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뜻대로 살자1 (마7:21)
본문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아주 난감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의 이유는 여러가지 이겠습니다만 그중 하나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를때처럼 난감할때도 없는 것같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도,이사를 하려고 할 때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정말 알기 힘들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꿈을 꾸기만 해도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려고 하고,어떤 사람은 기도원에 가서 예언하는 원장을 찾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는 눈감고 성경을 펴서 짚어보는 소위 성경점을 쳐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주의 뜻을 찾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압니다만
그런데 도대체 주님의 뜻이 무엇이며, 어디서 어디까지가 주님의 뜻인지, 어디서 어디까지가 주의 뜻이 아닌지 말은 많이 합니다만 추상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다음 시간 두시간 동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에 대해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무엇이며 또한 그뜻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주의 뜻을 알려면 그 표준을 알아야 하겠기에 오늘은 그 표준을 알아보고 다음시간에는 구체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주님의 뜻을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주의 뜻이 무엇이냐 한 국가가 어떤 제품을 평가하려고 할 때 어떤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에 합격하면 인정하고 합격하지 못하면 인정하지 아니합니다. 우리나라의 KS마크나 Q마크 같은 것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뜻에도 한계점, 즉 정해놓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 주의 뜻인가 이 표준이 없으면 기도좀 했다고 해서 전부 자기뜻이 모두 의뜻으로 변해버리고, 성경보다가 느낀 것도, 길가다 문득 생각나는 것도 모두 주의 뜻으로 정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주의 뜻의 표준을 정해놓고 자기뜻을 대입해 보아야지, 그래야 주의 뜻임을 알수 있는 것이지 그 표준과 원리를 벗어나게 되면 자기 뜻이 몽땅 주의 뜻으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그럼 그 표준이 무엇입니까 오늘 이 아침에 세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주의 뜻은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이말은 성경적이 아닌것은 전부 주의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신구양 성경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까 바로 신구약 66권 성경만이 하나님의 뜻을 100% 표현한 유일한 책입니다. 이 성경에는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싫어 하시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뜻을 알기에 성경은 절대로 모자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더할 것도 뺄것도 없는 정확무오하며 완전한 책입니다. 이렇게 완전한 성경인데 누가 계시를 받아서 더하겠습니까 이 단으로 정죄된 김모 목사는 성경은 문틈에서 들어오는 빛과 같을 뿐이요 자기가 받은 계시를 더할때 비로서 성경은 완전해 진다고 했는데 이는 성경을 잘못알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둔 방의 일부만을 밝히는 문틈의 빛이 아니라 방 전체를 환히 밝힐수 있는 빛 전체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영적세계를 말하는데 있어서 완전 무결한 책입니다. 성경을 수천독한 어느 목사님이 산에 계시를 받으러 올라갔는데 마음속으로 부터 이러한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네가 66권 성경 모두를 행하고 더 행할 것이 없어서 왔느냐” “더이상 깨달을 것이 없어서 계시 받으로 왔느냐” “성경이 네 구원에 모자라서 계시받으러 왓느냐” 하는 음성이 너무나 칼과 같이 찔려서 그이후로 성경만을 중심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 사단의 자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4:2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 가 너희에게 명하는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가감하면 죽습니다. 계22:18-19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더하는 자는 이책의 재앙을 더하시겠다고 하셨고 감하는 자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하와는 하나님말씀을 더하고 뺐다가 이런 봉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만지지도 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도 하와는 이말을 더했고 하나님은 분명히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전자는 100%죽는다는 의미요 후자는 혹 안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기에 결국은 말씀의 내용을 감해버린 것입니다.갈1:8에는 “만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늘의 처뇨사라해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가감하면 안됩니다. 성경적이 아닌 방언, 성경적 아닌 기적, 성경적이 아닌 기도나 행동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성경을 밝히 알아야 하겠습니다.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배워야합니다. 