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4:1-4)
본문
지금 우리들의 삶 가운데 빠짐없이 통용되고 있는 단어 중에 하나가 경제 (Economy)라고 하는 말입니다. '경제'란 인간 생활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요 한 모든 재화(財貨)를 획득하고, 이용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일체의 활동, 즉 재화의 생산, 교환, 분배, 소비 등을 통칭하여 일컫는 말입니다. 지상주의(至上主義)란 이상 더 할 수 없는 가장 높은 목적 추구를 가리킵니다. 최 상의 추구를 뜻합니다. 사실 '경제 지상주의'란 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의 현실은 사람의 사람 된 삶의 가치를 오직 경제만으로 측정하고 평가하며, 그 것만으로 사람의 사람된 행복을 결정지어 버리려고 하기 때문에 경제 지상주의란 말 을 쓰게 됩니다.
I. 경제 지상주의는 사탄적 산물입니다. 예수님은 성역 초기에 사탄으로부터 세 가지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경제적 시험, 곧 물질 시험이었습니다(마 4:3-4). 두 번째가 종교적 시험, 곧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마 4:5-7). 그 세 번째가 정치적 시험, 곧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가지고 시험했습니다(마 4:8-10). 그 중에 첫 번째 시험이 경제적 시험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고 한 것입니다(마 4:3).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받은 첫 시험도 먹는 문제였습니다. 인류의 조상은 이 시험에 넘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창 3:1-6). 하나님이 금하신 실 과가 오히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처 럼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주리신 예수님께 현실적으로 가장 우선적인 문제가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 척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돌들로 빵(떡덩이)이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렇게 시험한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예수님의 전능을 미끼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사탄이 경제 지상주의로 나타났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답 속에서 사탄의 경제 지상주의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는 예수님의 대답 속에서 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마 4:4). 사탄은 사람이 돈(떡)만으로 산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물론 사 탄이 인류를 잘못된 길로 끌고 가는 양태들은 시대 시대마다 실로 다양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유혹했습니다. 이른바 자연 지상주의 사상입니다. 인생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될 피조물임을 망각시키는 사상입니다. 사탄은 인간을 다신 숭배(多神 崇拜) 지상주의로 이끌어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헬라의 사람들은 신들의 이름을 붙이다 붙이다 이제 붙일 신의 이름이 없어 '이름 모르는 신'(행 17:22-23)이라고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신앙을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때때로 국가 지상주의로 인류를 이끌고 갑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수많 은 독재 군주들이 나타나 역사를 피로 물들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도 오직 한 영원한 통치주인 예수를 도전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국가 지상주의자 들로 말미암아 이 지상에 존재했던 많은 교회들이 죽음에 이르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사탄은 민족 지상주의를 부르짖게 했습니다. 그래서 혈통주의의 우수성으로 역사 를 혼란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유대 민족주의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저들이 게르만 민족주의에 의해서 600만 명이 학살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사탄은 어떤 이데올로기 지상주의를 주창하게 합니다. 이른바 무신론적 유물주의 입니다. 이것이 공산주의 권력으로 나타나서 세계를 냉각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아니 면 자유 민주주의를 최상으로 신봉하여 절대 다수의 세력으로 블록(bloc)을 만드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근세사는 이러한 유물론적 공산주의와 자유 민주주의가 첨예한 대립을 이루어 세계는 이른바 냉전 시대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사탄은 발달된 사람의 지식의 산물로 나타난 과학을 이용하여 과학 지상주의를 주 장하게 합니다. 그래서 저들은 인간 이성이 용납하는 합리적인 결론 외에는 참된 지 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과학의 힘만이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 것이라고 호언 장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니, 신앙이니, 양심이니 하는 따위는 모두 비시대적이 고, 비지성인들의 소행으로 따돌림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세계는 잠깐 동안 데탕트(d tach )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그래서 넓고 멀었 던 세계는 이른바 지구촌으로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만근 10년 어간에 이 세계에는 여러 류의 경제 블록(bloc)들이 형성되고, 그것이 이른바 세계 무역 기구(W.T.O.)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어느 한 나라만의 경제 시대가 아닌, 전세계의 경 제로 연결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간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모든 나라들의 국가 통치는 경제와 직결하기 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나라가 산업화 시대를 맞으면서, 존재하는 어떤 기업체는 또 다른 기업체와 서로 상관 관계 속에서만 함께 공존할 수 있었던 흐름과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경제 대통령'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됩니다. 제가 자라던 어간에는 이처럼 "경제, 경제, 경제…"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때는 어떤 류의 경제 형성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던 시대인 것같이 느껴집니다. 