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마4:18-22)
본문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 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 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 갔다.(마 4:18-22) 오늘은 4.19혁명 38주년을 맞이 하는 날입니다. 사회나 정치문제를 걱 정하지 않고 학업에 전념해야 할 학생들이 생명을 내놓고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궐기했다면 그 사회는 분명 병들어있는 사회고, 그 질환은 일 부 정치인들의 주장대로 학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망쳐놓은 무책임한 정치인 자신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41학생귈기의 원인은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부통령 자리를 독점하여 영화를 죽을 때까 지 누리려던 이승만과 이기붕,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서 함께 부귀를 누리 고자 한 자들의 국민주권 강탈행위 때문이었음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한 분수령을 이룬 419혁명은 이렇게 일어났습니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있은 당시의 야당인 민주당의 선거유세 에 그곳 문교당국이 학생들의 참가를 막기 위해 일요일인데도 등교를 명 해 이에 학생들의 불만이 폭발해 이를 거역하는 반대시위를 감행한 것이 바로 발화점이 되었습니다. 이 대구 학생의 데모는 3월 6일의 서울 고교 생으로 대전지방으로 다시 수원, 충주,부산으로 점차 전국적으로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대구 고교생들의 데모에 무자비한 탄압을 가해 대로상에서 어린 학생들을 사정없이 때려눕혀 20130명의 중경상자 를 내게 하는 한편 수백 명을 체포, 연행해갔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단호 한 탄압을 가하면 학생들이 겁에 질려 조용해질 줄 알았으나 이것은 그 들의 오산이었습니다. 오히려 고교생들이 전국적으로 대구 데모에 호응하 고 나섰습니다. 그 무렵 자유당 정권은 이미 민심을 잃고 물러서야 할 상 황이었으나 권력에 연연한 그들이 물러설 까닭이 없었고 정상적 절차로는 선거에 승산이 없다고 보자 그들은 이른바 3인조, 5인조의 협잡술로 전국적 규모의 부정을 명령하였던 것입니다. 이같은 강도선거에 불만이 가득찬 국민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 첫 항쟁이 마산에서 터지 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은 대구 데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마산에서도 항의하는 학생과 민중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백여 명의 사상 자를 내게 하고서도 시체를 아무렇게나 처리하고 시위하는 시민들을 공 산주의자 취급을 하여 전국민의 분격을 샀고 이에 대해 경찰의 강압적 탄압은 계속되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의 이같은 단호한 탄압결의에도 불구 하고 4월 6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적 규모의 항의시위는 그치지 않았으며, 3월 11일 총에 맞아 숨진 한 중학생인 김주열군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 서 두 눈에 수류탄이 박힌채로 발견됨으로써 점차 마산 시민의 항쟁이 폭발하고 전국민의 분격을 샀습니다. 국민의 반정부투쟁은 점차 격렬해지 고 "자유당 정권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전국적규모로 산만하 게 벌어지고 있던 민중의 반자유당정권 투쟁은 마침내 4월18일 서울에서 고대생이 귈기함으로써 항쟁의 불길은 대학가에 번지게되었고 고대생에 대한 자유당 정권의 깡패 동원 사건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길가에 쓰러지게 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서울의 각 대학생들이 4월 19일 총궐기하여 경무대로 몰려갔고 경찰은 이에 사정없이 총격을 가해 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게 했으며 그날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이런 중 25일 계엄하에서 대학 교수단이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자"는 가두시위 를 감행했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깨닫고 26일 이승만이 하야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당초 전국민의 빗발치는 "물러가라!"는 요구에도 권력에 대한 집착이 끈 질겨 4월 23일 부정불법으로 당선된 이기붕이 "부통령의 사임을 고려 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오히려 국민들을 격분시켰고 마침내 24일 부통령 을 포함한 모든 공직으로부터 사퇴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양 처럼 온순하다 해서 이른바 기성세대에 의해 개탄의 대상조차 되었던 학 생들이 전국적 규모로 2개월에 걸쳐 권력에 항쟁하여 마침내 국부 이승 만 정권을 타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4.19 이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어떻했는가 일제시대만 해도 젊은 남녀가 비록 부부간이라 하더라도 동반해서 거 리를 다니는 것을 볼 수 없었는데, 해방과 더불어 갑자기 불어 닥친 미국 바람으로 남녀관계가 크게 개방되었습니다. 남녀관계가 개방되면서 성도 덕도 크게 문란해졌습니다. 술집마다 기생들이 들끓고 있었으며 해방과 더불어 불어닥친 춤 바람은 많은 가정주부들을 파탄에 몰아넣었습니다. 거리마다 술집이 늘어나 시골에서 젊은 여성들이 많이 올라와 서울에서 윤락의 구렁으로 떨어졌습니다. 또 외국군의 진주와 함께 양부인이라고 하는 새로운 여성 계층도 생겨났습니다. 지금은 보통이 되었지만 이때 립 스틱 짙게 바르고 짙은 화장을 하는 여성들은 예외없이 양부인이었습니다. 좋게 불러 '유엔군 사모님'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사회에 서 당시의 기독교는 서민생활에 광범위하게 파고들어갔으나 방황하는 대 중들의 정신을 구원할 힘이 약했고 미국에서 보내주는 구호물자를 분배 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기독교 세력은 크게 확장되었으나 방황 하는 시대를 이끌만한 정신적인 힘이 부족했습니다. 하여간 기독교는 50 년대에 이르러 수량적으로는 대단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사회구원에 대해 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철저한 이승만 지지로 기울어진 어용 (御用)단체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교회는 보수주의에 젖어 있어 서 진보성향을 띠고 사회구원을 부르짖는 진보자유주의 교회는 발디딜 곳이 없었습니다. 더우기 미국이 갔다주는 구호물자에 정신을 잃고 교회 가 개인 영혼구원 터전이기보다 구호물자에 더욱 관심을 두므로 교회에 신자들은 많아졌을지 모르나 소위 나이롱 신자들만 양산하는 결과를 가 져왔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4.19를 전후한 이 역사적 비약기에 기독교계는 단지 자유당 부패독재정권의 종범자 구실을 하는데 급급했을 뿐 아무런 역사적 기여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위기시대를 맞아 경제의 구조개혁이 국가존망을 걸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의 영 향은 각계 각층, 사회 전반에 구조개혁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비대 해진 한국교회에도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목청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교권 장악을 위해 금품 살포를 서슴지않는 교단정치가 구조개혁되어져야 합니다. 