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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케 하려 왔노라 (마5: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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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40일 새벽 특별 기도회의 12일째 아침을 맞이해서 완전케 하려 왔노라는 제목으로 마5:17-20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실상 유대 정통 율법 교리에 의해서 살아온 유대인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예수님의 교훈은 혁명적인 말들로 들리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어려움과 율법에 대한 가능성 없는 자기들의 부족으로 자포자기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말을 들을 때에 쉽고 가능성이 있겠다 하는 이런 생각을 가진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통 유대교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대한 질투와 시기, 그리고 경계심을 가지고서 결국 어떻게 해야지만 저의 인기를 전락시키고 우리의 정통적인 유대교의 권위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하는 이런 적지않은 음모를 가지게 됨을 예수님이 모를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아침 하신 말씀에“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페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케 하려 왔노라”고 말씀함으로써 율법과 선지자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이 말씀으로 오해를 풀기 원하는 이런 어떤 의미도 담겨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케 하려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삶의 생활이 불완전한 삶에서 완전한 삶으로 이루어져 갈 수 있는 이런 귀함이 이 아침에 우리와 함께 하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여기 율법이나 선지자라고 하는 말은 구약을 대표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1.율법이나 선자자(구약) 폐하려 오지 않았다. 구약에 율법이나 선지자 그 내용에 대체적으로 크게 세가지의 법으로 구성되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제사의식에 속한 의식법.(Ceremonial Law)입니다. 크리모니 알로(Ceremonial Law)라고 하는 것은 의식법 그러니까 제사는 어떻게 드려야되는지, 속죄제, 속건제, 번제 이런 것들의 의식법에서 말하고 있는 소위 레위기서의 주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제사 의식에 속한 의식법은 사실 그 의식 자체가 오실 메시야에 대한 그림자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림자격이 메시야의 본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오심으로써 이 제사 의식법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민법과 형법(Judical Law죠지 칼로)입니다. 가령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야만 된다. 혹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 이런 민법, 형법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도 사실상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주님이 오시어서 십자가에서 모든 만인들의 죄를 대신하시고 돌아가심으로써 죄과를 치루어 보상해 주었기 때문에 이 법도 주의 십자가로 완성케 하신 것입니다.
3.도덕적인 법(Moral Law모랄로)입니다. 윤리적인 도덕적인 법!!,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성문화시킬 수 없는 어떤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 십자가로 모든 것 을 완성하심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도 문제를 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약에 있는 제사 의식에 속한
1의식법이라든지
2민법이나 형법이라든지
3도덕적인 윤리의 법에 대한 이 율법과 선지자를 주님이 페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율법이나 선지자 즉 구약을 완전케 하러 오신 주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식법이라든지 민법과 형법이라든지 도덕직인 이 법률은 어떻게 주님은 완전케 하시기 위해 오셨느냐, 어떻게 하여 그것을 완전케 하실 것인가,
2.율법이나 선지자(구약) 완전케하려 오셨습니다.
1.그의 교훈으로 완성케 하십니다.(W.Perkins퍼 킹스의 정의) 즉, 율법을 완성케 하기 위하여 농부에게는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농사짓는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천국은 마치 씨 뿌리는 비유와 같다. 어떤 사람이 씨앗을 뿌렸더니 더러는 길짝 밭에 더러는 돌짝밭에 더러는 가시덩굴 밭에 더러는 좋은 밭에 떨어졌다. 어떤 사람이 씨앗을 뿌리러 갔는데 씨앗을 뿌렸는데 누가 몰래와서 가라지를 뿌렸다. 가라지와 씨가 함께 자라매 혹 가라지를 뽑으려고 하다가 좋은 씨를 뽑을까 하여 그냥 추수때까지 두었다가 이처럼 농사짓는 농부들에게는 농사짓는 이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쉽게 진리를 가르쳐 주는 교훈을 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만이 권위있게 자기들만 알고서 점점 어렵게만 만들어 우리는 저렇게 엄한 법만 따라서 살 수가 없어 가능성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한 상태에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농사짓는 농부들에게도 얼마든지 가능성 있게끔 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씀의 교훈을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누구도 다 포기하지 아니하고 지켜 나갈 수 있는 완전케 하시기 위한 교훈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기잡이 하는 어부들에게도 어려운 말을 쓰지 아니했습니다. 고기잡는 비유를 들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여 고기잡는 어부에게는 거기에 해당하는 말로 쉽게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렵게 교훈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괜히 율법을 어렵게 해석을 하고 어렵게 적용을 시키기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거의 포기한 상태였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포기한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면서 어부들도 농부들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이런 쉬운 교훈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케 하신 모습을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때에 참 성경을 어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 은혜를 받고 마음문을 열고 귀를 활짝 열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받게 되어질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무척 쉽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물가에 물 길러 온 여인에게 물을 한모금 달라고 한 그 말씀부터 시작한 말씀은 “이 물을 먹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물한그릇 얻어먹고 안얻어먹고로 그친 것이 아니라 영생의 샘에 대해서 가르쳐 주심으로 말미암아 사마리아 성을 온통 구원의 역사로 나타나게 되었던 이러한 일들은 모두다 주님의 교훈을 통한 말씀으로 완성케 하신 모습이었습니다.
