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을 회개하라! (마26:69-75)
본문
교회 뒤에 아주 큰 은행나무가 있는데 여름에 그렇게 푸르렀던 은행 잎이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 잎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지금은 은행 잎이 단 한 잎도 붙어있지 않은 앙상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저는 이 은행나무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져 보았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은행나무는 지금은 볼품없지만 내년에는 반드시 또 푸르름을 자랑할 것이다 일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수히 범한 죄들을 이제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은행나무처럼 모두 다 털어 버려야 할 것이다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할 때 앙상한 가지처럼 상한 심령은 되겠지만 그 심령 위에 하나님은 반드시 다음 해에 푸르름 삶을 약속해 주실 것이다. 오눌 본문에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베드로의 가슴아픈 사건이다 베드로는 예수님 12제자중 수제자였다. 본명은 시몬이었지만 예수님이 게바로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 게바를 번역하면 베드로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위대한 신앙고백을 예수님께 한 자였다. 그러나 그 힘찬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붙잡히자 베드로의 모습은 부끄러울 만큼 변해 버렸다.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한 베드로의 연약한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범죄 후에 베드로의 모습은 우리와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우리들의 회개는 너무 형식적인 회개는 아닌가 생각해보자. 베드로의 연약한 모습과 진정한 회개를 살펴보면서 한해를 온전히 회개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첫 번째:베드로의 추한 모습. 69-74절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
빌라도 법정에 모인 사람들은예수님 얼굴에 침을 뱉었고 주먹으로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때렸다. 말할 수 없는 모욕을 예수님은 당하셨다. 베드로는 멀찍이서 주님이 당하신 모욕의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때 한 천한 여종과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 " 계속되는 질문에 베드로는 3번씩이나 부인하고 나중에는 예수를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부인 = ajrnevomai (알네오 마이) 부정하다. 거부하다. 단절하다. 저주 = katanaqemativzw (카타나데마티조) 완전히 소멸시키다. 예수님을 3년 반동안 따라 다니면서 모든 것을 배우고 주님과 함께 고생했던 것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렇게 당당했던 수제자 베드로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베드로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베드로가 처음 예수를 따르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베드로야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 말씀에 베드로는 "싫어요! 안 갈래요! 다음에 보죠" 하지 안했다. 베드로는 너무 신바람이 나서 그물을 버리고 단숨에 예수를 따라 나섰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이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보았다.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빛나는 모습으로 변한 것도 보았다. 그리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놀라운 신앙고백도 한 자였다. 예수님이 "베드로야 너는 오늘밤 닭 울기전에 나를세 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을 할 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을 한 자였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가진다. 어쩌면 베드로가 그럴 수 있을까 베드로에게 손가락 짓을 할 수 있다. 성도 여러분! "나 같으면 절대로 그렇지 않은다" 장담 할 수 있습니까 베드로의 추한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금년 한 해를 한 달 남기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자 추한 모습이 아닌가요 금년 한해가 시작 될 때 주님과 굳게 한 약속 기억 나십니까 잘 지켰습니까 '요일2:2
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 거짓말하는 자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와 똑같다는 말이다 " 저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한 적이 없어요 "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거짓말하는 자가 예수를 부인하는 자와 똑같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금년 한해 동안에 주님과 약속한 것 지키지 못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부인한 자다 교회에 충성하겠다고 굳게 약속해놓고 지키지 못했다면 우리는 예수를 부인한 자다. 기도와 말씀의 경건생활을 약속하고 지키지 못했다면 우리는 예수를 부인한 자다. 이와 같은 신앙생활이 우리에게 계속 된다면 우리는 베드로처럼 추한 모습이 되고 말 것이다. 