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자 (마5:1)
본문
가난함의 의미는 지친모습의 발로의 시작의 첫걸음일 것입니다 가난의 의미는 더욱더 우리의 마음을 소스라치게 싫은것입니다 부유하다는 반대말로서 우리는 이 지경에 이르렸을 경우 죄;다 죽겠다고 아우성 치는것입니다 가난이 싫어 고향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을 믿어도 가난한 사람은 마치 하나님의 축복을 다 잃어 버리고 사는것과 마찬가지 일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난한 자는 사람측에도 들지 않기 때문에 이토록 싫은 단어가 가난인데 주님은 이 복음서로 통하여 가난한 사람의 복이 있다 말씀하시며 천국이 저희것이라 말씀하심에 이 가난은 심령의 가난을 말씀하신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이 가난해 질수있나 생각컨데 도무지 알길이 없습니다 그렇치만 주님은 복있는사람을 찾으시는것을 볼때 우리는 분명 이 복을 누려야 될것인데 우리는 어찌해야 될지 모를 일입니다 주님의 원하는삶 주님이 이런 사람을 찾으신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주의 뜻과 상관없이 막무가;내 살아간다는것도 마음한구석에 편치 못할 일입이다 우리에게 들려 오는 산상 수훈의 복음 주님이 특별히 외치시는 그 음성에 우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마냥 기다릴수도 없는일이다 물질의 가난이면 절로 이루어 지는것인데 마음의 가난은 정말 너무도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수 없는것입니다 주님은 왜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시면서 입을 여셨을까요 우리와 상관이 있는 말씀은 분명 한것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석연(釋然)치 못합니다 어쩌면 주님의 요구 사항은 얼마나 많은지 주님을 믿는 우리로서는 어떻게 생각하면 여간 부담 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찾아와 "베드로야 네가 누구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물을때 한번두번은 건성(속뜻없이)으로도 할수있었지만 세번째 질문에는 마음의 가책을 느끼지 아니 할수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가난함 이 말씀조차도 싫은데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있으며 또 이 말씀을 우리에게 많은 사람이 질문하게 되니 나로서도 더욱 난처할때가 있습니다 서기관 과 바리새인의 가르침은 얼마나 휼륭한지 모르지만 주님은 그 가르침은 지키라고 하시며 행동은 본받지 말라신 것을 봅니다 행동하지 않는 가르침은 사람에게 존경은 받으나 하나님 앞에는 값어치가 없다는 뜻일것이다
마4장1-예수께서 얼마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마치시고 제자들을 곧 부르셔서 그의 사역을 하시는중에 먼저 마4장23절-1.가르치시고2. 봉사하시고3.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각종 병을 고치시는 일을 하신것입니다 그의 사역에는 언제나 3대원칙을 가지고 행하신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볼때 우리는 이토록 그의 교훈하심에는 등한시 하면서 나의 목적에는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의 그 자체를 보면 많은사람이 열심히 노력하는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목적과 수단을 이루기위해 기도와 찬양과 수고를 하게 됩니다 즉 새벽마다 하나님의 전에 가고 또한 일년내내 하루도 빼먹지않고 열심을 냅니다 저의 부모님을 볼때도 시골에 농사를 지으시며 그 힘들고 어려운 와중에도 열심을 내는것을보았습니다 사실 어릴적에는 그렇게 기도하는것이 당연한줄 알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너무도 허망스럽고 보잘것 없는 알맹이 없는 신앙이란것을 알게 된것입니다 왜냐 하며는 그 많은 기도가 너무도 허망스러운 기도 가 많았다는결론 입니다 사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또한 우리가 당하고 있는문제가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더란 말입니다 무슨 문제인지 모르는 성도가 무엇을 어떻게 해결할수 있단 말입니까 사실 군인은 평소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많은 훈련과 수고와 고통 이 모두가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서만 있는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있는 것이며 또 우리앞에 놓여있는 적과 대치하고 전쟁이 일어 났을때 용맹한 