성경을 모르고는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모르고서는 주의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성경을 모르고서 어떻게 에수를 믿겠습니까 성경은 몰라도 은혜만 받으면 된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은혜생활도 성경을 알아야만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모르는 신비주의는 십중팔구 사단의 계략에 넘어가고 맙니다. 예수 믿는 것, 내맘대로 믿는 것 아닙니다. 성경대로 믿어야 하고 성경이 지시한대로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안다는 것, 그것은 믿음의 뿌리요 기초이니다. 그럼,로 이뿌리가 없는 사람은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금방 흔들립니다.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가 금방쓰러지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로 배우십시오. 그래야만 신앙의 주체성을 세울수가 있습니다. 안타까운것은 세상지식 가르치기 위해서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씩이나 갖다 주면서 성경공부위해 과외시켰다는 말을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지식 가르치는 학교선 생님은 하늘떠받듯 하지만 성경가르치는 교회 선생님은 관심 밖입니다. 한 교회안에 있으면서도 자기 자식 가르치는 선생임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자식을 무슨 신앙으로 양육하겠다고 합니까 말씀 듣는 일에 양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 읽는 일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말씀대로 사는 일에 미루지 마십시오. 말씀대로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주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2. 주의 뜻은 신앙적이어야 합니다. 이는 비신앙적인 것은 주의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신앙에도 두가지가 있는데 인본주의 신앙과 신본주의 신앙이 있습니다. 인본주의 신앙이란 자기 중심적이요 이는 항상 육의 일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나 신본주의 신앙은 하나님중심의 생활이요 이는 항상 영의 일만 생각하며 그 결과는 생명과 평안입니다. (롬 8:5-6) 비 신앙적 행동은 언제나 육신을 앞세웁니다.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인데 인본주의는 언제나 정당성과 합법성과 이론적인 것을 내세웁니다. 그래서 겉으로 볼 때는 그럴듯 하고 참인것 같지만 자기 중심이기에 하나님보시기에는 악입니다. 본문 뒷부분의 추방당한 사역자들도 바로 인본주의 사역가들이었기에 쫒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육신을 쫒는 자는 눈만 뜨면 육신의 일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재산을 많이 울궈낼까 어떻게 하면 큰집으로 이사가나”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눈만 뜨면 영에 속한 생각을 합니다. “돈 벌어서 주님위해 어떻게 쓰나 금년에는 내가 주님위해 어떤 봉사를 할까”하고 말입니다. 육신에 속한자는 교회에 대해서 왜 그렇게 불만이 많은 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자는 교회오면 왜그렇게 감사하고 또한 할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적금이나 곗돈을 탓을 때, 혹은 보너스를 받았을때도 육신에 속한자는 “옷도 사고 외식도 하고 장롱도좀 바꾸고 냉장고도 대형으로 바꾸고.”하는 생각뿐이지만 영에 속한자는 “이돈가지고 어떻게 헌금할까 어떻게 구제할까 어떻게 선교할까” 하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영에 속한 생각입니까 아니면 육에 속한 생각입니까 영에 속해 있다면 주의 뜻대로 살고 있는 것이지만 육에 속하여 있다면 주의 뜻대로 살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3. 주의 뜻은 성령님의 인도라야 합니다. 이는 성령님의 인도가 아닌것은 다 주의 뜻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실 때 이렇게 하라는 둥,저렇게 하라는 둥 동으로 가라는 둥,서로 가라는 둥.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그것 만이 성령님의 인도인줄 알고 경솔하다가 사단의 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과연 성령님의 역사가 그렇까요 성경은 예언의 역사를 어떻게 말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요16:13-14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보면 여섯가지 인도 방법이 나오는데.
첫째, 진리(말씀)가운데로 인도한다고 했습니다. 성령님과 진리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마치 기차와 레일과 같이 말입니다. 성령님은 진리를 통해서만 역사하시고 진리는 성령님을 통해서만 이루어 집니다.
둘째,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을 성령님의 지시라고 하여 아무렇게나 말을 합니다만 성령님은 절대로 자의로 말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럼 무엇으로 말씀하실까요
셋째, 오직 듣는 것으로 말씀하실 뿐입니다. 역시 듣는 것이란 말씀을 의미합니다.성경을 누가 기록했습니까 딤후 3:16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성령님)으로 된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기록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기록은 인간이 했지만 기록하는 인간을 움직이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제가 이 설교를 컴퓨터로 칩니다만 이 설교의 저자를 아무도 컴퓨터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원희라는 사람이 쳤기에 저자는 이원희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저자(모세, 사무엘.등등)는 단지 타이프같은 역할을 했을 뿐이요 진짜 저자는 성령님이십니다. 이처럼 성경은 성령님께서 기록하셨는데 자신이 기록하신 성경은 무시하시고 멋대로 마음대로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렇게는 아니하십니다. 말씀있는 곳에 성령님오시고 말씀 선포되는 곳에 성령님역사하십니다. 반대로 말씀이 없는 곳에는 악령이 오고 악령이 역사할뿐입니다.