2.자신의 인격을 통하여 완성케 하십니다. 신의 인격을 통해서 완성케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의 궤휼에 온전하고 영속적인 순종을 해하시고 율법의 형태를 당하시며 그의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 죽으심을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완성케 하시는 자신의 인격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성자 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시어서 친히 인간들에게 의의 본을 보이시기 위하여 할례를 받기도 하시고 세례를 받기도 하시고 철두철미하게 인간의 제도에 따라서 그는 의를 이루어 나갔던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무엇을 파괴시키면서 나를 따라 오라가 아니라 당신이 친히 의를 이루기 위해서 인간의 제도를 순응해 가면서 인격적인 모습으로서 우리들에게 그의 인격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도“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주님은 말씀 했습니다. 주님의 인격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케 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주님의 성품을 닮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인격을 보고서 그 인격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인격화되어져 가는 모습으로 우리의 인격도 바꾸어져가야안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에 이르기까지 우리이 인격이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그 푯대를 향해서 늘 항상 줄달음질 칠 수 있는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도록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신 주님은 어떻게 율법을 완전케 하실 것입니까
3.우리를 통하여 완성케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택한 백성안에서 그들의 마음의 믿음을 나누어 줌으로써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율법을 완전케 하신 그리스도를 붙잡게 되고 또한 그들에게 자신의 영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로 하여금 율법을 사랑하게 하고 율법에 복종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버림을 받을 사람들 안에서는 그들에게 율법은 저주로 행하게 되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우리는 주의 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완성케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된다. 그것이 누구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다. 나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되어져 가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되겠다 이런 말입니다. 주님 자신만 깨달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다같이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대로 행하여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이 그를 붙잡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는 이러한 축복의 삶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는 주인고으로부터 비켜 나가는 이런 사람이 되어진다고 할 것 같으면 이일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여 나를 통해서 이루게 해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주시옵소서, 이런 아름다움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3.율법이나 선지자(구약)을 대 할 때 주의하라
1.천지 없어지기전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18) 오늘 본문 18절은 말하기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 일점일획이라고 하는 말은 ONE JOT OR ONE T
ITTLE라고 하는 말을 썼습니다. 이단의 특성은 하나님 말씀외에 더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에서는 말하기를 이 예언의 말씀을 자기 임의대로 더하는 사람은 그 사람도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도 빠짐이 없이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우리가 한 점 한 획도 소흘하게 다루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따라가는 그런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성을 우리가 인정하고서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 분변성을 우리가 믿고서 그 말씀대로 나가게 되어질 때에 이 말씀을 통한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 하나님은 놀랍도록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뿐만아니라 이 말씀을 대할 때 우리가 주의해야 될 사실은 천국에서 작은 자와 큰 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19절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그런 사람은 지극히 작다. 자기 마음대로 빼고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 말씀을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이 그대로 믿고 그대로 따르는 자가 복이 있고 그것이 진리를 따르는 성경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믿는 그것이 큰 자가 되는 것이다
2.천국에서도 작은자와 큰자가 있습니다.(19) 그랬습니다. 여러분 큰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작은 자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분명히 눅19:16에 보면 열고을을 차지할 사람이 있고 19:19에는 다섯고을을 차지할 사람이 있다고 함으로 말미암아 천국에서도 큰 자와 작은 자가 있습니다. 부끄러운 구원을 얻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넉넉한 구원을 얻은 사람이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는 이런 아름다움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열고을 권세를 차지할 수 있는 믿음, 넉넉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얻을 수 있는 믿음. 이러한 믿음이 어떤 사람이냐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말씀이외의 것을 더 가하는 자라든지 말씀을 더 감하는 자들이라든지 이런 자들의 말을 따라가는 어리석은 연약한 자가 되지 말고 말씀대로 가르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 가르침을 따라서 우리도 천국에서 모두다 큰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우리가 마지막