베드로의 추한 모습이 처음에는 한 번의 부인으로 끝났다. 그러나 부인이 계속 될 수록 베드로는 나중에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는 비극을 보고 말았다. 70절 =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 72 =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74 =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이것이 예수님께 3년이나 교육받은 제자의 모습인가 너무도 추하고 악한 모습이다.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죄는 무섭게 발전한다는 것을 볼 수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는 가만히 있지 않은다. 죄는 가만히 놓아두어도 스스로 거대해진다.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미움이 나중에는 살인까지 하게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은 죄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나님은 철저히 회개한 죄만 용서해 주신다. 회개하지 아니한 죄는 무섭게 심판하신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우리는 지금 나에게 베드로 같은 추한 모습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일년 동안 얼마나 추한 삶을 살았는지 나 자신이 잘 알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모두 다 죄이다. 죄를 먹고 마시고 죄악 속에서 살고 있다.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탄광을 가보면 온통 다 시커멓다. 나무들도 풀들도 돌들까지도 다 시커멓다. 사람들의 모습도 모두가 검은 색이다. 그들은 검은 것에 만성이 되어서 살아간다 우리도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죄악 속에서 죄를 먹고 마시고 살면 죄를 지어도 죄인지 모르고 산다 ' 예 화 ' 어느 교회 목사가 주일 아침 설교에서 죄에 대하여 아주 강하게 말했더니 이튿날 어느 여자 집사 한 분이 목사댁엘 찾아와서 "목사님, 어제 설교에서는 죄에 대하여 너무 솔직하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애들이 그러지 않아도 교회에 잘 나오지 않으려 하는데 어제 설교를 듣고 교회 오기 싫다고 해요. 목사님 앞으로는 너무 그렇게 솔직하게 죄에 대해서는 말씀 안하시면 좋겠어요." 이 충고를 듣고 있던 목사가 일어나더니 약장에 가서 '극약'이라고 쓴 약병을 가지고 와서 그 집사에게 하는 말이 "자매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뜻을 잘 알겠습니다. 자매님의 말씀은 이 약병에서 '극약'이라고 쓴 딱지를 바꾸라는 말씀이지요.
제가 이 독약이 든 병에서 '극약'이라고 쓴 딱지를 떼버리고 '꿀'이라고 써 붙이면 좋을까요 그러면 위험하지 않겠지요 자매님, 사람이 듣기 좋은 말로만 하면 더욱 영혼을 죽이게 됩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사람들은 죄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기왕이면 듣기 좋은 말을 썼으면 하는 사람이 많고 아예 어떤이는 교회에서는 죄라는 말을 빼고 윤리적인 말이나 철학적으로 지식적인 설교를 듣기를 원한다. 이것은 극약이 든 병에서 극약이라는 딱지를 떼버리라는 말과 똑 같은 말이다 .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성경은 죄의 비극적인 결과에 대해서 무섭게 말씀하고 있다.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신 것은 세상의 죄악이 관영 했기 때문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심판을 받은 것은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도 악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 받은 것은 그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난 죄악 때문에 이방 세력의 손에 맡기신 것이다. 마지막 때에 세상은 죄악이 관영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복을 못 받는가 죄 때문이다. 왜 주님의 은혜를 못 받는가 죄 때문이다. 왜 우리의 신앙이 부끄러움을 당하는가 죄 때문이다. 죄를 지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럽기 짝이 없는 추한 자들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 죄의 문제가 우리에게 해결되지 않는한 우리는 주님과 가까워 질 수 없다. '사59:1-
3'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우리가 죄를 짓고도 내 추한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오늘 우리는 베드로의 이 추한 모습을 보고 우리의 자신은 어떠한지 깨달으시기 바란다. 베드로를 손가락짓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부인하고 저주까지한 베드로의 추한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추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를 철저히 미워하고 물리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은행나무처럼 나에 추한 모습을 볼 줄 아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심히 통곡하는 베드로. 75절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 하니라 "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이미 예언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부인만 한 것이 아니라 저주까지 한 것이다. 베드로는 대성 통곡을 했다. 어떻게 대성 통곡을 하게 되었는가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 베드로의 가슴을 친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베드로는 대성 통곡을 시킨 것이다.
