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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마27:32-44)

본문

I.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부활전 전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이 때에 일어난 일을 기념하는 주간이 바로 종려주일 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하에 있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선 민사상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식민지하에 있다는 것이 치욕적이였습니다. 그들은 그 식민지 하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대 강대국인 로마의 압박에서 벗어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의 종 을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고통에서 건져 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에 서 그들을 건져 주실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식민지 하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그들 을 그 고통에서 구해줄 메시야를 하나님이 보내 주시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젊은이가 나타나서 큰 기적과 이사를 행한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예수가 그들을 해방시켜 줄 메 시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빨리 예수가 그들을 로마의 식민지 하에서 해 방시켜 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년이 다 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지 않 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예수님이 종말적인 이야기를 자주 하십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 당시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그리고 자기들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문이 들리자, 온 예루살렘 군 중들이 다 성문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조금은 당황을 했지만, 그 능력 많은 예수님이 그들을 해 방시켜 줄 것을 기대하면서 길 에 자기들의 겉을 벗어서 펴고, 종려나무 가 지를 베어 길에 폈습니다. 그리고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 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호산나란 말은 "오 ! 구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이 날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종려주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성의 길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했던 것과 같 이, 이스라엘을 로마로 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하려 고 입성하시는 영광의 길이 아니였습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그 길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위하여, 가시는 고난의 길이였습니다. 십자가의길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우리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가신 십자가의 길은 어떤 길인가를 고난주간을 앞든 이 종려주일에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십자가의 길은 고통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는 영광스런 보위에 오르신 것이 아니 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때, 당시 기득권을 잡고 있었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불안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인기가 너무나 높고,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점을 공개적으로, 노골적이고, 신랄하게 파헤쳤습니다. 심지어는 최고의 존경을 받고 있고,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는 그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독사의 새끼들"(마23:33)이라고 불 렀습니다. 그것은 가장 치욕적인 최악의 욕입니다. 그러자 위기의식을 느낀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로 결의를 하고는, 예수님을 제거할 계략를 모의합니다.
이때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재무를 책임졌던 가룟인 유다가 예수님을 그들의 손에 은 30개를 받고 팔아 넘겼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이렇게 배신의 고통을 당하는 길이였습니다. 자기가 믿고, 모든 재정을 다 맡겼던 그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는 고통의 길이였읍니다. 그 배신은 다시 보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배신이 아니라, 그 한번의 기회로 모든 것이 끝이 나는 무서운 배신이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기분 나쁜 것이 바로 배신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은 가장 믿었던 자에게 이렇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이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배신당하는 길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바로 이런 배신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배신 당하여 잡혀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 갔읍니다. 그러자 거기에 예수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사형 시키려고,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예수님에 대하 여 거짓증언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거짓증언도 예수님을 사형 시킬만한 것은 못 되었습니다. 그때 두 사람이 와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고 했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그 두 사람이 고발하는 것이 진실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대답 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은 "네 말 대로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자기 분에 이기지 못하여, 벌떡 일어나서는 자기의 옷을 찢고는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손바닥 으로 때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얼굴에 침뱉음을 당하시고, 주먹으로 얼굴을 맞고, 손바닥으로 뺨을 맞는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런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식민지 국가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일 권세가 없었읍니다. 그래서 당시 총독이였던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여러가지 거짓증거를 들어 고발하였 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거짓증거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반론을 하지 않 았습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할 때, 그의 아내가 빌라도에게 사람을 보내어서,"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마27:19)고 말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명 절을 맞으면, 우리 나라에도 국경일이나 성탄절 등에 특별사면을 하듯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빌라 도는 이 전례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놓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무시무시한 죄수 바라바와 예수 두 사람을 거명하며, 이 둘 중에 누구를 놓 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빌라도는 바라바가 너무나 무시무시한 죄수라, 백성들이 예수님을 놓아달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무리를 선동하여, 바라바를 석방시켜 달라 고 하라고 했습니다. 군중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선동에 따라 바라바 를 놓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그럼 예수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무슨 죄를 졌다고 저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단 말이야하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이 더욱더 소리 높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 아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빌라도는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서,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는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당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하고 소리 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죄값으로, 600만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히틀러에 의하여 독가스실에서 죽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하는 수 없이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 고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러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님을 관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온 군대를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는 홍포를 입혔습니다. 붉은 색 옷은 아름다운 옷을 뜻합니다.(삼하1:24; 렘4:30) 그리고 특 별한 귀족(잠31:21; 애4:5; 겔18:16)과 왕족(아7:5;계17:4)이 착용했던 옷 입니다.