넷째, 성령님은 반드시 장래일을 말씀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언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점장이가 하는 그런 예언은 아닙니다. 예언이란 앞으로 될일을 미리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예를 들어 말하면 “천국건설” 장래일입니까 과거일입니까 보나마나 장래일입니다. 성령님이 천국을 말씀하신다면 그것이 곧 예언입니다. 예언이라고 해서 굉장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믿으면 천국가고 안믿으면 지옥간다.”는 말씀도 예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교역자가 설교하는 모든 말씀도 다 예언입니다. 이 예언이면 됬지 또 무슨 예언이 필요합니까 “기도해보니 아무개가 어떻게 된다더라”“보았다”느니 “들었다”느니.이것만이 예언인줄 압니다. 우리 시대는 지금 음성계시나 환상계시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음성이나 환상보다 더 정확한 성경이 있기때문입니다. 사단의 역사의 특징은 선명한 음성이 들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대개 시간과 장소가 구체적입니다. 예수 재림이 몇년 몇월 몇일이라던지 어디어디에 가서 몇시에 누구에게 이번호로 전화걸어서 만나라고 한다던지 말입니다. 성경 66권은 장래일을 말한 책입니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말하기를 성경의 70%가 이미 이루어졌으며 나머지 30%도 지금 속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는 것이 왜그 렇게 미지근 합니까 추우면 춥다고 못하고, 더우면 덥다고 못하고, 환경이 어려우면 어렵다고 못하고, 또 환경이 좋으면 너무 좋아서 못하고,이래도 못하고 저래도 못하고.언제까지 이러할렵니까 새벽기도에 너무나 안나올때 저는 이런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주님이 새벽 5시에 오신다면 잠옷바람에 허둥댈 사람 많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성경에는 앞으로 되어질 일들이 빈틈없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 비밀을 모르니까 하나님은 주의 종을 세워서 이모양 저모양으로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암3:7)에 기록하기를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심판)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의 종을 통해 심판을 알리지 않고는 결코 심판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속에의 모든 비밀을 주의 종들에게 깨닫게 하시고 전달케 하십니다. 요즘에 정말로 진주 보석과 같은 하나님의 오묘한 말씀들이 대중 매개체를 통해서 사방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 이 말씀이 참으로 실감납니다. 성령님은 주의 종들에게 성경에 있는 비밀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이 강단에서 선포하는 설교를 예사롭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아무개 집사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구나.” 하며 자기와 상관없는 말씀으로 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주의 종의 설교는 모두 예언입니다. 그대로 살면 산 대로의 결과가 나올 것이요 그 대로 못살았으면 못산 대로의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포로직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이 증거하는 예언의 말씀을 예사롭게 넘기다가 멸망당했습니다. 롯의 사위도 예언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다가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롯의 아내도 예언의 말씀을 무시했다가 소금기둥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의 종의 임무는 저들이 듣든지 듣지 안듣든지 전하는데 있습니다. 저들이 망하든 흥하든 그 책임을 말씀을 들은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전하지 않으며 그 피값을 전하는 자에게 찾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니느웨성을 멸하시기전에 죽어도 안가겠다던 요나를 왜 보내셨는지 이해 하시겠습니까 왜 노아가 배를 다 짓고도 7일동안 심판을 증거했는지 아시겠습니까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제게는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듣는자가 너무나 적을 때는 이 말씀 전하기가 심히 안타깝습니다. 들어야 할자는 안듣고 안들어도 될 사람들만 앉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럴때는 저는 준비했던 멧세지를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듭니다만 “오신분들이 이말씀을 듣기 위해 왔구나”함을 깨닫고는 심장이 터지는 듯한 마음으로 말씀을 증거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당시 거짓 선지자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인기위주였고 참 선지자들이 심판을 증거할 때마다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백성들 비위나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선지자들은 매우 적었으며 그들이 외치는 심판의 말씀이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왜곡되게 전해지게 되었고 그 때문에 선지자들은 고독했고 돌에 맞기도 했으며 때로는 뭇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말세의 현상에도 바로 이와 같다고 예수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에는 신앙 지도자들이 죽어도 바른 말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 받아라 만사형통하라”는 식으로 듣기 좋은 말만하지 회개나 십자가를 지라고는 외치지 않습니다. 교인들 눈치나 보자는 것입니다. 