통곡 가슴을 치고 소리 높여 슬피 우는 것이다 마음을 찢는 회개를 의미한다. '욜2:1
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 " 진정한 회개는 소리를 지르고 가슴을 치고 눈물. 콧물 흘리는게 진정한 회개다. 조용한 회개 기도는 있을 수 없다. 나의 추하고 더러운 죄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몸부림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내 더러운 마음을 주님 앞에 쏟아 붓는게 진정한 회개다. 마음을 뒤집어 엎으는데 어떻게 조용히 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죄진 추한 모습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지옥의 시뻘건 유황불 속에 들어가고 만다. 죄인은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다. 천국은 죄를 회개한자만이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좋은 회개를 하지 않은다. 왜 회개를 안하는가 회개를 안하고 싶어서 안하게 아니라 못한 것이다. 회개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게 아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회개를 하게 되었는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한 상황에서 어떻게 회개 할 수 있었습니까 '다같이'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회개할 줄 모른다. '롬3:20'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롬5:1
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 하나님 말씀을 모르고서는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니까 당연히 죄에 대한 회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강단에서 죄에 대해서 강하게 지적하는 설교가 적다는게 심각하다. 성경에 얼마나 많이 죄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많이 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 우리의 죄 때문이다. 믿으십니까 나의 죄 때문에 거룩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몸 찢고 온 몸의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셨다. 믿으십니까 진정한 회개를 하고 싶으십니까 나의 더러운 죄가 다 사함 받기를 원하십니까 말씀이 생각나야만 한다. 어떤 말씀인가 '히9:2
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예수의 피가 아니고서는 내 죄가 사함 받을 길 없다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십자가 달려서 흘리신 주님의 피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 마음이 찢어지는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초대교회 때 베드로가 그들의 죄를 지적하면서 말씀을 증거할 때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어찌할꼬-- " 하는 회개가 나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날 우리가 설교 들으면서 회개합니까 말씀을 들으면서 내 죄가 드러나야 하고 드러날 때 우리는 회개가 터져나와야 한다. 나의 죄가 말씀 앞에 드러날 때 우리는 회개를 해야만 한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이 들리면 도적질 한 자는 그 말씀 앞에 "어찌할꼬" 회개가 터져나와야 한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 들리면 그 말씀 앞에 가슴을 치고 애통해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일을 성수해라" 말씀이 들리면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죄를 "어찌할꼬" 하는 애통함이 있어야 한다. "교회에 충성하라" 말씀이 들리면 교회 일에 소홀한 우리의 죄를 가슴을 치고 "어찌할꼬" 하는 회개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회개가 없이는 우리는 주님 앞에 추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어찌할꼬" 하는 회개가 내 영혼 가운데 없이는 내 영혼은 새롭게 예수 안에서 활기찬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 영혼. 한 영혼을 너무나 사랑하고 계신다 믿으십니까 그 사랑이 바로 우리에게 회개할 수 있는 복을 주셨다. 믿으십니까 ' 예 화 ' 어떤 성도가 성경을 읽는데 마태복음 9장 10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보고 있었다. 때마침 목사가 이것을 보고 기특히 생각하여 그 뜻을 알고 읽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지금 읽는 그 곳에 누구의 이름이 씌어져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 때에 그 성도는 말하기를 "예 이곳엔 제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목사는 깜짝 놀랐다. 이 뜻을 모르고 읽는구나 탄식하면서 어느 것이 당신의 이름이요 물었다. 그 성도는 "이것이 제 이름입니다"하며, 10절,11절,13절에 거듭 거듭 있는 죄인이란 말을 가르켰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죄인이 가장 원하는 것은 죄가 용서함 받는 길이다. 그 용서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주님은 우리에게 주셨다. 누구든지 죄를 회개만 하면 예수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 죄를 회개할 때 우리는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을 찢는 회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의 마음을 찢는 회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가룟유다보다도 더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다시 베드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대성 통곡하는 회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다시 베드로를 만나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 사랑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에게 통곡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과 사랑의 시간을 계속 보내고 싶으십니까 철저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는 사람들이 회개치 아니한다고 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다. 회개한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이다. 날마다 애통함으로 주님께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애통하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세 번째:회개한 자에게 오는 축복. 행3:6-8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 베드로의 모습이 놀랍게 달라졌다.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던 그 입술이 지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아온 거지를 지금 일으키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습니까