일제시대의 우리 국민은 모두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자는 광복 이념, 국권 회복 이 삶의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거처하는 것이 오직 '자주 독립' 이라는 여기에 집중이 되었습니다. 해방 시대 이후, 우리는 통일정부 수립이 염원이었습니다. 건국 이후, 우리는 공 산주의 남침 야욕에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것이 6.25 동란 이 우리에게 남긴 생존 의식이었습니다. 군사 혁명 시대 이후로 새로운 형태의 권력형에 복종하면서 이른바 현대화 작업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산업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맞이한 산업화 시대는 다른 선진 국가들이 겪는 정상적인 민주 정치나 경제 구조가 아닌 군부 공포 정치 아래서의 산업화였기 때문에 불균형적인 산업화 시대의 경제 구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로 권력과 기업과 은행이 오랫동안 불균형적인 경제 구조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권력은 통치 수단으로 정치 자금이 필요했고, 여기에 기업은 이른바 정치 자금(통치 자금)을 기하학적으로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기업이 확장되는 첩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은행은 기하학적인 재원을 조달하는 관례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정경유착이었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의 경제 관행은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이른바 경제 성장을 이룩하여 선진국의 문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불균형의 성장도 성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뚤어진 나무도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문민정부 시대를 맞으면서 사실상 불균형적, 구조적 경제 관행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문민정부의 경제 정책의 실패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국가적인 경제 부도 현상을 맞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제 통화 기금(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 M. F.)을 통하여 우리가 만난 경 제 난국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없었다 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런 경우 세계 경제 기구의 도움을 받아 난국을 해결함은 좋 은 일입니다. 그래도 세계가 전쟁 시대가 아닌 데탕트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기금이 조성되고, 또 우리와 같이 어려움을 당한 나라들이 함께 도움을 받고, 공존 공생(共 存 共生)하게 되니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문제의 초점은 이 시대의 흐름이 경제, 오직 경제 지상주의로 흘러가고 있음에 있습니다. 돈만이 국권(國權)이고, 돈만이 국력(國力)이고, 돈만이 국시(國是)인 것처럼 여기는 이 무서운 배금주의, 황금 바알주의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역사 의 배후에서 모든 세계인들에게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라.', '돈만이 최고다.', '돈만이 행복이다.', '돈만이 인생의 목적이다.'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유물론적 민주주의 시대로 전락하고 있는 기분마저 일어납니다. 물질을 취하는 방법과 분배의 방법만 다르지, 경제 지상주의를 추구함이 모든 생 존의 목적이 되어 버릴 때, 그것은 자유 민주주의적 자유 시장 경제적 유물론이 되 고 마는 기분마저 갖게 됩니다.
Ⅱ. 하나님 지상주의만이 살길입니다. 우리는 사탄이 경제 지상주의로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예수님이 응수하신 답변에 서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기러 가나안을 향하여 40년간 광야 길을 행 하던 이스라엘에 주신 말씀입니다. 저들이 40년간이나 광야에서 특별 양식, 곧 만나 를 받은 것은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된 존재 의미나 목적이 하나님을 섬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만나(빵=물질)를 주셨 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답변 속에는,
1. 사람은 하나님만으로 산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행 17:24). 그 하나님은 또한 사람을 창조하신 존재의 근원이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들고 코에 생 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 것입니다(창 2:7). 그래서 그 분이 만민의 생명과 호흡을 주장하신다고 하였습니다(행 17:25).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 하며, 있다고 하였습니다(행 17:28). 사람은 떡만으로 못살고, 하나님만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그 하나님은 인류 생존의 주재자이심을 알아야 됩니다.
2. 사람됨의 본성과 본능을 알려 주는 말입니다. 떡 곧 물질만으로 사는 것은 동물적 생활의 본성이고, 본능입니다. 그러나 사람에 게는 동물적 본성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창 1:27). 말하자면 사람에 게는 물질적 요소만이 아니고, 영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적인 요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영적인 요소는 빵(떡)으로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경제 지상주의가 되어 버릴 때는 그야말로 경제 동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불행한 닉네임(nickname)입니다.
3. 사람의 사람된 최우선적인 목적과 거기에 수반되는 수단을 알려 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사람된 제일 되는 목적, 최우선적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세토록 그를 즐거워함에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의 제 일 목적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 7절에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 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생 뿐 아니고, 지음받은 모든 피조물의 피조적 존재 기능도 예외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기 위함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성도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시 19:1).