군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잘 훈련되지않고 잘 싸워주기를 바란다는것은 있을수 없는일이지요 분명 우리는 문제를 알고 해결할수있는 용사가 필요한것입니다 율법사들의 교육처럼 아는것과 행하는것을 볼때 너무도 딴판인것을 봅니다 저들의 잘못된 교육은 주님의 말씀과 정면 충돌만 일으킬 뿐만 아니라 주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려는자 까지 얼마나 방해하는 줄도 모릅니다 또한 상담하는자의 지도 역시 자기 편견주의적인 발상으로 끌고가는자가 얼마나 많은지요 자기의 인기 관리하기위해 정녕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할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또한 질문자의 태도역시 자기 주관으로 묻고 자기 마음에 맞게 대답을 듣기 위한다면 더더욱 문제가 아닐런지요 잘못된 교육 율법적인 교육 ,우리를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직접 당해보지 못한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을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지 않을까요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말입니다 그분은 하나님 이심니다 그분의 말씀이 율법보다 못하단 말인지요
우리는 그의 말씀을 듣고 본받기 원합니다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예수를 측량하고 율법의 가위로 잘라 낸다면 복음의 가치는 사라지고 말것이며 주님이 원하는 작품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중요시 합시다 그분이 아니라 시면 아니고 그분이 맞다 하시면 맞는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될것은 분명히 알아야 될것은 중요시 하지 않더란 말입니다 예를들어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하시는데도 곧장 잘하십니다 그 기도는 벌써 눈물바다를 이룹니다 왜냐면 많은 자식을 위해 기도를 울면서 하시는그 기도가 아직도 멈추지 못하니까요 제가 물어보니 은혜받지 않으면 눈물이 나지않는다나요 우리는 울어야 할일도 있지만 웃어야 될일이 더 많을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기도에 여러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날마다 하루도 쉬지않고 새벽기도에 나가시는 부모님 뒤를 그 아들이 몰례 새벽기도에 나가 보았습니다 부모님의 기도는 한결 같았습니다
1.자식을 위해2.이웃을 위도3.성도들을 위해4.어느 누구의 문제등등 이 문제를 종이 쪽지에 적어 왔습니다 날마다 하시는 기도되로 부모님의 재산으로 그 문제들을 다 해결 해 주고는 부모님 이제 그렇게 힘드신 새벽기도를 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라고 아들이 말을 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나는 아직 기도해야 될것이 너무나 많다 그럴수없다 하실때 아들은 메모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는 모두 해결됐다고 말씀을 드린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사람이 들어도 해결될일을 가지고 우리는 쓸데없는기도에 얼마나 매달려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눈물을 대신흘려 주시며 우리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진정한 주님의 역사를 외면한체 교회는 그 근본을 잃어 버리고 그들에게 열심의 별미를 만들어 날마다 우는저들의 믿음을 휼륭하다 셨기에 그 문제로 나는 여간 고민이 아니더란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열심이란 미명(美名)아래 신앙을 다른쪽으로 끌고가다 보니 모양은 있으나 실제적인것이 얼마나 부족한지 모릅니다 심령이 가난한자 복이 있다하신 처음의 그 가르치심 우리의 마음에 있는지요 그 가르침이 전재되지않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교회는 마치 부자(富者)를 만들어내는 장소로 바뀐 느낌마저 듭니다
