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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기도 (마6:12-13)

본문

기도는 시대의 변천이나 환경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살아가기가 어려울 때, 가난할 때, 생활이 곤궁할 때는 대부분의 기도 내용이 먹는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때는 먹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우리들의 기도가 대부분 그런 내용의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먹는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이제 먹는 문제는 그다지 시급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의 기도는 먹는 문제가 아니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입니다. 오늘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우리드이 세상을 살면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이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모범 기도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주기도문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이 구절은 특히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필하는 말씀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무엇보다도 시험에 들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현대인의 가장 절실한 기도입니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시험거리가 많은 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현대인들에게 찾아오는 시험과 유혹은 대부분 다음의 몇 가지 경로로 찾아옵니다.
1. 하나는 마음으로부터 옵니다. 모든 시험의 출발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모든 시험의 일차적인 원인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에 이 시험의 씨를 뿌리고 다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속을 보면 온갖 시험의 조건이 되는 불신, 의심, 불화, 교만, 욕망, 성공, 출세, 화려함 등의 씨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이것들이 들어 있다가 유사시가 되면 일제히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험을 받고 유혹을 당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현대인들에게는 성공 콤플렉스가 다 있습니다. 모두 성공하려고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야망이 온 마음을 다 채우고 있고 정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 성공을 향해서 오늘날 사람들은 정신 없이 뛰어 다니고, 빨리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바리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또 남들보다 더 빨리 성공해 보려고, 남들보다 더 빨리 앞서가 보려고 편법도 써 봅니다. 그러다가 성공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이나 조건이 주어지기만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듭니다. 어떤 젊은이는 “내가 성공할 수만 있다면 사탄에게 내 영혼이라도 팔겠다” 고 겁없이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시험은 마음에서부터 오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마음에서부터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내 마음속에는 두 개의 내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마음이 서로 싸웁니다. 서로 전쟁을 합니다. 부지런한 나와 게으른 내가 싸웁니다. 용감한 나와 비겁한 내가 싸웁니다. 선한 나와 악한 내가 싸웁니다. 성실한 나와 거짓된 내가 싸웁니다. 너그러운 나와 옹졸한 내가 싸웁니다.
현명한 나와 어리석은 내가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내 마음속에는 천사도 들어 있고 악마도 들어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경건도 들어 있고 음탕도 들어 있습니다. 선한 지킬 박사도 들어 있고 잔인한 하이드도 들어 있습니다. 청순한 마리아도 들어 있고 음탕한 카르멘도 들어 있습니다. 순결한 비둘기도 들어 있고 간교한 여우도 들어 있습니다. 이 둘이 서로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속은 전쟁터입니다. 그러니 현대인들이 얼마나 고민이 많겠습니까 현대인들은 모두 갈등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비명을 지르기를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하고 고뇌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주여 나를 자신으로부터 구원하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싸움 중에서 가장 힘든 싸움은 이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싸움을 “선한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힘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힘이 바로 주님께로부터 오는 힘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힘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권고입니다. 특히 오늘 현대인들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2. 다음은 눈을 통해서 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시험은 자신으로부터도 오지만 외부로부터도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그 시험은 주로 눈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오늘 현대의 문화는 모두 눈으로 보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볼거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밤거리를 다녀 보십시오. 얼마나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들이 많습니까 이제는 한국의 밤도 관능적이고 환락적이고 노골적입니다. 영화를 보아도, 비디오를 보아도, 책을 보아도, TV를 보아도, 잡지를 보아도, 거리를 지나면서 보아도 모두 선정적인 것들뿐입니다. 영화관 앞을 지나다가 간판을 보십시오. 모두 벌거벗은 모습입니다. 아주 야릇한 장면을 그려 놓았습니다. 재미라는 것은 약간 보일 듯 말 듯 해야 그게 멋이고 재미인데 이제는 완전히 다 벗겨 놓았습니다. 이제는 견극에서도 벗는다고 합니다. 다 벗은 비디오는 얼마든지 사다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사도 볼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의 청소년들은 방에 앉아서 컴퓨터만 켜 놓으면 그렇게 야한 장면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참 무서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유혹은 대부분 이렇게 눈을 통해서 옵니다. 눈으로 봄으로써 유혹이 옥, 보고 나면 조용하던 마음속에 일대 충동이 일어나고, 그러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적인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는 오늘의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이 유혹을 받고 걸려들어 넘어지는지 아십니까 오늘의 풍조가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여성들은 옷을 입어도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것을 여성들은 표현의 자유니 개성시대니 하고 항변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멋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멋 이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유혹거리가 되고 시험거리가 될 수 있다느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충동을 일으켜 사고를 낼 수도 있습니다. 핫 도그라는 말은 “뜨거운 개”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뜨거운 개가 어디 있습니까 이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빨갛게 생긴 소시지에 토마토 케헙을 발라 먹으면 개들이 야단입니다 먹고 싶어서 침을 흘리고 짖어대고 식식대며 발광을 합니다. 개가 그 핫 도그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핫 도그라고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뜨거운 개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핫 팬티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닏. 여자들이 짧은 바지를 입는데 그 바지를 “핫 팬티”라고 합니다. 뜨거운 바지라는 뜻입니다. 왜 뜨거운 바지냐, 핫 도그를 보면 개들이 사죽을 못 쓰듯이 남자들이 핫 팬티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마음속에서 이상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이름을 “핫 팬티”라고 지었습니다. 가끔 충동에 의해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거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누구를 탓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유혹이나 시험은 눈으로 봄으로써 옵니다. 오늘 청소념들이 집에 가기는 싫고, 공부는 안 되고, 학교생활은 재미가 없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그래서 길거리를 무작정 배회합니다. 거리에 나가 보면 이런 아이들이 많습니다. 가정에서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학교생활에 적응이 되지 않는 아이들은 모두 길거리를 배회합니다. 배회하다 보면 보는 것이 많습니다. 갈 곳이 많습니다. 이 아이들이 그런 환경에서 쉽게 충동을 일으킵니다. 그러니까 여중생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러는 것입니다. 모두 눈으로 유혹을 받고 시험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렇게 눈으로부터 시험을 당하고 유혹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사치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치도 눈으로 봄으로써 시작됩니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사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남의 모습을 봄으로써 비교 의식이 생겨서 사게 되고 입게 되고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백화점에 가 보면 잘 보이는 곳에 물전을 펴 놓지 않습니까 보면 사게 되어 있습니다. 보게 되면 지금까지 마음속에 조용히 있던 인간의 허황됨과 사치성이 혼란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사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오늘은 이렇게 유혹이 많은 시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당부입니다.