그러므로 먹는 빵(물질)은 그 이차적인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먹기 위하여 지음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지음 받은 것입니다. 사실상 범 죄 이전의 아담과 하와는 식음(食飮)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물질 그 자체는 행복이 아닙니다. 오직 그것은 행복의 수단일 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섬기는 수단으로 사람에게 사용될 때, 지음 받은 그 본래의 피조적 기능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모든 피조물은 탄식하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롬 8:22). 그 이유는 지음 받 은 피조물이 지음 받은 본래의 기능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허무한 데 굴복하고 썩어 짐의 종노릇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롬 8:19-21).
4.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영혼도 있고, 물질도 있다는 뜻입니다. 사탄에게 응수한 주님의 답변은 사람에게 떡(빵=물질)이 필요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 속에는 사람에게 필요한 영(靈)도 있고, 물질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영육이 나왔기 때문입니다(창 1:).
그러므로 내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육신은 내 남편이나 자식의 직장(재 물)으로 산다는 생각은 이원론(二元論)적인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1977년 미국의 대부호 '하워드 휴즈'가 죽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20억불의 큰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는 라스베가스의 유흥장과 호텔, 비행기 회사, 영화사, 방송 국 등 50여 개의 업체를 경영하면서 당대의 미인 에바 가드너를 비롯한 당시 헐리웃 의 스타들과 많은 염문을 뿌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돈과 미녀와 명예 속 에 파묻혀 살던 그가 죽기 전 10년간은 심한 결핵 환자로서 외부와 차단된 유리벽 안에서 고독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자가 용 비행기로 병원에 가던 중에 그는 비행기 안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그 비행 기 안에서 숨을 거두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 한 마디가 "Nothing! Nothing!"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과연 돈과 명예와 미녀가 그의 인생에 행복을 보장해 주었던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외침에서, 우리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 지상주의! 권력 지상주의! 과학 지상주의! 경제 지상주의! 금세(현실) 지상 주의! 예외없이 사탄의 말입니다. 이 세대를 향한 사탄의 유혹입니다. 그것은 신상 (神像)이었던 사람을 인상(人像)으로, 다음에 물상(物像)으로 그리고 축상(畜像)으 로 타락시켜 버리는 사탄의 궤계입니다. 오늘 한국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지금도 저는 그 어렵다고 하는 '기준'이 어디 인가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풍요 속의 잠꼬대 소리처럼 들려질까 봐 걱정 됩니다. 이 나라의 살길은 하나님 지상주의 사상입니다. 예수 지상주의 사상입니다. 말씀 (성경) 지상주의 사상입니다. 주님이 이 시대 선교 한국을 당신의 가슴에 담고 계신 다는 이 확실한 사실 한 가지를 기억하고, 우리가 만난 밤 사경(四更)의 역경이 전 화위복의 은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I. 경제 지상주의는 사탄적 산물입니다. 예수님은 성역 초기에 사탄으로부터 세 가지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경제적 시험, 곧 물질 시험이었습니다(마 4:3-4). 두 번째가 종교적 시험, 곧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마 4:5-7). 그 세 번째가 정치적 시험, 곧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가지고 시험했습니다(마 4:8-10). 그 중에 첫 번째 시험이 경제적 시험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고 한 것입니다(마 4:3).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받은 첫 시험도 먹는 문제였습니다. 인류의 조상은 이 시험에 넘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창 3:1-6). 하나님이 금하신 실 과가 오히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처 럼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주리신 예수님께 현실적으로 가장 우선적인 문제가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 척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돌들로 빵(떡덩이)이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렇게 시험한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예수님의 전능을 미끼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사탄이 경제 지상주의로 나타났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답 속에서 사탄의 경제 지상주의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는 예수님의 대답 속에서 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마 4:4). 사탄은 사람이 돈(떡)만으로 산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물론 사 탄이 인류를 잘못된 길로 끌고 가는 양태들은 시대 시대마다 실로 다양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유혹했습니다. 이른바 자연 지상주의 사상입니다. 인생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될 피조물임을 망각시키는 사상입니다. 사탄은 인간을 다신 숭배(多神 崇拜) 지상주의로 이끌어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헬라의 사람들은 신들의 이름을 붙이다 붙이다 이제 붙일 신의 이름이 없어 '이름 모르는 신'(행 17:22-23)이라고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신앙을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때때로 국가 지상주의로 인류를 이끌고 갑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수많 은 독재 군주들이 나타나 역사를 피로 물들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도 오직 한 영원한 통치주인 예수를 도전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국가 지상주의자 들로 말미암아 이 지상에 존재했던 많은 교회들이 죽음에 이르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사탄은 민족 지상주의를 부르짖게 했습니다. 