잘살고 못살고를 생각하고, 헌금의 액수가 중요하고, 분명 주의 가름침과는 너무도 먼곳에 우리가 있지 않은가 봅니다 마음이 가난한자 복이 있다신 주님의 처음 그 가르침에 새삼 나의 믿음을 점검합니다 나의 믿음이 그의 가르침을 쪼ㅈ아 가고 있는지 이 아침에 생각 하기로 했습니다 분명 이 말씀은 또 예수님 그 자체인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그르침만이 이 문제를 말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르침 복의 근원일것입니다 각박하게 살아가는 이 세대에 어디 이런 설교와 말씀이 귀담아 들릴지 모르지만 자기의 목표와 계획이 설정된 마당에 어디 이런 소리가 우리 마음을 움직일수 있을지는 몰라도 주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봅니다 어쩌면 낙오자의 잘못된 형식이라 말씀하실런지 모르지만 분명 주님의 그 가르침의 중요한 이 말씀을 이 아침에 더욱 새로워 지기를 기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이 가난해 질수있나 생각컨데 도무지 알길이 없습니다 그렇치만 주님은 복있는사람을 찾으시는것을 볼때 우리는 분명 이 복을 누려야 될것인데 우리는 어찌해야 될지 모를 일입니다 주님의 원하는삶 주님이 이런 사람을 찾으신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주의 뜻과 상관없이 막무가;내 살아간다는것도 마음한구석에 편치 못할 일입이다 우리에게 들려 오는 산상 수훈의 복음 주님이 특별히 외치시는 그 음성에 우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마냥 기다릴수도 없는일이다 물질의 가난이면 절로 이루어 지는것인데 마음의 가난은 정말 너무도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수 없는것입니다 주님은 왜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시면서 입을 여셨을까요 우리와 상관이 있는 말씀은 분명 한것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석연(釋然)치 못합니다 어쩌면 주님의 요구 사항은 얼마나 많은지 주님을 믿는 우리로서는 어떻게 생각하면 여간 부담 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찾아와 "베드로야 네가 누구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물을때 한번두번은 건성(속뜻없이)으로도 할수있었지만 세번째 질문에는 마음의 가책을 느끼지 아니 할수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가난함 이 말씀조차도 싫은데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있으며 또 이 말씀을 우리에게 많은 사람이 질문하게 되니 나로서도 더욱 난처할때가 있습니다 서기관 과 바리새인의 가르침은 얼마나 휼륭한지 모르지만 주님은 그 가르침은 지키라고 하시며 행동은 본받지 말라신 것을 봅니다 행동하지 않는 가르침은 사람에게 존경은 받으나 하나님 앞에는 값어치가 없다는 뜻일것이다
마4장1-예수께서 얼마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마치시고 제자들을 곧 부르셔서 그의 사역을 하시는중에 먼저 마4장23절-1.가르치시고2. 봉사하시고3.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각종 병을 고치시는 일을 하신것입니다 그의 사역에는 언제나 3대원칙을 가지고 행하신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볼때 우리는 이토록 그의 교훈하심에는 등한시 하면서 나의 목적에는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의 그 자체를 보면 많은사람이 열심히 노력하는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목적과 수단을 이루기위해 기도와 찬양과 수고를 하게 됩니다 즉 새벽마다 하나님의 전에 가고 또한 일년내내 하루도 빼먹지않고 열심을 냅니다 저의 부모님을 볼때도 시골에 농사를 지으시며 그 힘들고 어려운 와중에도 열심을 내는것을보았습니다 사실 어릴적에는 그렇게 기도하는것이 당연한줄 알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너무도 허망스럽고 보잘것 없는 알맹이 없는 신앙이란것을 알게 된것입니다 왜냐 하며는 그 많은 기도가 너무도 허망스러운 기도 가 많았다는결론 입니다 사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또한 우리가 당하고 있는문제가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더란 말입니다 무슨 문제인지 모르는 성도가 무엇을 어떻게 해결할수 있단 말입니까 사실 군인은 평소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많은 훈련과 수고와 고통 이 모두가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서만 있는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있는 것이며 또 우리앞에 놓여있는 적과 대치하고 전쟁이 일어 났을때 용맹한 군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잘 훈련되지않고 잘 싸워주기를 바란다는것은 있을수 없는일이지요 분명 우리는 문제를 알고 해결할수있는 용사가 필요한것입니다 율법사들의 교육처럼 아는것과 행하는것을 볼때 너무도 딴판인것을 봅니다 저들의 잘못된 교육은 주님의 말씀과 정면 충돌만 일으킬 뿐만 아니라 주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려는자 까지 얼마나 방해하는 줄도 모릅니다 또한 