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이렇게 기도하라 (마6:9-13)

본문

우리가 주기도문의 기도 내용을 상세하게 연구하기 전에 먼저 주기도문의 전체적인 형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하나가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기도하는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원하시며 그들이 하는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도의 능력에 대해서 결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우리 입술의 무기이며 강력한 무기이다”고 랍비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귀와 마음을 자기 자녀들의 기도에 열어놓고 계심을 의심치 않습니다. 시65:2에 “기도를 들의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고 했듯이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을 때는 부자나 가난뱅이, 현자와 우둔한자, 여자나 노예가 모두 하나님 앞에 동등한 것입니다. 흔히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인간의 왕은 한번에 두 세 사람의 이야기 밖에 들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동시에 기도한다 하더라도 그들 모두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인간과 달리 하나님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결코 진력이 나는 일이 없다”라고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이 드리는 기도에 싫증을 내는 일이 결코 없다는 말입니다.
1) 그러나 기도에는 삶이 따라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우리 삶의 최고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신앙고백적인 모습이 바로 기도하는 삶입니다.
2) 특히 주기도문에 따르면
1기도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는 것이며
2매일의 삶 속에 관여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사랑을 노래하는 것
3장래의 크고 작은 모든 소망이 오직 주께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4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 자신이 도구로 사용되기를 기뻐하는 노래이며 5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의지와 욕심이 성령님의 뜻에 굴복당하기를 원하는 순종과 복종의 표시입니다. 그러나 현대 신앙인들의 잘못된 삶의 모습 가운데 하나가 기도에 대한 오해입니다.
1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도 괜찮은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기도를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3기도를 전시효과나 자신의 의(선행이나 구제나 공로)를 알리고 공포하는 매개체로 삼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러한 모습이 더욱 심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방법과 기도의 목적과 기도하는 삶에 관해서 가르쳐 주시기 위해 소위 주기도(the Lord's Prayer)를 모든 기도의 모본(sample)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
1.주기도문은 기도인가 주문인가 보통 “주기도문”이라고 말할 때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오해의 소지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 중의 가장 큰 잘못은 주기도문이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주문(샤머니즘에서의 액운을 몰아내고 복을 비는 암송어귀)처럼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샤머니즘과 각종 무속신앙 속에서 자란 한국 기독교가 샤머니즘적 요소를 완전히 배격하지 못한 모습이 기도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주문이 아니며 결코 주문이 될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 앞에서의 대화요, 신앙의 표시요, 감사와 찬양과 간구인 기도가 주문처럼 이용되는 것은 무서운 불신앙적 행위입니다. 결국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모본인 주기도움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구속받은 그의 백성과의 가장 친밀하고 올바른 관계의 정립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요, 삶 그 자체입니다
2.주의 기도인가 제자들이 기도인가 주기도문의 유래에 대해서는 마태복음에는 언급이 없으나 누가복음(11:1)에는 그 언급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복음서 부분의 앞 뒤 부분과 주기도문의 전체 내용을 살펴볼 때 이 기도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이 기도의 모본이 나오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기도를 잘하기 위해 만들어져 오랜 기간동안 전통으로 내려온 기도하는 형식과 방법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 비친 그들의 기도의 모습과 생활은 위선과 형식만이 남아 있을 뿐 기도의 참 의미와 기도의 참 목적은 사라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잘못된 기도의 방법을 지적하고 올바른 기도의 자세를 가르치셨습니다. (마6:5-8). 이 일이 있고난 후 제자중의 하나가 예수님의 기도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 세례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본을 가르쳐 준 것처럼 기도의 모본을 가르쳐 달라고 주님께 부탁했습니다. (눅11:1). 