그러므로 홍포를 입혔다는 것은 예수님을 왕으로 보이게 하려고 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자기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예수님이 자기가 왕이라고 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서 홍포를 입혔읍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는 죄패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붙였습니다.(마27:37) 십자가의 길은 이런 조롱을 당하는 길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조 롱을 당하는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왕관 대신 가시면류관을 만들어 씌웠습니다. 가시로 만든 면류관의 가시가 예수님의 이마와 머리를 찔렀습니다. 예수님은 처음에는 그 가시가 찌르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 달렸을 때에는 손과 발에 박힌 못의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가시면류관이 찌르는 고통 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이 가시면류관의 가시가 찔러서 이마에 피 가 흘러 내렸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이렇게 가시면류관을 쓰는 고통의 길이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기 육신의 머리에 씌여진 가시면류관의 가시가 그의 머리를 찔 러서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이 땅에 있는 죄인들이 자기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죄악의 길로 달려가는 것 때문에 더욱더 머리가 아팠읍니다. 그리고는 로마의 병정들은 왕이 들고 있는 금홀 대신 갈대를 그 오른 손에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앞에 무릎을 끓고는 "유대인의 왕이여 편안할 지어다"하고 희롱을 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이런 희롱당하는 길이였습니다. 왕으로 영광을 얻는 길 이 아니라, 희롱과 조롱을 당하는 길이였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았습니다. 사람이 지나갈 때, 재수 없다고 땅에다 침을 뱉아도 얼마나 자존심이 상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땅에다 침 뱉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얼굴에 침 뱉음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치욕적인 일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았습니다. 예수님은 얼굴에 침뱉음을 당하신 분이셨읍니다. 십자가의 길은 이런 치욕적인 일을 당하는 길입니다. 그리고는 금홀 대신 왕의 상징으로 들려 주었던 갈대를 빼앗아, 예수님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 홍포를 다 벗기고는 예수님의 본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러 끌고 갔습니다. 아침이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 위하여 십자가를 예수님 어깨에 지우고, 사형을 집행하는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잡수지도 못하고, 밤새 심문을 당하고, 놀림을 당해 서 기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너무 무거웠습니다. 십자가는 지상에서 3 m 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니 그 십자가가 얼마나 무 거웠겠읍까 이렇게 십자가는 무겁고,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예수님은 자주 쓰러졌읍니다. 로마병정들은 그 때마다 예수님께 매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무나 지쳐 있었습니다. 로마 병정들이 보니까, 이렇게 가다가는 하루 종일 가도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서 그에게 억지로 이 십자가 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거친 언덕 길을 올라가야 하는 고난의 길이였습니다.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힘들게 올라 오느라고 목마른 예수님께 로마 병정들 쓴 쓸개를 탄 포도주를 주어서 마시게 했습니다. 갈증이 날대로 난 예수님은 그것을 받아 마시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써서 먹지를 못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목마를때 이런 쓴 잔을 받아 마시는 고통의 길이였읍니다. 평상시에는 쓸개를 탄 술은 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말라 큰 고통을 당할 때는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고문이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가신 길은 바로 이런 고통의 길이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뉘우고는 양손바닥과 양발을 한곳에 모우 고 그 위에 녹슨 대못을 박았습니다. 그 못은 잘 못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박히는 못이 아니였습니다. 내 가 알고, 내가 보는 가운데 박히는 무섭고 두려운 못이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이렇게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는 고통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제 3 시,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막15:25) 그리고는 제 6시, 낮 12 시가 되어서, 온 땅에 어둠이 임하기 시작했읍니다.(마27:45) 한 낮에 갑자기 빛이 사라지고 땅이 캄캄해 지기 시작했 습니다. 그리고는 제 9 시, 오후 3시가 되어서는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 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 나이까 "하고 소리를 지르시고는 돌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십자가 위에서 6 시간 동안 고통을 당했습니다. 금 방 죽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무려 6 시간 동안 양손에 대못이 박히 시고, 양발에 대못이 박히시고, 높은 십자가 위에, 뜨거운 뙤약 볕에 달려 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이런 고통의 길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고통의 길 을 가셨습니다.
2. 십자가의 길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길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하던 빌라도는 아 무리 예수님을 심문해 봐도 예수님에게서 예수님을 죽일 만한 죄를 찾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나는 그를 죽일 죄를 찾지 못 하였다"(눅 23:22)고 선언을 했습니다. 빌라도는 자기만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헤롯 왕도 예수님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을 했습니다.(눅23:14-15)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때, 성소의 휘장이 한 가운데가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이것을 지켜 보던 백부장이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였다"(눅23:47)고 소리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을 알지도 못하신 자"(고후5:21)라고 하셨습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3:5)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럼 왜 이렇게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그 고통을 당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롬3:11) 말씀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6:23)
그러므로 우리는 다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 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21:28)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베드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 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벧전 24)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니 라,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요1:29)고 선포를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 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렇게 고통을 당한 것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게서 우리의 죄를 질어지고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십자가 밑에 나아오면, 우리의 모든 죄가 다 벗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4)고 하셨습니다. 또한 에베소서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 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고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고 하셨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신 것은 이렇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밑에 나아오면,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함을 받습니다. 무슨 죄를 졌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죄가 많고, 크고, 무겁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오기만 하면 다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천로역정을 보면, 장망성을 떠나 저 천국 시온성을 향하여 가던 기독자의 등 뒤에 있던 무거운 죄짐이 십자가 밑에 나아왔을 때 벗어졌읍니다. 아무리 벗으려고 해도 벗을 수 없었던 죄의 짐이 십자가 밑에 나아오 자 벗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바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주님이 고난을 당하신 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창문을 열어 놓은 틈으로 벌이 들어 왔다.