3.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갈자가 있습니다.(20,눅18:12) 20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겠다는 말씀에 의해서 우리가 상당히 주의 해야할 점이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형식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편파적인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형식과 편파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주님은 마태복음23장에서“ 화있을 지어다, 화있을지어다, 화있을지어다”하고서 일곱번에 걸쳐서 계속 그들의 잘못된 형식과 편파와 자기 이기주의를 책망한 것에 대해서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의 주인공이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저들이 형식과 편파와 자기유익에 거하여 있으므로 말미암아 주님께서는 그러한 성전은 돌 하나도 남김이 없이 다 무너뜨림을 당하게 되어질 것이라고 마태복음24장에서, 23장에서는 그들의 일곱가지 화를 지적한 후에 바로 그 성전을 나오면서 그 성전이 무너뜨림으로당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씀은 역사적으로 그대로 응하여 AD 70년 로마 피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에 예루살렘 성전은 돌위에 돌하나도 남김이 없이 완전히 무너뜨림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의 잘못을 다 지적했는데
그런데 주님은 또 여기서 이런 말을 했단 말인가 그들보다 기본적으로 나아야지만 너희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는 이말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이 말입니다.
눅18:11-12에 바리새인들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기도를 하고 또 철저하게 심지어는 약초 뿌리 하나 까지도 헤아려 어김이 없이 십의 일조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합니다. 마23:5에 그들의 몸에는 경문을 넓게 하여 성경 말씀을 길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금식을 일주일에 두번씩을 합니다. 철저하게 약초뿌리 하나까지도 어김이 없이 하나님 앞에 십일조로 가려서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철저하게 외우고 말씀을 늘 항상 그들의 몸에 지니고 다닐 정도로 철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바리새인보다 나았나. 우리가 과연 얼마나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생활하고 있고 십일조 생활을 얼마나 철저하게 하고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내 마음속에 정말로 간지갛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어떨때는 사실 바리새인, 서기관들에 대해서 우리가 외식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 자신들이 그들보다도 못한 점들이 많다는 사실이 대해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보다 낫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 말을 우리가 생각을 잘 하면서 우리도 그들보다 더 철저히 금식하고 우리도 그들보다 더 철저히 십일조 생활하고 우리도 그들보다 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속에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아니하면 않되겠다는 말씀을 우리가 잘 주의해 들어야만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철저히 하나님 앞에 금식하여 기도합시다. 철저히 하나님의 앞에 십의 일이 아니라 십의 이조, 십의 삼조로 하나님 앞에 드립시다.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내몸에, 내 마음 속에 간직하여 말씀 앞에 살아갈 수 있는이런 삶의 생활이 우리의 삶이 되어지기를 진심으로 축원하는 것입니다.
마23:3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를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한다고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들이 한 말을 행하라 그랬습니다. 오늘 아침 주신 말씀을 통해서 말씀의 교훈과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살아가게 힘 주시옵소서. 말씀을 철저히 지키는 자가 되어 천국의 큰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보다 나은 의로움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게 하사 천국백성 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좋은 아침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좋으신 우리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귀한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우리가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삶의 온전함이 우리의 생호라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의 성품화되어져가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믿음의 철저한 생활이 우리의 삶의 되어서 결단코 천국에 못들어가는 자가 한사람도 없도록 주님 축복해 주시옵소서. 오늘 아침도 박복숙씨 하나님 앞에 감사예물 드렸사오니 주께서 받으시고 그의 손길을 만복으로 축복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어느곳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주께서 도우시는 삶가운데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게 하시고 하나님 우리의 삶전체를 받으시고 하나님 우리에게 한없는 축복으로 가득히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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