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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를 삼는 교회 (마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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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시간에 우리 교회의 설립 7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지역에 세워진 것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얻게 하는 일에 우선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우리와 우리가 머무는 지역 사회, 그리고 생활의 전 영역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역시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 교회는 이 세상에 있는 여느 다른 사회 공동체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러한 거룩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존재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힘을 기울이는 공동체, 하나님을 높이고 예배하는 공동체, 주 안에서 진정한 교제와 봉사가 있는 교회, 기도하는 공동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항상 이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어떤 모습을 가지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분명하고도 간단하게 요약하고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내용은 항상 이야기되어지고, 기도로 나타나야 하고, 인쇄화되어 우리 교회 성도들의 의식 속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연구할 내용은 교회의 이러한 존재목적과 존재모습을 구현하기 위하여 우리 교회가 어떤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제자를 삼는 일입니다. 이것이 이 본문의 주제입니다. 오늘 이 주제를 함께 연구하면서 첫 번째로는 제자의 개념, 두 번째로는 제자 삼는 일의 중요성, 세 번째로는 제자 삼는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제자의 개념 성경에 "제자가 된다"는 말이나, "제자를 삼는다," 또는 명사형으로 "제자"라는 말이 헬라어 성경에 모두 동사는 4번, 명사는 261번이 나옵니다. 제자라는 말은 일반 헬라어에서는 어떤 특정한 직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술을 습득하기 위하여 배우는 사람에게 적용되기도 하였고, 어떤 교사의 생도를 가리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한의 제자"라는 말이나 "바리새인의 제자"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막2:18). 요한의 제자라고 할 때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세례 요한을 따라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였으며(막2:18; 눅11:1),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변론하기도 하였습니다(요3:25). 그리고 바리새인의 제자라고 할 때 구약성경과 장로들의 율법이라고 알려진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유전에 대하여 배우고 거기에 대하여 자세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들도 금식하며 그 가르침에 복종하였습니다(막2:18).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제자의 개념이 예수님 당시에 보편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는 어떤 특정한 사람의 가르침을 배우며, 그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당시에 유대 랍비들이나 헬라의 철학자들도 많은 제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특정한 가르침이나 일정한 주장에 대하여 헌신한 것으로 문헌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원하면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이 택하여 부르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훈련을 받으며, 그 말씀에 전적으로 헌신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자기들의 죄악을 회개하고 그를 믿음으로만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을 알고, 사랑하고, 믿으며, 헌신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주님이 가는 길을 나도 가고, 나의 삶을 위한 주님의 계획과 뜻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제자됨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개념은 실망스럽습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주님을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신 길을 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길을 가면서도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생활이 주님의 가르침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기보다는 "그렇지만"이라고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을 따르고, 나의 삶을 위한 주님의 계획과 뜻을 받아들이는 일에 있어서 절반의 개념은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일은 전부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참된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말씀을 배워서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의 삶이 훈련된 사람이며, 전적으로 그의 삶을 그리스도의 말씀에 일치시키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제자를 키우는 일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2. 제자 삼는 일의 중요성 제자를 삼는 일이 왜 중요할까요 제자를 삼는 일의 중요성에 대하여 성경에 여러 증거들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입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져 있고 외우고 있는 말씀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이 명령을 가리켜 교회는 아주 옛날부터 "지상명령" 또는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가장 크고 위대한 위임명령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이 이 세상에서 하신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위임해 주신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이 위임명령의 핵심은 제자를 삼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본문을 근거로 전도하는 것을 지상명령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이 본문의 문법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다섯 개의 동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동사는 간다, 제자를 삼으라, 세례를 준다, 가르친다, 지킨다는 동사입니다. 여기에 주 동사는 "제자를 삼는다"는 말이고, 간다, 세례를 준다, 가르친다는 동사는 분사로 되어 있고, 지킨다는 말은 가르치는 목적을 말하는 부정사로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문법구조상 세 개의 분사로 된 동사는 제자를 삼는 일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제자를 삼을 것인지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하신 이 지상명령을 볼 때 제자를 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 명령을 주실 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 대위임령을 수행하는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도 있지만, 세상 끝날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자 삼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그리고 제자 삼는 일이 왜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부분은 예수님이 실제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먼저 제자들을 부르시고 배우게 하셨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12-16에 보면 예수님이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제자를 세우셨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가 될 가룟 유다라." 예수님은 제자를 선택하실 때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열 두 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열 두 명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시며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들 중에 다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이 세 명을 야이로의 딸이 병고침을 받는 자리에 이들을 데리고 가셨고(막5:37; 눅8:51), 변화산상에 주님의 영광을 보게하였으며(막9:2; 마17:1; 눅9:28),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 데리고 가셨습니다(막14:33; 마26:37)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열 두 명의 제자를 가르치시고 훈련시키며, 그 중에서도 특별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훈련시키시며 사도로 세우신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의 사역을 대부분은 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을 통하여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주님의 사역을 전파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라면 앞으로 예수님께서 구원사역을 마치시고 하늘 나라로 가시고 나면, 그 후에 이들을 통하여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을 가장 우선적인 사명으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도 우리는 제자를 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선교지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목표로 삼았던 것은 역시 제자를 