또한 말세 성도들도 죽어도 바른말을 듣기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죄를 지적하면 거짓으로 핑개나 대고 화를 냅니다. 남의 사생활을 왜 간섭하냐는 식으로 말입니다. 참으로 답답할 뿐입니다. 딤후 4:3-4에 기록된 말세의 징조들 처럼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귀가 가렵고 사욕을 쫒아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까지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런일은 이사야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사 30:9-10)” 우리의 이 시대와 너무나 똑같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쉽게 말해서 이런 말입니다. “전도사님, 환난이 와도 온다고 하지 말고, 멸망이 와도 온다고 하지 말고, 전쟁과 심판과 유황불이 내려도 내리지 않는다고 말하세요” 라는 뜻입니다. “거짓말좀 해 주세요. 지발 심판만은 말하지 마세요. 듣기 좋은 말만 하세요” 라고 말합니다. 누가요 바로 여러분들을 포함한 현대 그리스도인이 그리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우리들은 세상에서 시달리다 왔는데 그래서 교회와서 전도사님 설교듣고 위로받으려고 왔는데 전도사님까지 그러시니 참으로 교회올 재미가 없습니다. 좀 부드러운 말로 해주십시오. 설교가 너무 깁니다. 찬송을 너무 많이 불러요. 우리도 알것 다 압니다. 때가 되면 잘하게 될것 아닙니까” 라고 말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말세의 증거입니다. 이처럼 말세에는 말씀듣기 싫어하면 소위 아이들말로 종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내 영광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하는데 만일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지 하나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영광이라면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내것을 가지고 알린다고 하셨습니다. 이도 역시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상 6가지가 성령님의 인도방법입니다. 위의 세가지 표준을 잘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신앙생활을 이 표준에 대입하면서 사심으로 모두 주의 뜻대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주님의 뜻이 무엇이며, 어디서 어디까지가 주님의 뜻인지, 어디서 어디까지가 주의 뜻이 아닌지 말은 많이 합니다만 추상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다음 시간 두시간 동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에 대해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무엇이며 또한 그뜻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주의 뜻을 알려면 그 표준을 알아야 하겠기에 오늘은 그 표준을 알아보고 다음시간에는 구체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주님의 뜻을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주의 뜻이 무엇이냐 한 국가가 어떤 제품을 평가하려고 할 때 어떤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에 합격하면 인정하고 합격하지 못하면 인정하지 아니합니다. 우리나라의 KS마크나 Q마크 같은 것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뜻에도 한계점, 즉 정해놓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 주의 뜻인가 이 표준이 없으면 기도좀 했다고 해서 전부 자기뜻이 모두 의뜻으로 변해버리고, 성경보다가 느낀 것도, 길가다 문득 생각나는 것도 모두 주의 뜻으로 정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주의 뜻의 표준을 정해놓고 자기뜻을 대입해 보아야지, 그래야 주의 뜻임을 알수 있는 것이지 그 표준과 원리를 벗어나게 되면 자기 뜻이 몽땅 주의 뜻으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그럼 그 표준이 무엇입니까 오늘 이 아침에 세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주의 뜻은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이말은 성경적이 아닌것은 전부 주의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신구양 성경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까 바로 신구약 66권 성경만이 하나님의 뜻을 100% 표현한 유일한 책입니다. 이 성경에는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싫어 하시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뜻을 알기에 성경은 절대로 모자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더할 것도 뺄것도 없는 정확무오하며 완전한 책입니다. 이렇게 완전한 성경인데 누가 계시를 받아서 더하겠습니까 이 단으로 정죄된 김모 목사는 성경은 문틈에서 들어오는 빛과 같을 뿐이요 자기가 받은 계시를 더할때 비로서 성경은 완전해 진다고 했는데 이는 성경을 잘못알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둔 방의 일부만을 밝히는 문틈의 빛이 아니라 방 전체를 환히 밝힐수 있는 빛 전체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영적세계를 말하는데 있어서 완전 무결한 책입니다. 성경을 수천독한 어느 목사님이 산에 계시를 받으러 올라갔는데 마음속으로 부터 이러한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네가 66권 성경 모두를 행하고 더 행할 것이 없어서 왔느냐” “더이상 깨달을 것이 없어서 계시 받으로 왔느냐” “성경이 네 구원에 모자라서 계시받으러 왓느냐” 하는 음성이 너무나 칼과 같이 찔려서 그이후로 성경만을 중심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 사단의 자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4:2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 가 너희에게 명하는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가감하면 죽습니다. 