회개는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가져다 준다. 회개는 죄만 고백하고 사함 받는 그런 낮은 차원이 아니다 진정한 회개를 할 때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다. 회개 후 베드로는 더 큰 능력의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의학적으로 우리 눈에 촉촉한 물이 고이지 않고 눈물이 안 나온다면 우리 눈은 얼마 못가서 눈을 못쓰게 된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실컷 울고나면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한다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면 큰 병이 된다고 한다 우리의 영적 세계도 우리가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 상태도 금방 병들어 버린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애통함을 가지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심령은 강퍅해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회개를 철저히 하면서 회개의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의 믿음에는 나도 모르게 새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 힘 느껴 보셨습니까 성도 여러분 ! 기도만 많이 한다고 능력 받은 것 아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회개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능력을 행한다 할지라도 그 능력은 예수께로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능력의 첫 걸음은 바로 회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베드로가 회개한 후 베드로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위대한 설교자가 되었고. 죄를 지적하는 자가 될 수 있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능력이 나타났다. 평생을 예수 한 분만을 사는 자가 되었다. 진정한 회개를 한 자는 내가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다윗 왕이 범죄 한 후 하나님께 밤이 맞도록 눈물로 회개를 했다. 그 후로 다윗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시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시편이 150장인데 다윗은 반이 넘는 되는 77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악한 사울에서 진정한 회개를 하고난 후 평생을 예수를 위해 살다가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했다. 어거스틴도 말할 수 없는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눈물로 회개한 후 예수를 위해서 평생을 살았다. 베드로도 평생동안 닭이 울 때마다 애통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에 잡혀서 죽게 되었을 때 베드로는 "나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똑바로 달릴 수 없으니 거꾸로 달아 주십시오 " 베드로는 그렇게 순교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 조세형은 39살에 잡혀서 교도소에 들어갔다. 조세형은 지난 목욕일 날 15년만에 54살의 나이로 출감했다. 그는 앞으로 주님을 위해서 청소년 선교 사역을 하며 믿음으로 살겠다고 고백했다. 진정한 회개한 자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진정한 회개를 할 때 그 순간부터 우리는 예수를 위해 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저 역시 죄인 중에 괴수였지만 주님 앞에 온전히 회개한 후에 폐병이 치료함 받았고 주님을 위해서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진정한 회개를 하면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회개는 단순히 죄만 고백하는 단계에서 그치지 아니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답게 능력을 받아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회개가 뒤따른 신앙생활을 철저히 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내가 온전하다고 하는 자를 쓰지 아니한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깨닫고 회개하는 자를 주님은 축복해 주시고 예수의 능력을 주신다. 회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이다. 회개한 자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 회개한 자만이 주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 회개한 자만이 주님의 가신 길을 갈 수 있다. '결론' 한 해가 이제 한 달 남았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께 온전한 회개의 삶을 살지 못했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새 날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회개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의 추한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위대한 것은 추한 모습에서 머무르지 않고 가슴을 치고 애통하며 주님께 죄를 회개했다는 것이다. 