따라서 흔히 말하고 불리어지는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제자들이 해야 할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주의 기도’이지만 제자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기도의 모본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제자들의 기도” 또는 “제자의 기도”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 기도의 모본을 주문처럼 외우는 문장으로만 그친다면 기도의 또 다른 잘못된 형식만을 하나 더 만들어낸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형식은 내용을 담아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그 형식이 내용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 형식은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용이 없는 형식만의 전달은 바리새인들의 경우처럼 외식과 위선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마치 값진 보석을 선물할 때 보석을 잘 보관하고 전달하기 위해서 보석 상자를 아름답게 장식할 필요는 있겠지만 선물 받는 사람이 보석에는 관심이 없고 보석상자에 관심을 가지며 그것만 애착을 가지는 것은 우습고 비합리적이며 상식적이 아닌 것처럼 ‘주기도문’은 모든 기도의 모형이며 “주님의 기도”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를 올리기 위한 일종의 형식이며 제자들에게 가르쳐 행하게 하신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3.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특징(목적)
첫째,기도의 중심과 주체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즉 모든 기도는 자기 중심적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 가장 큰 잘못은 그 기도가 대부분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유익과 평안만을 위한 기도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에 나타난 기도의 참 모습은 “기도의 구심점으로서의 하나님”께 모든 기도의 내용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3) 즉 기도의 내용이 언제나 하나님의 성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높힘으로써 하나님이 자신과의 올바른 위치에 놓이게 되고 이 경우 만이 다른 모든 것들도 제 위치를 유지하는 올바른 삶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둘째,기도의 내용과 목적은 반듯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존엄과 영광 및 하나님의 우주 창조 목적을 상기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다시 모든 통치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로 되돌아 가는 것으로 끝 맺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기도는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욕심과 목표를 성취시키기 위해 고집을 부리는(때로는 악을 쓰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을 생애 최고의 기쁨으로 삼겠다는 순종과 봉사와 감사와 찬양의 신앙표시이며 생활 자체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를 통해서만 자신의 욕심이 정하되고 삶이 깨끗해 질 수 있으며언제나 하나님의 뜻안에서 살게 되는 능력을 공급받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기도하지 않는 성도의 삶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주기도문은 모든 기도의 모델로서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삶이 항상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방향제시입니다.4) 우리는 기도를 통해여 우리의 필요만을 채우기 위해 급급한 나머지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기회를 드리지 못하면 일방선언일 뿐이며 그것은 결코 “대화”로서의 교제와 기도는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게로 향하게 놓음으로써 기도의 시작과 끝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구조와 여섯 가지 기원 주기도문은 내용상 전체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각 부분은 세 가지의 기원(청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영광
2나라이 임하옵시며
3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 주기도문
1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을 주옵시고 자신과 이웃의 행복
2이웃을 용서하고 하나님께 용 서 받게 하소서
3시험과 악에서 구하옵소서. 주기도문의
첫째 부분을 통해여 자신의 의지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기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의 욕망에 하나님의 뜻을 묶으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신 거룩한 뜻이 피조물인 자시느이 삶 속에서 이루어 지기를 소원하는 청원입니다.
둘째 부분은 이 땅에서 사는 자신의 삶 속에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 요소의 청원이며 이것까지도 하나님의 영광 아래서의 자신의 행복과 이웃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특히
둘째 부분의 세 가지 청원은 현재, 과거, 미래의 모든 삶의 영역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는 의미가 강합니다. 즉 현재 삶에 필요한 양식, 과거를 위한 용서, 미래를 위한 도움 등 삶의 전 영역이 하나님께 맡겨지는 것으로서 기도은 삶 그 자체를 천지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모두 맡기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 가지 간구 속에는
첫째가 성부 하나님의 공급,
둘째가 성자 하나님의 죄 용서,
셋째가 성령님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이 나타남으로써 자신의 모든 생명에 관한 것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각주)-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의 친구는 그를 친절하게 맞으며 그를 소파에 앉도록 했다. 그가 다시 방문하자 이번에는 그에게 의자를 권했고 그 다음에는 간이 의자를 내 주었으며 다시 찾아오자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간이 의자가 저기 있으니 가져다 앉게”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2)시편 105편 이하의 다윗의 모든 기도의 시는 감사와 찬양을 여호와께 돌리는 신앙고백이며 동시에 구원과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3)Willam Barclay,-원을 그릴 때 구심점이 있어야 하듯이 기도의 구심점은 하나님임을 강조 4)William Barclay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86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