로 이 땅에서 살 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참! 잘 왔다. 내 아들아! 내 딸아! 창세 전부터 너를 위해 예비한 기업과 상급을 차지하거라하는 하나님의 환영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리라 믿습니다. 또 예수님은 22절을 “그 날에 많은 사람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외면 당할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 많이 있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에 은혜로운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왜 그들은 신앙의 師表가 되지못합니까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서, 살지 않고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들은 단지 설교하고 능력 행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삶을 보여 주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안일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모든 교우들을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을 뺀 열 한 명의 사도들은 회의와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있는 교우들 앞에서 먼저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들은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의 師表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신앙인들이 확신을 가지고서, 제자들의 모범을 따라 순교의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교회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살아가는 자들의 헌신 위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들의 죽음이 뜻하는 바가 뭡니까 하나님 사랑에 대한 진실성이 아니겠습니까 내 하나 뿐인 생명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은 내게 가장 소중한 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표준은 사람의 표준과 다른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위주로 생각합니다. 내게 은혜로운 설교를 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내 병을 고쳐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내게 축복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내게 권능 베푸는 자를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서, 설교도 잘하고, 귀신도 내어쫓고, 권능도 행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문제삼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생활이 빠진 사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結論: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자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의 목적대로 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혹시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앙을 갖는 것은 아닙니까 내 사업이 잘되기 위해, 내 가정이 행복하고 내가 잘되기 위해, 신앙 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이 혹시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전락되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에게는 위에서 열거한 모든 것들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해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위해서 신앙생활한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위해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主客이 전도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사람을 우리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땅에 목적을 두고 살지 마십시오. 신앙인은 하늘에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천한 목적은 여러분의 삶을 천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거룩한 목적은 여러분의 삶을 고결하게 만들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완전히 사로잡힐 때에는 어떠한 일도 어렵질 않은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일도, 죽는 일조차도 전혀 어렵질 않습니다. 하나님께 꽉 붙들린 자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은 하나님께 꽉 붙들린 사람이 되셔서, 이 땅위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며, 그의 뜻을 따라 사는 충성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이 두 종류의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봅시다.
첫째로, 주여 주여 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열두 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는 열두 명이지만,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들은 이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셨을 때에, 그들은 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어떻습니까 그들도 처음엔 십자가 앞에서 도망을 쳤지만, 나중엔 다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사도행전 1:15절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무리의 수가 120명이나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120명이 예수님을 위해 끝까지 남은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는 수다한 무리들이 ‘주여 주여’ 하며 그를 따랐지만, 그들 앞에 십자가가 놓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에 주여 주여 하는 자란 바로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버린 자들을 말합니다. 또한 초대 교회에서 주여 주여 하는 자란 배교자들을 가리킵니다. 박해는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했지만, 훨씬 더 많은 배교자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추수 때에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듯이, 박해는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가려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에서 주여 주여 하는 자란 신앙을 버린 배교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여!라는 말의 원어는 '퀴리오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초대교회 당시에 오직 예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시도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쓰던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여!라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께 목숨까지도 드려서 충성하겠노라고 결단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말이었고, 삶 속에서 반드시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리라는 사람이 쓸 때만이 참되다고 인정받는 말이었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 땅위에서 하늘의 기쁨을 맛보며 살아갑니다. 오히려 예수님 때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를 따르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노라고 고백하고, 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살겠노라고 결단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광만이, 축복만이, 좋고 나는 십자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살고파요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자 도망한 사람들처럼 십자가를 져야 할 순간 십자가를 기꺼이 지기보다는 그만 예수님 앞에서 도망쳐 버리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과 같습니다. 또 이런 사람은 평안할 때는 예수를 잘 믿으나 고난의 순간이 닥치게 되면, 환난의 날에 이르게 되면 그만 예수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본문을 살펴 보십시요.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 날에 우리 주님으로부터 외면 당하고야 말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입술로만 주여!,주여!하는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기쁠 때나 즐거울 때뿐만 아니라 슬플 때나 괴로울 때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셔서 여러분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때 하나님의 칭찬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환영을 받으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둘째로,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뜻에 해당되는 희랍어는 텔레마(θελημα)입니다. 이 말은 뜻, 목적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하나님의 목적대로 행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감당하겠나이다라고 심령 속 깊숙이1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날로 솟구치는 그러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하게 되었을 때, 義人 열 명만 있었어도 멸망당하지 않았을텐데 義人 열 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하지 않았습니까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주위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여러분의 낯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냥 계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그러한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 앞에서 義人이라고 칭함을 받는,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오늘날도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주여 주여 하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자입니다. 낮고 낮은 이 세상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헛된 목적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엔 이 두 종류의 인간이 뒤섞여 있습니다. 서로 혼합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포의 주교 성 어거스틴은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도성에 속한 시민과 지상의 도성에 속한 시민이 혼합되어서 산다고 말했으며 또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이 세상은 하나님 왕국의 세력과 지상 왕국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다고 설파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 두 세력이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안전한 곳은 못됩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의 분부를 행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도 가라지와 알곡이 섞여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주여 주여 하는 자”와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종류의 인간은 뒤섞여 있어서, 서로 잘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 B:두 종류의 믿음과 그 결과 그러나 그 날이 오면, 알곡과 가라지가 가려지게 될 것입니다. 양과 염소가 갈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2-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너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나님의 심판 날이 되면 주님!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한 사람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능력을 행한 사람들입니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밝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여기서 밝히 말씀하시되의 원어는 호몰로게소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공적인 선포를 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말하자면 뜻을 번복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같은 능력을 행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이 참으로 이 땅에서 살 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참! 잘 왔다. 내 아들아! 내 딸아! 창세 전부터 너를 위해 예비한 기업과 상급을 차지하거라하는 하나님의 환영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리라 믿습니다. 또 예수님은 22절을 “그 날에 많은 사람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외면 당할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 많이 있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에 은혜로운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왜 그들은 신앙의 師表가 되지못합니까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서, 살지 않고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들은 단지 설교하고 능력 행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삶을 보여 주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안일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모든 교우들을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을 뺀 열 한 명의 사도들은 회의와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있는 교우들 앞에서 먼저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들은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의 師表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신앙인들이 확신을 가지고서, 제자들의 모범을 따라 순교의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교회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살아가는 자들의 헌신 위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들의 죽음이 뜻하는 바가 뭡니까 하나님 사랑에 대한 진실성이 아니겠습니까 내 하나 뿐인 생명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은 내게 가장 소중한 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표준은 사람의 표준과 다른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위주로 생각합니다. 내게 은혜로운 설교를 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내 병을 고쳐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내게 축복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내게 권능 베푸는 자를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서, 설교도 잘하고, 귀신도 내어쫓고, 권능도 행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문제삼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생활이 빠진 사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結論: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자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의 목적대로 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혹시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앙을 갖는 것은 아닙니까 내 사업이 잘되기 위해, 내 가정이 행복하고 내가 잘되기 위해, 신앙 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이 혹시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전락되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에게는 위에서 열거한 모든 것들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해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위해서 신앙생활한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위해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主客이 전도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사람을 우리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땅에 목적을 두고 살지 마십시오. 신앙인은 하늘에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천한 목적은 여러분의 삶을 천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거룩한 목적은 여러분의 삶을 고결하게 만들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완전히 사로잡힐 때에는 어떠한 일도 어렵질 않은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일도, 죽는 일조차도 전혀 어렵질 않습니다. 하나님께 꽉 붙들린 자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은 하나님께 꽉 붙들린 사람이 되셔서, 이 땅위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며, 그의 뜻을 따라 사는 충성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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