사회구원과 개인구원을 외면하고 있는 교회경제구조 역시 개혁되어져 야만 합니다. 한국기독교회의 구조개혁이 선행되어져야 '사람을 낚는 어 부'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여 나라 민족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방황하는 시대의 정신을 바로 이끌어갈 수 있는 빛 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의 이름밖에 없습니다. 앉은뱅이같은 이 땅의 기독교, 앉은뱅이같은 이 나라 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이름밖에 없습니다. "(행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 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행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 늘 (행3: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행3: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행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 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행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 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행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 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행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행3: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여기 앉은뱅이가 구했던 것은 은과 금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 한에게는 은과 금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졌던 것은 "오직 예수의 이름" 밖에는 없었습니다. 앉은뱅이가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일어나 걷기도 하 며 뛰기도 하며 하나님께 찬미하게 된 것은 "은과 금"이나, 베드로와 요 한이라고 하는 한 인간의 권능과 경건으로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오직 예수 이름"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죽였으나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의 "그 이름"이 앉은뱅 이를 성하게 하여 완전히 낫게 하였습니다. "(행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 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행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 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행3:16) 그 이름 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 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 느니라 (행3: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 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 를 것이요." 앉은뱅이같은 교회, 앉은뱅이같은 기독교, 앉은뱅이같은 이 나라가 힘 을 얻어 걷기도하며 뛰기도 하여 성하게 되는 길은 오직 예수의 이름밖 에 없습니다. 경제위기를 당하여 온통 나라 백성이 "은과 금"을 구하고 있으나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은과 금"이나 구호물자가 아니 라 바로 예수의 "이름"을 주어야 합니다. "은과 금"으로 인간이나 사회가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루어지는 것 아니라 오직 예수 믿고 회개하여 죄 없이 함을 받아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 백성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이름"밖에 없습니다. 다시말해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는 선교야말로 이 나라 백성을 "유쾌하게 되는 날"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선교는 "은과 금"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가지 고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오직 예수의 이름만 을 가지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만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가정과 교회, 나라 민족이 사는 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성경의 시초는 1882년 가을. 중국 심양에서 '문광서원'의 이름으로 간행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었습니다. 이 한국 최초의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한 사람은 존 로스 선교사와 한국 의 다섯 청년들이었습니다. 평안북도 의주 사람인 백홍준, 이응찬, 이성 하, 김진기, 서상륜 등은 한국 최초의 개신교 신자들이었고 민족 복음화 를 위해 파송받은 최초의 한국선교사들이었습니다. 1883년 봄, 이성하는 조국을 복음화 할 웅대한 뜻을 풀고 인쇄된 복음서를 등에지고 중국 봉 천을 출발 압록강 대안에 토착했습니다. 그는 복음서를 구연성이란 여관 에 숨겨놓고 잠시 방을 비웠는데 그 사이에 주인이 들어와서 짐을 풀어 보고 이 책이 나라에서 금하는 사서(邪書)임을 알고 대경실색하여 일부는 압록강에 흘려보내고 일부는 불에 태워 모조리 없애버리고 말았습니다. 후에 이 사실을 보고 받은 로스목사는 "성경책이 던져진 강물을 마시는 한국인들은 생명수를 얻을 것이며 불에 탄 성경의 재는 한국교회를 자라 나게 하는 거름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 한반도의 민족 구원을 위해 그 모진 핍박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복음을 진했던 선지자들의 희 생과 순교의 피는 그 때 압록강에 뿌려진 성경책처럼 이 땅에 복음의 생 수와 거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1000만 성도로 성장한 한국교회의 교세와 선교상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5개 교단만 살펴보겠습니다. 135만명 교인, 4,500교회를 가진 예장 합동측(1)이 55개 국에 250명의 선교사를, 209만명 교인, 5,584교회를 가진 예장 통합측이 67개국에 429명의 선교사를, 230만명 교인, 5,800교회를 가진 예장 합동측(2)이 74개국에 720명의 선교사를, 45만명 교인,
1,500교회를 가진 기장측 이 12개국에 25명의 선교사를, 80만명 교인,
2,000교회를 가진 기성측이 33개국에 201명의 선교사를, 그리고 135만명 교인, 4,500교회를 가진 기감 측이 55개국에 25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합해보면 834만 교인, 23,884교회에서 약 80여 개국가에
1,875명의 선교사를 파송하 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2000년에는 약 900만 교인, 25000여 교회에서 대 략