계22:18-19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더하는 자는 이책의 재앙을 더하시겠다고 하셨고 감하는 자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하와는 하나님말씀을 더하고 뺐다가 이런 봉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만지지도 말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도 하와는 이말을 더했고 하나님은 분명히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전자는 100%죽는다는 의미요 후자는 혹 안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기에 결국은 말씀의 내용을 감해버린 것입니다.갈1:8에는 “만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늘의 처뇨사라해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가감하면 안됩니다. 성경적이 아닌 방언, 성경적 아닌 기적, 성경적이 아닌 기도나 행동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성경을 밝히 알아야 하겠습니다.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배워야합니다. 성경을 모르고는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모르고서는 주의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성경을 모르고서 어떻게 에수를 믿겠습니까 성경은 몰라도 은혜만 받으면 된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은혜생활도 성경을 알아야만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모르는 신비주의는 십중팔구 사단의 계략에 넘어가고 맙니다. 예수 믿는 것, 내맘대로 믿는 것 아닙니다. 성경대로 믿어야 하고 성경이 지시한대로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안다는 것, 그것은 믿음의 뿌리요 기초이니다. 그럼,로 이뿌리가 없는 사람은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금방 흔들립니다.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가 금방쓰러지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로 배우십시오. 그래야만 신앙의 주체성을 세울수가 있습니다. 안타까운것은 세상지식 가르치기 위해서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씩이나 갖다 주면서 성경공부위해 과외시켰다는 말을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지식 가르치는 학교선 생님은 하늘떠받듯 하지만 성경가르치는 교회 선생님은 관심 밖입니다. 한 교회안에 있으면서도 자기 자식 가르치는 선생임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자식을 무슨 신앙으로 양육하겠다고 합니까 말씀 듣는 일에 양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 읽는 일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말씀대로 사는 일에 미루지 마십시오. 말씀대로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주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2. 주의 뜻은 신앙적이어야 합니다. 이는 비신앙적인 것은 주의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신앙에도 두가지가 있는데 인본주의 신앙과 신본주의 신앙이 있습니다. 인본주의 신앙이란 자기 중심적이요 이는 항상 육의 일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나 신본주의 신앙은 하나님중심의 생활이요 이는 항상 영의 일만 생각하며 그 결과는 생명과 평안입니다. (롬 8:5-6) 비 신앙적 행동은 언제나 육신을 앞세웁니다.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인데 인본주의는 언제나 정당성과 합법성과 이론적인 것을 내세웁니다. 그래서 겉으로 볼 때는 그럴듯 하고 참인것 같지만 자기 중심이기에 하나님보시기에는 악입니다. 본문 뒷부분의 추방당한 사역자들도 바로 인본주의 사역가들이었기에 쫒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육신을 쫒는 자는 눈만 뜨면 육신의 일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재산을 많이 울궈낼까 어떻게 하면 큰집으로 이사가나”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눈만 뜨면 영에 속한 생각을 합니다. “돈 벌어서 주님위해 어떻게 쓰나 금년에는 내가 주님위해 어떤 봉사를 할까”하고 말입니다. 육신에 속한자는 교회에 대해서 왜 그렇게 불만이 많은 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자는 교회오면 왜그렇게 감사하고 또한 할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적금이나 곗돈을 탓을 때, 혹은 보너스를 받았을때도 육신에 속한자는 “옷도 사고 외식도 하고 장롱도좀 바꾸고 냉장고도 대형으로 바꾸고.”하는 생각뿐이지만 영에 속한자는 “이돈가지고 어떻게 헌금할까 어떻게 구제할까 어떻게 선교할까” 하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영에 속한 생각입니까 아니면 육에 속한 생각입니까 영에 속해 있다면 주의 뜻대로 살고 있는 것이지만 육에 속하여 있다면 주의 뜻대로 살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3. 주의 뜻은 성령님의 인도라야 합니다. 이는 성령님의 인도가 아닌것은 다 주의 뜻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실 때 이렇게 하라는 둥,저렇게 하라는 둥 동으로 가라는 둥,서로 가라는 둥.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그것 만이 성령님의 인도인줄 알고 경솔하다가 사단의 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과연 성령님의 역사가 그렇까요 성경은 예언의 역사를 어떻게 말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요16:13-14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보면 여섯가지 인도 방법이 나오는데.
