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예수 최후의 날 (마27:45-50)

본문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날들 가운데 가장 최악의 날이 있었습니다. 아니 비할 데 없는 지상 최대의 비극의 날이었기도 합니다. 아니 그날은 창조이래, 이 세상의 날들 가운데 가장 영광의 날이었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날이 있은 후 2000년 세월이 흐르고 지상의 온갖 역사 의 사연들이 쌓여 과거로 사라지는 가운데도, 그날의 그 사건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히 사라질 줄 모르고 살아 있습니다. 아니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고, 그날이 있은 후 지금까지 그날을 마음 에 새기고 살아가는 수많은 지상의 사람들은 그날을 자기 날의 분기점으 로 삼고 개인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의 아들 주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성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날입니다. 그래서 그날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 정 사(釘死)의 날, 곧 예수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며 그에 게 엎드려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오늘 밤 우리 모두는 예수 정사 기념 예배로 모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 마태복음 27장 50절에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 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7절 에도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는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 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 하시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은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 이 돌아가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영감의 기록은 반복해서 말해 주기를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최후의 날 을 맞이하였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예수 최후의 날!
I. 이 날은 지상 최대의 비극의 날이었습니다. 죽음은 비극의 상징입니다. 아니 죽음은 비극의 본체요 실체입니다. 그것은 죄의 삯인 사망입니다. 바울은 이 죽음을 가리켜서 썩는 것이요, 사망의 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5:54-56). 아니 이 죽음을 가리 켜서 멸망 받을 원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5:26). 가정에서 부모가 세상을 떠나는 날은 자녀들과 가족들에게 슬픔의 날 입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서 죽는 날은 부모에게 슬픔과 고통의 날입니다. 아내가 죽는 날은 남편에게, 남편이 죽는 날은 아내에게 더할 나위 없는 슬픔과 고통을 실어 주는 날입니다. 친구의 죽음은 또 다른 친구들 에게 슬픔을 안겨 줍니다. 더 나아가 나라님(임금)이 세상을 떠나는 날은 온 백성이 슬퍼합니다. 그래서 국상(國喪)이라고 이름하게 됩니다. 영웅의 죽음, 호걸의 죽음, 가인의 죽음, 재사의 죽음… 등 여러 류의 죽음은 모든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죽음이 만인의 것인 것처럼 그 죽음 때문에 맞는 비극도 만인의 것이 됩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돌아가 신 날입니다. 하나님이신 그가 사람으로 세상에 오셔서 33년을 사시다가 돌아가신 날입니다. 그의 죽음은 특이한 죽음이었습니다. 죄없는 사람의 죽음이었습니다. 아니 죄를 지으실 수도 없고, 죄를 모르시는 무죄하신 그가 죽었습니다. 죽음은 죄의 삯(롬 6:23)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죄와 상관없으신 분이었는데, 죄의 값으로 받을 죽음을 받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예수 스스로가 예견하고 있었던 죽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3장 33절에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 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는 제자 들과 3년의 전도 공생애를 보내면서 수없이 자신의 죽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자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영감을 통하여 말하기를 친히 나무에 달려 죽었다고 하 였습니다(벧전 2:24). 바울은 말하기를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 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 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고 하였습니다 (빌 2:7, 8). 그의 죽음은 저주를 받은 죽음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은 바 되셨다 고 하였습니다. 나무에 달 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입니다. 죄없으신 그 분이 마땅히 죄인들이 받을 죽음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돌아가신 날입니다. 지상 최대의 비극이요 슬픔의 날입니다. 만 인의 구주가 돌아가신 날은 만인의 비극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돌아가 신 오늘 낮 열두 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저 하늘의 태양마저도 그 빛의 기능을 잃고 캄캄해 버렸습니다(마 27:4
5).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을 당하는 비극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십자가 형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마 27:46)라고 절규하였 습니다.