2,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리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 교회에서 창립 24주년을 맞는 2000년에 국내에 1교회를 개척하고 해외에 선교사 1명을 파송하는 계획을 세워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에 일 익을 담당하고자 합니다. 거듭말씀드려 이 나라 민족이 사는 길, 앉은뱅 이같은 이 나라 민족이 힘을 얻고 일어나 걷기도하고 뛰기도하여 하나님 께 찬미를 드리며 유쾌하게 되는 날을 볼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분명하고 명백한 명령입니다. "나 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교회가 예수께로부터 받은 확실하고 분명한 사명은 먼저 네 민족의 잃어버린 양 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마10: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 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10:6) 차 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더 나아가 네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족속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자삼 고 그들의 입으로 예수를 그리스도, 즉 구세주라 시인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 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막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 파하라.(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 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영역은 바로 온 세상입니다. 교회가 지향해야 할 선교의 목표는 바로 온 세상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전체를 구원하지 않고는 결코 만족해 하시지 않습니다. 월리암 템플(William Temple)은 다음과 같이 말 했습니다. "교회는 아직 교인이 되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 평강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은 100만 울산 시민가운데 아직 복음화되지않은 90만명을 예수믿게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 평강교회가 존재 하는 이유와 목적은 전세계에 아직 복음화되지않은 수 십억의 하나님의 사랑하는 인류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선교 명령의 영역은 바로 온 세상 온 인류입니다.
군대 속어 가운데 사병을 나타내는 지아이(G.I.로 Government Issue의 약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사병을 정부 "소모 품"으로 간주한다는 말입니다. 군 작전시에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사병들을 소모품처럼 사용해서 전사케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작전에 있어서는 소모품과 같 은 인간은 존재치 않습니다. 폴 토우르니에(Paul Tournier)는 그의 저서 '성서와 의학'에서 어떤 환자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환자는 한 대가족의 막내딸이었습니다. 이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는 힘겹게 그의 가 족을 부양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그의 딸을 가리키면서 "이 애만 얼어도 우리 가정 형편은 좀 나아질텐데"라고 절망적인 어조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그의 딸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비록 부모가 내다버린 사생아일지라도, 아니 지체장애자나 정신박약아 그 이상일지라도, 어쩌다 실수로 태어난 아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고 그들 모두를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무레투스 (Muretus)의 옛 이야기는 위대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레투스는 방랑하는 학자였습니다. 그는 깊은 학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우 가난하였습니다. 그는 방랑하는 중에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극빈 자 수용소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학자라는 것과 학자들 만이 사용하는 라틴어를 이해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그 의 병세에 관하여 라틴어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알아듣지 못할 것으로 알고 무레투스는 더 이상 비싼 돈 들여 돌봐주거나 치료할 가치가 없는 아무 쓸작없는 가련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무레투스는 의사들을 쳐다보면서 라틴어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 하여 돌아가신 사람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털까지도 세실 정도로 한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시고 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눅12:6)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눅12:7)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귀하게 여겨 그 하나라도 소흘히 여 기지 말고 선교에 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일으 켜 세워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어리석은 자를 일으켜 세워 지혜 있다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없는 자를 일으켜 세워 가진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요한 웨슬레를 일으켜 세워 부정부 패하고 기울어져가는 영국을 구원했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제자삼으시고 그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고 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어부는 고기가 미끼에 걸릴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어부가 참지 못하여 서둔다면 그는 결코 좋은 어부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선한 어부'는 인내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급히 결과를 거두려는 것은 선교에서나 교육에 있어서는 거의 불가능한 기대입니다. 우리는 기 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킴볼이란 시카고의 한 주일학교 교사가 거리의 부랑아이며 거지처럼 더러운 한 소년을 교회에 인도했습니다. 킴볼씨는 예수 믿은 뒤 10년만에 겨우 한 사람 그것도 부랑소년 하나를 인도할 수 있었는데 이 소년이 그 유명한 부흥전도자 무디 목사였습니다. 무디는 미 국과 캐나다에서 수십만명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한 세계적 대전도자였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요3:17)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는 열심히 인내를 가지고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추수하기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처럼, 전도의 열매를 거두기 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나라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요셉같은 인물이 나올지 어떻게 압 니까 아니 나라 전체를 복음화시킬 이 시대의 다니엘이 나올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는 불굴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어부는 어떤 경우에서도 결코 실망하지 아니하고 다시 일어나는 불굴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좋은 설교자와 교사는 가르친 것이 아무런 효과가 없어 보이는 듯할 때는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항상 다시 시 도하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PC통신에 복음을 전 도하기 위해 설교문을 매주 여러 곳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 '람비'라는 아이디를 가진 어떤 대한 예수교 통합측 교인이 전자우편을 보내왔습니다. 