3. 또 유혹은 머리를 통해서 옵니다. 오늘은 이상한 사상들이 많습니다. 아주 잡다한 사상들이 오늘 현대인들의 머리를 혼돈시킵니다. 요즘 책들이 홍수처럼 출판되고 있고 잡지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지만 책이라고 해서 다 유익을 주고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책은 읽는 이에게 독소 같은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요즘 세상은 눈을 통해서 시험을 주기도 하지만 머리를 통해서 시험을 주기도 하고 정신을 오염시키기도 합니다. 또 요즘에는 미신이 그렇게 극성을 떨고 있습니다. 충남의 어느 대학에서는 정식으로 풍수학이 생겼고 무속학과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별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 가면 무당과도 생길 것입니다. 무당춤이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이 된 마당에 무당과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무당과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당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젊은 여성은 TV에서 말하기를 남자 친구를 사귀어 오다가 결혼을 하게 되어 사주팔자를 보니까 점괘가 좋지 않게 나와서 미련 없이 헤어졌노라고 말했습니다. 놀랄 일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이렇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젊고 늙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이렇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환생설이라는 것까지 등장해서 세상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전생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의 삶은 전생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사람이 병들면 전생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서 고쳐 주는 정신과 의사까지 생겼습니다. 아주 황당한 이야기들입니다. 오늘의 풍조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젊은이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사상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소위 다원주의 신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원주의 신학은 쉽게 말하면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종교에서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사상입니다. 불교에도 구원이 있고, 천도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최재우를 일컬어서 최메시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을 다른 종교의 학자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의 신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도 인정해 주고 서로 교류하고 대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사상은 앞으로
2,30년만 지나면 우리 교계에 보편화될 것이라고 합니다. 참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시대가 가면 갈수록 별 사설들이 다 난무할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머리가 이렇게 복잡합니다. 별 소리를 다 듣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소리를 처음 들을 때는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고 이상하게도 생각되는데 자꾸 들으면 나중에는 이상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들을 만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풍조가 가장 무서운 시험입니다. 이렇게 오늘 현대인들은 머리로 시험을 받고 유혹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먹는 문제보다도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4. 시대적인 풍조에서 오기도 합니다. 오늘 현대는 불신의 시대입니다. 인간 중심의 시대입니다. 오늘날은 경건의 모양조차도 점점 없어지고 순전히 인간적인 것들만 활개를 치는 세상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전하고 생활이 풍족하다 보니까 이런 풍조는 갈수록 더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자꾸만 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주일날도 운동을 하고 여행을 가고 모임에 참석하느라고 자꾸만 빠집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주일날도 사업에 매달려서 성공해 보겠다고 정신 없이 일을 합니다. 출세해 보겠다고, 경쟁에서 이겨 보겠다고, 남들보다 앞서 가겠다고, 돈을 벌겠다고 밤낮없이 일을 합니다. 그래서 주일이고 신앙이고 없습니다. 현대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시대입니다.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병원의 중환자실로 실려 들어가는 날, 그날에 가서야 모두 정신이 번쩍 들 것입니다. 그때 가서야 비로소 하는 말이 “그게 아니었구나”하고 하염없이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잔칫집에 가지 말고 초상집에 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초상집에 가 보십시오. 거기 가 보면 인간의 참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인생에게 무엇이 더 소중하고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 보면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정신이 들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너는 지난 여름에 고향에 있는 가족 묘지를 가서 둘러보았습니다. 묘지에 조상님들이 일렬로 누워 계십니다. 맨 위에 외조부 내외분이 누워 계시고, 그 아래에 부모님들이 누워 계십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우리 내외가 들어갈 자리가 준비되어 있을 만큼 큰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서서 생각해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일는지 모르지만 나도 세상을 떠나면 바로 이 자리에 묻히겠구나. 그러면 내 아들도 와서 지금 내 모습처럼 이렇게 서서 무덤을 보고 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공, 출세, 경쟁, 쾌락, 다툼, 욕망, 욕심,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죽는 마당에 성공, 출세, 욕망, 욕심, 다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죽는 마당에 성공, 출세, 욕만, 다툼이 다 뭡니까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철난 사람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덜 중요한 것을 위해서 정신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갈등하고 다투고 밤잠을 설치고 건강을 해치며 살아갑니다. 우리들이 좀 조용하게 생각해 보면 모두 부질없는 것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대를 살면서 좀 냉철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죽음 앞에 서 있을 때 진실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비로소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찾아가게 되고 영적으로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당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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