그 후 베드로의 모습은 전에 추한 비겁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성도 여러분 ! 갈수록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러한 때 우리 믿는 자들은 철저한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회개만 하면 아무리 더러운 죄일지라도 깨끗케 된다. '사1:18'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 애통한 마음으로 회개를 하고 나온 자에게 하나님은 두 팔을 벌리고 안아 주신다. 눅15장 탕자가 회개를 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 왔을 때 그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면서 반겨주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베드로와 같은 추한 죄악된 모습에서 더 이상 머물러 있지 말고 대성통곡하고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이 되어보자. (시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새로운 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껏 죄악된 우리의 모습은 이제 철저히 회개하고 새로운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될 것이다. 12월 한 달은 여러분에게 일년동안 다하지 못한 회개 기도를 하는 달이 되기를 원한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듣고 회개한 자가 된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새 날은 소망찬 날이 될 것이다. 회개한 자에게 하나님은 시온의 대로를 활짝 열어 주실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은행 잎이 단 한 잎도 붙어있지 않은 앙상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저는 이 은행나무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져 보았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은행나무는 지금은 볼품없지만 내년에는 반드시 또 푸르름을 자랑할 것이다 일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수히 범한 죄들을 이제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은행나무처럼 모두 다 털어 버려야 할 것이다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할 때 앙상한 가지처럼 상한 심령은 되겠지만 그 심령 위에 하나님은 반드시 다음 해에 푸르름 삶을 약속해 주실 것이다. 오눌 본문에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베드로의 가슴아픈 사건이다 베드로는 예수님 12제자중 수제자였다. 본명은 시몬이었지만 예수님이 게바로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 게바를 번역하면 베드로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위대한 신앙고백을 예수님께 한 자였다. 그러나 그 힘찬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붙잡히자 베드로의 모습은 부끄러울 만큼 변해 버렸다.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한 베드로의 연약한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범죄 후에 베드로의 모습은 우리와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우리들의 회개는 너무 형식적인 회개는 아닌가 생각해보자. 베드로의 연약한 모습과 진정한 회개를 살펴보면서 한해를 온전히 회개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첫 번째:베드로의 추한 모습. 69-74절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
빌라도 법정에 모인 사람들은예수님 얼굴에 침을 뱉었고 주먹으로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때렸다. 말할 수 없는 모욕을 예수님은 당하셨다. 베드로는 멀찍이서 주님이 당하신 모욕의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때 한 천한 여종과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 " 계속되는 질문에 베드로는 3번씩이나 부인하고 나중에는 예수를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부인 = ajrnevomai (알네오 마이) 부정하다. 거부하다. 단절하다. 저주 = katanaqemativzw (카타나데마티조) 완전히 소멸시키다. 예수님을 3년 반동안 따라 다니면서 모든 것을 배우고 주님과 함께 고생했던 것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렇게 당당했던 수제자 베드로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베드로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베드로가 처음 예수를 따르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베드로야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 말씀에 베드로는 "싫어요! 안 갈래요! 다음에 보죠" 하지 안했다. 베드로는 너무 신바람이 나서 그물을 버리고 단숨에 예수를 따라 나섰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이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보았다.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빛나는 모습으로 변한 것도 보았다. 그리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놀라운 신앙고백도 한 자였다. 예수님이 "베드로야 너는 오늘밤 닭 울기전에 나를세 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을 할 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을 한 자였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가진다. 어쩌면 베드로가 그럴 수 있을까 베드로에게 손가락 짓을 할 수 있다. 성도 여러분! "나 같으면 절대로 그렇지 않은다" 장담 할 수 있습니까 베드로의 추한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금년 한 해를 한 달 남기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자 추한 모습이 아닌가요 금년 한해가 시작 될 때 주님과 굳게 한 약속 기억 나십니까 잘 지켰습니까 '요일2:2