제발 좀 PC통신에 설교문을 올려놓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그랬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겠지만 대한 민국에서 제일 큰 교단의 교인이 보낸 비아냥거리는투의 편지를 보았을 때 '람비'는 과 연 어떻게 예수믿는 사람이고 예수믿는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람비'가 불쌍해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람비'가 설사 복음을 가 로막는 '람보'가 된다할지라고 하나님의 선교는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 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부는 바다의 광 풍 노도를 직면하여 극복해 나갈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설교 자와 교사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할 때는 언제나 모험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외치는 사람은 이따금씩 자기의 명예나 생명을 걸고 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항상 진리를 환영하지 않 습니다. 세상 사람이 항상 빛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본래 세상은 어둠이 었습니다. 그래서 빛을 싫어합니다. 진리가 사람들을 감동시킬 때가 있고 사람들이 진리의 대적자가 되어 완고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가 항상 환영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감을 가지고 죽이고자 덤벼들기도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람들은 다름아닌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긴다는 동족들이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때 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딤후4:2) 시간의 핑계가 허 락되지 않습니다. 우화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탄이 부하들에게 현 상문제를 냈습니다. 기독교인을 지옥으로 가게 하는 술책을 묻는 것이 현 상문제였습니다. 이론이란 이름의 작은 악마가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이 론적으로 설득하면 됩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안된다. 그들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어." 의심이라는 이름의 악마가 말했습니다. "의인이 고생하고 악인이 잘 사는 것을 계속 보여주면 신앙을 버릴 겁니다.안된다.그들은 조만간 의인의 승리를 알게 되니까."
나태란 이름의 가진 작은 악마가 말했습니다. "기독교인을 지옥으로 보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서둘지마. 서둘지마라고만 말하면 됩니다." 이 대답이 당선작이었다는 우화입니다. 구원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시 급한 일입니다. 초대교회가 기적적 성장을 가져온 것은 바로 이 종말신앙 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임박했으니 어서 빨리 한 영혼 이라도 더 살려내야 한다는 신앙으로 살았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불과 400년 동안에 유럽 전체가 복음화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전세계에서 복음을 제일 열심히 전하여 성장하는 교회의 공통점가운데 하나는 종말 신앙으로 무장해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종말은 모든 사람에게 반 드시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구원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나의 종말을 맞이할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전화로, 편지로, PC통신으로, 인터넷 으로, 문서전도로, 선교사 파송으로, 교회개척으로 전도 기회는 우리 주변 에 널려 있습니다. 문제는 전도를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 실천하는 것입니다.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엄 부드 대장이 1904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7 세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왕은 부드의 영국 사회에 끼친 많은 자선사업을 극찬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왕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나 도아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드 대장은 "국왕 폐하, 내가 바 라는 것은 한 명의 영혼이라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나의 야망이 요 희망입니다. 노동자 급식사업도, 부랑 교육사업도, 모두가 목적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돕는 일들입니다."고 대답하고 일 체의 표창장을 거절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목적 과 살아야 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4:18)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 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여러분의 삶이 이 세상 어디에서든지, 어느 시기에든지 가난한 자와 눈 먼자와 눌린 자들에게 은혜를 받게 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 난과 질병으로 시달리고 갇히고 억눌린 자들에게 날마다 은혜를 선포하 며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선교사의 삶,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시기 를 바랍니다. 21세기를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의 원년으로 삼고 새롭 게 거듭나 성장하는 평강교회가 되기 위해 성령님의 권능을 힘입어 이 민족의 영혼을 구원하고(개인구원) 국가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는(사회구원)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사랑하 십니까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십시오. 민족을 사랑하십니까 은혜의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십시요.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 민족이 "유쾌하게 되는 날" 보기를 원하십니 까 오직 예수의 이름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낚을 수 있는 것은 은과 금 으로 되지않습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사람을 낚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 나라 민족을 위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시기 를 축원합니다.