그런데 그 아들은 벌에 대하여 심한 알레르 기 현상이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은 만약 그 벌에 아들이 쏘이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들은 벌을 피하려고 이미저리 미친듯이 피하였고, 놀란 벌도 이리저리 날라 다녔다. 그때 아버지가 손 을 내밀어서 그 벌을 손아귀에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아버지는 손을 다시 폈다. 그러자 벌이 다시 날아 다녔다. 그러자 아들은 다시 공포에 싸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벌침이 박힌 손을 아 들에게 들어 보이면서 "아들아, 이것을 보거라. 이제 그 벌은 너를 해할 수 없다"고 말을 했다. 아버지의 손을 쏜 벌이 쏘는 침을 잃어 버려서 더이상 다른 사람을 쏘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과 같이, 사망의 침이 우리 주님을 쏘았기 때문에 더이 상 우리를 쏠 수가 없게 되었다. 예수님은 사망의 벌에 두려워 떠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친히 사망의 벌의 침을 맞아 십자가 위 에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영원히 사망의 벌에서 해방 되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 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5:55-57)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 십자가를 늘 가슴에 간직해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걸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 를 대신하여 죽이을 당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잃어 버린다면 우리가 어찌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1580년에 크라에스(Klaes)라는 화란의 개신교 지도자가 체포되어서, 이 단자라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드디어 그는 화형을당했다. 그 비극적인 화형이 끝이 났을 때,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는 그 마을의 뒷길로 해서 그의 사랑하는 남편이 기독교 순교자로 화 형을 당한 그 언덕으로 갔다. 화형장에 이르자 남편을 잃은 크라에스의 아내는 그 화형장에서 얼마만 큼의 재를 주워 모았다. 그리고는 그 재를 그녀의 작은 손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그 손가방을 그의 아들의 목에 걸어 주면서 다음과 같은 말 을 했다. "아들아, 나는 너의 아버지의 이 재를 너의 가슴과 모든 화란의 어린 아 들들의 가슴에 영원히 달아 둔다. 그리고 이 세상 어디에서든지, 언제든 지, 불의와 잘못이 행해질 때에는 이 재가 너의 가슴을 칠 것이다. 그러 면 너는 눈물을 흘리면, 회개를 하거라" 아버지가 주님을 위하여 의롭게 순교한 그것을 잊지 말고 훌륭하게 바르게 자라라는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갖은 고난을 당하신 주님 의 십자가를 가슴에 영원히 간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시는 길이였습니다. 예수님이 죄도 없으시면서, 십자가의 그 무서운 고통의 길을 가게 된 것은 바로, 인류 앞에 가로 막혀 있던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 해서였습니다. 사람은 죄악으로 인하여 죽여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죄 인으로 죽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 가는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 더니"(롬3:23)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인류는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 앞에서 절망을 할 수 밖에 없었 습니다. 그 죽음의 문을 열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을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 한 자를 대신 하였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하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하시고 고난을 받 으사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천국에 들어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죽음 직전 까지만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불쌍한 우리들이 이제는 죽음 넘어 영원까지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은 이렇게 우리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시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자들에게는 천국에 대한 소망 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가 죽기 바로 전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땅은 사라지고, 하늘이 내 앞에 열린다."(Earth recedes; heaven opens before me) 이 말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이 되었다. 당시 무디와 같이 있었던 무디의 아들인 윌리암 무디(William L. Moody)는 그의 아버지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증거하고 있다. "아들 윌(Will)아 이것은 결코 꿈이 아니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 황홀하다. 만약 이것이 죽음이라면, 죽음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구나. 여기에는 어떤 계곡도 없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구나. 나는 이제 가야만 하겠구나" 그때 그의 나머지 가족들이 다 모였다.
그런데 무디가 죽기 얼마 전에 무디의 두 손주 드와이트와 아이렌(Dwight and
Irene)이 죽었다.
그런데 무디의 얼굴이 갑자기 빛이 나면서, 소리쳤다. "드와이트 ! 아 이렌 ! 내가 너의 얼굴을 보는 구나"(Dwight ! Irene ! I see the children's faces !) 믿는 자들에게는 천국에서 우리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는 복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길은 이렇게 우리에게 죽음 넘어 천국에 대한 문을 열어 주시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시기 위한 길이였습니다. 이 주님의 고난을 잊지 마시고,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께감사하며, 십자가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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