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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의 복 (마5:8)

본문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 요"-마 5:8 얼핏 생각하기에는, 이 위대한 말씀에서 묘사된 인격 또는 여기 에서 주어진 약속이 앞의 말씀들보다 사람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 지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마음이 청결한 자":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을 볼 만한 인격이나 또는 그 눈부신 광 채를 즐거운 마음으로 참을 만한 인격을 소유했노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저회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지금까지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인 하나님을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행될 수 없는 요 구로 우리를 조롱하고 실현 될 수 없는 소망을 우리 앞에 매달아 놓으셨단 말인가 만일 전쟁에서 두 다리를 총에 맞아 쓰라린 상처를 입고 누워 있는 사람에게 `당신이 일어나서 달려가기만 한다면 안전해 질 것' 이라고 말헤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들에게당신 의 현 상태가 정 반대로 바뀐다면 무척이나 복될 것이라고 말 헤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리스도는 이과 같이 어리석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말씀은, 너무나 고차원적이고 거리가 먼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 예수님의 입술에서 나온 말씀 가운데 지극히 희망적이고 밝 은 내용을 담고 있는 말씀이다. 이 위대한 말씀에는 우리가 주목할 만한 내용이 세 가지 있다 고 본다:마음은 어떻게 청결해 질 수 있는가, 청결한 마음이 어 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하나님을 보는 것이 어떻게 순전한 행복이 될 수있는가.
I 마음은 어떻게 하면 청결해 질 수 있는가 앞의 말씀들에서, 8복의 의미에 내포된 비밀들을 열어주었던 열쇠가 여기에서도 특히 필요하다. 앞서 지적한대로 이것을 하나 의 고립된 말씀으로 간주하면 이 말씀은 조롱거리와 고통거리가 되고만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청결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상태를 인식하는 영의 빈곤, 그 상태의 심각성과 절망적 모습으로 인해 일어나는 통회와, 의에 대한 갈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천국에 대한 사모와 회개의 눈물이 마르고 주어지는 위로,믿음 으로 인해 주어진 의인이라는 자격이 주어질 그 때만 마음이 죄 악과 교만에서 깨끗해지고 눈이 열려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눈부심 없이 바라보게 된다. 본문의 말씀은,홀로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한다면 질망감만을 느끼게 한다. "구스인이 피부를 변하게 할수 있고 표범이 반점을 변하게 할 수있는가"(렘13:23). 붙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빛깔을 변 화시킬 수 있다. 본문을 기타의 8복과 비교해서 생각해 볼 때, 마음의 순결은 인간 행위의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결론 이 나온다.
개혁과 자기 성찰은 죄에 대한 자각, 죄에 대한 통회 , 신적 선 에 대한 갈망과 이러한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개방등과 함께 시작되어야한다. 그리고 오직 그렇게 할때만 우리가 마음의 순결이라는 이 고요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이 방법에 의해, 오 직 이 방법에 의해서만'깨끗한 것'이 '부정한 현실에서' 나을 수 있으며, 죄악으로 더러워진 인간, 모든 악의 원천인 사탄의 결박 에 매인 인간이 깨끗해지고 청결해지고 해방될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모든 인간 행위의 목적, 목표, 동기, 힘 , 보상이 되신다. 의는 선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회심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조건으로 하여 하사되는 선물이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순결을 향한 갈망은 일상 생활에 서 무수하게 억압받고 좌절당하고 벽에 부딪힌다. 그 갈망은 확 실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갈망이 완전히 충족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더러워진 빈 손을 하나님 앞에 높이 들고 나아가 이 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께서 명하시는 것,그 깨끗한 마음을 내게 주소서. 그리한 면 내가 깨끗해 지리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이 선물은 단번에 영구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 갈망이 있을 경우에 한해 계속적으로 주어진다는 것과, 이 선물을 우리가 자신의 신 앙을 통해서는 물론 노력을 통하여 삶 속에서 활용하고 인격 속 에서 살아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들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 자'(고후7:1). 이 선물을 가진 자마다 그가 깨끗하신 것처럼 자신을 깨끗케 한다. 우리에게 중생의 선물을 가져다 주시는 주께서는 우리 모 두를 정결한 물이 담긴 샘으로 부르신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여 너회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 라"(사 1:16)."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를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 니라." 우리는 믿음을 통해, 순결케 하는 권능을 받고 부지런한 행위를 통해 이 능력을 사용한다. 믿음과 행위는 나눌 수 없다.