그 첫 항쟁이 마산에서 터지 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은 대구 데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마산에서도 항의하는 학생과 민중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백여 명의 사상 자를 내게 하고서도 시체를 아무렇게나 처리하고 시위하는 시민들을 공 산주의자 취급을 하여 전국민의 분격을 샀고 이에 대해 경찰의 강압적 탄압은 계속되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의 이같은 단호한 탄압결의에도 불구 하고 4월 6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적 규모의 항의시위는 그치지 않았으며, 3월 11일 총에 맞아 숨진 한 중학생인 김주열군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 서 두 눈에 수류탄이 박힌채로 발견됨으로써 점차 마산 시민의 항쟁이 폭발하고 전국민의 분격을 샀습니다. 국민의 반정부투쟁은 점차 격렬해지 고 "자유당 정권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전국적규모로 산만하 게 벌어지고 있던 민중의 반자유당정권 투쟁은 마침내 4월18일 서울에서 고대생이 귈기함으로써 항쟁의 불길은 대학가에 번지게되었고 고대생에 대한 자유당 정권의 깡패 동원 사건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길가에 쓰러지게 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서울의 각 대학생들이 4월 19일 총궐기하여 경무대로 몰려갔고 경찰은 이에 사정없이 총격을 가해 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게 했으며 그날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이런 중 25일 계엄하에서 대학 교수단이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자"는 가두시위 를 감행했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깨닫고 26일 이승만이 하야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당초 전국민의 빗발치는 "물러가라!"는 요구에도 권력에 대한 집착이 끈 질겨 4월 23일 부정불법으로 당선된 이기붕이 "부통령의 사임을 고려 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오히려 국민들을 격분시켰고 마침내 24일 부통령 을 포함한 모든 공직으로부터 사퇴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양 처럼 온순하다 해서 이른바 기성세대에 의해 개탄의 대상조차 되었던 학 생들이 전국적 규모로 2개월에 걸쳐 권력에 항쟁하여 마침내 국부 이승 만 정권을 타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4.19 이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어떻했는가 일제시대만 해도 젊은 남녀가 비록 부부간이라 하더라도 동반해서 거 리를 다니는 것을 볼 수 없었는데, 해방과 더불어 갑자기 불어 닥친 미국 바람으로 남녀관계가 크게 개방되었습니다. 남녀관계가 개방되면서 성도 덕도 크게 문란해졌습니다. 술집마다 기생들이 들끓고 있었으며 해방과 더불어 불어닥친 춤 바람은 많은 가정주부들을 파탄에 몰아넣었습니다. 거리마다 술집이 늘어나 시골에서 젊은 여성들이 많이 올라와 서울에서 윤락의 구렁으로 떨어졌습니다. 또 외국군의 진주와 함께 양부인이라고 하는 새로운 여성 계층도 생겨났습니다. 지금은 보통이 되었지만 이때 립 스틱 짙게 바르고 짙은 화장을 하는 여성들은 예외없이 양부인이었습니다. 좋게 불러 '유엔군 사모님'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사회에 서 당시의 기독교는 서민생활에 광범위하게 파고들어갔으나 방황하는 대 중들의 정신을 구원할 힘이 약했고 미국에서 보내주는 구호물자를 분배 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기독교 세력은 크게 확장되었으나 방황 하는 시대를 이끌만한 정신적인 힘이 부족했습니다. 하여간 기독교는 50 년대에 이르러 수량적으로는 대단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사회구원에 대해 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철저한 이승만 지지로 기울어진 어용 (御用)단체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교회는 보수주의에 젖어 있어 서 진보성향을 띠고 사회구원을 부르짖는 진보자유주의 교회는 발디딜 곳이 없었습니다. 더우기 미국이 갔다주는 구호물자에 정신을 잃고 교회 가 개인 영혼구원 터전이기보다 구호물자에 더욱 관심을 두므로 교회에 신자들은 많아졌을지 모르나 소위 나이롱 신자들만 양산하는 결과를 가 져왔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4.19를 전후한 이 역사적 비약기에 기독교계는 단지 자유당 부패독재정권의 종범자 구실을 하는데 급급했을 뿐 아무런 역사적 기여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위기시대를 맞아 경제의 구조개혁이 국가존망을 걸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의 영 향은 각계 각층, 사회 전반에 구조개혁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비대 해진 한국교회에도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목청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교권 장악을 위해 금품 살포를 서슴지않는 교단정치가 구조개혁되어져야 합니다. 사회구원과 개인구원을 외면하고 있는 교회경제구조 역시 개혁되어져 야만 합니다. 한국기독교회의 구조개혁이 선행되어져야 '사람을 낚는 어 부'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여 나라 민족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방황하는 시대의 정신을 바로 이끌어갈 수 있는 빛 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의 이름밖에 없습니다. 앉은뱅이같은 이 땅의 기독교, 앉은뱅이같은 이 나라 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이름밖에 없습니다. "(행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 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행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 늘 (행3: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행3: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행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 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행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 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행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 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행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행3: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여기 앉은뱅이가 구했던 것은 은과 금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 한에게는 은과 금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졌던 것은 "오직 예수의 이름" 밖에는 없었습니다. 