그래서 혈통주의의 우수성으로 역사 를 혼란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유대 민족주의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저들이 게르만 민족주의에 의해서 600만 명이 학살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사탄은 어떤 이데올로기 지상주의를 주창하게 합니다. 이른바 무신론적 유물주의 입니다. 이것이 공산주의 권력으로 나타나서 세계를 냉각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아니 면 자유 민주주의를 최상으로 신봉하여 절대 다수의 세력으로 블록(bloc)을 만드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근세사는 이러한 유물론적 공산주의와 자유 민주주의가 첨예한 대립을 이루어 세계는 이른바 냉전 시대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사탄은 발달된 사람의 지식의 산물로 나타난 과학을 이용하여 과학 지상주의를 주 장하게 합니다. 그래서 저들은 인간 이성이 용납하는 합리적인 결론 외에는 참된 지 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과학의 힘만이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 것이라고 호언 장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니, 신앙이니, 양심이니 하는 따위는 모두 비시대적이 고, 비지성인들의 소행으로 따돌림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세계는 잠깐 동안 데탕트(d tach )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그래서 넓고 멀었 던 세계는 이른바 지구촌으로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만근 10년 어간에 이 세계에는 여러 류의 경제 블록(bloc)들이 형성되고, 그것이 이른바 세계 무역 기구(W.T.O.)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어느 한 나라만의 경제 시대가 아닌, 전세계의 경 제로 연결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간의 교역이 활발해지고, 모든 나라들의 국가 통치는 경제와 직결하기 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나라가 산업화 시대를 맞으면서, 존재하는 어떤 기업체는 또 다른 기업체와 서로 상관 관계 속에서만 함께 공존할 수 있었던 흐름과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경제 대통령'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됩니다. 제가 자라던 어간에는 이처럼 "경제, 경제, 경제…"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때는 어떤 류의 경제 형성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던 시대인 것같이 느껴집니다. 일제시대의 우리 국민은 모두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자는 광복 이념, 국권 회복 이 삶의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거처하는 것이 오직 '자주 독립' 이라는 여기에 집중이 되었습니다. 해방 시대 이후, 우리는 통일정부 수립이 염원이었습니다. 건국 이후, 우리는 공 산주의 남침 야욕에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것이 6.25 동란 이 우리에게 남긴 생존 의식이었습니다. 군사 혁명 시대 이후로 새로운 형태의 권력형에 복종하면서 이른바 현대화 작업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산업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맞이한 산업화 시대는 다른 선진 국가들이 겪는 정상적인 민주 정치나 경제 구조가 아닌 군부 공포 정치 아래서의 산업화였기 때문에 불균형적인 산업화 시대의 경제 구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로 권력과 기업과 은행이 오랫동안 불균형적인 경제 구조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권력은 통치 수단으로 정치 자금이 필요했고, 여기에 기업은 이른바 정치 자금(통치 자금)을 기하학적으로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기업이 확장되는 첩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은행은 기하학적인 재원을 조달하는 관례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정경유착이었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의 경제 관행은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이른바 경제 성장을 이룩하여 선진국의 문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불균형의 성장도 성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뚤어진 나무도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문민정부 시대를 맞으면서 사실상 불균형적, 구조적 경제 관행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문민정부의 경제 정책의 실패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국가적인 경제 부도 현상을 맞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제 통화 기금(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 M. F.)을 통하여 우리가 만난 경 제 난국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없었다 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런 경우 세계 경제 기구의 도움을 받아 난국을 해결함은 좋 은 일입니다. 그래도 세계가 전쟁 시대가 아닌 데탕트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기금이 조성되고, 또 우리와 같이 어려움을 당한 나라들이 함께 도움을 받고, 공존 공생(共 存 共生)하게 되니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문제의 초점은 이 시대의 흐름이 경제, 오직 경제 지상주의로 흘러가고 있음에 있습니다. 돈만이 국권(國權)이고, 돈만이 국력(國力)이고, 돈만이 국시(國是)인 것처럼 여기는 이 무서운 배금주의, 황금 바알주의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역사 의 배후에서 모든 세계인들에게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라.', '돈만이 최고다.', '돈만이 행복이다.', '돈만이 인생의 목적이다.'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유물론적 민주주의 시대로 전락하고 있는 기분마저 일어납니다. 물질을 취하는 방법과 분배의 방법만 다르지, 경제 지상주의를 추구함이 모든 생 존의 목적이 되어 버릴 때, 그것은 자유 민주주의적 자유 시장 경제적 유물론이 되 고 마는 기분마저 갖게 됩니다.