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 거짓말하는 자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와 똑같다는 말이다 " 저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한 적이 없어요 "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거짓말하는 자가 예수를 부인하는 자와 똑같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금년 한해 동안에 주님과 약속한 것 지키지 못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부인한 자다 교회에 충성하겠다고 굳게 약속해놓고 지키지 못했다면 우리는 예수를 부인한 자다. 기도와 말씀의 경건생활을 약속하고 지키지 못했다면 우리는 예수를 부인한 자다. 이와 같은 신앙생활이 우리에게 계속 된다면 우리는 베드로처럼 추한 모습이 되고 말 것이다. 베드로의 추한 모습이 처음에는 한 번의 부인으로 끝났다. 그러나 부인이 계속 될 수록 베드로는 나중에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는 비극을 보고 말았다. 70절 =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 72 =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74 =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이것이 예수님께 3년이나 교육받은 제자의 모습인가 너무도 추하고 악한 모습이다.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죄는 무섭게 발전한다는 것을 볼 수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는 가만히 있지 않은다. 죄는 가만히 놓아두어도 스스로 거대해진다.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미움이 나중에는 살인까지 하게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은 죄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나님은 철저히 회개한 죄만 용서해 주신다. 회개하지 아니한 죄는 무섭게 심판하신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우리는 지금 나에게 베드로 같은 추한 모습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일년 동안 얼마나 추한 삶을 살았는지 나 자신이 잘 알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모두 다 죄이다. 죄를 먹고 마시고 죄악 속에서 살고 있다.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탄광을 가보면 온통 다 시커멓다. 나무들도 풀들도 돌들까지도 다 시커멓다. 사람들의 모습도 모두가 검은 색이다. 그들은 검은 것에 만성이 되어서 살아간다 우리도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죄악 속에서 죄를 먹고 마시고 살면 죄를 지어도 죄인지 모르고 산다 ' 예 화 ' 어느 교회 목사가 주일 아침 설교에서 죄에 대하여 아주 강하게 말했더니 이튿날 어느 여자 집사 한 분이 목사댁엘 찾아와서 "목사님, 어제 설교에서는 죄에 대하여 너무 솔직하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애들이 그러지 않아도 교회에 잘 나오지 않으려 하는데 어제 설교를 듣고 교회 오기 싫다고 해요. 목사님 앞으로는 너무 그렇게 솔직하게 죄에 대해서는 말씀 안하시면 좋겠어요." 이 충고를 듣고 있던 목사가 일어나더니 약장에 가서 '극약'이라고 쓴 약병을 가지고 와서 그 집사에게 하는 말이 "자매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뜻을 잘 알겠습니다. 자매님의 말씀은 이 약병에서 '극약'이라고 쓴 딱지를 바꾸라는 말씀이지요.
제가 이 독약이 든 병에서 '극약'이라고 쓴 딱지를 떼버리고 '꿀'이라고 써 붙이면 좋을까요 그러면 위험하지 않겠지요 자매님, 사람이 듣기 좋은 말로만 하면 더욱 영혼을 죽이게 됩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사람들은 죄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기왕이면 듣기 좋은 말을 썼으면 하는 사람이 많고 아예 어떤이는 교회에서는 죄라는 말을 빼고 윤리적인 말이나 철학적으로 지식적인 설교를 듣기를 원한다. 이것은 극약이 든 병에서 극약이라는 딱지를 떼버리라는 말과 똑 같은 말이다 .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성경은 죄의 비극적인 결과에 대해서 무섭게 말씀하고 있다.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신 것은 세상의 죄악이 관영 했기 때문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심판을 받은 것은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도 악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 받은 것은 그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난 죄악 때문에 이방 세력의 손에 맡기신 것이다. 마지막 때에 세상은 죄악이 관영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복을 못 받는가 죄 때문이다. 왜 주님의 은혜를 못 받는가 죄 때문이다. 왜 우리의 신앙이 부끄러움을 당하는가 죄 때문이다. 죄를 지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럽기 짝이 없는 추한 자들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 죄의 문제가 우리에게 해결되지 않는한 우리는 주님과 가까워 질 수 없다. '사59:1-
3'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우리가 죄를 짓고도 내 추한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오늘 우리는 베드로의 이 추한 모습을 보고 우리의 자신은 어떠한지 깨달으시기 바란다. 베드로를 손가락짓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부인하고 저주까지한 베드로의 추한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추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를 철저히 미워하고 물리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은행나무처럼 나에 추한 모습을 볼 줄 아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심히 통곡하는 베드로. 75절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 하니라 "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이미 예언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부인만 한 것이 아니라 저주까지 한 것이다. 베드로는 대성 통곡을 했다. 어떻게 대성 통곡을 하게 되었는가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 베드로의 가슴을 친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베드로는 대성 통곡을 시킨 것이다.