앉은뱅이가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일어나 걷기도 하 며 뛰기도 하며 하나님께 찬미하게 된 것은 "은과 금"이나, 베드로와 요 한이라고 하는 한 인간의 권능과 경건으로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오직 예수 이름"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죽였으나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의 "그 이름"이 앉은뱅 이를 성하게 하여 완전히 낫게 하였습니다. "(행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 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행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 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행3:16) 그 이름 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 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 느니라 (행3: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 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 를 것이요." 앉은뱅이같은 교회, 앉은뱅이같은 기독교, 앉은뱅이같은 이 나라가 힘 을 얻어 걷기도하며 뛰기도 하여 성하게 되는 길은 오직 예수의 이름밖 에 없습니다. 경제위기를 당하여 온통 나라 백성이 "은과 금"을 구하고 있으나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은과 금"이나 구호물자가 아니 라 바로 예수의 "이름"을 주어야 합니다. "은과 금"으로 인간이나 사회가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루어지는 것 아니라 오직 예수 믿고 회개하여 죄 없이 함을 받아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 백성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이름"밖에 없습니다. 다시말해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는 선교야말로 이 나라 백성을 "유쾌하게 되는 날"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선교는 "은과 금"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가지 고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오직 예수의 이름만 을 가지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만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가정과 교회, 나라 민족이 사는 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성경의 시초는 1882년 가을. 중국 심양에서 '문광서원'의 이름으로 간행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었습니다. 이 한국 최초의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한 사람은 존 로스 선교사와 한국 의 다섯 청년들이었습니다. 평안북도 의주 사람인 백홍준, 이응찬, 이성 하, 김진기, 서상륜 등은 한국 최초의 개신교 신자들이었고 민족 복음화 를 위해 파송받은 최초의 한국선교사들이었습니다. 1883년 봄, 이성하는 조국을 복음화 할 웅대한 뜻을 풀고 인쇄된 복음서를 등에지고 중국 봉 천을 출발 압록강 대안에 토착했습니다. 그는 복음서를 구연성이란 여관 에 숨겨놓고 잠시 방을 비웠는데 그 사이에 주인이 들어와서 짐을 풀어 보고 이 책이 나라에서 금하는 사서(邪書)임을 알고 대경실색하여 일부는 압록강에 흘려보내고 일부는 불에 태워 모조리 없애버리고 말았습니다. 후에 이 사실을 보고 받은 로스목사는 "성경책이 던져진 강물을 마시는 한국인들은 생명수를 얻을 것이며 불에 탄 성경의 재는 한국교회를 자라 나게 하는 거름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 한반도의 민족 구원을 위해 그 모진 핍박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복음을 진했던 선지자들의 희 생과 순교의 피는 그 때 압록강에 뿌려진 성경책처럼 이 땅에 복음의 생 수와 거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1000만 성도로 성장한 한국교회의 교세와 선교상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5개 교단만 살펴보겠습니다. 135만명 교인, 4,500교회를 가진 예장 합동측(1)이 55개 국에 250명의 선교사를, 209만명 교인, 5,584교회를 가진 예장 통합측이 67개국에 429명의 선교사를, 230만명 교인, 5,800교회를 가진 예장 합동측(2)이 74개국에 720명의 선교사를, 45만명 교인,
1,500교회를 가진 기장측 이 12개국에 25명의 선교사를, 80만명 교인,
2,000교회를 가진 기성측이 33개국에 201명의 선교사를, 그리고 135만명 교인, 4,500교회를 가진 기감 측이 55개국에 25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합해보면 834만 교인, 23,884교회에서 약 80여 개국가에
1,875명의 선교사를 파송하 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2000년에는 약 900만 교인, 25000여 교회에서 대 략
2,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리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 교회에서 창립 24주년을 맞는 2000년에 국내에 1교회를 개척하고 해외에 선교사 1명을 파송하는 계획을 세워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에 일 익을 담당하고자 합니다. 거듭말씀드려 이 나라 민족이 사는 길, 앉은뱅 이같은 이 나라 민족이 힘을 얻고 일어나 걷기도하고 뛰기도하여 하나님 께 찬미를 드리며 유쾌하게 되는 날을 볼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분명하고 명백한 명령입니다. "나 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교회가 예수께로부터 받은 확실하고 분명한 사명은 먼저 네 민족의 잃어버린 양 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마10: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 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10:6) 차 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더 나아가 네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족속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자삼 고 그들의 입으로 예수를 그리스도, 즉 구세주라 시인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 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막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 파하라.(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 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영역은 바로 온 세상입니다. 교회가 지향해야 할 선교의 목표는 바로 온 세상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전체를 구원하지 않고는 결코 만족해 하시지 않습니다. 월리암 템플(William Temple)은 다음과 같이 말 했습니다. "교회는 아직 교인이 되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 평강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은 100만 울산 시민가운데 아직 복음화되지않은 90만명을 예수믿게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 평강교회가 존재 하는 이유와 목적은 전세계에 아직 복음화되지않은 수 십억의 하나님의 사랑하는 인류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선교 명령의 영역은 바로 온 세상 온 인류입니다.