상담하는자의 지도 역시 자기 편견주의적인 발상으로 끌고가는자가 얼마나 많은지요 자기의 인기 관리하기위해 정녕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할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또한 질문자의 태도역시 자기 주관으로 묻고 자기 마음에 맞게 대답을 듣기 위한다면 더더욱 문제가 아닐런지요 잘못된 교육 율법적인 교육 ,우리를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직접 당해보지 못한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을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지 않을까요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말입니다 그분은 하나님 이심니다 그분의 말씀이 율법보다 못하단 말인지요
우리는 그의 말씀을 듣고 본받기 원합니다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예수를 측량하고 율법의 가위로 잘라 낸다면 복음의 가치는 사라지고 말것이며 주님이 원하는 작품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중요시 합시다 그분이 아니라 시면 아니고 그분이 맞다 하시면 맞는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될것은 분명히 알아야 될것은 중요시 하지 않더란 말입니다 예를들어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하시는데도 곧장 잘하십니다 그 기도는 벌써 눈물바다를 이룹니다 왜냐면 많은 자식을 위해 기도를 울면서 하시는그 기도가 아직도 멈추지 못하니까요 제가 물어보니 은혜받지 않으면 눈물이 나지않는다나요 우리는 울어야 할일도 있지만 웃어야 될일이 더 많을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기도에 여러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날마다 하루도 쉬지않고 새벽기도에 나가시는 부모님 뒤를 그 아들이 몰례 새벽기도에 나가 보았습니다 부모님의 기도는 한결 같았습니다
1.자식을 위해2.이웃을 위도3.성도들을 위해4.어느 누구의 문제등등 이 문제를 종이 쪽지에 적어 왔습니다 날마다 하시는 기도되로 부모님의 재산으로 그 문제들을 다 해결 해 주고는 부모님 이제 그렇게 힘드신 새벽기도를 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라고 아들이 말을 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나는 아직 기도해야 될것이 너무나 많다 그럴수없다 하실때 아들은 메모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는 모두 해결됐다고 말씀을 드린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사람이 들어도 해결될일을 가지고 우리는 쓸데없는기도에 얼마나 매달려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눈물을 대신흘려 주시며 우리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진정한 주님의 역사를 외면한체 교회는 그 근본을 잃어 버리고 그들에게 열심의 별미를 만들어 날마다 우는저들의 믿음을 휼륭하다 셨기에 그 문제로 나는 여간 고민이 아니더란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열심이란 미명(美名)아래 신앙을 다른쪽으로 끌고가다 보니 모양은 있으나 실제적인것이 얼마나 부족한지 모릅니다 심령이 가난한자 복이 있다하신 처음의 그 가르치심 우리의 마음에 있는지요 그 가르침이 전재되지않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교회는 마치 부자(富者)를 만들어내는 장소로 바뀐 느낌마저 듭니다
잘살고 못살고를 생각하고, 헌금의 액수가 중요하고, 분명 주의 가름침과는 너무도 먼곳에 우리가 있지 않은가 봅니다 마음이 가난한자 복이 있다신 주님의 처음 그 가르침에 새삼 나의 믿음을 점검합니다 나의 믿음이 그의 가르침을 쪼ㅈ아 가고 있는지 이 아침에 생각 하기로 했습니다 분명 이 말씀은 또 예수님 그 자체인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그르침만이 이 문제를 말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르침 복의 근원일것입니다 각박하게 살아가는 이 세대에 어디 이런 설교와 말씀이 귀담아 들릴지 모르지만 자기의 목표와 계획이 설정된 마당에 어디 이런 소리가 우리 마음을 움직일수 있을지는 몰라도 주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봅니다 어쩌면 낙오자의 잘못된 형식이라 말씀하실런지 모르지만 분명 주님의 그 가르침의 중요한 이 말씀을 이 아침에 더욱 새로워 지기를 기원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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