삼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 바나바와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에서 많은 이방인들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 흥미있는 것은 그 제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 Christian)이라고 불리워 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아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5-26) 여기서 누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졌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제자들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호칭은 오늘날 우리 믿는 자를 가리키는 말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제자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을 때 그들의 삶에서 구별되는 특징들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의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를 때 구별되는 특징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생활은 세상을 따르는 삶과는 분명한 차이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더베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제자를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행14:21) 이러한 기록들을 볼 때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쳐서 제자를 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됨의 중요한 점은 말씀의 표준에 따라 사는 제자들을 양육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 교회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서 제자를 삼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 사역한 것처럼 말씀으로 가르치고, 위로하고, 세워서 제자로 삼는 일을 잘 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쳐 제자로 세운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를 삼는 일은 예수님이 구원사역을 이루시고 교회에게 명하신 대위임령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구원사역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계속할 수 있는 기본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역사를 통하여 제자를 삼는 일을 무시해 왔습니다. 교회는 세상 끝날까지 복음을 전하여 세상을 변혁시킬 제자들을 키워야 합니다. 제자를 키우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공산주의자나 많은 이단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본 전략은 소수를 훈련시켜 핵심 요원으로 만드는 일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소수의 사람들을 키우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사상을 전파하여 그들이 꿈꾸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바로 예수님이 교회에게 명한 방법이 아닙니까 교회는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주님의 대위임령을 귀담아 듣고 제자를 삼는 일에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3. 제자 삼는 방법 그러면 어떻게 제자를 삼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 본문에 구체적인 방법들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세 가지 중요한 방법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주님의 대 위임명령은 제자를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본문은 앞에서도 잠시 설명한 바와 같이 "제자를 삼으라"는 주 동사를 설명하는 세 개의 분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를 삼는 방법입니다. 제자를 삼는 일의 첫 번째 방법은 "가서"라는 말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가는 전도를 의미합니다. 요즘 들어와서 선교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오늘날 신학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할 때 전도는 동일한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하고, 선교는 타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요즘 들어와서는 대학이나 산업체, 기타 특별한 문화권을 이루고 있는 곳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학원선교,산업선교,문서선교" 등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일이 가장 우선적인 일입니다. 제자를 삼는 일의 두 번째 방법은 복음을 전파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는 말 가운데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세례는 믿고 주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은 자들에게 베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주어라"는 것은 믿게 하여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나 그 후의 시대를 보면 믿는 일과 세례받는 일은 항상 같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믿는 일은 세례받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세례를 준다는 말은 믿게 하여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한다는 뜻입니다.
제자를 삼는 세 번째 방법은 "가르치다"라는 동사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지식들을 위시하여 갖추어야 할 삶의 덕목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예수님은 누구이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지, 성령님의 사역은 무엇인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삶의 목표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교회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제자로서 계속 성장하기 위하여 기도시간을 언제 어떻게 가질 것이지,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그리고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지에 대하여서도 가르쳐야 합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자삼는 일은 전도하는 일, 양육하여 세례를 받게 하는 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그 말씀대로 살게 하는 일 등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한 사람의 제자를 삼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제자는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며, 주님의 길을 자기도 걸으며, 주님의 삶을 살며,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러한 제자를 세우는 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만 제자를 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느리고, 지루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도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살아서 그 결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가 제자를 키울 때 그 미래는 정말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부터 지금 우리 교회의 창립 멤버들인 황도훈, 강남숙, 한용식, 이지훈 성도들과 함께 시작하였고, 그 후에 오명숙, 송현채 성도, 김용기, 안덕 성도 등과 함께 공부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내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잘 정리된 성경공부 교재가 우리 교회에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가장 기본적인 성경의 교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와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1서, 디모데후서, 로마서 등을 함께 공부하였습니다. 이 때에 어떤 경우는 새벽에, 어떤 경우는 밤 10시에 시작하여 12시가 넘어서 마치기도 하였고, 그리고 김용기, 안덕 성도님의 경우는 일하는 곳인 시장에서 낮 1-2시에 하였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제자 삼는 일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이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이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이며, 계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가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때로 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목회를 하기 때문에 교회가 성장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뚜렷한 결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실험과 승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를 삼는 일이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대위임령이고, 이 일을 위하여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약속하셨다면 분명한 결과를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미래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먼저 주님의 제자가 되고, 역시 제자를 삼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제자가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헌신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서 주님의 제자가 될 때 세상 사람들이 다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교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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