군대 속어 가운데 사병을 나타내는 지아이(G.I.로 Government Issue의 약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사병을 정부 "소모 품"으로 간주한다는 말입니다. 군 작전시에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사병들을 소모품처럼 사용해서 전사케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작전에 있어서는 소모품과 같 은 인간은 존재치 않습니다. 폴 토우르니에(Paul Tournier)는 그의 저서 '성서와 의학'에서 어떤 환자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환자는 한 대가족의 막내딸이었습니다. 이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는 힘겹게 그의 가 족을 부양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그의 딸을 가리키면서 "이 애만 얼어도 우리 가정 형편은 좀 나아질텐데"라고 절망적인 어조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그의 딸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비록 부모가 내다버린 사생아일지라도, 아니 지체장애자나 정신박약아 그 이상일지라도, 어쩌다 실수로 태어난 아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고 그들 모두를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무레투스 (Muretus)의 옛 이야기는 위대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레투스는 방랑하는 학자였습니다. 그는 깊은 학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우 가난하였습니다. 그는 방랑하는 중에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극빈 자 수용소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학자라는 것과 학자들 만이 사용하는 라틴어를 이해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그 의 병세에 관하여 라틴어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알아듣지 못할 것으로 알고 무레투스는 더 이상 비싼 돈 들여 돌봐주거나 치료할 가치가 없는 아무 쓸작없는 가련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무레투스는 의사들을 쳐다보면서 라틴어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 하여 돌아가신 사람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털까지도 세실 정도로 한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시고 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눅12:6)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눅12:7)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귀하게 여겨 그 하나라도 소흘히 여 기지 말고 선교에 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일으 켜 세워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어리석은 자를 일으켜 세워 지혜 있다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없는 자를 일으켜 세워 가진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요한 웨슬레를 일으켜 세워 부정부 패하고 기울어져가는 영국을 구원했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제자삼으시고 그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고 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어부는 고기가 미끼에 걸릴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어부가 참지 못하여 서둔다면 그는 결코 좋은 어부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선한 어부'는 인내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급히 결과를 거두려는 것은 선교에서나 교육에 있어서는 거의 불가능한 기대입니다. 우리는 기 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킴볼이란 시카고의 한 주일학교 교사가 거리의 부랑아이며 거지처럼 더러운 한 소년을 교회에 인도했습니다. 킴볼씨는 예수 믿은 뒤 10년만에 겨우 한 사람 그것도 부랑소년 하나를 인도할 수 있었는데 이 소년이 그 유명한 부흥전도자 무디 목사였습니다. 무디는 미 국과 캐나다에서 수십만명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한 세계적 대전도자였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요3:17)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는 열심히 인내를 가지고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추수하기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처럼, 전도의 열매를 거두기 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나라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요셉같은 인물이 나올지 어떻게 압 니까 아니 나라 전체를 복음화시킬 이 시대의 다니엘이 나올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는 불굴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어부는 어떤 경우에서도 결코 실망하지 아니하고 다시 일어나는 불굴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좋은 설교자와 교사는 가르친 것이 아무런 효과가 없어 보이는 듯할 때는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항상 다시 시 도하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PC통신에 복음을 전 도하기 위해 설교문을 매주 여러 곳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 '람비'라는 아이디를 가진 어떤 대한 예수교 통합측 교인이 전자우편을 보내왔습니다. 