첫째, 진리(말씀)가운데로 인도한다고 했습니다. 성령님과 진리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마치 기차와 레일과 같이 말입니다. 성령님은 진리를 통해서만 역사하시고 진리는 성령님을 통해서만 이루어 집니다.
둘째,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을 성령님의 지시라고 하여 아무렇게나 말을 합니다만 성령님은 절대로 자의로 말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럼 무엇으로 말씀하실까요
셋째, 오직 듣는 것으로 말씀하실 뿐입니다. 역시 듣는 것이란 말씀을 의미합니다.성경을 누가 기록했습니까 딤후 3:16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성령님)으로 된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기록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기록은 인간이 했지만 기록하는 인간을 움직이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제가 이 설교를 컴퓨터로 칩니다만 이 설교의 저자를 아무도 컴퓨터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원희라는 사람이 쳤기에 저자는 이원희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저자(모세, 사무엘.등등)는 단지 타이프같은 역할을 했을 뿐이요 진짜 저자는 성령님이십니다. 이처럼 성경은 성령님께서 기록하셨는데 자신이 기록하신 성경은 무시하시고 멋대로 마음대로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렇게는 아니하십니다. 말씀있는 곳에 성령님오시고 말씀 선포되는 곳에 성령님역사하십니다. 반대로 말씀이 없는 곳에는 악령이 오고 악령이 역사할뿐입니다.
넷째, 성령님은 반드시 장래일을 말씀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언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점장이가 하는 그런 예언은 아닙니다. 예언이란 앞으로 될일을 미리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예를 들어 말하면 “천국건설” 장래일입니까 과거일입니까 보나마나 장래일입니다. 성령님이 천국을 말씀하신다면 그것이 곧 예언입니다. 예언이라고 해서 굉장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믿으면 천국가고 안믿으면 지옥간다.”는 말씀도 예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교역자가 설교하는 모든 말씀도 다 예언입니다. 이 예언이면 됬지 또 무슨 예언이 필요합니까 “기도해보니 아무개가 어떻게 된다더라”“보았다”느니 “들었다”느니.이것만이 예언인줄 압니다. 우리 시대는 지금 음성계시나 환상계시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음성이나 환상보다 더 정확한 성경이 있기때문입니다. 사단의 역사의 특징은 선명한 음성이 들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대개 시간과 장소가 구체적입니다. 예수 재림이 몇년 몇월 몇일이라던지 어디어디에 가서 몇시에 누구에게 이번호로 전화걸어서 만나라고 한다던지 말입니다. 성경 66권은 장래일을 말한 책입니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말하기를 성경의 70%가 이미 이루어졌으며 나머지 30%도 지금 속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는 것이 왜그 렇게 미지근 합니까 추우면 춥다고 못하고, 더우면 덥다고 못하고, 환경이 어려우면 어렵다고 못하고, 또 환경이 좋으면 너무 좋아서 못하고,이래도 못하고 저래도 못하고.언제까지 이러할렵니까 새벽기도에 너무나 안나올때 저는 이런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주님이 새벽 5시에 오신다면 잠옷바람에 허둥댈 사람 많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성경에는 앞으로 되어질 일들이 빈틈없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 비밀을 모르니까 하나님은 주의 종을 세워서 이모양 저모양으로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암3:7)에 기록하기를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심판)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의 종을 통해 심판을 알리지 않고는 결코 심판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속에의 모든 비밀을 주의 종들에게 깨닫게 하시고 전달케 하십니다. 요즘에 정말로 진주 보석과 같은 하나님의 오묘한 말씀들이 대중 매개체를 통해서 사방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 이 말씀이 참으로 실감납니다. 성령님은 주의 종들에게 성경에 있는 비밀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이 강단에서 선포하는 설교를 예사롭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아무개 집사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구나.” 하며 자기와 상관없는 말씀으로 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주의 종의 설교는 모두 예언입니다. 