Ⅱ. 이 날은 지상 최대의 대속의 날, 곧 속전의 날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께서 우리 인류의 죗값을 하나님께 대신 지불하는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들에게 사망을 요구 한 것입니다. 이 사망은 육신의 사망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진 노와 저주 아래 들어가는 형벌이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정죄와 심판과 사망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롬 5:15). 또한 사람 예수 곧 마 지막 아담의 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아 생 명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롬 5:18). 그의 의의 행동은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우리가 범죄로 말미암아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 아들의 대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게 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롬 5:6-10).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그 아들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막 10:4
5). 여기 대속물이란 노예나 포로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지불되는 몸값, 혹은 속전(贖錢)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노예 상태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 신의 목숨을 대신 지불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 19절에는 그 대속물의 성질을 가리켜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피가 우리의 죗값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피흘림이 없으면 사유함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보혈의 피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자신을 주셨다(딛 2:14)고 하 였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24)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최후의 날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죗값인 사망을 완전 히 대신 지불하는 날이 아닌가! 예수께서 우리의 빚을 대신 갚아 주신 날이 아닌가! 말하자면 대속의 날, 속전의 날이 아닌가!
Ⅲ. 이 날은 지상 최대의 영광의 날입니다. 그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류 속죄의 성취가 완성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 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 아가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돌아가신 이 날은 모세의 율법의 요구가 성취된 날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죄인에게 사망을 요구한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바 로 하나님 자신이 범죄한 인류에게 선언한 공의의 법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드리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충 족된 날입니다. 또한 이날은 모든 예언자들의 예언이 성취된 날입니다. 구약 여러 시 대의 예언자들은 인류의 메시야가 대속의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할 것이 라고 예언했습니다. 저들 예언의 주제가 메시야의 대신 수난과 죽음이었 습니다. 더욱이 모세의 율법의 요구와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속죄가 완성되고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완성되고 성취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속죄 성 취의 개가를 남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최후의 날은 지상 최대의 영광 의 날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바로 인류의 숙적인 사망 문제를 해결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저 노르웨이 어느 도시에는 지금도 '양의 교회'라고 하는 크고 유명한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종탑 밑에는 한 마리 양 그림 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 교회를 처음 지을 때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예배당 공사를 다 끝맺 고, 제일 마지막 교회당 종탑을 높이 세우는 작업이 한창 계속 중이었을 때라고 합니다. 그때 마침 양치기가 이끄는 한 무리의 양떼가 그 종탑공 사 현장 밑으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 높은 종탑 위에서 일 하고 있던 한 공인(工人)이 발을 잘못 디디는 실수로 미끄러져 모든 사람들이 "아!" 하며 소리를 지르는 순간 벌써 종탑 위에서 아스팔트가 깔 린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놀란 사람들이 그는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몰려들었는데, 잠시 후 그는 죽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놀라면서 그 사람을 쳐다보는 순간 바로 그 아스팔트 바닥에는 한 마리 양이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양치기가 한 무리 의 양떼를 이끌고 그 밑을 지나가던 순간에 떨어진 그 공인(工人)의 몸 이 정확히 한 마리의 양 위에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살아난 사람이나 그것을 목도한 모든 교인들은 그 양이 사람 의 죽음을 대신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 새 예배당 이름 을 '양의 교회'라고 부르고, 그 교인들은 그 양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하여 그 종탑 밑에 양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최후의 날을 기억합니다. 이날은 지상 최대의 비극의 날 이라고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지 상 최대의 속전(贖錢)의 날이라고 기억합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 은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는 속가(贖價), 속전(贖錢)이 되어 주었기 때문 입니다. 아니 이날은 지상 최대의 영광의 날이라고 기억합니다. 그 이유는 인 류를 향한 하나님 자신의 구원 계획이 완전히 성취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예수 믿는 신자 치고 주님 돌아가시는 이 날을 잊 어버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잊기는커녕 기억하고 좋아하며 감사하 고, 죄를 회개하며, 감사의 경배를 드립니다. 알고 보면 이 날은 내 개 인 생의 신기원이 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지상의 교회 출생의 신기 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역사의 신기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최후의 날은 내 개인과, 교회와, 인류 역사의 새 시작의 날이 되 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밤 우리와 세계에 산재하는 모든 기독 신 자들이 그 십자가 밑에서 감격하고, 감사하고, 서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87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