통곡 가슴을 치고 소리 높여 슬피 우는 것이다 마음을 찢는 회개를 의미한다. '욜2:1
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 " 진정한 회개는 소리를 지르고 가슴을 치고 눈물. 콧물 흘리는게 진정한 회개다. 조용한 회개 기도는 있을 수 없다. 나의 추하고 더러운 죄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몸부림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내 더러운 마음을 주님 앞에 쏟아 붓는게 진정한 회개다. 마음을 뒤집어 엎으는데 어떻게 조용히 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죄진 추한 모습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지옥의 시뻘건 유황불 속에 들어가고 만다. 죄인은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다. 천국은 죄를 회개한자만이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좋은 회개를 하지 않은다. 왜 회개를 안하는가 회개를 안하고 싶어서 안하게 아니라 못한 것이다. 회개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게 아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회개를 하게 되었는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한 상황에서 어떻게 회개 할 수 있었습니까 '다같이'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회개할 줄 모른다. '롬3:20'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롬5:1
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 하나님 말씀을 모르고서는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니까 당연히 죄에 대한 회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강단에서 죄에 대해서 강하게 지적하는 설교가 적다는게 심각하다. 성경에 얼마나 많이 죄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많이 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 우리의 죄 때문이다. 믿으십니까 나의 죄 때문에 거룩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몸 찢고 온 몸의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셨다. 믿으십니까 진정한 회개를 하고 싶으십니까 나의 더러운 죄가 다 사함 받기를 원하십니까 말씀이 생각나야만 한다. 어떤 말씀인가 '히9:2
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예수의 피가 아니고서는 내 죄가 사함 받을 길 없다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십자가 달려서 흘리신 주님의 피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 마음이 찢어지는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초대교회 때 베드로가 그들의 죄를 지적하면서 말씀을 증거할 때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어찌할꼬-- " 하는 회개가 나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날 우리가 설교 들으면서 회개합니까 말씀을 들으면서 내 죄가 드러나야 하고 드러날 때 우리는 회개가 터져나와야 한다. 나의 죄가 말씀 앞에 드러날 때 우리는 회개를 해야만 한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이 들리면 도적질 한 자는 그 말씀 앞에 "어찌할꼬" 회개가 터져나와야 한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 들리면 그 말씀 앞에 가슴을 치고 애통해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일을 성수해라" 말씀이 들리면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죄를 "어찌할꼬" 하는 애통함이 있어야 한다. "교회에 충성하라" 말씀이 들리면 교회 일에 소홀한 우리의 죄를 가슴을 치고 "어찌할꼬" 하는 회개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회개가 없이는 우리는 주님 앞에 추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어찌할꼬" 하는 회개가 내 영혼 가운데 없이는 내 영혼은 새롭게 예수 안에서 활기찬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 영혼. 한 영혼을 너무나 사랑하고 계신다 믿으십니까 그 사랑이 바로 우리에게 회개할 수 있는 복을 주셨다. 믿으십니까 ' 예 화 ' 어떤 성도가 성경을 읽는데 마태복음 9장 10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보고 있었다. 때마침 목사가 이것을 보고 기특히 생각하여 그 뜻을 알고 읽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지금 읽는 그 곳에 누구의 이름이 씌어져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 때에 그 성도는 말하기를 "예 이곳엔 제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목사는 깜짝 놀랐다. 이 뜻을 모르고 읽는구나 탄식하면서 어느 것이 당신의 이름이요 물었다. 그 성도는 "이것이 제 이름입니다"하며, 10절,11절,13절에 거듭 거듭 있는 죄인이란 말을 가르켰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죄인이 가장 원하는 것은 죄가 용서함 받는 길이다. 그 용서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주님은 우리에게 주셨다. 누구든지 죄를 회개만 하면 예수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 죄를 회개할 때 우리는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을 찢는 회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의 마음을 찢는 회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가룟유다보다도 더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다시 베드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대성 통곡하는 회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다시 베드로를 만나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 사랑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에게 통곡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과 사랑의 시간을 계속 보내고 싶으십니까 철저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는 사람들이 회개치 아니한다고 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다. 회개한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이다. 날마다 애통함으로 주님께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애통하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세 번째:회개한 자에게 오는 축복. 행3:6-8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 베드로의 모습이 놀랍게 달라졌다.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던 그 입술이 지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아온 거지를 지금 일으키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습니까