그대로 살면 산 대로의 결과가 나올 것이요 그 대로 못살았으면 못산 대로의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포로직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이 증거하는 예언의 말씀을 예사롭게 넘기다가 멸망당했습니다. 롯의 사위도 예언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다가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롯의 아내도 예언의 말씀을 무시했다가 소금기둥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의 종의 임무는 저들이 듣든지 듣지 안듣든지 전하는데 있습니다. 저들이 망하든 흥하든 그 책임을 말씀을 들은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전하지 않으며 그 피값을 전하는 자에게 찾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니느웨성을 멸하시기전에 죽어도 안가겠다던 요나를 왜 보내셨는지 이해 하시겠습니까 왜 노아가 배를 다 짓고도 7일동안 심판을 증거했는지 아시겠습니까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제게는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듣는자가 너무나 적을 때는 이 말씀 전하기가 심히 안타깝습니다. 들어야 할자는 안듣고 안들어도 될 사람들만 앉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럴때는 저는 준비했던 멧세지를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듭니다만 “오신분들이 이말씀을 듣기 위해 왔구나”함을 깨닫고는 심장이 터지는 듯한 마음으로 말씀을 증거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당시 거짓 선지자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인기위주였고 참 선지자들이 심판을 증거할 때마다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백성들 비위나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선지자들은 매우 적었으며 그들이 외치는 심판의 말씀이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왜곡되게 전해지게 되었고 그 때문에 선지자들은 고독했고 돌에 맞기도 했으며 때로는 뭇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말세의 현상에도 바로 이와 같다고 예수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에는 신앙 지도자들이 죽어도 바른 말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 받아라 만사형통하라”는 식으로 듣기 좋은 말만하지 회개나 십자가를 지라고는 외치지 않습니다. 교인들 눈치나 보자는 것입니다. 또한 말세 성도들도 죽어도 바른말을 듣기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죄를 지적하면 거짓으로 핑개나 대고 화를 냅니다. 남의 사생활을 왜 간섭하냐는 식으로 말입니다. 참으로 답답할 뿐입니다. 딤후 4:3-4에 기록된 말세의 징조들 처럼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귀가 가렵고 사욕을 쫒아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까지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런일은 이사야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사 30:9-10)” 우리의 이 시대와 너무나 똑같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쉽게 말해서 이런 말입니다. “전도사님, 환난이 와도 온다고 하지 말고, 멸망이 와도 온다고 하지 말고, 전쟁과 심판과 유황불이 내려도 내리지 않는다고 말하세요” 라는 뜻입니다. “거짓말좀 해 주세요. 지발 심판만은 말하지 마세요. 듣기 좋은 말만 하세요” 라고 말합니다. 누가요 바로 여러분들을 포함한 현대 그리스도인이 그리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우리들은 세상에서 시달리다 왔는데 그래서 교회와서 전도사님 설교듣고 위로받으려고 왔는데 전도사님까지 그러시니 참으로 교회올 재미가 없습니다. 좀 부드러운 말로 해주십시오. 설교가 너무 깁니다. 찬송을 너무 많이 불러요. 우리도 알것 다 압니다. 때가 되면 잘하게 될것 아닙니까” 라고 말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말세의 증거입니다. 이처럼 말세에는 말씀듣기 싫어하면 소위 아이들말로 종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내 영광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하는데 만일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지 하나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영광이라면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내것을 가지고 알린다고 하셨습니다. 이도 역시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상 6가지가 성령님의 인도방법입니다. 위의 세가지 표준을 잘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신앙생활을 이 표준에 대입하면서 사심으로 모두 주의 뜻대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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