제발 좀 PC통신에 설교문을 올려놓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그랬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겠지만 대한 민국에서 제일 큰 교단의 교인이 보낸 비아냥거리는투의 편지를 보았을 때 '람비'는 과 연 어떻게 예수믿는 사람이고 예수믿는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람비'가 불쌍해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람비'가 설사 복음을 가 로막는 '람보'가 된다할지라고 하나님의 선교는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 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부는 바다의 광 풍 노도를 직면하여 극복해 나갈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설교 자와 교사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할 때는 언제나 모험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외치는 사람은 이따금씩 자기의 명예나 생명을 걸고 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항상 진리를 환영하지 않 습니다. 세상 사람이 항상 빛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본래 세상은 어둠이 었습니다. 그래서 빛을 싫어합니다. 진리가 사람들을 감동시킬 때가 있고 사람들이 진리의 대적자가 되어 완고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가 항상 환영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감을 가지고 죽이고자 덤벼들기도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람들은 다름아닌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긴다는 동족들이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때 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딤후4:2) 시간의 핑계가 허 락되지 않습니다. 우화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탄이 부하들에게 현 상문제를 냈습니다. 기독교인을 지옥으로 가게 하는 술책을 묻는 것이 현 상문제였습니다. 이론이란 이름의 작은 악마가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이 론적으로 설득하면 됩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안된다. 그들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어." 의심이라는 이름의 악마가 말했습니다. "의인이 고생하고 악인이 잘 사는 것을 계속 보여주면 신앙을 버릴 겁니다.안된다.그들은 조만간 의인의 승리를 알게 되니까."
나태란 이름의 가진 작은 악마가 말했습니다. "기독교인을 지옥으로 보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서둘지마. 서둘지마라고만 말하면 됩니다." 이 대답이 당선작이었다는 우화입니다. 구원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시 급한 일입니다. 초대교회가 기적적 성장을 가져온 것은 바로 이 종말신앙 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임박했으니 어서 빨리 한 영혼 이라도 더 살려내야 한다는 신앙으로 살았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불과 400년 동안에 유럽 전체가 복음화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전세계에서 복음을 제일 열심히 전하여 성장하는 교회의 공통점가운데 하나는 종말 신앙으로 무장해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종말은 모든 사람에게 반 드시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구원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나의 종말을 맞이할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전화로, 편지로, PC통신으로, 인터넷 으로, 문서전도로, 선교사 파송으로, 교회개척으로 전도 기회는 우리 주변 에 널려 있습니다. 문제는 전도를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 실천하는 것입니다.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엄 부드 대장이 1904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7 세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왕은 부드의 영국 사회에 끼친 많은 자선사업을 극찬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왕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나 도아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드 대장은 "국왕 폐하, 내가 바 라는 것은 한 명의 영혼이라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나의 야망이 요 희망입니다. 노동자 급식사업도, 부랑 교육사업도, 모두가 목적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돕는 일들입니다."고 대답하고 일 체의 표창장을 거절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목적 과 살아야 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4:18)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 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여러분의 삶이 이 세상 어디에서든지, 어느 시기에든지 가난한 자와 눈 먼자와 눌린 자들에게 은혜를 받게 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 난과 질병으로 시달리고 갇히고 억눌린 자들에게 날마다 은혜를 선포하 며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선교사의 삶,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시기 를 바랍니다. 21세기를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의 원년으로 삼고 새롭 게 거듭나 성장하는 평강교회가 되기 위해 성령님의 권능을 힘입어 이 민족의 영혼을 구원하고(개인구원) 국가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는(사회구원)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사랑하 십니까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십시오. 민족을 사랑하십니까 은혜의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십시요.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 민족이 "유쾌하게 되는 날" 보기를 원하십니 까 오직 예수의 이름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낚을 수 있는 것은 은과 금 으로 되지않습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사람을 낚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 나라 민족을 위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시기 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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