Ⅱ. 하나님 지상주의만이 살길입니다. 우리는 사탄이 경제 지상주의로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예수님이 응수하신 답변에 서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기러 가나안을 향하여 40년간 광야 길을 행 하던 이스라엘에 주신 말씀입니다. 저들이 40년간이나 광야에서 특별 양식, 곧 만나 를 받은 것은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된 존재 의미나 목적이 하나님을 섬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만나(빵=물질)를 주셨 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답변 속에는,
1. 사람은 하나님만으로 산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행 17:24). 그 하나님은 또한 사람을 창조하신 존재의 근원이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들고 코에 생 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 것입니다(창 2:7). 그래서 그 분이 만민의 생명과 호흡을 주장하신다고 하였습니다(행 17:25).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 하며, 있다고 하였습니다(행 17:28). 사람은 떡만으로 못살고, 하나님만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그 하나님은 인류 생존의 주재자이심을 알아야 됩니다.
2. 사람됨의 본성과 본능을 알려 주는 말입니다. 떡 곧 물질만으로 사는 것은 동물적 생활의 본성이고, 본능입니다. 그러나 사람에 게는 동물적 본성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창 1:27). 말하자면 사람에 게는 물질적 요소만이 아니고, 영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적인 요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영적인 요소는 빵(떡)으로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경제 지상주의가 되어 버릴 때는 그야말로 경제 동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불행한 닉네임(nickname)입니다.
3. 사람의 사람된 최우선적인 목적과 거기에 수반되는 수단을 알려 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사람된 제일 되는 목적, 최우선적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세토록 그를 즐거워함에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의 제 일 목적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 7절에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 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생 뿐 아니고, 지음받은 모든 피조물의 피조적 존재 기능도 예외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기 위함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성도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시 19:1).
그러므로 먹는 빵(물질)은 그 이차적인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먹기 위하여 지음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지음 받은 것입니다. 사실상 범 죄 이전의 아담과 하와는 식음(食飮)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물질 그 자체는 행복이 아닙니다. 오직 그것은 행복의 수단일 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섬기는 수단으로 사람에게 사용될 때, 지음 받은 그 본래의 피조적 기능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모든 피조물은 탄식하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롬 8:22). 그 이유는 지음 받 은 피조물이 지음 받은 본래의 기능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허무한 데 굴복하고 썩어 짐의 종노릇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롬 8:19-21).
4.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영혼도 있고, 물질도 있다는 뜻입니다. 사탄에게 응수한 주님의 답변은 사람에게 떡(빵=물질)이 필요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 속에는 사람에게 필요한 영(靈)도 있고, 물질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영육이 나왔기 때문입니다(창 1:).
그러므로 내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육신은 내 남편이나 자식의 직장(재 물)으로 산다는 생각은 이원론(二元論)적인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1977년 미국의 대부호 '하워드 휴즈'가 죽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20억불의 큰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는 라스베가스의 유흥장과 호텔, 비행기 회사, 영화사, 방송 국 등 50여 개의 업체를 경영하면서 당대의 미인 에바 가드너를 비롯한 당시 헐리웃 의 스타들과 많은 염문을 뿌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돈과 미녀와 명예 속 에 파묻혀 살던 그가 죽기 전 10년간은 심한 결핵 환자로서 외부와 차단된 유리벽 안에서 고독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자가 용 비행기로 병원에 가던 중에 그는 비행기 안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그 비행 기 안에서 숨을 거두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 한 마디가 "Nothing! Nothing!"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과연 돈과 명예와 미녀가 그의 인생에 행복을 보장해 주었던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외침에서, 우리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 지상주의! 권력 지상주의! 과학 지상주의! 경제 지상주의! 금세(현실) 지상 주의! 예외없이 사탄의 말입니다. 이 세대를 향한 사탄의 유혹입니다. 그것은 신상 (神像)이었던 사람을 인상(人像)으로, 다음에 물상(物像)으로 그리고 축상(畜像)으 로 타락시켜 버리는 사탄의 궤계입니다. 오늘 한국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지금도 저는 그 어렵다고 하는 '기준'이 어디 인가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풍요 속의 잠꼬대 소리처럼 들려질까 봐 걱정 됩니다. 이 나라의 살길은 하나님 지상주의 사상입니다. 예수 지상주의 사상입니다. 말씀 (성경) 지상주의 사상입니다. 주님이 이 시대 선교 한국을 당신의 가슴에 담고 계신 다는 이 확실한 사실 한 가지를 기억하고, 우리가 만난 밤 사경(四更)의 역경이 전 화위복의 은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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