회개는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가져다 준다. 회개는 죄만 고백하고 사함 받는 그런 낮은 차원이 아니다 진정한 회개를 할 때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다. 회개 후 베드로는 더 큰 능력의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의학적으로 우리 눈에 촉촉한 물이 고이지 않고 눈물이 안 나온다면 우리 눈은 얼마 못가서 눈을 못쓰게 된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실컷 울고나면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한다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면 큰 병이 된다고 한다 우리의 영적 세계도 우리가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 상태도 금방 병들어 버린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애통함을 가지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심령은 강퍅해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회개를 철저히 하면서 회개의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의 믿음에는 나도 모르게 새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 힘 느껴 보셨습니까 성도 여러분 ! 기도만 많이 한다고 능력 받은 것 아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회개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능력을 행한다 할지라도 그 능력은 예수께로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능력의 첫 걸음은 바로 회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베드로가 회개한 후 베드로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위대한 설교자가 되었고. 죄를 지적하는 자가 될 수 있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능력이 나타났다. 평생을 예수 한 분만을 사는 자가 되었다. 진정한 회개를 한 자는 내가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다윗 왕이 범죄 한 후 하나님께 밤이 맞도록 눈물로 회개를 했다. 그 후로 다윗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시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시편이 150장인데 다윗은 반이 넘는 되는 77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악한 사울에서 진정한 회개를 하고난 후 평생을 예수를 위해 살다가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했다. 어거스틴도 말할 수 없는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눈물로 회개한 후 예수를 위해서 평생을 살았다. 베드로도 평생동안 닭이 울 때마다 애통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에 잡혀서 죽게 되었을 때 베드로는 "나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똑바로 달릴 수 없으니 거꾸로 달아 주십시오 " 베드로는 그렇게 순교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 조세형은 39살에 잡혀서 교도소에 들어갔다. 조세형은 지난 목욕일 날 15년만에 54살의 나이로 출감했다. 그는 앞으로 주님을 위해서 청소년 선교 사역을 하며 믿음으로 살겠다고 고백했다. 진정한 회개한 자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진정한 회개를 할 때 그 순간부터 우리는 예수를 위해 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저 역시 죄인 중에 괴수였지만 주님 앞에 온전히 회개한 후에 폐병이 치료함 받았고 주님을 위해서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진정한 회개를 하면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회개는 단순히 죄만 고백하는 단계에서 그치지 아니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답게 능력을 받아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회개가 뒤따른 신앙생활을 철저히 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내가 온전하다고 하는 자를 쓰지 아니한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깨닫고 회개하는 자를 주님은 축복해 주시고 예수의 능력을 주신다. 회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이다. 회개한 자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 회개한 자만이 주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 회개한 자만이 주님의 가신 길을 갈 수 있다. '결론' 한 해가 이제 한 달 남았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께 온전한 회개의 삶을 살지 못했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새 날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회개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의 추한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위대한 것은 추한 모습에서 머무르지 않고 가슴을 치고 애통하며 주님께 죄를 회개했다는 것이다. 그 후 베드로의 모습은 전에 추한 비겁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성도 여러분 ! 갈수록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러한 때 우리 믿는 자들은 철저한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회개만 하면 아무리 더러운 죄일지라도 깨끗케 된다. '사1:18'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 애통한 마음으로 회개를 하고 나온 자에게 하나님은 두 팔을 벌리고 안아 주신다. 눅15장 탕자가 회개를 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 왔을 때 그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면서 반겨주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베드로와 같은 추한 죄악된 모습에서 더 이상 머물러 있지 말고 대성통곡하고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이 되어보자. (시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새로운 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껏 죄악된 우리의 모습은 이제 철저히 회개하고 새로운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될 것이다. 12월 한 달은 여러분에게 일년동안 다하지 못한 회개 기도를 하는 달이 되기를 원한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듣고 회개한 자가 된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새 날은 소망찬 날이 될 것이다. 회개한 자에게 하나님은 시온의 대로를 활짝 열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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