II 순결한 마음이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사람들은 이와 같은 본문의 설교릏 들을 때 어떤 깊은 신비 속 으로 빨려 들어가기 쉽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고 명백하고도 실질적 형태로 이 본문을 다루고자 한다. 물론 다음과 같은 사실은 여러분에게 상기시킬 필요가 없겠다. 무엇이냐하면, 본문에서 말하는 문제(하나님을 본다는 것)는 눈 으로 볼수없는 하나님을 오감에 의해 인지한다는 의미거나무한하 신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충분하게 알고 파악한다는 의미가 아니 라는 것이다. 인간이 불타는 태양의 중심부에 짧은 팔을 뻗칠 수 없듯이 무한하신 하나님도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죄인들이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해 청결해질 때 '하나님을 본다'라는 이름을 불일 만한 어떤 직접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능히 이 룩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판계는 오감에 의헤 하나님을 보는 것 못지 않게 확고하고 확실하고 뚜렷한 인식을 가져 다 준다. 청결한 마음이 청결의 아버지 하나님을 봄에 있어서는 오감의 착각이라는 것이 존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와같은 성경 말씀들을 해석할 때는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즉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가 천명하셨던 그 위대한 원리에 따라 항상 안내와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영원 전부터 말씀(word) 이 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셨던 예수그리스도는, 영세 무궁토록, 그 이름이 시사하는 바로 그러한 존재로 살아계신다. 즉 영원한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존재라는 뜻이다. 자연과 섭리에 대한 명상에 의해서나 자기 영의 직관에 의헤서나 인간의 마음 속에 신에 대 한 어떤 섬광 이나 불꽃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언제나 "세상에 와 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그 빛"의 작용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적 계시의 한계 를 훨씬 넘어, 그 영원하신 말씀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깨딛는 지 식의 빛을 비추고 계셨다. 인간들의 희미한 눈은 이를 식별할수 있는 감수력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한 그 역사적 나타내심의 광채가운데 서 있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본 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 으로 인식하고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이를 견신이라 부르든 아니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과의 교통이라 부르든 혹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식의 은유를 사용하든 결국은 모두 같은 것이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의식,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자각,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대한 복된 확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가까이 오신 하나님과의, 마음. 가슴, 의지, 행동을 통한 교제인 것이다. 그러한 자각과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교제를 위해 마음의 청 결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우리가 알다시 피 이는 어떤 독단적 요구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상 필연적으로 내재되어지고, 수반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존제인가를 잠간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오직 마음의 청결만이 실질적으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에 들어갈수 있다는 것을 깨 달을 것이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는가"(암 3:3). 지극히 작은 죄일지라도 우리로 부터 하나님을 차단시킨다. 아 주 적은 분량의 염료가 수마일의 강물을 오염시켜서 푸른 하늘과 반짝이는 별들이 반사되지 못하게 만든다. 지극히 작은 악일지라 도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시야로부터 차단시키고 흐 려지게 만든다."마음이 청결한 자"가, 그리고 오직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III.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 왜 복인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고요 한 권능과 행복이 넘치는 높은 수준으로 우리의 끌어 올려줄 유 일한 수단이 된다. 태양이 하늘로 솟아 오를 때 별들이 얼굴을 가리고 희미하게 사라져가듯이, 하나님을 보는 것은 지상의 온갖 현란한 허상들을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 대한 주인, 세계에 대한 지배자, 시간과 오감과 우주를 다스리는 왕"으로 만들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굳게 붙잡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그리스도 안 에서 아버지 및 성령님과의 교제를 누리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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